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과의 대화>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대우 세계경영, 신흥국 출신 다국적기업의 캐치업 전략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166호 (2014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대우의세계경영전략이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 선진 기업들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

1) 젊고 야심만만한 엘리트 직원들을 가장 힘들고 어려운 나라로 보내고 그곳에서 1인 기업처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줬다.

2) 단기 수익을 희생해 상대국 정부가 원하는 일을 해주고 장기적 신뢰관계를 쌓았다. 정권이 바뀌는 리스크를 고려해 정치인 개개인에게 의지하지는 않았다.

3)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수동, 반자동, 자동 설비를 다 겪어본 엔지니어들과 매니저를 파견해 현지 공장 설비의 활용성과 유연성을 높였다.

4) 경공업, 중화학공업, 금융, 에너지 등 여러 산업을 망라하는패키지 딜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권(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TV드라마미생이 인기를 끌면서 종합상사 비즈니스가 재조명받고 있다. 가상의 무역회사원인터내셔널의 영업 3팀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보고 과거 ㈜대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울스퀘어 빌딩은 옛 대우그룹의 본사고 ㈜대우의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이 드라마 촬영에 협조하고 있다.

 

대우는 1967년 당시 서른 살 회사원이던 김우중이 창업했다. 요즘 말로 하면 스타트업이다. 섬유무역으로 출발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종합상사, 금융, 중공업, 전자, 자동차 비즈니스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삼성, 현대 등 다른 재벌그룹들이 내수시장에서 기반을 닦은 것과는 달리 대우는 시작부터 해외 수출에 중점을 뒀다.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대우의세계경영이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이때 대우가 활약하던 남미와 동구권, 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에선 여전히 대우 브랜드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파키스탄에서 운영하던 고속버스 사업은 2004년 이후 주인이 두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우의 이름과 로고를 쓰고 있으며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김우중 전 회장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대우가 무너지면서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86개월 형과 약 18조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각 계열사는 국내외에 분산 매각됐다. 투옥됐던 김 회장은 2008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 후 추징금 대부분을 내지 않은 채 해외로 출국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전직 대우 임직원들은세계경영연구회를 만들어 과거 대우의 경영사례를 기록으로 남겨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올여름 대우의 해체와세계경영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지난 8월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가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의 대화록인 이 책은 9월부터 10월까지 교보문고 경제경영 부문 1위에 올랐고 11월 말 현재도 5위권을 지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대우 해체의 책임이 당시 해외자본의 논리에 속아 넘어간 고위 공무원들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언급된 전직 공무원들 중 일부가 김 전 회장의 주장을 반박하며 양측의 자존심 싸움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저자인 신 교수는 책이김우중의 변명으로 비춰지는 걸 경계했다. 대신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과 창업가 기질이 살아 있던 기업문화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가 됐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책 출간 이후 국내에서 많은 강연을 했으며 그중엔 김 전 회장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한 경우도 있다.

 

저자 신장섭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매일경제신문 기자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 모델, 이른바캐치업(catch-up)’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1년부터 김 전 회장을 20여 차례 이상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서울 명동의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경제학자이면서 대우의 경영 모델에 관심을 가진 건 대우가캐치업모델이라고 보기 때문인가?

대우가 했던 세계경영은 신흥국 출신 다국적기업의캐치업모델이다. 보통 글로벌 경영이라 하면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자기들의 자본과 기술력을 갖고 해외로 나가서 세계적으로 조직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우가 했던 세계경영은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했고, 활동하는 본거지도 선진국이 아니었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선진국까지 엮었다. 그런데 신흥국에도 이미 와 있는 선진국 다국적기업들이 있다. 대우보다 자본력과 기술력이 더 좋은 선진국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해야 했다. 그 경쟁전략이 바로 대우의 세계경영이다. 신흥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선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냈기 때문에 1996년에 대우가 신흥국 출신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난 그래서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대우 해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대우의 세계경영 이야기, 즉 기업사적 가치가 훨씬 크다고 본다.

 

원래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있었나. 어떻게 만나고 책을 쓰게 됐나.

매일경제신문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했지만 직접 만날 일은 없었다. 난 주로 경제부에서 정책 관련 일과 국제부 일을 했고 산업부 쪽에서는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재벌 총수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2010년 여름에 김 회장의 측근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장님이 한번 만나고 싶어 하는데 하노이로 올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았다가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나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 본 모양이다.

 

대우그룹 회장할 때는 그룹의 전 세계적인 조직과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서 온갖 정보가 들어왔을 텐데 이제는 그런 네트워크가 많이 없어졌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금융전쟁> 등의 책과 신문 칼럼 등을 쓰면서 IMF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 그런 걸 김 회장이 읽고 공감한 것 같다. 그는 일처리를 전광석화처럼 하는 스타일이다. 측근의 추천을 받고나도 그 사람 글 읽어봤다”라며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 첫 만남에서부터 인상적이었다. 이틀 동안 한국 경제, 세계 경제, 기업, 젊은이들, 북한 문제 등 많은 주제에 대해 15시간을 얘기했다. 그 이후에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하노이 등에서 시간이 맞을 때마다 가끔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책을 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학자로서 궁금했다. 대우에 대한 옛날 얘기들을 물어보고, 얘기를 듣다 보니까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현대 경제사를 연구한 학자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도 많았다. 대우 측에서도 그동안세계경영이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선진국 기업에서나 경영학에서 얘기하는 ‘global management’와 대우의 세계경영이 어떻게 다른 건지를 명확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싶었다.

 

Global management’와 대우의 ‘세계경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일반적인 ‘global management’에서는 자본과 기술력이 있는 선진국 기업이 신흥국의 값싼 생산 요소를 끌어다가 쓴다. 그런데 중진국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과 비교해 자본과 기술력에서 부족하니 해외로 진출할 때 뭔가 다른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갖고 가야 한다. 대우는 이런 경쟁력을 여러 가지 경로로 마련했다.

 

세계경영의 출발은 아프리카다. 1976년에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수단에 진출했다. 선진국 시장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한국 기업이 새로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신흥시장 중에서도 화교 자본이나 일본 자본이 들어가 있는 곳들은 경쟁하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당시에는 일본 자본도, 화교 자본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워낙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우는) 못사는 나라에 가는 거니까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봤다. 그런 힘든 나라에서 사업을 해서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려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우는 가장 머리가 좋고 일 잘하는 사람들을 가장 좋은 곳이 아니라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서 희생시켰다. 외무고시를 보면 위에서 1, 2, 3등이 다 미국이나 유럽같이 좋은 나라에 있는 공관에 가지만 대우는 거꾸로 제일 잘하는 사람들을 제일 어려운 데로 보냈다. 거기서 성공을 하면 그 다음엔 전 세계 아무데나 원하는 곳으로 보내줬다. 그러니 똑똑한 직원들은 어려운 나라에서 자기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70년대, 80년대엔 인터넷도 없고 대우가 잘 갖춰진 큰 기업도 아니었다. 본사의 지원은 최소한이었다. 그러니 아주 젊은 사람들이 저개발국가에 가서 1인 기업처럼 운영해야 했다. 작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국가 상대의 대규모 비즈니스를 한다. 신흥국일수록 민간 기업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국가를 상대로 할 수밖에 없다. 젊은 직원들이 나가서 현지 기업인들도 만나고, 경제 관료들도 만나고, 정치인도 만나서 딜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역량이 엄청나게 축적된다. 20대 후반 사원이 외국 장관을 만나고 검찰총장을 상대했다. 그 나라의 톱레벨에 사고 구조를 맞춰서 비즈니스를 했다. 그렇게 인적 역량이 축적됐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대우의 대리급 직원에게 2000만 달러까지 계약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줬다고 말했다.)

 

돈을 회수하는 노하우도 있었다. 신흥시장이라는 데는 보통 물건은 있어도 대금 받기가 어렵다. 그런데 대우는 종합상사니까 상대가 돈이 없다고 하면 물건으로 대신 받았다. 그 물건을 다른 곳에 팔아주고 수익을 나누는 3각 무역, 4각 무역을 했다.

 

대우 세계경영의 다른 특징으로는 내가 ‘5050 원칙이라고 이름붙인 것이 있다. 대우가 리비아에 진출했을 때다. 카다피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일반적으로 서방에서는 카다피가 나쁜 사람이라고 돼 있는데 가서 보니까 정치지도자로서 괜찮은 사람이었단다. 적어도 집권 초반엔 그랬다고 한다. 뇌물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하려는 일들이 다 국민을 위한 일이었다. 길 닦고, 집 짓고, 병원 짓고, 학교 짓는 것처럼. 그래서 김 회장은 이익이 나더라도 절반만 갖고 절반은 그 나라에서 필요한 일을 해주자고 마음먹었다. 도로를 닦아주면 값을 싸게 해주든가, 아니면 학교를 무료로 지어 보너스로 주는 식이다. 그 나라의 해외 관료들이 유학 가는 비용도 대줬다. 그쪽에서 요구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필요한 것을 해주자는 식이었다.

 

상생의 원칙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신흥국은 사업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그 리스크를 이런 방식으로 관리한 것이다. 정부가 필요한 일을 해주면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은 건드릴 일이 없어 리스크가 제로가 된다. 신흥국은 워낙 빨리 성장하는 시장이므로 이익을 다른 나라에서 사업할 때보다 절반만 가져와도 금방 만회할 수 있다. 결국 리비아에서는 10년 넘게 매년 10억 달러씩 공사를 땄다. 리비아의 원유를 받아다가 파는 사업을 하다가 아예 정유공장까지 구매해서 부가가치를 높였다.

 

 

선진국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나?

선진국에선 보통 전문경영인들이 이사회의 눈치를 보며 분기별로 혹은 연도별로 단기 실적을 챙겨야 한다. 그래서 수익률이 나쁜 사업이나 어려운 시장에 들어가기 어렵다. 대우는 오너가 직접 현장에 가서내가 보기엔 이게 여기서는 전략적으로 더 좋은 거야. 이거 하자는 식으로 말하니 전문경영인들이 단기 실적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또 대우는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이 있었다. 사회주의권이 1980년대 후반에 주르르 무너지면서 중국, 소련, 중앙아시아, 동유럽, 베트남 등 새로운 시장이 확 열렸는데 이런 시장에서는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보다 대우가 더 경쟁력이 있었다. 신흥국들이 자본주의를 배운다고 나섰지만 갑자기 미국식 자본주의까지 확 뛰어오를 엄두를 내진 못한다. 그런데 한국은 최근에 경제개혁을 이뤘으니 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 모델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이런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서내가 당신 나라에 한국을 건설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그렇게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가 한국의 중화학기업 부실 처리를 했던 경험이다. 대우는 1976년 부실 국영기업이었던 한국기계공업을 인수해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다. 흑자를 보기까지 13년 동안 투자한 돈이 지금 가치로 치면 14조 원이나 된다. 그렇게 긴 기간을 투자해서 세계에서 1, 2등을 다투는 회사로 키워냈다. 돈만 벌겠다는 사람은 이렇게 못한다. 서구 기업에서 어떤 미친 사람이 13년 동안 적자를 보면서 그 큰돈을 투자하겠나.

 

당시 사회주의권의 상황이 딱 대우에 맞았다. 이미 이들 국가는 공업시설이 많이 발달돼 있는데 그걸 민간 수요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게 대우가 했던 부실기업 정상화와 같은 일이었다. 대우는 그걸 해주겠다고 했고, 또 국가 경제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패키지로 가져갔다. 복합그룹이므로 경공업, 무역, 중화학, 금융, 자원개발 등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김 회장이 상대국 정치 지도자를 만나서당신네가 필요한 것 다 이야기해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서구 기업은 규모로 보면 대우보다 훨씬 크다 하더라도 비즈니스는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이렇게 패키지 딜을 할 수 없었고, 설령 기업 연합을 맺어 패키지 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기가 어렵다.

 

현장에서도 대우만의 경쟁력이 있었다. 선진국 공장들은 선진화돼 있기 때문에 선진국 엔지니어들과 매니저들은 자동화 설비밖에는 다룰 줄 모른다. 반면 한국의 엔지니어와 매니저들은 경제발전 과정을 거치며 수동, 반자동, 자동 설비를 다 겪어본 사람들이다. 그러니 신흥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임금에 따라 반자동과 자동 공정의 비율을 82로 맞춘다든가 하는 식으로 믹스할 수 있고 생산도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이게 중진국 다국적기업이 갖고 있는 경쟁력이다. 선진국은 도저히 못 쫓아온다. 또 확장 측면에서도 중진국 다국적기업이 선진국 다국적기업보다 경쟁력이 있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폴란드의 FSO라는 국영 자동차회사를 인수할 때다. GM 6년 동안 인수하려고 공을 들인 공장이었다. 이걸 대우가 앞에서 확 낚아챘다. GM은 선진국의 다국적기업이라 이미 서유럽에 자기들 공장이 있었다. 그러니 FSO를 인수하더라도 폴란드 내수시장이나 끽해야 동유럽 시장밖에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면 인력의 대부분을 해고해야 했다. 하지만 중진국 다국적기업은 계산법이 다르다. 대우는 서유럽에 공장이 없다. 폴란드 공장을 서유럽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으려 하니 기존 FSO의 인력, 시설, 마케팅, 네트워크 등이 다 소중한 자산이다. 김 회장이 폴란드 정부에전부 다 인수하고 추가 투자, 추가 고용하겠다라고 말하니 대우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중진국 다국적기업은 자본과 기술이 모자라지만 팍팍 성장하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이런 M&A 딜에서는 선진국 기업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긴다. 이것이 1996년 기준 대우가 신흥국 출신의 세계 최대 다국적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세계경영전략이 아직도 한국에서 유효할까?

그렇다. 21세기 내내 신흥시장이 먹거리가 될 거다. 중국 시장이 미국보다 규모가 커지고 인도도 지금 추세대로라면 21세기 중반엔 미국보다 커진다. 그 다음엔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남미가 있다. 선진국은 성장률이 떨어진다. 신흥국에 가서 비즈니스를 해야 먹을 것들이 많이 생긴다. 이걸 가장 먼저 한 것이 한국의 대우였다. 아쉽게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하면서 한국 대기업이 신흥시장에서 갖고 있던 경쟁력도 함께 구조조정됐다. 선진국 하는 거 좇아하겠다면서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버린 거다.

 

얼마 전 안타까운 생각이 든 일이 있었다. 한 젊은 대학교수가 자신이 쓴 보고서를 내게 보내왔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의 사례, 동유럽에 나간 노키아의 사례를 쭉 들고한국 기업들도 이렇게 따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우가 이들보다 훨씬 빨리 아프리카, 동유럽에서 세계경영을 했던 회사다. 우리 기업이 했던 것에는 관심을 안 갖고 다른 나라가 잘하고 있는 것 따라 하자고 하니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어버린 건지, 국내 사례라고 무시하는 건지,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사대주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기업과 한국의 기업인들에 대한 연구를 한국의 경영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 심지어 삼성 이병철 회장의 평전도 경영학자가 아니라 소설가가 썼다. 학자들이 한국식 경영과 한국 경영인에 대한 연구는 안 하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뭐 했는지 따라 하자는 얘기만 하니 경제, 경영계의 깊이가 얕아진다.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에겐 대우에 대한 얘기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에 정경유착, 회계부정이 문제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 기업이라고 다 깨끗하지는 않다. 엔론이나 골드만삭스도 그렇고 중국 기업들도 다 불투명하다. 해외에 나가면 투명한 회사들하고만 경쟁하는 게 아니다. 기업을 완전히 발가벗겨놓고 정부는 손을 떼고 기업 혼자 나가서 경쟁하라고 하면 신흥시장에서는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신흥시장에서 그쪽 정부와 상생을 제대로 하려면 민관협력이 잘돼야 한다. 지금도 중국에서 큰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 공산당을 상대해야 하고 중동, 동유럽, 러시아,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 큰 딜을 따려면 그쪽의 왕을 우리 대통령이 가서 만나야지, 기업의 사장이 가서 만나자고 하면 웬만해선 안 만나준다. 정경유착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정경협력이 잘되는 나라가 경제도 잘된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똑같다.

 

하지만 신흥국에선 그렇게 쌓은 인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리스크 아닌가?

리스크가 있지만 그래도 비즈니스를 하려면 정부랑 하는 것이 낫다. , 회장은 해외에서 특정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주는 건 리스크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 거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게 다 위험요인이 된다. 특정 정치인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에 필요한 일을 해줘야 한다. 그러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때까지 해준 공로는 인정해준다.

 

그런 방법이 항상 성공하진 않는 것 같다. 대우가 프랑스 전자회사 톰슨을 1프랑에 사려다가 실패한 예가 있다. (1996년 프랑스 국영기업 톰슨그룹의 가전 부문을 부채를 떠맡는 조건으로 상징적 가격인 1프랑에 인수하려다 부정적 여론에 부딪힌 프랑스 정부가 매각을 취소했다.)

그때 그게 딜까지 다 끝났었다. 프랑스 정부도 오케이 사인을 줬지만 국회에서 들고 나와서 성사가 안 됐다. 만약 톰슨을 미국 회사나 영국 회사가 샀더라면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을 거다. 후진국 기업이 산다니까우리 자존심 상했다’ ‘어떻게 황인종에게 최고의 기업을 넘겨식의 반응이 나온 거다. 제시한 가격도 조금 영향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인종 차별, 후진국 차별이 문제였다.

 

삼성과 현대차도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다. 대우의 세계경영 스타일과는 어떻게 다른가.

삼성은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은 둘 다 야전사령관 스타일이다. 그런데 둘이 다른 부분이 있다. 김우중 회장은 좀 더 전략가 스타일이다. 그 당시 기업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애국심을 갖고 일을 했지만 김우중 회장은 그중에서 특히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경기고를 나와 4년 장학금을 받고 연세대를 갔다. 엘리트로서 사회에 대한 소명감이 강했다. 전문경영인들을 봐도 당시 대우의 전문경영인들이 학벌이 제일 좋았다. 삼성이나 현대엔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우는 회장이 은둔하면서 비서실을 통해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직접 회사에 나와서 머리 좋은 부하들과 함께 피 튀기게 일했다. 비즈니스의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은 밀가루, 설탕 같은 내수사업과 금융으로 컸지만 대우는 수출로 컸다. 수출은 나가서 뛰어다녀야 한다. 사람들을 외국으로 보내놓고 최고경영자가 돌아다니면서 파악도 하고 격려도 해야 한다. 서울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외환위기 때 팔린 대우 계열사들이 거의 다 잘나가고 있다.

그렇다. 심지어 가장 부실이 많다고 했던 대우자동차도 그대로 놔뒀다면 지금 엄청나게 잘됐을 거다. 당시 대우가 개발해뒀던 소형차 3(레간자, 누비라, 라노스)과 마티즈가 다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대우는 신흥시장 중심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고 소형차 개발을 했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초기 투자에 들어간 것만 보고 부실기업이라면서 GM에 거의 공짜로 팔았다.

 

당시 GM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소형차가 필요했다. 외환위기 전인 1997 5월부터 대우와 합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헐값에 사갔다. 그리고 그 모델들을 가지고 장사를 잘했다. 미국에서도 누비라(인수 후 라세티로 바뀜)를 이름만뷰익 엑셀로 바꿔서 소형차 부문 1등을 했고, 중국에선 GM상하이 매출의 70%를 차지했다. 마티즈 역시 중국 미니카 시장에서 1등을 했다. 심지어 중국 기업이 마티즈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짝퉁 마티즈라 불리던 QQ 4등을 했다. 레간자도 미국 시장에서 많이 팔렸고 실제로 딜러들 사이에선대우가 제2의 혼다가 될 거다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 사업성을 보지 않고 회사를 뚝 잘라서지금 적자니까 부실이다라며 해체시켜버렸으니 국가적으론 큰 손실이다.

 

 

책에서 대우 해체의 이유 중 하나로 김 전 회장과 관료들의 불화를 꼽았는데.

김 전 회장이 후회한 점이다. 일찍부터 자기보다 10, 20살 위 연배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해외에서도 대통령들을 만나다 보니 경제 관료들을 우습게 봤다고 한다. 또 해외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내 로비가 약했다. 회장 본인이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역대 대통령들하고 사이가 다 좋았으니 그걸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경제 관료들을 막 대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회장직도 맡고 있었다).

 

김 회장은 경제위기 때 우리 재산을 값싸게 팔아서 외자를 끌어들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공급과잉은 선진국의 문제지 우리처럼 자라나는 기업은 공급과잉이 아니다. 시설을 줄일 필요가 없다. 수출해서 그걸로 돈 빨리 갚아버리면 IMF 끝난다고 말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대우가 유동성이 확 쫄려버렸으니 그대로 가 버린거다.

 

해외에 남아 있는 대우 브랜드를 가끔 보는가?

이번에 책을 내고 나서 전직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주요 금융 공기업 수장을 지낸 분과 이야기를 했다. 그분이 옛 대우 계열사들의 비즈니스 건으로 우즈베키스탄과 동유럽에 가보고어떻게 미리 그렇게 생각을 하고 비즈니스를 만들어놨는지놀랐다고 한다. 한국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리 투자해놓은 알짜 비즈니스가 많았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대우의 마케팅, 영업 능력을 중소기업에 전수해주고 싶다고 했다는데.

요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한테 착취당한다는 여러 가지 말이 나온다. ㈜대우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중소기업들 수출 대행을 많이 해줬다. 망할 때까지도 중소기업 수출 대행이 전체의 약 40%가 됐다. 김 회장은 항상 마케팅을 강조한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당하는 건 마케팅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체 마케팅 능력 없이 대기업한테만 매달려서 납품만 하면 대기업 입장에서야 자기들 이익 올리기 위해서 졸라매는 게 당연하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중소기업들도 해외에 다른 마케팅 채널이 있어야만 한다. 대우에서 그런 일을 많이 해봤지만 퇴직한 사람들이 중소기업 마케팅을 도와주면 기업도 좋고 그 사람들도 놀지 않아 좋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한다. 괜히 대우가 재기를 꿈꾼다는 얘기를 들을 가능성도 있고, 또 퇴직했던 전 대우 사람들도 다른 일을 찾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