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연극연출가 오태석

"연출가의 요리, 맛보는 건 관객의 몫,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게 하라"

이유종 | 166호 (2014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연극연출가 오태석이 비즈니스 리더에게 주는 교훈

1) 관객이 평소 사용하지 않는 두뇌를 사용하게 만들어라.

2) 관객의 역할인신의 몫을 최대한 이끌어 내라.

3) 배우들이 90%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 허구의 삶에 몰입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4) 잘하는 배우도 스스로 역량을 의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종희(단국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연극연출가 오태석(74)은 이미 고희(古稀)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에 출근해 단원들과 함께 부대끼며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현역 연극인이다. 목화레퍼터리컴퍼니는 모든 단원이 극단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동인제(同人制) 극단이다. 배우와 스태프 등 40여 명이 함께 밥을 먹고 하루 8시간 이상 연극 연습을 한다. 단원들은 7∼15년을 함께 부대끼며 공연한 사람들이 많다. 적지 않은 연습량에 일상은 매우 고되다. 하지만 무대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허구의 세계에 최대한 많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배우에게 허구의 감정이 깨지지 않는다. 목화레퍼터리컴퍼니는 우리말, 몸짓, 소리에 관심을 갖고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연극언어로 발전시키는 작업과 전통춤, 판소리 등 전통 연희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매우 한국적인 극단이다. 출신으로는 유해진, 성지루, 손병호 등 유명 배우도 상당하다. 해외에서 얻은 성과도 대단하다. <삼국유사> 등을 차용해서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로맨스극템페스트 2011년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에서 스코틀랜드은행과 유력 일간지더 헤럴드가 수여하는 헤럴드에인절스상을 받았다. 서울 대학로에 자리를 잡은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의 사무실에서 연극연출가 오태석을 만났다.

 

1940년 충남 서천 출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웨딩드레스가 당선됐고 19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 공동 장막극 공모에선 희곡환절기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데뷔했다. 40년 이상 극작가,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하며 모두 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전통 소재와 공연기법을 활용해 창의적인 연극을 제작했고 독자적인 연극 세계를 만들었다. 대표작은초분(1973)’ ‘(1974)’ ‘춘풍의 처(1976)’ ‘자전거(1984)’ ‘부자유친(1989)’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 ‘내 사랑 DMZ(2002)’ ‘만파식적(2005)’ ‘용호상박(2005)’ ‘백년언약(2009)’ 등이다. 희곡집은 영어와 독일어, 일어 등으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20여 권이 발간됐다. 서울연극제 대상(1987), 동아연극상 대상(1991, 2006, 2011), 김수근 문화상(1992), 백상예술대상 연극희곡상(199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2004), 호암상(2005) 등을 받았다.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 소극장 아룽구지 대표, 국립극단 예술감독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예대 석좌교수와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마스크를 벗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서너 살 때부터 마스크를 쓴다. 본심을 감추기 위해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어린이는 할아버지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재롱을 부린다. 용돈을 받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더 두꺼운 마스크를 사용한다. 대학생의 마스크는 탱크의 철갑처럼 매우 두껍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을 때가 있다. 바로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때다. 화장실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들어오지 못한다. 바지를 벗고 큰일을 보며 애인을 만날 스케줄을 떠올리는 순간 마스크를 벗는다. 마스크를 벗는 것은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것이다. 화장실을 나올 때는 물론 다시 마스크를 쓴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도 마스크를 벗는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님과 헤어지면 다시 마스크를 쓴다. 이런 상황 이외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을 때가 바로 공연장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스크를 벗고 공연을 본다. 공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본성을 드러내고 빠져들게 하려면 마스크를 벗게 해야 한다. 공연장에서는 일상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1900년대 러시아가 배경인 공연을 관람하면 당시 일어난 사건을 배우들이 보여준다. 마스크가 필요 없다. 그래서 순수하다.

 

관객은 연극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상상하거나 생각한다. 이때 사용하는 두뇌(의식)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두뇌다. 좋은 공연은 평소 쓰지 않던 머리를 더 많이 사용하게 한다. 상상하고 체험하게 만들며 자꾸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게 만든다. 공연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 공간은 왜 비워뒀지?’ ‘저 배우는 왜 이런 말은 하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서 관객이 연극의 흐름보다 앞서가기도 하고, 함께 동행하기도 하며, 관객이 연극의 흐름을 뒤쫓아가기도 한다. 이게 바로 연극이다. 연극에는 이런 즐거움이 있다. 누구나 상상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꿰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은 사실 장단을 잘 모르는데 연극을 보면 자신이 저절로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재발견이 바로 체험이다. 연극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유쾌한 것들 때문에 현실의 고단함이 사라진다. 연극을 마치면 관객은 평가한다. 관객이 무엇인가 주머니에 넣고 나갈 수 있는 울림이 많을수록 좋은 공연이다. 주제는 뭐라도 상관이 없다. 연애, 위로, 감동 등이 평소 쓰지 않던 의식 영역에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관객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서 민족적 정서에 기반한 해학을 통해 연극을 만들었다. 고유의 정서인 해학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용광로다. 고추장과 김치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한국인에게 해학을 끄집어 내야 한다. 결국 관객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은 웃으면서 모든 것을 다 녹일 수 있는 큰 그릇과 같다.

 

연출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실 세계에서는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다. 연출가는 허구에서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밥상과 비교하면 마늘과 파, 두부 등 식재료를 정갈하게 씻고 요리한 뒤 간장과 된장, 고추장만 가져다 밥상에 올리면 끝이다. 이게 전부다. 물론 요리를 하고 좋은 음식을 밥상에 올리는 데만 무려 6개월이라는 연습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음식의 맛을 느끼고 영양을 섭취하는 것은 관객의 선택이다. 그만큼 관객의 몫이 크다. 무대가 4, 관객이 6할이다. 연극은 결국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숨을 쉬는 것이다. 같이 만드는 것이다. 함께 숨을 쉬면 충돌하기 마련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연출가와 배우는 연습하면서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한다. 하지만 예상을 깨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를신의 몫이라고 부른다. 극작가가 희곡에 미처 쓰지 못한 상황이 무대에서 벌어질 때가 있다. 무대에는 분명 강과 정자가 없는데 관객은 강과 정자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의도와 다른 두 장면이 만나고 새로운 장면이 연출될 때도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연극이다. 연극은 관객에게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을 남겨둬야 한다. 관객 스스로 생략된 부분을 채우고 비약된 부분을 이으며 머리를 왕성하게 굴리고 상상하는 것이 진짜 재미있는 것이다. 공연은 관객이 만든다. 관객은 이러한 참여가 있는 연극을 더 좋아한다.

 

관객과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연출가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관객에게 차근차근 정보를 줘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관객이 반응할 때도 있다. 연극은 계획된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말고 관객의 반응과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따라가면 된다. 정말 라이브다. 관객이 반응을 보여주면 연출가와 배우도 리듬에 맞춰 액션을 취한다. 또 연극은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유능한 연극가는 관객을 잘 다룬다. 신의 몫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완급 조절을 하는 것이다. 연극은 낮과 저녁 공연이 서로 다르다. 낮 공연은 호응이 좋은 관객이 많이 오고 저녁공연은 호응이 적은 관객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연극의 질(quality)은 관객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영화와 연극이 다른 점이다. 영화는 똑같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같은 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연극은 관객이 얼마나 잘 호흡하고 이들의 참여를 얼마나 유도했는지에 따라 같은 내용의 연극이라도 결과가 상당히 달라진다. 대체로 많이 연습하면 연극 도중 계획한 곳에서 관객의 반응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또 관객의 입장에서 무대를 봐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500년 전에 완성된 것으로 당시와 현재 우리의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 그래서 우리말로 다시 표현해야 한다. 매번 무대에 올릴 때마다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연극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연극의 힘은 생략, 비약, 의외, 즉흥 등 4가지 요소에서 나온다. 연출가들은 4가지 요소를 반영해서 연극을 제작하려고 노력한다. 생략은 무엇일까. 판소리 춘향전을 모두 마치려면 9시간이나 걸린다. 소품은 딱 두 가지. 하나는 부채이고 다른 하나는 침을 닦는 수건이다. 부채는 판소리 창자(唱者)를 통해 도령이 되고 춘향이도 된다. 때로는 월매가 되기도 한다. 어사 출두를 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부채 하나가 여러 인물의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이다. 왜 이럴까. 생략이 많아서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생략된 부분을 상상으로 채운다. 부채질 하나로 춘향이가 타는 그네의 높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간단한 소품과 언변으로 관객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한다. 관객이 생략된 부분들을 스스로 다 채워 넣게 연기해야 한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주고 뭔가를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항상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관객을 괴롭혀야 한다.

 

비약도 마찬가지다. 이몽룡이 박석고개를 넘어 춘향이 집에 왔다.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이 춘향이가 수청을 들어야 하는 사또 생일이다. 춘향이가 죽게 생겼다. 이몽룡이 어사출두를 해야 춘향이가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몽룡은 장원급제 사실을 감추고 거지 행색으로 왔다. 춘향이가 풀려날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장모는 그래도 사대부 마님처럼 백년지객인 사위에게 예의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후하게 진수성찬을 차려준다. 상을 차리는 장면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이다. 이몽룡이 바로 어사라고 밝히면 이야기 전개가 힘들어지고 재미도 없어진다. 그래서 비약이 필요하다. 비약을 해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재미있는 연출이 나올 수 있다. 의외성은 이야기가 제대로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야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도출된다. 과거 할아버지와 대화하면 옳은 소리를 하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았다. 이 자체가 재미있는 요소다. 즉흥성은 관객과 호흡하며 상황에 따라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공연시간이 길어지면 배우들이 화장실에 가거나 쉬고 싶어진다. 또 연기를 제대로 못할 때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이어제 술을 얼마나 먹은 거야?” 등의 대사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이런 대사가 즉흥적인 것이다.

 

연극에서 소품이나 배우가 많으면 관객의 몰입도가 높아질까?

오히려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냥 비어 있으면 안 된다. 무대는 꽉 차야 한다. 소품과 공간에서 여백을 둘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대를 간단하게 만드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관객이 상상하면서 여백을 채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냥 비운다고 해서 여백이 아니다. 여백은 관객이 채우기 때문에 관객을 위해 비워두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생략의 과정이다. 조명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 관계 없이 관객이 상상으로 머리에 조명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베테랑 배우라도 연기를 잘 못할 때가 있다.

FC 바르셀로나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골을 잘 넣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마지막 골을 넣지 못했다. 월드컵이라는 큰 경기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메시가 다음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배우는 나이

40을 넘기면 20년 이상 연기를 한 것이다. 연극을 하다 보면 실수로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을 많이 하고 경험이 쌓이면 애드리브 기술이 좋아진다. 그래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량이 매우 중요하다. 배우는 3∼5년 차가 되면 이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다. 10년 이상 공연하면 자신의 색깔이 확실해진다. 일식집에서도 물고기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려면 적어도 7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7년 정도 물고기의 내장을 씻어야 비로소 회칼을 잡을 수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관객이 만든다. 관객은 참여가 있는 연극을 더 좋아한다.

 

배우가 허구에 빠져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식사 등 일상적인 생활은 관성에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90% 이상의 에너지는 허구의 삶에 몰입해야 한다. 허구에서 자신이 맡은 인물이 돼야 한다. 열일곱 살의 배우가 춘향이나 줄리엣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줄리엣이 요구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내가 더 영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악한 부분을 빨리 없애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마스크를 벗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습관을 모두 버려야 역할에 몰입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하루 2시간 이상 손가락이 건반 위에 있다. 건반과 손가락이 항상 살아 있어야 2개월 만에 모차르트의 곡에서 베토벤의 곡으로 바꿔서 연주할 수 있다. 배우는 매일 허구에서 살아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의 배우들은 오후에 나와서 지하철이 끊어질 때까지 모여 연습한다. 왜 이렇게 사실상 공동생활을 할까? 배우들이 허구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허구에 더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집과 침대 등 편안한 분위기에 빠지면 2∼3개월 동안 훈련한 허구의 생활이 순식간에 깨진다. 190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공연을 하면 러시아에서 산 것처럼 연습해야 한다. 훈련 시간 이외에도 가능하면 최대한 허구의 삶에서 살아야 한다.

 

배우가 연습에 몰입하기 위해선 연출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연출가는 가능하면 배우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의심이 없으면 배우의 재능이 시멘트처럼 굳어버린다. 레미콘에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 물이 섞여 있다. 굳지 않게 하려면 통을 계속 돌려야 한다. 특히 배우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터득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좋다. 배우의 화법에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연출가는 배우에게 대사를 다양한 어조로 말해보라고 시킬 수 있다. 배우는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서 다양한 어조로 대사를 말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연출가가 에둘러서 보여주면 배우들이 스스로 깨닫기 마련이다. 스스로 계속 연습하며 터득하게 도와주는 게 연출가의 역할이다. 연출가는 배우가 아니다. 관객의 시각에서 배우를 봐야 한다.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좋은 연출가다.

 

과거 실패했던 사례가 있는가?

실패했던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비약을 해야 할 때 비약을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비약을 했다. 관객은 헷갈렸다. 이런 경우 연극은 진행되는데,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오지 못한다. 제대로 감동을 받기도 어렵다. 관객이 본류를 놓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아마추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연극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 완성도 측면에서 70% 이상을 넘긴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완성도가 70% 이상을 넘겼다는 것은 연출가의 의도대로 관객이 정확하게 따라왔다는 것이다. 아직은 완성도 80%가 목표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