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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빈자의 미학: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라

이유종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건축가 승효상이 비즈니스 리더에게 주는 교훈

1. 스승의 작품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아류일 뿐이다.  

자신의 철학을 얹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2. 기본까지 흔드는 요구를 하면 해당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한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대로 진행하면 비참한 결과물만 나올 뿐이다.

3. 신념을 가지고 정당하게 설득하면 상대방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상식 선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때가 대부분이다.

4. 결정을 잘 내리려면 다방면으로 공부해야 한다.

집을 잘 지으려면 인문학까지 두루 배워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은빈(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현대건축은 양대 산맥인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이 이끌어 왔다. 김수근은 자유센터, 정동문화방송사옥, 타워호텔, 세운상가, 홍릉과학기술연구소 등을 설계했고, 김중업은 서강대 본관, 주한프랑스대사관, 제주대 본관, 삼일로빌딩 등의 도면을 그렸다. 이들은 6·25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가파른 경제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로 콘크리트로 지은 이들의 작품은 한국일보 사옥처럼 일부 재건축 과정에서 사라지기도 했으나 공간사옥, 부산대 인문관처럼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보존을 위해 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62)는 김수근의 수제자다. 그는 김수근의 문하에서 15년 동안 건축을 배워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독립한 뒤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2세 경영인들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는 1989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화두로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쌓고 있다. 그가 밝힌 빈자의 미학은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다. 그는내가 짓는 집이 옆집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내 소유의 집도 사유재산만으로 볼 수 없다. 집은 절제하면서 주변과 어울리게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대학로 이로재(履露齋)에서 건축가 승효상을 만났다.

  

건축가 승효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다건축가로는 최초로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 건축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건축 분야 주요 상을 받았다그는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과 함께 경동교회(1980), 서울법원청사(1984등의 도면을 그렸고 스승에게서 독립한 뒤에는 웰콤시티(2000), 조계종 불교전통문화센터(2006), 대전대 30주년 기념관(2010), 퇴촌주택(2011등을 설계했다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건축가 김수근이 이끄는 공간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김수근이 세상을 뜬 뒤 공간연구소 대표(1986∼1989)를 지냈다현재 이로재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경기 파주출판도시의 건축코디네이터와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팀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가 많다.

 

건축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하나는 직원 등과 함께 팀을 꾸려서 작업을 할 때다. 후배 건축가와 조명, 마감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모든 사안을 주도하고 모든 결정을 내린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가는 독재자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반면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대응한 위치에서 작업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가령 두 건축가가 함께 프로젝트를 맡으면 업무를 절반씩 나눠 맡을 수 있다. 아파트 100채를 짓는 프로젝트이라면 50채씩 나눠서 설계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체 마스터플랜은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건축은 전체적인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전체적인 그림을 한 사람이 결정하지 않으면 책임을 맡은 구역별로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작할 때부터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을 미리 정해야 한다. 경기 파주출판단지를 설계할 때 건축가 40명이 참여해서 부지 30만 평에 건물 160동을 지었다. 내가 마스터플랜을 짰는데 층수, 건물 크기, 재료 등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이에 동의하는 건축가에게만 일감을 나눠줬다. 건축가들은 정해진 범위에서만 개성을 살릴 수 있다. 공동체라는 의식이 허물어진 건물은 개별적인 특성만 가지게 된다. 전체적인 조화를 깬 것은 이미 건축이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이견을 보일 때도 발생한다.

 

건축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주변 건축물이나 사람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건축주는 자신의 돈으로 만드는 건물이지만 마음대로 지어서는 안 된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거나 공공성에 위배되는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줘서는 안 된다. 건축가의 일은 이런 상황에서 제동을 거는 것이다. 적절하게 제어해야 한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건물에서 건축주는 투자하는 사람일 뿐이다. 실제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이런 사례가 많다. 건축주의 입장보다는 이용자인 시민의 편의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주의 부적절한 요구사항은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부터 차단해야 한다. 부적절한 요구사항을 처음부터 수용하면 이후에는 계속해서 그의 요구사항에 매달려야 한다. 물론 건축주가 부적절한 요구를 할 때 대화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성을 해치거나 건축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깨는 요구를 처음부터 거듭 주장하면 건축가는 해당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계속 싸우고 결국 비참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건축주가 건축가를 선택하기보다는 건축가가 건축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스타일과 대치되는 프로젝트는 애초에 맡지 않아야 한다.

 

개인 주택은 건축주의 의견을 전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개인 주택은 일반적인 건물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개인 주택은 이용자가 건축주다. 개인의 취향과 특성을 전적으로 고려해서 설계해야 한다. 개인의 특성을 도면에 반영하려면 사생활까지 잘 살펴야 한다. 건축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오랫동안 사귄 다음 설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개인 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늘 어렵다. 나는 가급적으로 개인 주택 설계는 맡지 않으려고 한다. 작은 개인 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커다란 빌딩을 구상하는 것만큼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아주 부담스럽다. 도면을 그릴 때 건축주는 많은 사항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더 좋은 집을 지으려면 건축주가 제시하는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다. 건축주는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밖에는 잘 모른다. 반면 건축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다. 더 좋은 집을 위해서는 건축주가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좋은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건축주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면 어쩔 수 없다. 다만 공공의 가치를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들어줘야 한다. 개인 주택에서 공공의 가치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다. 단층 주택 옆에 3층짜리 집을 지으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아무리 높아도 1.5층 정도로 집을 지어야 한다. 과거 한 건축주가 길 가까이에다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면 집은 길에서 비켜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못하겠다고 말하고 프로젝트를 맡지 않았다. 건축주는 풍수지리를 고려해서 집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설계하면 옆집에 위압감을 줄 수밖에 없다. 건축주는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내 집을 짓는 것인데, 왜 그러냐며 화를 내고 돌아갔다. 이 건축주는 3년 뒤 더 큰 프로젝트를 내게 맡겼다. 자꾸 내 생각이 났고 결국 내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프로젝트를 가져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축가가 쓸데 없이 고집을 부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신념을 가지고 정당하게 주장하면 결국 건축주가 이해하게 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한다.

 

스승 김수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 하지만 스승에게서 독립하면 이후 스승의 작품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서 해서는 안 된다. 스승에게 배운 것에다 자신의 철학을 얹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류에 그칠 뿐이다. 스승에게서 독립할 당시 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승효상의 건축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김수근의 건축뿐이었다. 막막했다. 이후 2∼3년 동안 다른 건축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다. 김수근 문하에서 일할 때는 잘 몰랐는데 이때부터 다른 건축가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건축가마다 설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어떤 건축가는 내부 공간을 중심으로 도면을 그린다. 또 다른 건축가는 건물 외형에 관심을 쏟는다. 땅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건축가도 있다. 어떤 건축가는 구체적으로 설계를 하기 전 건물의 전체적인 그림부터 그린다. 또 다른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기 전에 책을 읽고 어떤 건축가는 영화를 보기도 한다. 어떤 건축가는 건축 부지에 찾아가 묵상을 한다.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디자인으로 이끌어 내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왜 저 건축가가 저렇게 할까? 추측하고 따져봐야 한다.

 

나는 과거 내가 살았던 공간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어린 시절을 부산의 달동네에서 보냈다.) 그래서 만든 게빈자의 미학이다.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 아니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다. 10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도 옆 건물이 5층이면 층수를 낮추고 막다른 골목이라면 길을 내줘서 사람들이 다니게 해주는 게 빈자의 미학이다. 빈자의 미학은 나의 어릴 때 환경과 기독교적인 영향 등을 종합해서 만들었다. 빈자의 미학을 정립한 뒤 스승과는 다른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빈자의 미학에 맞춰서 도면을 그리면 됐다. 그래서 빈자의 미학에 맞지 않는 프로젝트는 맡지 않았다. 욕심 같아서는이것을 해야 직원들의 월급을 주는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혹에 굽히면 안 된다. 숱한 유혹이 찾아왔다. 하지만 한번도 유혹에 고개를 숙여본 적은 없다. 그런 유혹에 휘둘렸다면 지금쯤 항상 돈이나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무엇인가?

 

없다. 건축에서는 처음 구상안과 마지막 결과물이 항상 다르다. 구상안과 결과물이 다른 이유는 건축가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상안을 구체적인 사물로 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구상안과 결과물이 같아지도록 끊임없이 노력은 하고 있다. 물론 근접할 때는 있었다. 근접했을 때는 건축과정이 매우 짧거나 작은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다. 큰 프로젝트에서는 구상안과 결과물이 일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세계적인 건축물들은 대체로 규모가 작은 건축물들이 많다. 규모가 커지면 구상안과 결과물을 같게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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