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제품 특성에 기초한 브랜드는 다양한 상품군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라이프 스타일 컨셉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무한 확장하는 일본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무인양품은 ‘이유 있게 싼’ 컨셉으로 결코 싸지만 않게, 다양한 제품군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츠타야, 이토야 같은 회사들도 고객을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드는 컨셉을 바탕으로 플랫폼 기능을 함으로써 고객 구매를 전방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브랜드 확장, 함부로 하면 안 된다?“브랜드를 해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이름을 모든 곳에 다 갖다 붙이는 것이다.”
브랜드와 관련한 유명한 경구다. 이 경구를 증명하는 사례로는 구찌(Gucci)가 대표적이다.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구치오 구치(Guccio Gucci)는 1923년 승마 관련 가죽 전문점인 자신의 첫 가게를 낸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부족한 가죽 대신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가방이 오히려 호응을 얻으면서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한다. 1960년대 말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20년간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문 내 형제들 간 재산 싸움이 심했다. 법적 문제를 다투느라 기업을 돌볼 형편이 못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라이선스 남발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목욕탕에서도 구찌 로고가 박힌 수건을 볼 수 있었다. 동네 시장에서 몇 켤레씩 묶어 파는 양말에도 구찌 로고가 박혀 있었다. 모조품인지, 실제 라이선스를 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구찌는 명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결혼 20주년에 집사람에게 구찌 가방을 선물하면 다음 날 아침 밥상이 달라진다(나빠진다는 의미)’는 조롱 섞인 말까지 나왔을까!
다행히도 구찌는 1994년 톰 포드(Tom Ford)가 디자인 총책임을 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드 라이선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제품이 무려 10만여 종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 상품군을 대폭 축소하면서 구찌의 부활이 시작됐다. 구찌 사례는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고 해서 아무 상품에나 갖다 붙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줬다.
1990년 브랜드 연구의 대가인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 교수와 케빈 켈러(Kevin Keller) 교수는 몇몇 유명 상품과 가상의 브랜드 확장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브랜드 확장에 관한 가장 유명한 논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컨대 맥도날드가 즉석 사진 현상소 사업에 진출한다. 그럼 고객은 무엇을 연상할까? ‘저질 사진’을 가장 많이 떠올렸으며 ‘음식 사업이나 잘해라’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나마 괜찮았던 코멘트는 ‘빠르기는 하겠다’ 정도였다. 이번에는 맥도날드가 테마파크 사업에 진출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가족 공원 같다’는 반응이 나타났다. 패스트푸드와 테마파크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어린이, 가족, 생일 파티 등의 연상 작용이 궁극적으로 테마파크와 잘 연결된 것이다. 맥도날드의 친근한 모습이 좋은 반응을 얻는 데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수많은 브랜드 전문가는 함부로 브랜드 확장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The Immutable Laws of Marketing)』으로 유명한 앨 라이즈(Al Ries)와 잭 트라우트(Jack Trout)는 “브랜드 확장이 지나치면 이미지를 희석해 브랜드 전체의 힘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들도 전문가들의 의견에 수긍해 브랜드 확장을 자제해왔다. 예컨대 청정원이란 브랜드는 사이다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 사이다를 만들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컨셉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칠성사이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청량감이 떠오르지만 청정원 사이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조미료와 연관된 사이다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릴 수 있다. 만약 청정원이 사이다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당연히 다른 브랜드를 쓸 것이다.
무인양품, 기존 브랜드 이론을 무력화하다그런데 기존 브랜드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바로 무인양품이다. 무인양품은 지우개, 노트 등 필기구부터 티셔츠, 양말, 청바지 등 의류, 새우깡 같은 과자류까지 판다. 일본 도쿄역 근처 유라쿠초(有楽町)역 인근에 위치한 무인양품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옥수수, 감자같이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다. 농부의 이름, 사진뿐 아니라 재배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준다. 제품에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오두막집도 판다. 재료비, 시공비 합쳐서 300만 엔 정도인데 지난 11월 말까지 총 6채를 팔았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것까지도 판다”며 장식용으로 파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2층에 올라가면 식당(meal & cafe)이 있다. 건강식 위주로 1식3찬을 제공한다. 가격도 1000엔 이하로 저렴한데 맛도 있어 늘 장사진을 이룬다. 제품으로만 본다면 무인양품에는 CJ제일제당, 에잇세컨즈, 한샘가구, 아모레퍼시픽, LG전자, 두산건설, 에이스침대, 삼천리자전거에 양재동 원예타운, 에버랜드 급식사업부까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브랜드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의 무인양품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자. 1964년 무인양품을 만든 쓰쓰미 세이지(堤清二)의 부친이 사망한다. 그의 부친은 당대 유명 사업가 및 정치가로서 부동산과 철도 관련 큰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쓰쓰미 세이지는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이었는데 부친은 법적으로 부인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부인이라 불리는 여성이 낳은 아들 쓰쓰미 요시아키(堤 義明)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물려줬다. 쓰쓰미 세이지가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당시 2류 백화점이었던 세이부(西武)백화점뿐이었다. 애첩의 아들을 보는 본처 아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TV 막장 드라마에서처럼 극도의 분함과 억울함으로 화병에 걸릴 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이지는 이복동생과 법정 다툼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던 같다.
그는 법정 다툼 기간 미국에 건너가 시어스(Sears, Roebuck and Company)를 방문한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1980년대까지 미국 1위 유통업체를 고수했던 시어스를 방문하는 건 벤치마킹 차원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세이지는 시어스의 연구실을 지나다 연구원들의 대화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책상에는 일본 카메라를 포함해 전 세계 카메라 20여 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저 카메라는 셔터 속도가 1/2000이야. 그런데 이를 1/500로 느리게 해도 사진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별 차이를 못 느끼지. 그렇다면 속도를 조금 느리게 하고 가격을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 연구원들은 제조 물량과 가격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었다.
시어스는 유통업체다. 제조업체가 만든 제품을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넘기면 된다. 그런데 유통업체가 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당시 세이지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시간이 흘러 1980년, 본인이 미국에서 보고 온 것을 실현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세이지는 임원들과 외부 전문가를 불러 모아 PB(Private Brand) 상품을 만들 것을 지시한다. 당시 세이부백화점 그룹 내에는 세이유(西友)라는 양판점이 있었는데 이곳의 PB로 무인양품(無印良品)을 론칭한다. 무인양품이 무슨 뜻인가? 브랜드는 없지만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노브랜드(no brand)라는 PB의 원조 격이다.
세이지는 당초 40개의 제품을 내놓았는데 그중 ‘깨진 표고버섯’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인은 국물 맛을 내는 다시(dashi)를 중요하게 여긴다. 표고버섯을 그 용도로 많이 구매하는데 모양이 예쁘고 흠집이 없는 것을 고가에 구매한다. 그런데 어차피 국물용 표고버섯은 찢어서 넣지 않나? 깨진 표고버섯도 국물 맛을 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나? 이런 제품을 저렴하게 팔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소비자에게 던졌다. 1980년 일본 소비시장에는 ‘싼 게 비지떡’이란 인식이 남아 있었다. 당연히 가격이 비싼 제품이 좋은 제품이란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무인양품의 ‘깨진 표고버섯’ 제안은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차피 국물을 낼 것이란 이유로 가격이 싸다면 기꺼이 구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