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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 Leader Interview: 제임스 스위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40센트 가치의 행운권 1장으로도 에너지 효율 높일 수 있다

이방실 | 132호 (2013년 7월 Issue 1)

 

 

“에너지와 관련된 기존 연구와 논의들은 대부분 기술 측면에서만 이뤄져 왔습니다. 물리학자나 공학자, 전통 경제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가져왔죠. 이제는 행동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이전까지 에너지 문제와 전혀 관련 없다고 생각했던 심리학자, 사회학자, 교육학자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에너지의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혀야 합니다.”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제임스 스위니(James Sweeney)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최근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 및 대구에서 열린36회 국제에너지경제학회(IAEE)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 차 방한했다. IAEE 창립자이기도 한 스위니 교수는 미 연방 에너지국의 에너지예측국 소장으로 재직했으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경제 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스탠퍼드대 산하 프리코트에너지효율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내 에너지 기업과 긴밀히 교류하고 국제 학술대회에 적극 참가하며 에너지 효율 및 수요 관리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스위니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한국에선 최근 원전 가동 중단으로 인해 올여름

전력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조언해 달라.

현재 절반가량의 원전 가동이 중단돼 있다고 들었다. 단기적으로 전력 부족 사태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공급 측면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 공급 관리가 의미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장기적으로 공급을 확충하는 일은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원전이 빠른 시일 안에 재가동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새로운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거나, 신규 LNG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온다는 등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 어떤 대안도 단기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건 없다. 태양에너지나 풍력개발 사업을 통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방법도 비현실적이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대체에너지에 쏟아붓는 자원의 투입량 대비 산출은 극히 미미하다.

 

결국 전력난과 같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요 관리(demand management)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때 핵심은 에너지의 절대 소비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cy)을 높이는 일이다. 공장 문을 닫고 회사나 집에서 아예 전기를 안 쓰면 에너지 소비량은 당연히 줄어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순환 정전(rolling blackout)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당장 산업계가 영향을 받고 24시간 전력이 공급돼야 하는 생산라인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이나 정전이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 역시 큰 불편을 겪고 대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수요 관리를 할 때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에너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빌딩 관리시 소요되는 에너지 유형과빌딩 안에서 사람들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행동패턴을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물 전체의 냉방, 난방, 환풍, 조명 등은 빌딩 관리 차원에서 이뤄진다. 반면 노트북, 데스크톱 등 사무기기나 TV, 냉장고 같은 전자 제품, 구내 카페테리아/주방에서의 전열기구나 온수 사용 등은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행동 패턴과 관련돼 있다. 수요 관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건 바로 후자다. 빌딩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에너지 사용은 대개 건물 설계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당장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 빌딩 하나를 짓는 데 설계, 시공, 건축 등 주체들이 다양하고 규제도 많기 때문에 점진적 개선은 몰라도 급진적 변화를 이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인간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이 없는 방의 조명을 끄고, 난방 온도를 낮추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는 등의 일은 마음만 먹으면 즉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행동심리학적 측면에서 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간 에너지 관련 연구나 정책은 기술적 측면에서만 접근해 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에너지 사용자들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의사결정과 관련된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파악해야 하고 사회학적 행동 특성에 대해서도 이해해야만 사람들의 에너지 사용 패턴을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행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에너지 효율을 이야기할 때 흔히낮은 가지에 달려 따 먹기 쉬운 과일(low-hanging fruit)’이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경제 산업 구조에 타격을 입히지 않고도 전체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기술을 활용해 낮은 가지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과일을 진작에 따 먹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적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과실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최대 효용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런 현상을에너지 효율 격차(energy efficiency gap)’라고 한다.

 

그럼 에너지 효율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왜 사람들은 손쉽게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나무 주변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담장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해낼 수 없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애물은 외부 효과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마다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오염은 그만큼 커지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가 지불하지 않는다. 당연히 소비를 절약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담장은 외부 효과만이 아니다. 에너지 사용과 관련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열악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한국인들 가운데 TV를 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TV를 시청하면서 시간당 소비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단언컨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TV뿐만이 아니다. 방에 불을 켤 때,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때, 전기 스토브를 사용할 때 그때그때마다 각각 전기 소모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에 따른 비용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에너지 소비에 관해 받는 정보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식료품 가게에서 쇼핑하는 것에 빗대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육점 코너에 안심, 등심, 닭가슴살, 닭다리 등 여러 종류의 고기가 부위별로 진열돼 있는데 가격표는 하나도 없다고 가정하자. 신선식품 코너에도 갖가지 야채와 과일이 가득하지만 역시 가격표가 없다고 치자. 이것저것 마음껏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대로 왔지만 정작 점원은 구매액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나는 계산을 하면서도 내가 얼마를 지불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1주일에 한 번씩 장보기를 여러 번 거듭하고 월 말이 돼 한 통의 청구서를 받아본다. 청구서에는식료품 총액 40만 원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달랑 적혀 있다. 내가 고기 값으로 얼마를 썼는지, 얼마어치 채소를 샀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지금 우리가 받는 전기사용료 고지서가 바로 이런 식이다. 그때그때 실시간 피드백이 전혀 없고 한 달에 한 번 청구서가 발송된다. 그나마 총액 정보만 있을 뿐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노트북 등 각각의 전자제품에서 얼마를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사람도 똑똑하게 소비를 하기가 힘들다.

 

소비자들이 에너지 절약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개인들이 부담하는 에너지 비용이 전체 소득에서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가정의 경우 전기료가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5%밖에 안 된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 생각된다. 반면 앞서 지적했듯이 에너지 소비와 관련해 제공되는 정보는 터무니없이 형편없다. 쥐꼬리만한 돈을 아끼자고 번거롭게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하고 꼼꼼하게 소비 전력을 따져가며 전력을 아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일을 하는 게 백 배 낫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당장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스마트 그리드 같은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고,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의 제조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정책적으로도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신경 쓰도록 만드는 일은 인간 심리와 사회학적 특성 등에 대한 이해가 이뤄진다면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전력난 같은 문제를 방지하려면 에너지 소비 절약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절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에 무관심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흔히들 생각하는 방법이 전기료 인상이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전기료를 높이면 사람들이 적게 쓸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기료를 10% 올리면 소비량이 1% 줄어든다는 실증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전기료는 대부분 국가에서 정부의 규제 대상이고 정치적 고려도 배제할 수 없는 문제라서 현실적으로 쉽게 조정할 수 없다. 설령 전기료 인상으로 소비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에너지 효율성 격차는 존재한다. ,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에너지 소비와 관련해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적 규범(social norms)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을 관리하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오파워(Opower)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오파워는 전기료 청구서를 작성할 때 고객이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집에 사는 이웃들에 비해 전기를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 특정 사용자의 에너지 소비량 정보에 더해 이웃들의 평균 전력 소비량과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쓴 하위 20% 가구의 에너지 소비량 정보를 함께 제시했다. 이와 함께 오파워는 청구서에 이모티콘 표시도 삽입했다. , 해당 사용자의 에너지 소비량이 이웃 평균보다 낮으면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평균 사용량보다 높으면 찡그린 얼굴의 이모티콘을 각각 청구서에 표시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소비자들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이 6개월간 2% 감소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청구서에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모양을 집어넣는다고 소비자들의 에너지 소비량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유는 뭘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인간의 동기 부여와 관련된 메커니즘 차이다. 소비하려고 마음먹은 대상에 쏟아부어야 할 금전적 비용(dollar magnitude of the decision)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경제적 동기부여 강도(strength of economic motivation)는 비례해서 커진다. 이를 각각 X축과 Y축으로 놓고 본다면 우상향 그래프 형태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살 때와 자동차를 구입할 때를 비교해보자. 사람들은 값싼 아이스크림을 살 때보다 비싼 자동차를 구매할 때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금전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지는 만큼 비용을 최소화시켜주고 경제적 효용을 높여주는 인센티브에 대한 열망 역시 증가한다. 반면 사회적 동기부여 강도(strength of social motivation)는 소비하려는 대상에 쏟아부어야 할 금전적 비용의 크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 치러야 할 비용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사회적 동기부여에 대한 강도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가처분 소득의 극히 일부분만 차지하는 전기료처럼 금전적 비용이 적은 영역에서는 경제적 동기부여보다 사회적 동기부여의 강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것 같다. 확립된 이론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가설이긴 하지만 꽤 타당성 있는 설명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이런 영역에선 경제적 동기보다 사회적 동기를 자극하는 편이 낫다. , 경제적 인센티브와 관련된 정보를 제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다는 일종의 또래압력(peer pressure), 넛지(nudge)’ 방식을 통해 사회적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편이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그림1)

 

확률적 방식으로 보상을 지급(stochastic rewards)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스탠퍼드대 동료 교수인 발라지 프랍하카(Balaji Prabhakar)가 인도 방갈로르 소재의 하이테크 업체인 인포시스(Inoosys)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고 싶다. 방갈로르는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다. 러시아워 때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인포시스는 직원들이 좀 더 일찍 출근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직원들이 덜 피곤해 하고 생산성이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일찍 출근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프랍하카 교수 연구팀과 함께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만약 직원들이 러시아워 시간보다 30분 일찍 오면 1장의 행운권을, 1시간 일찍 오면 2장의 행운권을 나눠준 후 매월 말 한 장의 행운권을 추첨, 수상자로 뽑힌 직원 한 명에게 한 달치 봉급을 추가로 주기로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전체 직원 중 15%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다. 한 달치 봉급이 꽤 큰 상금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당첨 확률을 따져 봤을 때 행운권 한 장당 기대값은 불과 40센트밖에 안 된다. 말도 안 되게 낮은 수치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행운권 한 장당 기대값을 계산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전체 상금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그 결과 꽤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바꿨다. 한국 기업들도 이런 방법을 시도해볼 만하다. 물론 한국에서도 확률적 보상 지급 방식이 인도에서처럼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는 이런 방식이 효과를 봤다. 방갈로르 실험 후 스탠퍼드대 인근 통학 인구를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한 결과, 우리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고 사람들의 출근 시간 패턴을 바꿀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위해 향후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막대한 광고 비용과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소비자의 의사결정 구조에 영향을 끼쳐서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데 그만큼의 돈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에너지 사용 패턴을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빈 방의 불을 끄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트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마음 먹게끔 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언론을 이용해 다양한 절전 캠페인을 진행하며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은 단순히 경제적 효과 외에 플러스 알파 효과가 있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예를 들어 자연광에 많이 노출될 경우 종업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진다거나 단열처리가 잘된 집에 살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평균 의료 비용이 적게 든다는 등의 실증 연구 결과들을 대중들에게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변화된 행동을 지속시키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힘쓰도록 하는 방안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스탠퍼드대가 과거 구글파워미터(Google Powermeter)와 공동으로 진행했던 실험을 하나 소개하겠다. 우리는 피험자들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집단(A)에는 실시간으로 각 전자제품의 전기 사용량을 알 수 있는 구글파워미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다른 집단(B)에는 실시간 전기 사용량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달 후 두 집단의 전기 소비량을 비교해 봤더니 실시간 정보에 접근한 집단(A)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이 5% 정도 적었다. 하지만 네 달 정도 지나자 두 집단 간 차이가 없어졌다. 일시적으로 소비를 줄이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절약 습관을 들이진 못한 것이다. 이후 두 집단에 실험이 끝났다고 말한 후 지금까지 구글파워미터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집단(B)에게도 실시간 정보 열람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피험자들 몰래 두 집단의 에너지 소비 패턴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번에는 새롭게 구글파워미터 정보에 접근했던 집단(B)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이 먼저 정보에 접근했었던 집단(A)에 비해 5% 정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역시 그 효과는 첫 번째 달뿐이었다. 이들 역시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동 패턴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해 결국 4개월이 지나자 두 집단 모두 비슷한 소비량을 보였다.

 

아마도 사람들은 에너지 절약과 같은 일을 굉장히 지루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행동 변화를 일으킨 후에도 끈질기게 매달리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같은 게임을 생각해 보자.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이 게임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는 뇌신경학적으로 봤을 때 쾌락과 행복감과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에너지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실마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행동심리학적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뇌가 에너지 소비와 관련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 도파민 분비를 일으키게 하는 방아쇠가 무엇인지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기술의 진보 덕택에 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가시화하고 있다. 하드웨어적으로 이런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들을 어떻게 가공해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들어 해석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 하루에 전기를 사용하는데 어느 시간대에 갑자기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났다면 그 데이터를 그저 늘어놓기만 해서는 별 가치가 없다. 특정 시간대에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용량이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를 해석하고 그에 따른 의미를 뽑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히 기계적인 측면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전반적인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사회심리학적, 행동경제학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에너지 소비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적 차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건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을 바꾸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일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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