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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에서 주인공으로 떠오른 한국 배구

배구 시청률이 프로야구보다 높다? ‘지역밀착 + 아웃소싱’ 이젠 배구가 대세다

황규인 | 210호 (2016년 10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10년 전만 해도 겨울에 열리는 최고 인기 스포츠는 농구였다. 배구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로농구는 과거 골수팬들의첫사랑으로 불렸던 선발자 우위 효과를 빠르게 잃고 있다. 배구는 일단 시청률에서 농구를 추월했다. 2015∼2016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 평균 TV 시청률은 1.07%(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로 남자 프로농구(0.28%) 3.8배 수준이었다. 후발자 배구가 선발자 농구를 이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 지역 밀착의 힘: 연고지 개념을 정착시키며 가족이 함께 찾을 수 있는 배구 코트 만들기에 주력했다.

- 아웃소싱의 힘: 농구보다 작은 배구 시장 특성상 세계적인 선수들이 한국의 배구 코트를 누비며 팬들을 만족시켰다.

- 공정성의 힘: 2007∼2008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해 편파 판정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공정성은 스포츠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는업의 본질과 같다.

 

“미안하다. 농구대잔치는 이제 추억일 뿐이다. 이제는 배구가 대세다.”

 

TvN 연속극응답하라 1994’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분) 2016년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면 TV 앞에서 리모컨을 돌리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 연속극에서 성나정은 연세대 농구부 이상민(44·현 프로농구 삼성 감독)에 열광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정말 그랬다. 그 시절 우리는 누구나 농구 팬을 자처했다. 지금도 일본 농구 만화슬램덩크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만화책으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MBC 연속극마지막 승부는 따로 설명이 필요할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겨울에 열리는 최고 인기 스포츠는 농구였고, 배구는 들러리 신세에 가까웠다. 프로 리그 출범 시기가 이를 증명한다. 인기 있는 스포츠일수록 먼저 프로로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 농구는 농구대잔치 인기를 발판삼아 1997년 프로로 전향했다. 이듬해에는 여자 프로농구도 닻을 올렸다. 배구는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프로라는 간판을 달 수 있었다.

 

관중 숫자도 게임이 되지 않았다. 통계청 ‘e-나라지표에 따르면 프로배구 출범 두 번째였던 2005∼2006시즌 V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은 836명으로 남자 프로농구(3835) 5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프로배구는 시기상조였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왔고, 훈수 두기 좋아하는 언론은프로배구는 프로농구에서 배우라고 주문을 쏟아내기 바빴다.

 

이제는 반대다. 물론 아직 프로배구가 확실하게 역전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하다. 하지만 프로농구가선발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 효과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후발주자프로배구는 어떻게 프로농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적의 위기가 곧 우리의 기회였다. 물론 그 기회를 잘 살린 건 배구가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시청률의 힘

 

프로배구가 11년 동안 급성장한 비결에 대해 김대진 한국배구연맹(KOVO) 홍보마케팅팀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프로농구에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우리가 농구에 앞서는 건 사실상 TV 시청률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시청률 정도라고 표현하기엔 차이가 너무 크다. 2015∼2016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 평균 TV 시청률은 1.07%(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로 남자 프로농구(0.28%) 3.8배 수준이었다. 프로배구 여자부 시청률(0.70%)이 오히려 남자 프로농구 시청률보다 높다. 보통은 종목을 막론하고 남자 경기 시청률이 여자 경기 시청률보다 잘 나온다.

 

이 때문에 남자 프로농구는 굴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3∼2014 남자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챔프전) 1차전은 경기 시작 시점이 아니라 2쿼터부터 중계 전파를 탔다. 원래는 SBS스포츠에서 프로배구 여자부 챔프전 4차전 중계를 하다가 남자 농구 챔프전으로 바꿀 계획이었다.

 

 

문제는 예상보다 프로배구 경기가 길어졌다는 것. KBSN에서 똑같은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지만 SBS스포츠는 프로농구로 중계 화면을 돌리지 않았다. 프로배구 여자부 챔프전을 두 채널에서 중계하는 동안 프로농구는 한 채널로부터도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프로배구보다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한국농구연맹(KBL)에서는농구 팬 중에는 TV 시청률에 잡히지 않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시청자가 많다고 항변한다. 정말 이런 ‘N스크린시청자가 시청률 차이를 뛰어넘을 만큼 많은 걸까.

 

닐슨코리아 관계자는케이블TV에서 시청률 1%는 보통 시청자 36만 명으로 계산한다면서시청률 차이가 0.8%포인트 정도 나니까 프로배구 시청자가 경기당 약 288000명 정도 많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종목 모두 온라인(모바일) 중계를 맡고 있는 금현창 네이버 스포츠&게임 셀(cell) 이사는온라인과 모바일을 합친 프로농구 경기 평균 접속자(UV) 숫자는 약 8만 정도고 프로배구는 약 75000만 정도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프로농구가 온라인 시청자가 더 많은 건 맞지만 시청률 차이를 극복할 정도는 못 된다는 뜻이다.

 

 

안정적 채널 확보의 힘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당연히 돈이 생긴다. KBSN은 지난해 12 KOVO 5년간 총액 200억 원(연간 40억 원)에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프로배구 원년이던 2005시즌 프로배구 중계권료는 3억 원이었다. 11년 사이에 중계권료가 13.3배 뛴 셈이다.

 

김 팀장은배구는 프로 출범 때부터 KBSN(당시 KBS스카이)이 계속 주관 방송사를 맡아 왔다. 그게 V리그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장기적으로 방송사도 그 결실을 누릴 수 있는 윈윈 구조가 됐기 때문에 좋은 계약 조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해마다 시즌 일정이 처음 나오면 구단 관계자보다 TV 편성팀을 먼저 만나 생중계가 가능한지 확인한다. 만약 중계가 불가능한 경기가 있으면 일정을 재조정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서 현재까지 모든 경기 중계를 이끌어냈다. 이런 종목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복 중계와 재방송을 포함하면 지난 시즌 프로배구 경기는 평균 3.2회 전파를 탔다.

 

안정적인 중계 채널을 확보한 덕에 KOVO는 경기 시간을 고정할 수 있었다.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는 평일에는 오후 7,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오후 2시에 열린다. TV 중계가 잡히면 그제서야 경기 시간을 바꾸는 다른 프로농구와 다른 점이다. 김 팀장은시청자들이 그 시간에 KBSN을 켜면 무조건 배구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1∼2012시즌을 앞두고 KOVO는 중계권 계약을 턴키방식으로 바꿨다. 그 덕에 KBSN은 중계권 재판매 권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11∼2012시즌부터는 두 시즌 동안은 MBC스포츠플러스가, 그 뒤부터 현재까지는 SBS스포츠가 프로배구 중계에 뛰어들었다. KBSN이 이번에 계약을 5년 연장하자 SBS스포츠도 5년간의 중계권을 샀다.

 

그렇다고 KOVO에서 계속 KBSN에만 특혜를 준 건 아니다. KOVO는 중계권 계약 갱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사 산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세 곳과 공평하게 협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몸이 달아오른 KBSN에서 먼저 5년 계약을 제시했다. 그전까지는 3년 계약이 관례였다.

 

KBSN 관계자는 “2014년에는 프로배구 시청률(1.03%)이 우리 채널에서 중계한 프로야구 경기(0.90%)보다도 높았다주로 여름에 열리는 국가대표팀 일정 등을 감안하면 배구는 앞으로 계절을 타지 않는 콘텐츠로 성장할 성장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에 장기에 걸쳐 거액을 투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농구는 왜?

 

KBL도 지난 시즌이 끝난 뒤 MBC스포츠플러스와 5년간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비공개다. 2009년 중계권 사업자 에이클라와 계약을 맺은 뒤부터 그랬다. KBL 관계자는계약 때 비공개로 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아주 비밀인 건 아니다. 중계권 협상에 밝은 이들은 KBL이 이번에 총액 150억 원(연평균 30억 원) 정도에 계약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프로스포츠 사무국에서 중계권료를 받으면 일부를 제작 지원금 형태로 방송사에 돌려주는 게 관례다. KBL에서 중계권료를 밝히지 못하는 건 이렇게 돌려주는 커미션이 일반적인 시장 가격보다 많기 때문일 것이라며대략 20억 원 정도를 돌려준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KOVO에서는연간 2억 원 정도를 방송사에 지원하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시청률은 원래 광고주를 위한 자료다. 프로농구는 프로배구보다 시청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광고 유치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 부족분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KBL KOVO보다 커미션을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구는 2005년 중계권 사업자 IB스포츠와 거래한 게 지금까지도 독()이다. KBL 2005 IB스포츠와 50억 원에 중계권 협상을 맺었다. 그전까지 지상파 3(KBS, MBC, SBS)에서 부담한 중계권료(34억 원)보다 16억 원 많은 금액이었다.

 

IB스포츠는 프로농구 중계권을 지상파 3사에 재판매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미 메이저리그 중계권료(480억 원)를 두고 갈등을 빚었던 3사는 생각이 달랐다. 게다가 이미 지상파 3사는 KBL에 중계권료 인하를 요구했던 상태였다. 결국 지상파에서 두 손을 들면서 이 시즌 프로농구 개막전 중계는 케이블 채널엑스포츠에서 맡았다.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지상파에 팔지 못한 IB스포츠가 직접 만든 채널이었다.

 

농구 팬들은 낯선 채널을 선호하지 않았다. SBS스포츠가카르텔을 깨고 그해 124일부터 다시 중계를 시작했지만 농구 팬들은 이미 KBL에 불신이라는 낙인을 찍은 뒤였다. 감정이 상한 건 지상파 방송사도 마찬가지였다. SBS도 당시 시청률이 탐나서 카르텔을 깼다고 보긴 어렵다. SBS는 프로농구 초기에 직접 팀을 운영할 정도로 오너 일가가 농구에 애정이 큰 회사다.

 

지역 밀착의 힘

 

관중 숫자는 어떨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기당 평균 관중 숫자는 아직 배구가 농구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난 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평균 2969명으로 남자 프로농구(3471) 85.5% 수준이다. 프로배구( 216경기)는 총 관중 50만 명을 넘겼다고 좋아할 때 남자 프로농구

( 270경기) 100만 관중이 무너진 걸 아쉬워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농구가 배구보다 먼저 프로가 되면서 대도시를 연고지로 선점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같은 도시에서도 수용 인원이 큰 체육관은 프로농구 팀이 차지했다. 예를 들어 서울 연고 남자 프로농구 팀 삼성은 최대 1359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실내체육관을 안방으로 쓰지만 프로배구 남자부 서울 팀인 우리카드의 안방 장충체육관에는 4507명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남자 프로농구 10개 구단이 안방으로 쓰는 체육관 평균 수용인원은 7427명인 데 반해 프로배구 남자부 7개 구단 체육관 평균은 4670명으로 농구가 1.59배 더 크다. 이를 토대로좌석 점유율(평균 관중÷평균 수용 인원)’을 계산하면 프로배구 남자부(63.6%)가 남자 프로농구(46.7%)보다 더 높다.

 

프로농구에 밀려 중소 도시를 연고지로 택해야 했던 게 오히려 프로배구가 내실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대표 사례가 61499(2016 7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이 사는 충남 천안시를 연고지로 택한 현대캐피탈이다. 현대캐피탈은 팀 엠블렘에 모기업(현대캐피탈) 이름은 없지만 연고지(천안) 이름은 있다. 천안 시민 역시 프로배구 출범 이후 11년 연속 관중 동원 1위 기록으로 화답했다.

 

반면 프로농구는 10개 구단 중 7개 팀이 연고지를 옮긴 적이 있다. 게다가 프로농구 구단은 연고지에서 경기만 치르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어 프로농구 LG는 경남 창원시가 연고지지만 선수들은 평소에는 경기 이천시에 있는 숙소에서 생활한다.

 

사실 이는 프로배구 구단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약 280억 원을 들여 천안시에 복합 베이스캠프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castle of skywalkers)’를 지었다. 스카이워커스는 이 팀의 애칭이다.

 

 

현대캐피탈은 이 베이스캠프를 천안시에 자리잡은 천안고, 쌍용고 배구부나 지역 동호인들에게도 개방한다. 그저 시설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재능 기부형태로 함께 코트 위에서 뛰기도 한다. 팬 미팅 같은 행사를 이곳에서 여는 건 기본이다. 또 이 팀 안방 유관순체육관에서는 배구공 모양 호두과자도 판다. 호두과자로 유명한 천안의 지역색을 살린 마케팅이다.

 

천안시 역시 2009년 유관순체육관을 같이 쓰던 여자 프로농구 국민은행( KB스타즈)과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을 다른 도시로 내보내면서 현대캐피탈이 이 체육관을 독점으로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천안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체육관으로 가는 내내배구특별시 천안이라는 문구가 운전자를 맞이한다. 각종 스포츠 마케팅 시상식 때 현대캐피탈과 천안시가 단골손님이 된 이유다.

 

김성우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해외 배구 리그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나 미국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사커(MLS·미국프로축구) 경기장을 둘러보며 마케팅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찾아낸 키워드는 지역과 가족이었다이제 연고지 정착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찾아올 수 있는 배구 코트를 만드는 데 무엇보다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많던 오빠부대는 어디로 갔을까

 

프로야구는 출범(1982) 당시부터 어린이 회원제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이 제도를 없앤 팀이 적지 않았다. 회원 가입비보다 사은품 비용을 더 많이 쓰는데 마케팅 효과는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린이 회원을 부활시킨 건 1990년대 중반 프로야구 중흥기 때 야구장을 채운오빠부대출신 엄마 팬들이었다. 이제는 프로야구 팀에서 영·유아 제품 온라인 쇼핑몰을 열 정도다. 일부 구단은 만 2세 이하만 가입할 수 있는베이비클럽회원을 모집하기도 한다.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경영학)남성만 타깃으로 하는 스포츠 마케팅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는 어린이와 가족에 마케팅 초점을 맞춰야 지갑을 열 수 있다다른 종목도 비즈니스화()하기 위해서는 프로야구를 잘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이 가족 마케팅에 집중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가족의 중심은 여성이다.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체육학)가정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여성 마케팅의 장기적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특히 20, 30대 여성은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서비스에 만족하면 이를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린다고 설명했다.

 

프로배구가 갈수록 관중 동원에 연착륙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KBSN에 따르면 25∼34세 수도권 거주 여성의 V리그 개인 시청률은 0.180%로 같은 기준 프로야구 시청률(0.146%)보다 높다. 반면응답하라 1994’ 속 성나정(1994학번)과 같은 또래인 40∼44세 여성도 농구를 등졌다. 이 또래 여성도 배구(0.068%)를 농구(0.064%)보다 많이 본다. 전체 연령 여성 시청률도 배구(0.77%)가 농구(0.058%)보다 높다.

 

오빠부대가 농구에 등을 돌리게 만든 제일 큰 이유는 외국인 선수였다. 오빠부대에게 외국인 선수는외국인이지선수 오빠가 아니었다. 이 역시 외국인 선수가 오히려 인기를 끌어올린 배구와 다른 점이다.

 

 

‘아웃소싱’의 힘

 

제 아무리 세일즈를 잘해도핵심 상품의 품질이 떨어지면 소비자는 금방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가 파는 핵심 상품은 당연히 배구·농구 경기다. 그럼 국내 프로리그에서 배구 경기 품질이 농구 경기보다 뛰어나다는 뜻일까.

 

연도별 프로배구 남자부 시청률을 뜯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 선수 점유율이 늘어나면 시청률이 오르고 줄면 내려간다는 것이다. 프로배구 출범 뒤 배구 전문가들은 외국인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몰방(沒放) 배구가 너무 심하다고 비판해 왔지만 소비자 평가는아웃소싱한 외인부대에 호의적이었다.

 

V리그 무대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사실 한국에 오면 안 되는 선수였다. 그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예를 들어 지난 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OK저축은행에서 활약한 시몬(29·쿠바)은 해외 배구 전문 매체에서 세계 최고 센터를 뽑을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는 선수다.

 

그가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국내 선수는꼬마들이 동네 농구하고 있는 자리에 마이클 조던(53)이 등장한 격이라고 표현했다. 조던은 미국프로농구(NBA)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던 아가메즈(31·콜롬비아) 역시 전성기 때는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격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호철 감독이 그를 영입하면서세계 3대 공격수를 데리고 왔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를 데리고도국내형외국인 선수 레오(26·쿠바)가 버틴 삼성화재를 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오는 세계 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V리그에서는 2012∼2013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팀을 두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프로배구는 세계 최고 선수들이 찾는 무대였고 그들을 물리치는 또 다른 선수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 라인도 생겼다. 프로농구는 일단 NBA급 선수를 영입하는 일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B급 선수들에게도 밀리는오빠를 지켜보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프로배구 무대에 이렇게 세계 최고 선수들이 올 수 있던 건 세계 배구 선수 시장이 그만큼 작기 때문이었다. 배구 전문 매체 <월드 오브 발리>에 따르면 김연경(28·페네르바흐체)이 연봉 150만 유로( 188000만 원)로 남녀를 통틀어 올 시즌 전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배구 선수다. 반면 NBA에서 연봉이 가장 많은 르브론 제임스(32·클리블랜드) 3000만 달러( 336억 원)이상을 받는다.

 

또 배구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주전 선수 7명 중 1(14.3%)이지만 농구는 5명 중 2(40%)인 것도 영향을 줬다. 배구에는 이런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오빠도 있었다. 김 팀장은김요한(31·KB손해보험)과 문성민(30·현대캐피탈)은 대학 시절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플레이하면서 희망을 보여줬다. 이 두 미남 스타가 있었기에 프로배구가 연착륙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정성의 힘

 

스포츠 산업이 팔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상품은공정함이다. 편파 판정은 TV 채널을 돌아가게 만들고 관중이 자리를 뜨게 만든다. 스포츠를 통해 관중이 기대하는 바의 본질이 페어플레이,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 능력의 한계와 팀워크의 힘을 확인하기 위한 것임을 상기해보면 공정성이란 스포츠의()’의 본질에 가깝다.

 

프로배구는 2007∼2008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했다. 전 세계 배구 리그 중 최초였다. 이때도 기대보다는 외부에서는 불안이 더 컸다. “카메라 중계 기술이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KBSN이 프로배구 전 경기를 중계하면서 카메라워크 노하우를 쌓은 덕이었다. 이헌우 KOVO 홍보마케팅팀 과장은당연히 제도 도입 전 KBSN과 협의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N 중계 실력은 페르난도 리마 FIVB 사무총장이 감동 받을 정도였다. 리마 사무총장은 “KBSN 같은 영상을 통해 배구 선수들의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 기술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FIVB 직원들과 다른 방송사들에게 참고 자료로 보내서 KBSN처럼 영상을 잡아낼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들이 보여준 중계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KBSN 앞으로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FIVB는 한국 프로배구보다 5년 늦은 2012년이 돼서야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는 프로배구에서 이 제도를 먼저 경험한 김건태 전 KOVO 심판위원장(당시 FIVB 국제 심판)의 입김도 작용했다.

 

김 위원장은사실은 창피한 이유로 이 제도를 입안하게 됐다. 주심과 부심, 선심을 베스트로 꾸려도 목측(目測)으로 100% 정확한 판정을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그런데 방송사에서 배구 경기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씩 재방송하다 보니 오심이 한 번 나오면 그 여파가 너무 오래 갔다. 그래서 카메라의 힘을 빌리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코트 위의 포청천이라고 불리던 김 위원장이 비디오 판독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김 위원장이 내린 판정이 번복되는 일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디오 판독 도입으로 판전 시비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프로농구는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고 나서야 2011년 같은 제도를 국내에 들여왔다. 여전히 KBL 홈페이지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프로농구 구단 관계자는오심에 대해 심판 설명회를 요청해도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할 때가 많다.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까 아무 말도 못하는 게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어떤 종목이든 경기를 보고 답답함을 경험한 팬은 다시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

 

한계를 극복하라

 

프로배구도 물론 어두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유소년 선수가 부족하다는 게 제일 큰 과제다. 아마추어 배구를 관장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에 따르면 초등학교 배구 선수는 653( 412, 241)에 불과하다. 중학생이 되면 569( 348, 221)으로 줄고 고등학생이 되면 다시 499( 315, 184)이 된다. 이들 중에서 국가대표 선수도 나와야 하고, 프로 리그 스타도 나와야 한다.

 

생활 스포츠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굳이 통계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주택가 가까운 공원 어디에서든 농구 골대를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배구 네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당연히 산업 규모에서도 배구는 농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펴낸 <2015 스포츠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배구 관련 산업은 총 매출액 3230억 원으로 농구(6550억 원) 49.3% 수준이다.

 

또 프로농구는 여전히 골수팬이 많지만 배구는 라이트팬 위주다. 당연히 쓰는 돈도 다르다. 1년에 평균 7.7번 농구장을 찾은 팬이 평균 384원을 쓸 때 배구 팬은 6.6번 경기장을 찾고 쓰는 돈도 29540원으로 농구보다 적다. 이를 1년 기준으로 바꾸면 농구 팬이 329594원을 쓸 때 배구 팬은 202339원이다. 농구는 1년 지출 규모에서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야구(344994)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김 팀장은지금까지는 경기라는 상품을 만들고 홍보하는 데 마케팅 자원을 집중 투자한 게 사실이다. KBSN과 중계권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그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내부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일단 중계권료 상승분 중에서 7억 원 안팎을 유소년 선수 육성에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또 머천다이저(MD)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생활밀착형 시장을 확대해 가려고 한다. 지금껏 산업을 만드는 데 애썼다면 앞으로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되면 성나정이 손에 든 리모콘 버튼을 다시 농구가 나오는 채널 쪽으로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편 프로농구라고 다시 성공기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세상에첫사랑보다 좋은 마케팅 아이템도 없기 때문이다.

 

황규인 동아일보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언어학, 서울디지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현재 고려사이버대 대학원융합정보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7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교육복지부, 국제부 등을 거쳐 2013년부터 스포츠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재학 시절 <스포츠서울> <주간야구> <스포츠 2.0> 등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했고, 2005년부터 스포츠 블로그 kini's sportugese(http://kini.kr)를 운영 중이다.

 

생각해볼 문제

 

1. 배구는 전 세계 배구 리그 중 최초로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하는 등 공정성 확보에 주력했다. 이처럼 팬들로 하여금 결과에 대해안심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은 어떤 시사점을 줄까. 아울러 소비자들이 우리 기업에 기대하는업의 본질과 이를 지키기 위한 기본 장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 수많은 팬을 양산시키는국민 스포츠에서 들러리였던 배구에 마저 다소 밀리는 양상을 빚고 있는 국내 남자 농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즉 현재는 뒤로 밀려난 기존의선발주자가 다시 선발자 우위 효과를 되찾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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