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DBR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인간의 행동과 습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본성 대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이 반복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한 기업인이 되려면 선천적, 후천적 자질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계몽주의 시대 이후 사람의 성격과 재능은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이론이 주를 이뤘다. 계몽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은 왕과 귀족들로부터 권력을 뺏기 위해 인간의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그 두뇌는 마치 빈 칠판처럼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상태라는 주장을 ‘빈 서판’ 이론이라고 한다.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 세상에 못 바꿀 습관과 행동이 없다고 주장하는 파블로프나 스키너를 필두로 한 행동심리학자들 역시 빈 서판 이론의 신봉자들이다.
하지만 DNA 염기서열로 이뤄진 유전자 정보구조가 발견되면서 빈 서판 이론에 대한 반대근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예로 미국에서 진행된 조사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를 각기 다른 집으로 입양시켜 추적조사를 해봤다. 어떤 양부모는 술을 마셨고, 어떤 양부모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양부모의 음주 여부와 상관없이 알코올 중독자인 생부 혹은 생모를 둔 아이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 확률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도 있다. 일반인이 환청, 망상이 주된 증상인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은 1% 내외다. 하지만 부모 중 한 명이 정신분열증 환자면 자식이 정신분열증일 확률은 10% 내외로 급등한다. 만약 정신분열증 환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정신분열증이라면 다른 한 명이 정신분열증일 확률은 어떨까? 이는 50%로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정상이고, 다른 한 명은 환자가 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성장 과정에서의 경험 차이, 성인이 된 후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많은 자기계발서는 인간은 ‘빈 서판’의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에 성공을 위한 자질의 상당부분이 이미 결정돼 있다면 학습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성공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 중 어떤 부분은 선천적인 측면이 강하고, 일부 자질은 후천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물론 선천적 자질과 후천적 자질을 딱 부러지게 나눌 수는 없다. 자질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과 배우고 익힌 것이 합쳐져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선천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질이 있다. 반면 후천적 요인으로 강화되거나 퇴행할 가능성이 큰 자질도 있다. 성공적인 경영인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을 1)정보처리 능력 2)승부욕 3)직관 능력 4)대인관계 능력 5)근면 성실 6)호기심 등 여섯 가지라고 했을 때 각각의 자질에 대한 선천적 및 후천적 측면을 살펴보겠다.
정보처리 능력 과거에는 정보처리 능력을 지능, 기억력, 판단력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중요한 정보를 기억의 형태로 저장하는 능력, 필요할 때 저장된 기억을 즉각적으로 회상하는 능력을 합쳐 기억력이라고 표현한다. 기억을 다른 기억 및 현재상황과 연관시키고 기억을 응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소위 기억력은 타고난다는 학설이 우세하다. 반면 기억을 연관시키고 응용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에 더 영향을 받는다. 많이 사용하는 뇌기능이 신경네트워크로 점점 강화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의한 정보화가 이뤄지면서 정보를 저장하고 회상하는 것은 손쉬워졌다. 따라서 정보를 연관시키고 응용해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응용 능력은 현장을 자주 접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향상되므로 후천적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승부욕 기업인은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승부욕은 근성으로 표출되며 나 자신에 대한 승부욕은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장류 때부터 존재한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그에 걸맞은 유전적 형질을 띠고 태어난 이들은 승부를 걸면서 삶을 살아간다. 지고는 못사는 마음, 회사의 제일 꼭대기까지 오르고자 하는 야심은 상당부분 타고난다. 기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도 지배하는 개체의 수를 늘리고자 하는 영장류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야망이 사업을 꼭 성공으로 이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야망이 없는 이는 치열한 경쟁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므로 성공의 폭은 제한적일 것이다.
직관 능력 과거 인류에게 상황을 파악하는 직관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했다.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면 언제 폭풍우가 밀려올지 알아야 했다. 사냥감이 있는 장소를 감지해서 최선의 타이밍에 먹이를 잡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시각, 청각, 후각을 통한 정보는 우리에게 직관적인 느낌을 주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한다.
본인이 의식적으로 진행하는 정보처리와는 별도로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직관이 여전히 작동한다. 이러한 직관 능력은 융통성과도 관련 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채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로 융통성이다. 그런 점에서 직관 능력의 상당부분은 타고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나중에는 좀 더 여유를 갖고 합리적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직관 능력에 따른 결단력은 경험에 의해서 향상될 수 있다.
대인관계 능력 사람을 판단하고 설득하는 대인관계 능력은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만나면 결국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특정인과 사업관계로 일을 해야 할지 안해야 할지 하루 혹은 며칠 안에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비즈니스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나에게 도움이 안 될 사람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반복되면 성공 확률은 현저히 저하된다.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성장했느냐에 따라서 사람 보는 눈은 달라질 수 있다.
근면과 성실 근면과 성실은 사업을 위해 꼭 필요한 재능이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근면 성실이 빛을 본다. 과거의 인류는 지배층의 변덕에 따라 언제 재산을 빼앗길지 전전긍긍했고,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목숨이 위태로웠다.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근면 성실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끈기 유전자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는 선천적 재능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아무리 야단을 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트레스, 우울증,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등으로 선천적인 끈기가 망가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끈기 DNA가 지속적으로 발휘되려면 건강한 몸과 마음이 필수적이다.
호기심 요즘처럼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할 때는 호기심이 매우 중요한 자질이 된다. 코트립 다임러와 칼 벤츠가 고속엔진과 자동차를,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했을 때 그들에게는 돈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보다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호기심은 순항하는 회사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사업다각화는 사업다악화’라는 말도 생겼다. 호기심이 없으면 서서히 쇠퇴하고, 호기심이 지나치면 한 번에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할 수도 있다. 지나친 호기심이 경험을 쌓으면서 합리적인 판단력에 의해 견제될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려면 독서, 여행, 젊은 세대와의 대화 같은 촉진제가 필요하다.
필자의 견해로는 기억력, 승부욕, 융통성, 친화력, 호기심, 근면 성실은 선천적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승부욕과 호기심은 경험을 쌓으면서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나이가 들어서도 근면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려면 건강을 유지하고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응용하는 능력과 결단력, 리더십은 후천적 노력으로 향상될 수 있다.
본인에게 부족한 선천적인 자질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갖고 있는 좋은 자질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를 갈고 닦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그러면서 후천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자질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본인이 갖고 있음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myongk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