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이머크 (E.Merck KG)회장
Article at a Glance - 전략
346년 역사를 갖는 독일 가족기업 머크(Merck KGaA)의 장수 비결 가족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보다 회사의 이익을 언제나 우선시해온 가치관. 가족 구성원들 스스로 머크의 오너(owners)라는 생각을 버리고 후대를 위해 신탁을 관리해주는 사람들(trustees)로 생각
전문경영인 영입 시 발생할 수 있는 대리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지주회사인 이머크(E. Merck KG)와 운영회사인 머크(Merck KGaA)로 회사를 분리한 후 머크 최고경영진이 무한책임 파트너(unlimited liable partners)로 참여토록 함
머크에서 일하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적용하는 원칙 가문의 일원이라는 후광 없이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일족에게만 머크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
한국 경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떠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미련 없이 떠날 것.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10∼15년 정도 최고 위치에 있다 보면 창의성이 고갈됨. 20∼30년 이상 장기 집권 시 회사에 악영향을 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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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립 346주년을 맞는 독일 머크(Merck KGa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 기업이다. 1668년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주(州)의 소도시 담슈타트에 있던 작은 약국 하나를 인수한 게 효시가 됐다. 이후 머크가(家) 자손들은 ‘천사약국(Engel-Apotheke)’이라는 이름의 이 약국을 대대로 운영해왔고 19세기 초반 엠마뉴엘 머크가 알칼로이드1 대량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화학 제품 양산에 뛰어들게 됐다. 머크는 현재 ‘얼비툭스(항암치료제)’ 같은 의약품부터 코팅제, 액정(liquid crystal) 등 기능성 소재, 바이오시밀러 같은 생명과학 제품에 이르기까지 5만5000개가 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전 세계 66개국에서 연 매출 111억 유로(2013년)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2 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국머크의 사업 점검 차 방한한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박사는 머크의 지분 70.3%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이자 머크가(家) 일족을 대표하는 협의체인 가족위원회(Family Board) 회장이다. 하버캄 회장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머크의 장수 비결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 스스로 머크의 오너(owners)라고 생각하지 않고 후대를 위해 신탁을 관리하는 사람들(trustees)이라고 여기는 가치관 덕택”이라고 말했다. DBR은 머크 가문의 수장 격인 하버캄 회장을 만나 장수기업의 DNA가 무엇인지, 또 효과적인 지배구조를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머크 가문의 후손이자 지주회사(holding company)인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으로서 운영회사(operating company)인 머크(Merck KGaA)에 끼치는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머크와 머크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머크의 지배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머크가(家) 일족은 약 230명에 달한다. 엠마누엘 머크의 직계 후손, 혹은 그들과 혼인 관계로 맺어진 배우자 및 그들의 후손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머크는 이들 가운데 총 153명의 파트너들이 출자해 만든 합자회사3 다. 파트너들은 매년 총회(General Partners Meeting)를 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5년 임기의 대의원들을 선출한다. 이렇게 선출된 12명의 가족 대표들로 구성된 게 바로 가족위원회(Family Board)다. 머크 가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최상위 위원회(Top Board)로 가족위원회 회장이 이머크 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이머크 가족위원회의 핵심 기능은 하위 위원회인 파트너위원회(Board of Partners) 구성원 9명을 선출하는 것이다. 파트너위원회는 머크 가문의 후손들 가운데 5명, 머크가(家) 사람은 아니지만 제약, 화학 등 머크가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다. 참고로 나는 올해 1월 파트너위원회 회장에서 가족위원회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파트너위원회를 구성하는 가족 멤버 5명 중 1명으로 일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이머크와 운영회사인 머크 간 접점은 바로 이 파트너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전 세계 66개국에서 191개 자회사를 총괄하는 머크그룹(Merck KGaA)의 CEO·CFO 등 최고경영진(중역회의인 Executive Board 멤버들)을 선출하는 게 바로 파트너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머크의 지주회사인 이머크에는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등 두 개의 위원회가 있고, 이 중 머크 가문과 비(非)머크가 사람들로 혼합 구성돼 있는 파트너위원회에서 운영회사인 머크의 최고경영진을 뽑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Choi Hoon-Seok
엠마누엘 머크의 11대손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이머크(E. Merck KG) 회장은 20여 년간 코메르츠방크, 베어링브라더스, 함브로스 등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활약했던 IB(투자은행) 전문가였다. 30년 전인 1984년 파트너위원회(Board of Partners) 멤버로 참여하며 머크 경영 감독 업무를 시작했고 이후 파트너위원회 부회장(1994∼2003) 및 회장(2004∼2013)을 거쳐 올해 1월 5년 임기의 가족위원회(Family Board) 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배구조가 복잡한 것 같다.
솔직히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머크와 이머크의 이중적 지배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정교하고 논리적인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계속 유지하되 자본의 소유와 회사 경영은 엄격하게 분리하기 위해 고안된 지배구조다. 즉, 일상적인 회사 운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면서도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은 가족의 직접적인 영향과 통제하에 두기 위해 이 같은 지배구조를 선택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를 꼽자면 2000년 이후 상장회사인 머크(Merck KGaA)의 CEO·CFO 등 최고경영진 가운데 머크 가문의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엄격한 평가를 거쳐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들로 일상적인 사업 운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M&A나 사업부 매각 등과 관련된 결정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1억 유로를 넘지 않는 한 머크가(家) 사람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재량껏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기업의 전통에 서 있는 만큼 머크가(家)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머크 최고경영진에 대한 선임/해임 권한을 파트너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이유다. 머크의 일상 업무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일임하지만, 이들을 감독하고 그룹의 전체 전략 수립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 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1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M&A처럼 그룹 전체의 전략을 바꿀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파트너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참고로 거래 규모가 5억 유로를 넘어가는 초대형 M&A라면 파트너위원회뿐 아니라 가족위원회의 승인까지 떨어져야 한다.
가족기업으로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대리인 문제를 생각할 때 우려가 컸을 것 같다.
머크에서 외부 전문경영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 오너들이 경영 일선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게 일상적인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드문 시도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다단한 머크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우수한 인재가 필요한데 머크 가문의 사람들만으론 필요한 인력을 모두 충원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가족기업인 만큼 무조건 가문의 사람들만이 회사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폐쇄적 사고는 진작에 버렸다. 핏줄로 얽혀 있는 내부인이든, 혈연 관계라곤 전혀 없는 외부인이든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봤고 1920년대부터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하지만 지적했듯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경우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잃어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머크는 전문 경영인들이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머크 가문의 부(富)를 훼손시키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바로 ‘무한책임 파트너(unlimited liable partners)’ 개념을 머크 최고경영진에게 도입한 것이다.
우선, 머크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이른바 중역회의(Executive Board) 멤버 5명은 엄밀히 말해 머크가 아닌 이머크에 소속돼 있다. 즉, 월급을 주는 주체가 머크의 모회사인 이머크로, 전 세계 3만8000여 명의 머크 직원들과 고용주가 다르다. 머크 최고경영진의 소속이 일반 머크 직원들과 다른 이유는 그들이 머크를 위해 일하는 기간 동안만큼은 외부인이 아닌 머크가에 ‘입양’된 가족 구성원(adopted family members)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매우 작은 금액이긴 하지만 합자회사인 이머크에 파트너로 출자할 수도 있다. 가족들을 대신해 머크 사업을 이끄는 중책을 맡기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자격을 주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식은 머크를 떠나는 순간 이머크에 되돌려주거나 머크 가문 사람들에게 되팔아야 한다.
대리인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전문 경영인이 머크 가문의 입양 가족이 된다는 말은 그에 필적하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바로 무한 책임이다. 머크 중역회의 멤버 5명은 가족위원회 회장인 나와 파트너위원회 회장과 함께 자신이 내린 업무 결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퇴사한 이후에도 5년간 적용된다. 즉, 재임기간 중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결정에 대해서는 회사를 떠난 이후로도 5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굳이 회사를 머크와 이머크로 구분해 놓고 머크의 최고경영진을 합자회사인 이머크 소속으로 둔 이유다. 핵심은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회장 등 머크 가문을 대표하는 2명과 함께 5명의 입양가족들에게 똑같이 막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록 외부에서 영입된 비(非)머크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오너와 같은 입장에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림 1 머크 그룹의 지배구조
※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도 정교한 지배 구조를 통해 가족기업으로서 가문의 통제력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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