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서울대 CFO 전략과정 Case Study 14: 삼성토탈의 홈퍼니 경영

社교육이 私교육 책임지니 회사 직원 모두 웃었다

132호 (2013년 7월 Issue 1)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교수 황이석)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CFO 과정의 교육생들은 총 6개월의 교육기간 중 각자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공유합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한국 기업에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임채범(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면접 있습니다.”

“아, . 감사합니다. 그런데 근무지가 어디죠?”

“서산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밖에 안 걸려요.”

“아… 서울 근무인 줄 알았는데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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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채용을 맡고 있는 김왕수 인사팀 차장이 한숨을 내쉰다. 올해만 벌써 수차례 박사급 인력 채용에 실패했다. 회사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근무지가 충청남도 서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젓기 일쑤다.

 

“고학력자일수록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해외 박사들은 더하죠. 강남을 벗어나면 자신이 평가절하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 계열사 중에 인당 매출 생산성이 가장 높다. 연 매출이 7조 원에 달하지만 전체 직원 수는 1400여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재작년에서야 1000명을 넘겼고 그 전까지는 1000명이 채 안 되는 인력으로 조 단위 매출을 내곤 했다. 축적된 노하우와 숙련된 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번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근무한다. 각종 복지 혜택에 직원 친화적인 기업 문화까지 누구라도 탐낼 만한 조건을 고루 갖췄지만 단 하나, 근무지가 지방이라는 점이 늘 골치였다. 애써 찾아낸 박사급 인재들은 지방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발을 돌렸다. 눈을 반짝거렸다가도 서울이 아니라고 하면 고개를 저었다. 삼성토탈 얘기다.

 

2009년 이 회사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서울이 아니라서 외면한다면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면 될 것 아닌가. 우수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은 물론 서울이 아니라며 상대적 열등감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직원과 그 가족들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정(Home)과 직장(Company)의 유기적 결합, 즉 홈퍼니 경영이 시작됐다.

 

 

삼성토탈, 설립부터 지금까지

삼성토탈이 지금의 부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터를 정한 것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다. 창업자 이병철 선대 회장이 타계한 후 새로 부임한 이건희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삼성토탈의 전신, 삼성종합화학을 세운 것이다. 삼성토탈 본사를 서산에 두기로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석유화학업의 특성 때문이다. 공장의 열을 식히거나 폐수를 방류할 때 바다와 가까워야 비용 부담이 적다. 둘째, 수출입상 이점 때문이다. 바다에 근접해 있으면 원료를 수입하거나 제품을 수출하기 쉽다. 특히 가장 큰 시장인 중국시장 개척에 유리하다. 서산은 국내에서 중국 산둥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올림픽이 열리기 석 달 전인 1988 5, 대규모 공장 부지를 만들기 위한 서산 앞바다 매립이 시작됐다. 100만 평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만한 면적의 바다를 메우는 대규모 공사였다. 1991 10월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석유화학업은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정제유를 제외한 석유의 나머지 부분을 가공해 다양한 종류의 제품 재료로 탈바꿈시키는 공정을 핵심으로 한다. 흔히 사용되는 일상 용품의 70% 이상에 석유화학 제품이 원료로 사용된다. 휴대용 식수를 담는 용기의 플라스틱 뚜껑부터 자동차의 대시보드까지 석유화학 제품이 원료로 사용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삼성토탈은 국내외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며 매출을 끌어올렸고 2003 2조 원대였던 매출은 2012 7조 원대로 증가했다.

 

업의 특성과 장래성을 노리고 선정한 입지였지만 서울 중심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제대로 된 사교육 시스템이나 가족이 누릴 문화 시설이 마땅치 않다 보니 남편만 서산에 내려와 혼자 지내고 가족은 서울에 머무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들이 갈수록 증가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직원들은 건강 악화나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런 직원이 늘면서 조직 분위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가족이 함께 서산에 내려와서 사는 직원들도 불만이 많았다. 교육 시설이 갖춰진 타 도시로 자녀들을 보내거나 학원을 다니게 하기 위해 원정을 마다하지 않는 가정이 많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녀들을 픽업하러 다니느라 고달팠고 아빠는 아빠대로 적지 않은 사교육비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인재 유치가 어려운 점도 문제였다. 첨단기술업의 특성상 인재 확보가 매우 중요했지만 석박사급 인재들은 아무리 좋은 처우를 제시해도 지방 근무라는 점에 발을 돌렸다. 남성 직원이 관심을 보였어도 아내나 자녀 등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일터, 그 이상의 일터를 만들자

2009년 초 새로운 수장이 부임했다. 유석렬 신임 사장과 박성훈 부사장은 취임 후 직원들과 돌아가며 미팅을 갖고 인사를 나눴다.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개선해야 할 사항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묻고 들었다. 다수 직원들이 지방 근무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고충, 함께 살더라도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은 가계 운영, 서울에 비해 부족한 문화 시설 때문에 발생하는 아내들의 불만, 늘 목표 비율에 미달하는 석박사급 인재 채용 등 다양한 문제가 쏟아졌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터라 가계 중 사교육비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민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책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신임 경영진은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근원이 회사가 지방에 있다는, 즉 서울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면 회사가 서울처럼, 혹은 그 이상의 교육문화 환경을 제공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평소 회사의 경쟁력은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였다. 특히 석유화학산업은 사람의 손끝에서 공장이 돌아가고 제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직원들의 심리적·정서적 문제가 회사의 경쟁력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로 인한 잠재적 손실이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정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방치했다가는 문제가 누적되고 심해져 결국 회사 성과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직원의 안정이나 행복이 기업 실적과 직결돼 있는 셈이다. 경영진은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일부터 했다. 인사팀이 주축이 돼서 직원의 아내들을 초대해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문제가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갈지 실마리를 찾았다.

 

우선 자녀 교육 문제였다. 엄마들은 서울에서 고액 과외를 받거나 이름난 학원에서 보충 학습을 하는 학생들에 비해 자녀들의 실력이 뒤처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밤늦게까지 먼 곳으로 학원을 보내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인프라 부족으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도 걱정했다. 각종 활동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쌓은 학생들보다 사고력이나 창의성 등이 부족해질 것 같다는 걱정도 안고 있었다.

 

다음은 남편을 따라 서산에 내려오기는 했으나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일 뿐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아내들은 상실감이 더 컸다. 다른 지역에 살다가 옮겨 온 아내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일상을 공유할 친구가 적다는 점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회사가 어떻게 지원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에서 활동하는 인기 강사를 데려다가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혹은 이름난 강사를 데려와서 그룹 과외를 받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신들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것을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교육이 교육을 책임지다

회사는 고민했다. 직원의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가면 좋을지 방법을 찾기 위해 수차례 간담회와 내부 회의를 가졌다.

 

우선 사교육 문제였다. 회사는 학원을 만들고 고액 강사를 데려다 강의를 듣게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서울에 있는 학생들과 같은 수업을 들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가져다줄 뿐 정말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답을 찾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직원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학생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만든 것이 아이비스쿨이라는 이름의 독서실이다.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이름을 따왔다. 2009 515일 문을 열었다. 충남 서산시 동문동에는 세운 지 20년이 훌쩍 넘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삼성이 아파트 사업에 나선 초창기에 시범적으로 세운 아파트다. 원래 사원들에게 사택으로 분양하다가 아파트가 오래되고 주변에 더 좋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일반 분양으로 전환했다. 620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 입구에 3층짜리 상가 건물이 있다. 아파트는 일반 분양으로 전환해서 더 이상 회사 소유가 아니지만 상가 건물은 여전히 회사가 갖고 있었다. 낡고 장사도 잘되지 않아 공실이 많았던 이 상가 건물을 회사는 직원들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삼기로 했다. 상가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해서 교육문화센터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건물 3층에 200석 규모의 최신식 독서실, 즉 아이비스쿨을 열었다. 삼성토탈 직원의 자녀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아이비스쿨 안에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유수 대학의 이름을 붙인 공부방이 13개 있다. 독서실 공간과 더불어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인터넷 수강실과 정보검색실, 휴게실, 상담실 등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들이 짜임새 있게 들어앉았다. 전석 200석 가운데 10%는 소년소녀가장 등 지역 내 소외계층 학생들이 쓸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아이비스쿨의 특징은 단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어떤 독서실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운영 방식이 핵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이비스쿨에는 학생들의 공부를 돕기 위한 상담 멘토가 상주한다. 자발적으로 나선 삼성토탈의 젊은 직원들이다. 15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국내외 명문대를 졸업한 석박사급 인재로 당번을 짜서 돌아가며 아이비스쿨에 나와 학생들을 돕는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문제를 가져가면 함께 풀어주기도 하고 진학이나 진로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조언을 주기도 하는 등 이들의 역할은 다양하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은 학생들과 금세 친해졌고 당번이 아닌 날이나 주말에도 나와 어울릴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다.

 

엄마들이 직접 아이비스쿨을 운영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아이비스쿨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엄마 중 지원자들로 아이비스쿨운영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위원회에 속한 엄마들은 매일 2명씩 돌아가며 아이비스쿨에 나온다. 이용수칙을 어기거나 결석이 많은 아이들은 퇴실 조치한다. 입시 정보가 나온 기사를 오려서 스크랩해두기도 하고 간식을 챙겨주기도 한다. 잡담하거나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자신의 자녀들은 물론 동료 직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다른 누구보다도 관리가 살뜰하고 꼼꼼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아이비스쿨이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운영됐던 것은 아니다. 대치동이나 목동의 인기 강사를 서산으로 초빙해오기를 원했던 엄마들은 회사에서 독서실을 짓기로 결정한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먼 곳까지 자녀들을 보내 원정 교육을 계속 받도록 하겠다는 엄마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개원한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아이비스쿨은 명실상부한 지역 내 최고의 학습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석박사급 인재들이 상담 멘토로 활동하는데다 엄마들이 직접 관리 감독한다는 점은 다른 독서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가져왔다. 회사 측은 아이비스쿨의 성패가 엄마들에게 달려 있다고 보고 엄마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지 않고도 좋은 성과를 낸 학습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하고 교육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스스로 하는 학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듣기도 했다. 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과정 모두를 공개하고 엄마들의 피드백을 얻어 보완하고 개선했다. 완강했던 엄마들은 하나둘 아이비스쿨에 관심을 보였다. 방과 후 몇 개씩 다니던 학원이나 과외를 그만두고 아이비스쿨에 나와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아이비스쿨에서 공부하며 실제로 성적이 향상된 학생들이 늘면서 이곳은 점점 더 인기 학습지로 자리 잡았다. 아이비스쿨이 인기를 끌면서 자녀들과 함께 독서실에 나와 공부하는 부모도 증가했다. 같은 건물 1층에 마련된 임직원 공부방에서 밤늦게까지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자녀와 함께 귀가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아이비스쿨 대기자 명단은 점점 길어졌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건물 2층에 있는 꿈나무 동산이라는 어린이 도서관이 그곳이다. 이곳에는 1만 권 가까운 도서가 진열돼 있으며 매 분기 500여 권의 신간이 들어온다.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책걸상을 설치한 것은 물론 배를 깔고 엎드려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 전체에 장판을 깔았다. 전면을 통유리로 설치해 낮의 해나 밤의 별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 내부에서 건물 밖까지 나무로 만든 마룻바닥이 이어져 있어 책을 읽다가 언제든 야외정원으로 나갈 수도 있다.

 

서울에 비해 부족한 문화적 체험 기회를 보충하기 위한 방안도 고안됐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나 공연, 고궁이나 박물관 등을 찾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기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앞장 서서 적당한 공연을 고르고 직원의 가족들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점차 자리가 잡히면서 가족들의 자율적 운영과 참여가 이어졌다. 지금은 문화체험운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주부들이 주축이 돼서 기획안을 만들고 참석자를 모집하는 자율적인 운영이 이뤄진다. 문화체험운영위원회 회원들은 매달 가족이 함께 참여할 만한 문화체험 장소를 고르고 관련 정보를 수집해 학습 자료를 만들어 해당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배포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많이 알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받고 가족들의 피드백을 받아 다음 운영에 반영하기까지, 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문화체험을 주선한다. 회사에서는 버스만 지원할 뿐이다.

 

 

 

배우고 기록하고 나누는 엄마들

남편을 따라 먼 곳까지 내려오기는 했지만 스스로 뭔가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주부들을 위한 모임도 속속 만들어졌다. 이런 모임들도 처음에는 회사 주도로 진행됐다. 문화체험 다음으로 생긴 모임은 기록문화운영위원회다. 카메라를 들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와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회원 모두 공부를 많이 해서 전문가급 실력을 갖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위원회가 처음 결성될 때만 해도 변변한 카메라 하나 없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사진 좀 잘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참여하기 시작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카메라 구입부터 새로 시작한 회원들은 각종 강좌를 섭렵하며 사진 촬영의 기본부터 하나하나 배워가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 강좌를 수강하고 전문가를 모셔다가 강의를 듣기도 하면서 촬영 기술을 하나씩 익혔다. 이제는 외부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회원들 작품만으로도 사진전을 열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다들 수준급이다. 기록문화운영위원회에는 통상의 사진동호회와는 차별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회사의 대내외 행사에 참여해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다. 다른 운영위원회가 외부 활동을 가질 때 자동으로 참석해 사진사로 역할하고 회사 체육대회나 식목 등 각종 행사 때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진을 남긴다. 사내 행사 중 찍힌 생생한 사진들은 회사 곳곳에 걸려 소중한 기록 자산이 되고 있다. 유명 작가의 사진이 아닌 직원들의 부인이 찍은 사진이 회사에 걸리면서 직원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많아졌음은 물론이다.

 

 

 

 

 

원예운영위원회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이 위원회에서 기른 화분들은 기록문화운영위원회에서 찍은 사진처럼 회사 복도나 사무실 곳곳에 비치된다. 승진자가 있을 때 외부에 주문할 필요 없이 난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회사 행사에 참석하는 외부 귀빈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삼성아파트 단지 뒤편에는 200평 규모의 온실이 설치됐다. 본래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임시주차장이 있었지만 깨끗하게 정리하고 대형 온실을 조성했다. 파종과 모종 키우기, 계절별 화훼작물 키우기 등의 작업이 모두 이곳에서 진행된다. 한편에는 작은 카페를 만들어 원예운영위원회 회원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이 꽃들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원예운영위원회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성토탈 대산공장은 석유화학공장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놀라는 사람이 많다. 회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꽃밭이 펼쳐지는데 그 위에 회사 로고가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공장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꽃과 나무가 공장 곳곳을 메우고 있다. 원예운영위원회가 부지런히 매만지고 다듬은 덕분이다. 이들은 회사 안팎의 꽃과 나무는 물론 서산지역 곳곳의 시청과 의료원, 경찰서 등에 찾아가 봉사활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주부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해 활발히 활동하는 운영위원회는 원예, 문화체험, 자원봉사, 한식, 아이비스쿨, 꿈나무동산, SNS기자단 등 총 9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과 모여 새로 인연을 맺고 외부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부담에 참여를 거부하는 주부들이 적지 않았다. 남편 회사의 선후배 아내들과 어울리는 일이 마냥 편할 리는 없었다. 귀찮다거나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아내들도 있었다. 취미 활동을 지원할 재원으로 차라리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여러 사람과 모여 뭔가를 함께 이뤄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진을 찍거나 꽃과 나무를 기르고 학생들을 돌보는 과정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정체성을 확보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의미의 자아발견이었다. 타지에 나와 힘들어 하던 주부들이나 집에만 있어 우울증이 걸릴 정도로 의욕 없이 살던 주부들은 운영위원회 활동을 통해 활력을 찾고 보람을 느꼈다.

 

이런 활동들을 기획하면서 회사에서 제시한 지침은 단 하나뿐이다. 어떤 활동이든 환영하지만 에어로빅이나 요가처럼 개인적 만족을 위한 모임만 아니면 된다. 회사와 직접 연관되는 활동이면 더 좋다. 자리를 잡기까지 다소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일단 틀이 갖춰지자 순식간에 9개의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부분 주부들이 한번 해보고 싶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다.

 

한식문화운영위원회는 출발이 다소 독특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한 임원이 김치를 먹다가 아이디어를 냈다. 김치는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반찬인데 이것을 직원들과 가족이 함께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시초였다. 단합에도 도움이 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김치가 될 것 같았다. 처음은 순탄치 않았다. 집에서 한두 포기 먹는 것도 담그기 귀찮아서 사다 먹는 집이 많은데 임직원 모두 먹을 김치를 만들어내라니 주부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회사 주방에서 자원봉사하라는 말이냐며 반발하는 의견도 있었다. 해당 임원은 취지를 설명하고 김치뿐 아니라 한식을 제대로 배워 요리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요리에 관심 있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식문화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한식문화운영위원회 회원들은 전국의 유명한 장인과 산지를 찾아다니며 한식을 배우고 익혔다. 전통 음식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좋은 재료를 찾아 전국을 돌기도 했다. 전원이 한식자격증을 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들이 만든 김치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김치는 직원과 직원 가족뿐만 아니라 공장 인근의 다문화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도 전달됐다. 중국과 일본 등 해외 주요 거래처와 해외 주재원 가족들에게도 배송됐다. 입사 예정인 신입사원의 가정에도 보내졌다. 김왕수 차장은보내준 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일부 고객사에서 판매처를 알려달라는 문의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조직 문화를 우호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고객사와 관계까지 끈끈하게 만들어 준 효도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홈퍼니 경영의 효과는 다방면에서 나타났다. 가장 먼저 사내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불과했던 직원과 직원 사이의 관계는 가족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직장 내 누군가를 볼 때 단지 그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함께 묻고 챙길 수 있게 됐다. 아내들이 보람을 얻고 활기를 찾으면서 일터로 향하는 남편들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먼 곳까지 학원을 보내는 가정이 줄고 과외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걱정하는 가정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친구처럼 형, 누나처럼 챙겨주는 젊은 멘토 직원들을 잘 따랐다. 덕분에 아이들의 부모인 중년의 직원들과 젊은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매끄러워졌다.

 

이런 분위기는 회사 성과에도 음양으로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기 이후 불황에도 매출 증가세가 계속됐다. 작년에 창사 이래 최대인 7조 원대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2020년까지 매출을 30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산 공장은 2010년 국내 기업 중 최초로 ISRS 레벨9를 땄다. 이는 전 세계 2000여 개 기업 중 안전관리 수준이 상위 1% 안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실적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는 셈이다. 석박사급 인재 채용도 한층 수월해졌다. 전체 인력이 늘면서 석박사급 직원 목표 비중도 높아졌지만 목표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외에서 함께 박사 과정을 밟던 부부 중 남편의 취업이 확정된 후 아내도 따라오겠다며 입사를 희망한 사례도 있었다.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높아졌다. 이직률이 낮아졌고 삼성 전 계열사에서 실시한 조직문화 만족도 설문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기러기로 떨어져 살던 가족이 서산으로 이주해 합쳐 살게 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공요인

문제를 보는 시각의 확장

홈퍼니 경영은 가정의 문제를 가정 고유의 것으로 국한하지 않고 회사가 해결해야 할 범위 안에 포섭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직에 속한 개인과 가정 및 일상에서의 개인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시각이다. 사실 석유화학업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터는 가정과 분리될 수 없다. 시끄러운 가정을 뒤로 하고 출근한 직원이 직장에서 제대로 집중하고 능력 이상의 잠재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접근은 직원들의 경쟁력이 단지 개개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과 환경 모두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삼성토탈의 홈퍼니 경영은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에 회사가 관심을 갖고 해결을 지원했고 가정의 행복이 커지면서 직원이 행복해졌으며 그 결과 직원의 생산성이 높아져 결국 회사에 이롭도록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통을 위한 노력

문제에 직면했을 때 회사가 가장 먼저 주력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찾는 일이었다. 직원들이 안고 있는 문제 대부분이 회사의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쉽게 간파할 수 있었지만 가족마다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는 훨씬 다양했다. 동일한 문제라고 해도 사람마다 원하는 해결책이 달랐다. 회사는 열린 자세로 직원과 그의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들었고 이슈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들을 수차례 초청해 시간제한 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간담회를 매번 박 부사장이 직접 주도했다는 것은 문제 해결 의지가 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면이다.

 

처음에는 회사에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털어놓는 것을 망설이는 직원 가족들이 많았지만 부사장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고 회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점차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직원을 넘어 그 가족들과 소통하려는 회사의 노력이 통한 셈이다.

 

정확한 진단-맞춤형 해법-확고한 원칙

각양각색의 문제들을 들은 후에는 꼭 맞는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가정마다 형태와 정도는 달랐지만 이들이 가진 문제는 자녀 교육과 아내의 자아실현 등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는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느 선까지 지원해야 할지를 결정한 후 이 원칙을 고수했다. 자녀들의 사교육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유명 강사 섭외 등 일시적 방편은 채택하지 않는다거나 아내들이 모여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장은 마련하겠으나 에어로빅 등 개인만을 위한 모임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는 직원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되 회사와의 밀접도를 높여 직원과 회사 모두에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자발적 참여 이끌어 지속성 담보

일단 회사가 초석을 놓기는 했으나 각종 운영회가 지속적으로 굴러갈 수 있으려면 주축이 아내들이어야 했다. 회사는 모든 운영의 주도권을 아내들에게 넘겼다.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기본적인 틀을 만든 것, 회사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가정에서 아내는, 그리고 엄마는 문제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해결법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회사는 이들에게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김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관리와 지속 가능한 실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회사는 운영 초기부터 아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자주 커뮤니케이션했으며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나 개선점을 놓치지 않고 반영했다. 각종 위원회 초기부터 참여한 아내들은 갈수록 회사의 정책과 위원회 운영에 애착을 보였고 지금은 주인의식을 갖고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모든 운영위원회가 자발적인 형태로 회사 간섭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황인이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hiny72@snu.ac.kr

황인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 학사 및 경영학 석사 학위를, 미국 택사스대-댈러스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및 드렉셀대에서 회계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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