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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기업’의 수난

박용 | 60호 (2010년 7월 Issue 1)
글로벌 대표 기업들의 수난시대다.
 
세계 굴지의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 패트롤리엄(BP)은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건으로 사면초가다. 방제작업과 보상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BP의 유동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회사인 노키아는 ‘어닝 쇼크(Earning Shock)’에 시달리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영업이익이 시장의 기대를 밑돌고 있다. 이에 앞서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등극했던 일본 도요타는 리콜 사태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잘 나가던 기업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몰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이 성공의 공식에 도취돼 시장 변화나 위기 요인을 꼼꼼히 점검하지 못하는 ‘성공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들 기업이 해당 업종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BP, 노키아, 도요타는 글로벌 대표기업이라는 특징 외에도 각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기업의 실적은 출신지역의 ‘국가 자산(Nation Equity)’을 형성하며, 동시에 이 국가 자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원산지 효과(Country-of-Origin Effect)’다. 예를 들어, 독일 자동차에는 효율성과 신뢰성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독일 이미지가 투영되는 식이다. 특정 국가와 특정 산업의 연관성이 클수록 원산지 효과는 더욱 커진다. 실제로 노키아는 1990년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인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관했다. ‘일본=전자제품’이라는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원산지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원산지 효과가 위기를 악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으며,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에 더욱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터졌을 때 일본 간판 기업인 도요타의 문제는 일본 기업의 신뢰성 문제로 번졌다. 이른바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 논란도 불거졌다. 최근에는 BP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은 BP 주주의 40%가 미국인인데도 태생이 영국이라는 점 때문에 지나친 비판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외국계 기업에 돌리려고 한다는 정치적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원산지 효과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자산을 축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원산지 효과의 부메랑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슬플 때는 문제의 원인을 주변 정황에서 찾지만 분노한 상태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 등 인간적 요인에서 찾는 경향이 높다. BP 사례처럼 대중의 공분을 사는 사건이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이 개별 기업이나 사람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원산지 효과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현지인 임원을 늘리고 현지의 목소리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는 다양성(diversity) 경영을 꼽고 있다. 이는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원산지 효과로 초래되는 위기를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도 국가 자산을 축적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이름만 대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BP와 도요타를 때린 원산지 효과의 양날의 칼이 언제 한국으로 향할지 모르는 일이다. 문제는 다양성과 현지화 경영이 단기간에 축적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BP와 도요타의 일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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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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