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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경영

꽤 비싼 브랜드 북, 명품을 띄우다

심정희 | 49호 (2010년 1월 Issue 2)
브랜딩의 핵심이 스토리텔링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명품업체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나 창립자의 드라마틱한 생애 등을 총동원해 자기 회사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도구가 바로 책, 즉 브랜드 북이다. 책만큼 진중한 무게감을 지니면서 스토리텔링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쉬운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북을 활용하는 방식은 개별 명품업체의 성향이나 책을 발간할 때 각각의 회사가 추구하는 지향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최근 발간된 2권의 브랜드 북, <이탈리안 터치>와 <프라다>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브랜드 북의 정석 <프라다>
프라다가 지난 30년 역사를 반추하기 위해 펴낸 <프라다>는 브랜드 북의 정석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인사이드’라는 이름이 붙은 전반부는 프라다 브랜드의 구조, 브랜드가 갖고 있는 철학, 창립자 미우치아 프라다가 그간 내놓은 컬렉션들을 아우름으로써 프라다가 창의성과 장인 정신을 겸비한 패션 브랜드임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아웃사이드’라고 명명된 후반부에는 프라다의 대외 활동들을 집약했다. 건축, 영화, 전시회, 파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라다가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손잡고 펼쳐온 활약상을 전시해 프라다가 단순한 패션 브랜드를 넘어 예술과 건축 등 타 분야에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창의적 생명체임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장구한 역사, 세계 패션업계에서는 고귀한 혈통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라는 태생,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이노베이터’로서의 이미지를 한 권의 책에 집약해낸 셈이다.
 

 

간접 화법의 달인 토즈 <이탈리안 터치>
반면 이탈리아의 고급 피혁 브랜드 토즈에서 펴낸 <이탈리안 터치>는 패션업체가 발간한 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이 책 어디에서도 토즈의 역사, 창업자의 일화, 토즈가 그간 내놓은 컬렉션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이탈리아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과 그들이 사는 집을 차분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을 만든 패션 저널리스트 도나타 사르토리오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면서 만난 다양한 가족들의 삶을 책에 담아냈다. 이 가족들은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토즈와 특별한 연관성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 책을 덮을 때쯤 ‘토즈에서 펼쳐낸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토즈는 굳이 독자들에게 ‘우리는 장인 정신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현대 이탈리아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차분하게 보여주고, 이 책을 토즈가 만들어냈다는 점을 독자가 상기하게 은근히 유도할 뿐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독자들에게 훨씬 깊은 울림을 남기며 ‘토즈=이탈리아’라는 등식을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다른 명품업체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은 토즈는 이런 간접 화법을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몇 년 전에는 캐리 그랜트나 마릴린 먼로와 같은 옛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진을 광고 캠페인에 활용해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토즈=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서 깊은 브랜드’라는 등식을 심기 위해서였다. 

 


 
이 두 권의 책뿐 아니라 각 명품업체들이 내놓은 브랜드 북은 몇몇 서점과 개별 회사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만 살 수 있다. 가격도 꽤 비싸다. 하지만 뛰어난 편집, 내실 있는 콘텐츠, 예술성 있는 비주얼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다. 돈을 받고 파는 비싸고 고급스런 광고 카탈로그인 셈이다.
 
브랜드 북은 패션과 명품에 별 관심이 없는 신규 소비자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한다. 쇼핑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서점은 내 집 드나들듯 하는 소비자가 패션업체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바로 서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된 한 권의 브랜드 북을 발간하려면 엄청난 비용, 정성,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명품업체들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브랜드 북 발간에 열을 올리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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