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과의 대화>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이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 선진 기업들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 1) 젊고 야심만만한 엘리트 직원들을 가장 힘들고 어려운 나라로 보내고 그곳에서 1인 기업처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줬다. 2) 단기 수익을 희생해 상대국 정부가 원하는 일을 해주고 장기적 신뢰관계를 쌓았다. 정권이 바뀌는 리스크를 고려해 정치인 개개인에게 의지하지는 않았다. 3)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수동, 반자동, 자동 설비를 다 겪어본 엔지니어들과 매니저를 파견해 현지 공장 설비의 활용성과 유연성을 높였다. 4) 경공업, 중화학공업, 금융, 에너지 등 여러 산업을 망라하는 ‘패키지 딜’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권(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TV드라마 ‘미생’이 인기를 끌면서 종합상사 비즈니스가 재조명받고 있다. 가상의 무역회사 ‘원인터내셔널’의 영업 3팀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보고 과거 ㈜대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울스퀘어 빌딩은 옛 대우그룹의 본사고 ㈜대우의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이 드라마 촬영에 협조하고 있다.
대우는 1967년 당시 서른 살 회사원이던 김우중이 창업했다. 요즘 말로 하면 스타트업이다. 섬유무역으로 출발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종합상사, 금융, 중공업, 전자, 자동차 비즈니스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삼성, 현대 등 다른 재벌그룹들이 내수시장에서 기반을 닦은 것과는 달리 대우는 시작부터 해외 수출에 중점을 뒀다.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대우의 ‘세계경영’이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이때 대우가 활약하던 남미와 동구권, 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에선 여전히 대우 브랜드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파키스탄에서 운영하던 고속버스 사업은 2004년 이후 주인이 두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우의 이름과 로고를 쓰고 있으며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김우중 전 회장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대우가 무너지면서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8년6개월 형과 약 18조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각 계열사는 국내외에 분산 매각됐다. 투옥됐던 김 회장은 2008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 후 추징금 대부분을 내지 않은 채 해외로 출국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전직 대우 임직원들은 ‘세계경영연구회’를 만들어 과거 대우의 경영사례를 기록으로 남겨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올여름 대우의 해체와 ‘세계경영’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지난 8월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가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의 대화록인 이 책은 9월부터 10월까지 교보문고 경제경영 부문 1위에 올랐고 11월 말 현재도 5위권을 지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대우 해체의 책임이 당시 해외자본의 논리에 속아 넘어간 고위 공무원들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언급된 전직 공무원들 중 일부가 김 전 회장의 주장을 반박하며 양측의 자존심 싸움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저자인 신 교수는 책이 ‘김우중의 변명’으로 비춰지는 걸 경계했다. 대신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과 창업가 기질이 살아 있던 기업문화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가 됐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책 출간 이후 국내에서 많은 강연을 했으며 그중엔 김 전 회장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한 경우도 있다.
저자 신장섭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매일경제신문 기자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 모델, 이른바 ‘캐치업(catch-up)’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1년부터 김 전 회장을 20여 차례 이상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서울 명동의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경제학자이면서 대우의 경영 모델에 관심을 가진 건 대우가 ‘캐치업’ 모델이라고 보기 때문인가?
대우가 했던 세계경영은 신흥국 출신 다국적기업의 ‘캐치업’ 모델이다. 보통 글로벌 경영이라 하면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자기들의 자본과 기술력을 갖고 해외로 나가서 세계적으로 조직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우가 했던 세계경영은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했고, 활동하는 본거지도 선진국이 아니었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선진국까지 엮었다. 그런데 신흥국에도 이미 와 있는 선진국 다국적기업들이 있다. 대우보다 자본력과 기술력이 더 좋은 선진국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해야 했다. 그 경쟁전략이 바로 대우의 세계경영이다. 신흥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선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냈기 때문에 1996년에 대우가 신흥국 출신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난 그래서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대우 해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대우의 세계경영 이야기, 즉 기업사적 가치가 훨씬 크다고 본다.
원래 김 전 회장과 친분이 있었나. 어떻게 만나고 책을 쓰게 됐나.
매일경제신문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했지만 직접 만날 일은 없었다. 난 주로 경제부에서 정책 관련 일과 국제부 일을 했고 산업부 쪽에서는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재벌 총수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2010년 여름에 김 회장의 측근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장님이 한번 만나고 싶어 하는데 하노이로 올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았다가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나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 본 모양이다.
대우그룹 회장할 때는 그룹의 전 세계적인 조직과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서 온갖 정보가 들어왔을 텐데 이제는 그런 네트워크가 많이 없어졌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한국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금융전쟁> 등의 책과 신문 칼럼 등을 쓰면서 IMF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 그런 걸 김 회장이 읽고 공감한 것 같다. 그는 일처리를 전광석화처럼 하는 스타일이다. 측근의 추천을 받고 “나도 그 사람 글 읽어봤다”라며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 첫 만남에서부터 인상적이었다. 이틀 동안 한국 경제, 세계 경제, 기업, 젊은이들, 북한 문제 등 많은 주제에 대해 15시간을 얘기했다. 그 이후에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하노이 등에서 시간이 맞을 때마다 가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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