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팬덤은 대상에 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애착(attachment)’을 갖고 적극 활동한다. 기저엔 양육 본능이 있다. 나의 안목을 자랑하고, 대상의 성공에 기여감을 느끼며, 그와 연결돼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애착을 낳는다. 양육 본능을 끌어내는 핵심은 세 가지다. 가능성을 가진 존재, 그가 지향하는 목표,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가능성 있는 이들을 무대 위에 올려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30호 가수’ 이승윤이나 ‘트로트 황제’ 임영웅의 서사는 팬덤을 만드는 ‘양육과 성장 게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마고치’나 ‘포켓몬스터’ 같은 게임의 문법 역시 본질은 같다. 이렇게 형성한 애착이 개개인의 정체성 일부가 될 때 팬덤은 더 강한 결속을 갖는 ‘정체성 공동체’로 거듭난다.
팬클럽과 팬덤의 차이
“야만인은 나무와 돌로 된 우상을 숭배하고,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어떤 대상을 우상으로 만들고 숭배해 왔다. 사람들은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를 우러러보며 열광했고 때로는 맹목적인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런 사람을 팬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모여 팬클럽을 만들었다. 그 시절 팬클럽은 단순했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을 모으고, 음반을 사고, 공연장에 몰려가고, 응원 구호를 외쳤다. 그것만으로도 팬의 열정은 충분히 뜨겁게 타오를 수 있었다. 스타는 무대 위에 있었고 팬은 객석 아래에 있었다. 스타는 빛났고 팬은 그 빛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팬의 마음은 대체로 동경과 응원의 형태로 표현됐다.
오늘날 팬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팬은 더 이상 좋아하는 대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관객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움직이고, 참여하고, 개입한다. 스타를 마냥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키우고, 밀어주고, 때로는 지키려 한다. 어느 순간 자발적 마케터가 되고, 성장의 동반자가 된다. 더 나아가 어떤 팬덤은 위기의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제 팬덤은 연예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팬덤은 엔터산업을 넘어 정치와 기업 활동까지 움직이는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 특정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집단, 특정 기업가를 선망하고 추종하는 집단, 특정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소비자 집단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대중은 왜 어떤 대상에게 단순한 호감을 넘어 ‘애착(attachment)’을 느끼게 되는가. 왜 특정 대상을 “좋아한다”에서 끝나지 않고, “잘됐으면 좋겠다” “계속 보고 싶다” “내가 좀 밀어주고 싶다” “저건 남의 일이 아니다”로 깊어지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기업과 브랜드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다.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제 소비자도, 시장도, 유권자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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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혁
히트메카닉스 대표
필자는 MBC-TV 시사교양PD로 ‘인간시대’‘PD수첩’ 등을 제작하고 기획했다. 편성국 프로그램개발TF팀장, ‘PD수첩’ CP,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강원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중문화 흥행 비결을 분석하는 개인 연구소 ‘히트메카닉스’ 대표로 다양한 킬러 콘텐츠 기획을 자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