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후지필름 고모리 회장

필름시장이 죽어도 후지는 계속됐다 주인 같은 전문경영인의 개혁 있었기에…

이우광 |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아날로그 필름이 불필요한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코닥, 후지 등 거대 필름제작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 결과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코닥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반면 후지는 주력제품의 시장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후지필름은 2000년을 정점으로 필름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다. 이들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TAC필름, 화장품 사업 등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성과를 냈다. 이런 판단을 내린 배경에는 고모리 시게다카 회장의 선견지명과 결단력이 작용했다. 그는 전문경영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과감하게 후지필름에서 구조조정 등 개혁을 주도했다.

 

주력사업의 시장이 급속하게 축소돼 기업이 소멸 위기에 처했을 때 경영자는 과연 어떻게 새로운 주력사업을 창출할 것인가? 이 질문은 경영자가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파괴와 창조. 말은 쉽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런 난문을 풀지 못해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기업수명 30년 설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수년 만에 해결하고 새로운 주력사업을 창출해 낸 대표적인 일본 기업이 하나 있다. 바로 후지필름이다. 후지필름은 필름시장의 위기에서 과감하게 개혁을 시도했고 그 결과 새로운 주력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개혁 주도자는 고모리 시게다카(古森重隆) 회장 겸 CEO. 고모리 회장의 업적은 사실 이스트먼코닥 때문에 더욱 빛났다. 전 세계 필름시장에서 양대 거성 중 하나였던 코닥이 2012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 기업의 명암을 갈랐을까?

 

본업이 소멸 위기에 처했을 때 경영자가 현상을 인식하고 과감한 개혁을 실행한 기업은 생존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내리막길을 멈출 수 없었다. 고모리 회장은 후지필름이 처한 당시의 위기를도요타에서 자동차가 없어지고 신닛테츠(신일본제철)에서 철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위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는 절박한 표현이다. 고모리 회장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 중 한 명이다. 내수 축소와 본업 소멸의 위기에 처한 많은 일본 기업에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고모리 회장은 과연 어떻게 주력사업을 변혁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우리가 후지필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핵심 화학소재 산업에서 후지필름은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액정패널 제조에 사용되는 편광판 보호필름인 TAC필름을 후지필름 등 일본 기업에서 거의 100% 수입하고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정밀화학 소재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도 후지필름의 사례는 한국 기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기업소개: 후지필름

후지필름은 1934년 필름제조 국산화를 위해 대일본셀룰로이드의 사진필름 사업을 분리시켜 사진필름, 인화지 등 사진감광재료를 제조하는 후지사진필름㈜으로 출발했다. 1962년 영국의 Rank Xerox Limited와 합작으로 후지제록스㈜를 설립했고 1965년 판매 부문을 분리해서 후지컬러판매㈜를 설립했다. 2001년에는 후지제록스의 주식 25%를 추가 확보해 출자비율 75%의 연결 자회사로 만들었다. 2004년 유통 관련 4대 특약점의 영업권을 인수해 후지필름이메징㈜을 설립해 국내 영업 기능을 통합했다. 2005년 후지사진필름㈜에서사진이라는 단어를 빼고 후지필름㈜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6년 후지필름㈜과 후지제록스㈜를 모두 소유한 지주회사 후지필름홀딩스㈜를 출범했다. 2014 3월 말 자회사 273, 종업원 78595명을 두고 있다. 연결 매출액은 2013 24400억 엔, 영업이익 1408억 엔이다. 사업 부문은 사진·광학 관련 사업인이미징 솔루션’(매출 3736억 엔, 비중 15.3%), 액정소재·의료기기·화장품 관련 사업인인포메이션 솔루션’(매출 9339억 엔, 비중 38.3%), 복사기·복합기 관련 사업인다큐멘트 솔루션’(매출 1 1325억 엔, 비중 46.4%)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매출은 국내 42.5%, 해외 57.5%이며 아시아 비중은 27.6%.

 

위기를 직감한 고모리 회장

후지필름은 전 세계 컬러필름(은염필름) 분야에서 코닥에 이어 2위 기업이었다. 일본 시장에서는 점유율 70%를 기록했다. 거의 독점기업이었다. 컬러필름 수요는 순조롭게 증가해서 2000년 정점을 기록했다. 2003년까지 조금씩 감소했으나 여전히 판매량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모리 회장이 후지사진필름(현 후지필름홀딩스) 사장(COO)으로 취임한 것은 바로 전 세계 컬러필름의 수요가 정점이던 2000년이었다. 당시 후지필름은 재래식 카메라의 디지털화로 막연하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디지털카메라 제조 등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카메라와 필름이 일체형인 인스턴트 카메라우쓰룬데스는 판매가 호조였다. 그래서 위기의식이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다. 중국 등 신흥국 시장의 수요도 늘고 있었다. 사내에서는어떻게 되겠지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시장 지배 기업들이 흔히 겪는 자만이었다. 고모리는 달랐다. 주력사업인 필름사업이대전전야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과거부터 디지털화의 영향에 주목하고 있었다. 1980년경 디지털화가 진전되면 스캐너가 보급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사내 여러 반대를 뿌리치고 스캐너 사업을 강하게 주장해 성공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곧 디지털의 파고가 필름사업을 엄습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컬러필름 수요 예측이 2000년부터 감소세로 바뀐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른 경영진은 예측 결과를 반신반의했으나 고모리는 이런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후지필름의 예측은 카메라 출하 대수, 출생자 수, 결혼자 수, 가족구성 변화, 여행자 수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수요 예측은 상당히 정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젖어 있는 다른 경영진은 부정적인 전망을 외면했다. 고모리는 평소 현장 담당자의 의견을 모니터링하고 중시해왔다. 필름사업이 위기라는 것을 금방 직감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측분석 실무진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경영진이 싫어할 분석 결과를 그대로 보고했다는 점이다. 경영진이 판단을 그르치지 않도록 상사에게 직언하는 실무자의 자세도 난국을 타개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고모리가 위기를 직감해도 개혁은 쉽지 않았다. 그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을 때 사업구조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때 직감했다. 게다가 당시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사장급 COO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개혁은 CEO로 취임한 2003년부터 추진해야 했다. 필름 분야 매출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하자 고모리는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고모리는 당시 “CEO는 인생 마지막 성적표다. 마지막 성적표가 꼴찌면 내 인생도 꼴찌로 끝난다.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각오를 다졌다.

 

 

 

구조조정과 성장전략을 동시에 추진

하지만 개혁에 뾰족한 비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모리는 정석대로파괴와 창조를 실천했다. 파괴란 주력 사업인 필름사업의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분포된 제조설비, 현상소 망, 유통망 등 사진 관련 사업의 설비와 자산을 압축하고 고정비를 삭감하는 작업이다. 창조는 필름사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었다. 고모리는 취임 이듬해인 2004 120,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VISION75’를 발표한다. VISION75는 필름의 유통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지필름의 강점은 ‘4이라고 불리는 4개의 특판 회사가 필름 판매와 현상을 동시에 하는 유통구조였다. 그러나 필름 수요가 감소하면 기존 영업망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5년 이후, 10년 이후까지 수요를 예측해서 매출이 감소해도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고정비를 줄여야 했다.

 

이런 방법을 실현하려면 유통 관련 조직을 통폐합해서 직판체제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특판 회사의 반발이 거셌다. 특판 회사들은 당시 매출액을 고려할 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필름 수요가 이러한 추세로 감소하면 언젠가는 영업소 폐쇄가 불가피했다. 같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특판 회사들에 알리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10월에는 특판 회사의 영업권을 사들여 판매 자회사후지필름 이미징을 설립했다. 특판 회사의 사원들을 상당수 흡수했다. 후지필름은 약 2500억 엔을 투입해서 유통 분야에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만약 구조조정의 시기가 조금 더 늦었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했을 것이다. 고모리는 임원이 될 때까지 필름사업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성공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개혁의 가장 큰 적은 과거 성공에 대한 향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거의 성공에 연연하는 경영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VISION75’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나자 사업 재편은 어느 정도 진행됐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필름 수요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고모리는이런 속도로는 늦다. 더 빠르게 구조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개혁에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국내외 사진 관련 임직원 15000명 중 3분의 1에 해당되는 5000명을 줄였다. 2005 10월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바꿔 사명을 후지사진필름에서후지필름홀딩스로 변경했다. 사명에서사진이라는 2개 글자가 빠진 것이다.

 

VISION75’를 시행한 지 3년이 지난 2007년에는 매출액 28468억 엔, 영업이익 2073억 엔을 달성했다. 고모리의 생각대로 회사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적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고모리는 개혁의 끈을 늦추지 않고 두 번째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전 분야에서 5000명의 임직원을 줄였다. 구조조정의 일상화가 시작된 것이다. 고모리는위기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위기의 징후도 발견된다. 나는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대처해서 후지필름의 본업은 소멸했지만 후지필름이라는 회사는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의식으로 무장한 경영자였던 것이다.

 

기존 기술을 토대로 화장품 사업까지 진출

고모리의 목표는 단순히 후지필름이 연명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후지필름이 매출액 2∼3조 엔, 영업이익률 10%를 유지하며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존속하는 게 개혁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름사업을 대신할 주력 사업을 찾아야 했다. 고모리는 구조조정과 동시에 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액정 패널에 사용되는 편광판을 보호하는 TAC필름을 비롯해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의 재료 관련 사업이다. TAC필름 사업은 이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규모였다. 고모리는 TAC필름 사업 규모를 확대해서 주력사업으로 삼기로 했다. 당시 박형(薄型) TV 시장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 공존했다. 아직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LCD에 탑재되는 TAC 필름의 미래 수요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리가 이 사업을 향후 성장 동력으로 결정한 것에는 선견지명과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 능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자는 항상 기술과 제품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선택이 적중했다. 반도체나 액정의 기술·제품 선택에 성공한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고모리는 담당 과장에게 사업을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담당자가 제조설비에서 한 라인 정도 증설하자고 제안하자 고모리는 더 늘리라고 했다. 한 라인을 설치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만 100억 엔이 넘게 든다. 후지필름은 한꺼번에 4개 라인을 깔았고 플랫패널 디스플레이 재료사업에 모두 1100억 엔을 투자했다. 이 투자가 이후 큰 효력을 발휘했다. 플라즈마가 쇠락하면서 TAC필름 등 액정 소재의 수요는 급증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 재료사업의 매출은 2003 760억 엔에서 2010년에는 2185억 엔으로 급성장했다. 필름사업의 추락을 보완하는 구세주가 된 것이다. 위기에서는 경영자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가 향후 개혁의 성공에서 관건이다. 의문이 생기면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고모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차기 주력사업을 찾는 데 효력을 발휘했다.

 

고모리의 신규 사업 창출 노력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번에는 기존 필름제조 기술을 응용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네덜란드의 연구소에 파견된 직원들을 불러서 생명과학 분야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라고 독려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지필름은 필름의 주원료인 콜라겐 관련 기술과 사진의 색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는 항산화 기술, 나노기술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모리는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제품이 바로 안티에이징 화장품인아스터리프트. 아스터리프트는 출시하자마자 시장에서 큰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필름과 화장품 업계는 비즈니스 방식이 전혀 다르다. 화장품 바이어는 여성 약재사가 대부분이다. 유통시장에서는 필름을 판매하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후지필름은 고민 끝에 자신들의 기술력을 강조하기로 하고 바이어에게 연구소 견학을 실시했다.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다. 또 기존 후지필름과는 다른 이미지를 강조했다. 후지필름은 전통적으로 녹색의 포장박스를 사용했다. 이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화장품업계에서는 금기시한 적색용기를 사용했다. 또 유명 배우를 모델로 기용해서 기존 회사의 이미지도 불식시켰다. 결국 이러한 전략들이 주효해서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림 1 후지필름의 사업 전략

 

 

구조개혁의 성과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간 후지필름의 사업구조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필름사업이 정점이었던 2000년 매출액은 14403억 엔이었으나 2013년 매출액은 여기에서 약 1조 엔 정도 증가한 24400억 엔을 기록했다. 물론 매출액의 증가가 모두 신규 사업의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2001년부터 매출액 산정에서 포함시킨 후지제록스의 매출액이 약 1조 엔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매출액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후지제록스의 기여도를 빼도 후지필름의 성공은 단연 돋보인다. 2000년도 당시 주력사업인 사진 필름사업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달했다. 2013년도에는 사진 필름사업이 0.5%에 불과하다. 대신 후지필름은 신규 사업에서 새로운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 부분이 후지필름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액정용 필름 등 플랫패널 디스플레이 재료사업과 의료기기·화장품 등 인포메이션 솔루션 분야에서 매출액 9339억 엔을 기록했다. 이 부문은 전체 매출액의 38%를 차지한다. 2013년 영업이익은 2000년도에 비해 약간 감소한 1408억 엔이다. 이는 2000년 당시 사진필름 사업의 이익이 전체 영업이익의 약 70%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독과점 사업이었던 필름사업이 후지필름에 얼마나 큰 사업이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아직 후지필름의 영업이익률은 5.8% 수준에 불과하지만 신규 사업 분야 매출액이 연간 9% 정도 성장하고 있고 영업이익도 전체 이익의 약 50%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신규 사업의 기준

고모리는 어떻게 하면 후지필름이 일류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 핵심사업을 무엇으로 할지를 CEO에 취임하기 전부터 고민했다. 그래서 먼저 후지필름의 기술을 정리하고 기술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살펴봤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을 어떤 분야에 사용할 수 있을지를 철저하게 고민했다. 기존 시장, 인접 시장, 새로운 시장 등을 조사해서 기존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수 있고 관련 제품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데 1년이나 걸렸다. 후지필름의 주요 사업을 기술과 사업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특히 플랫패널 디스플레이 재료사업처럼 기존의 기술을 활용해서 성장동력 사업으로 창출해낸 후지필름의 역량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사업구조 전환의 4가지 키워드

주로 필름사업에 의존했던 후지필름의 현재 사업구조는 매우 다양하다. 과거처럼 주력사업이 필름사업에 집중돼 있지 않다. 고모리는 어떻게 이런 사업구조로 전환했을까? 사업구조 전환을 4가지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1. 기존 생산기술 활용

후지필름의 사업구조 전환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사업이 FPD(플랫패널 디스플레이) 분야다. 후지필름이 그동안 육성해 왔던 고기능 소재 합성기술과 정밀도포 등 제품을 생산·가공하는 기술을 살려서 창출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TAC 필름을 중심으로 현재 이 사업이 전체 이익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액정용 필름은 사진필름에 사용되는 소재가 기본이 된 제품이다. 코닥도 비슷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시장 창출에 성공한 것은 후지필름이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중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신제품 개발에 중요한 점은 기술과 수요의 조합이다. 후지필름은 본사에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를 설치하고 자사 기술을 전시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개발만으로는 시장의 다양성에 맞게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정보를 공유하고 시장의 수요를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고객과 함께 개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헬스케어 사업도 마찬가지다. 광해석·컨트롤, 나노테크, 항산화 기술, 콜라겐 연구 등 사진필름의 다양한 기술을 모아서 전혀 새로운 의약품, 화장품 등에 응용한 것이다.

 

2. 발 빠른 디지털화

후지필름은 사진필름보다 먼저 디지털화가 진행된 분야에서는 디지털화에 대응해서 성공하기도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분야가 바로 옵셋 인쇄용 쇄판 재료와 디지털 인쇄기기를 취급하는 그래픽시스템 사업이다.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디지털데이터를 직접 제판 플랫트에 굽는 CTP화가 본격화됐고 후지필름은 CTP용 쇄판재료 사업으로 전환해 세계시장 점유율 수위를 기록했다. 또 렌트켄용 X선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도 성공했다. 1983년 세계 최초로 영상처리의 일부를 디지털화한 렌트켄 장치 CR을 발매했으나 현재는 모든 화상처리를 디지털로 할 수 있는 DR을 병행한 화상진단장치를 판매하고 있다.

 

3. 아날로그 기술을 연장

아날로그 기술을 발전시켜서 재성장 궤도에 올린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기록 미디어 분야의 주력제품인 데이터 스토리지용 자기테이프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이해서 디지털 데이터의 백업이나 아카이브 용도로 자기테이프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후지필름의 강점인 도포기술을 자기테이프에 응용하고 최첨단 자성체인 발륨페라이트 재료를 활용해서 장기 보존과 신뢰성이 높은 제품 개발에 성공했으며 구글 등에 공급하고 있다. 또 촬영한 사진을 그 자리에서 인화하는 필름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4. 제조회사에서 탈피

사무실에서 종이를 덜 사용하기 시작하자 이익의 약 50%를 차지하는 복사기 사업에도 위기의식이 드리워지고 있다. 후지제록스는종이 비즈니스에서 탈피해서 복사기와 관련된 솔루션 비즈니스로 사업을 확대하는 등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 이런 정보를 접하고도 본질을 이해할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더 이상 기업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고모리 회장의개혁론

그렇다면 고모리는 어떤 각오로 개혁에 임했을까? 그는 기업 경영을 민주주의 방식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결과는 평범한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경영자는 우수한 독재자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리더는 자신의 결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CEO가 된 뒤 자신이 신이 되고 싶다고 여러 차례 생각했다. 신이라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4가지 프로세스로 개혁에 임했다.

 

첫째는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해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유사시에 정확한 정보를 손에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정보는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 이런 정보를 접하고도 본질을 이해할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더 이상 기업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둘째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상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어느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개혁을 단행할지를 미리 정해야 한다. 셋째는 개혁의 내용을 임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개혁의 메시지를 사원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사원들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직을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넷째는 실행이다. 경영자는 학자나 평론가가 아니다. 계획한 것을 반드시 실행하고 성공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는 길밖에 없다. 고모리는 후지필름이 업종 전환에 성공한 것이 개혁의 4단계 수순을 올바르게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리더가 잘못된 결단을 내리면 조직은 타격을 받는다. 그는 모든 결단을 틀리지 않게 내리겠다는 각오로 매사 임했다. 경영자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결정을 무작정 미루기보다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성공하는 확률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한 방향으로 전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결정하면 철두철미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 이게 바로 그의 개혁론이다.

 

오너 의식을 가진 전문경영인

고모리 회장은 전문경영인이면서도 오너 의식이 강하다. 그는경영자는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업을 해서 커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직원에게 성장하도록 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만 결국 난국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본인 스스로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회사에 대한 오너십이다. 회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당 직원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고모리 회장도 입사 초기에는 오너 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여러 계기가 그에게 오너 의식을 가지도록 했다. 입사 3년 차에는 자신이 영업을 담당했던 필름베이스 사업이 철수한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다. 그는 기술과장과 고객들을 숱하게 방문했고 결국 부진한 필름베이스 사업에서 제품들의 새로운 용도를 발굴해 사업 철수를 중단시켰다. 입사 6년 차에 팀 리더로 발탁되자회사가 책임을 부여한다면 나도 회사에 충성을 다하겠다며 오너십을 가지게 됐다. 또 인쇄재료 영업을 담당했을 때는 제품 품질 때문에 매출액이 줄자 사장에게 공장, 연구소에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사장은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당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타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했다. 이런 경험들이 사람들 사이에 쳐진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직원들과 함께 기술자를 설득하고 고객을 방문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제를 풀었고 결국 그는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경험들이 고모리 회장에게 오너십을 갖게 했다. 입사 10년 차에 과장이 됐을 때는 과의 직원 60명을 책임지는 공인이라고 생각했다. 인사고과를 내릴 때는 밤을 새워 구성원들을 공정하게 평가했다. 그는 오너십을 가지면 매사 열심히 생각하고 결국 창의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창의적인 생각과 경험이 쌓이면 결국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향후 과제

후지필름은 주력사업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은 불완전한 절반의 성공이다. 신규 사업들이 과거 필름사업처럼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업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현재는 주력사업 집중구조를 분산구조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또 필름사업과는 달리 액정 재료사업이나 의약품·화장품 사업은 수명이 짧고 리스크도 크다. 후지필름의 진정한 성공은 향후 사업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이 후지필름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담한 개혁으로 과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주력사업의 사양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했고 변혁의 DNA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소재·재료 기업인 후지필름의 사업구조 개혁은 한국 기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wklee@kjc.or.kr

필자는 중앙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경제학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주로 일본 경제와 산업·기업 등을 연구했고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 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등이 있다.

  • 이우광 | -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저자
    wklee@kjc.or.kr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