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컨셉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과 소비자 니즈를 결합하는 동시에 시장의 비어 있는 틈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변화무쌍한 디지털 시대에 컨셉을 만드는 이론이나 공식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결국 좋은 컨셉은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좋은 컨셉은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고, 고루한 유산을 새로운 자산으로 재탄생시킨다. 선입견을 거부하는 끝없는 회의, 한 단어를 향해 아이디어를 벼리는 치열한 과정을 감내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차별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대기업이나 유명 브랜드뿐 아니라 개인과 중소기업에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하지만 늘어난 기회만큼 경쟁의 강도가 높아졌다. 차별화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컨셉은 차별화의 압박을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인데 많은 이가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곤 한다.
문제는 차별화를 위한 컨셉 만들기에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변화무쌍한 디지털 시대에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컨셉을 만드는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돋보이게 만드는 힘은 결국 컨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광고업계에서 컨셉 디렉터로 일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만든 컨셉이 성공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컨셉을 만드는 법칙이나 기술이 따로 있기보다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벼리는 과정에서 비로소 좋은 컨셉이 탄생한다는 진실이다. 성공적인 컨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똑같은 요리 달인의 레서피를 따라서 요리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내놓듯이 독자들도 필자의 경험을 참고해 자기만의 컨셉을 찾아내기 바란다.
약점도 강점으로 만드는 컨셉의 힘‘한국의 버즈피드’를 표방한 피키캐스트가 창업 초기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10∼20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뉴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피키캐스트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 하나로 대박이 난 이례적인 케이스다.
피키캐스트의 컨셉 메이킹은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에서 광고주가 제시한 과제에서 출발했다. 광고주의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틀을 깨고, 모바일 환경에 맞춘 스낵 저널리즘을 표방한 미국의 스타트업이 바로 ‘버즈피드’다.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 맞춘 에디터의 편집으로 10∼20대의 정서에 맞게 재탄생한 뉴스를 제공한다. 배달의민족처럼 1000만 다운로드를 만들어 달라. 그래서 카테고리의 리더에 걸맞은, 세상에 없던 특별한 브랜드가 돼야 한다.”
당시 1000만이란 숫자는 스마트폰을 가진 인구가 모두 다운로드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의 컨셉으로 세상에 없는 특별한 브랜드를 만들어달라니 다소 과도한 요구였다. 더군다나 광고 집행 비용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다. 피키캐스트 경영진은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20대들인데다 광고 업무도 처음이었다.
해당 과제를 받은 필자의 팀은 우선 모바일 저널리즘이 생소한 대중들에게 피키캐스트가 어떤 회사인지 알려주는 것을 컨셉의 목표로 세웠다. ‘세상을 즐겁게’라는 피키캐스트의 경영 철학과 뉴스 생산 업체라는 피키캐스트 본연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피키캐스트가 추구하는 뉴스는 전통적인 뉴스의 성격과 달랐기 때문에 이를 새롭게 지칭할 단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단어는 뉴스 대신 ‘콘텐츠’였다. 젊은 감각으로 앞서가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장이 되겠다는 의미를 더해 ‘Joyful Contents Factory’라는 컨셉을 제시했다. ‘즐거운 콘텐츠 공장’이라고 하면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까 봐 영어로 제안했다.
하지만 광고주는 ‘Joyful Contents Factory’가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을 정확히 말해주고는 있지만 주요 타깃인 10∼20대 초반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타깃 유저인 10∼20대 초반의 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올드하고 고리타분해 보인다는 악평이 이어졌다. 너무 뻔하고 평범해서 향후 강력한 경쟁 브랜드가 될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 카드뉴스가 이 컨셉을 말한다 해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피키캐스트의 신념이나 철학은 들어 있지만 소비자 편익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피드백이었다.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춘다는 명목으로 날카롭기보다는 보편타당해 보이는 컨셉으로 타협했던 스스로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에 우리 팀은 타깃 소비자의 감성을 겨냥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는 쪽으로 심기일전해 다음의 3가지 컨셉을 제시했다. 첫 번째 컨셉은 ‘세상 모든 이슈의 중심, 이슈 팩토리 피키캐스트’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인기 있는 콘텐츠를 보면 공통적으로 ‘어제-, 요즘-, 잘나가는-, 요즘 뜨는-’ 같은 것들이다. 즉 타깃 세대들은 즉시성이 있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고 싶지 않고, 시대에 앞선 이야기들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이 컨셉은 에디터들이 직접 콘텐츠를 편집하고, 하루에 재깍재깍 2∼3번 업데이트해서 이슈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줄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이슈가 될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스낵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컨셉 ‘픽 하면 척’은 피키캐스트의 정체성보다 소비자 행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컨셉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소한 것도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게 일상이다. 대화를 하더라도 “그 영화 봤어?”라고 묻는 대신 “그 영화 비하인드 기사 봤지?”라고 묻는다. 대화의 꺼리와 수다의 재료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앞서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타깃 세대들이 피키캐스트 같은 미디어를 소비하려는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뒤처지지 않게 ‘척’하고 싶은 것 아닐까? 여기서 소비자가 ‘픽’만 하면 우리가 ‘척’하게 해주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컨셉 ‘픽 하면 척’을 제시했다.
‘우주의 얕은 지식’은 세 번째 컨셉이다. 타깃 세대인 대한민국 청년들은 모두 전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피키캐스트는 이들에게 어떤 주제든 즐겁게 소개하고, 지루한 역사도 꿀팁으로 승화시키며, 방대한 이야기도 야매로 쉽게 풀어서 제공한다. 요즘 세대는 사진 한 장에도 쉽게 재미를 느끼고, 지식경연대회를 해도 ‘얕은 지식 경연대회’를 하고,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얕은 지식을 좋아하고 환호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피키캐스트는 무게 잡지 않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다양성의 끝이 없는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로 포지셔닝하겠다고 강조했다.
광고주들이 장고 끝에 결정한 컨셉은 첫 번째 ‘세상 모든 이슈의 중심 이슈 팩토리 피키캐스트’였다. 당시 광고주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은 너무 가볍고 회사가 향후 성장할 것을 감안했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한다고 반대했다. 반대로 이슈 팩토리는 뉴스의 즉시성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가 넘버원이 되겠다는 다짐까지 담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컨셉디렉터인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의 모든 이슈’가 업계 넘버원이 되고 싶은 경영진이 혹할 수 있는 컨셉임은 분명하지만 그 컨셉이 가장 피키다운 컨셉인지는 의심스러웠다. 피키의 콘텐츠가 얕은 것은 피키만의 색깔이고 다른 브랜드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얕다고 하면 약점이지만 피키가 얕은 걸 얕다고 말하는 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필자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야말로 피키의 정체성과 타깃들의 감성을 동시에 대변할 수 있는 컨셉”이라고 강조했다.결국 광고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진심이 담긴 설득에 손을 들어줬다. 지식의 얕음을 쉽고, 실용적이며, 재밌고, 개방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에 잘 맞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피키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으로 광고뿐 아니라 뉴스 콘텐츠까지 만들었고 1000만 다운로드의 목표를 달성했다.
피키캐스트의 컨셉이 먹힐 수 있었던 비결은 “그래, 우리 얕아, 그게 뭐 어때?”라는 식의 당당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얕음을 약점이라고 생각할 때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나다운 정체성임을 당당하게 내세운 게 밑거름이 됐다. 광고주와 대행사가 컨셉 설계 단계에서 소비자와 브랜드의 정체성 양쪽에서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컨셉에 녹여내고자 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에 당당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을 끌어모으고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력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품이나 서비스, 기업의 컨셉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가진 특성 그대로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없는 걸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 않고 세상에 보여주는 게 진정한 브랜딩의 시작이자 남들과 다른 특별한 브랜드가 되는 지름길이다. 모두가 약점이라고 하더라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강력한 컨셉이 나올 수 있다.
브랜드 고유의 DNA를 놓치지 말자데상트는 잘나가는 스포츠 의류 회사지만 신발 부문에서는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한참 뒤졌었다. 데상트가 러닝화 포지셔닝을 요청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시한 과제는 “데상트 러닝화가 가진 안정성(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발목을 잡아주는)을 포지셔닝하되, 데상트만의 색깔을 살리면서,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과제를 받은 첫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러닝화는 경량감과 쿠셔닝이 없으면 팔리지 않던 시대였다. 그런데 반대로 바닥이 딱딱하고 뒤꿈치 보호를 위해 딱딱하게 발목을 잡아주는 러닝화의 특성을 ‘안정성’이란 스펙으로 강조해달라니 얼토당토않게 느껴졌다. 러닝화의 강자인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다르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 두 브랜드 사이의 비좁은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까. 고민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