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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자국 회귀냐, 재배치냐

글로벌 공급망의 전면적 해체보다
변화된 환경에서 현명하게 재배치를

문정빈 | 303호 (2020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업이 생산 거점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다양한 비용 요소를 따져본다.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오프쇼어링)을 고민한다면 당장은 현지 정부가 우호적인 지원을 내밀 수 있지만 투자가 완료되면 협상력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정치적 리스크도 고려해봐야 한다. 기업은 이 같은 비용들을 따져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리쇼어링을 하기 위해서는 이 비용만큼의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글로벌 공급망의 전면적인 해체와 완벽한 리쇼어링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변화된 환경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배치(Reconfiguring)를 어떻게 현명하게 실행할지 고민해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여름휴가를 포기하거나 줄인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잠시 구글 지도와 스트리트뷰를 켜서 태양이 작열하고 야자수가 즐비한 이국의 해변을 찾아 스크린 속의 해변을 거니는 상상에 빠져 보자. 이런 해변을 영어로 쇼어(shore)라고 부른다. 리쇼어링을 얘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오프쇼어링의 바로 그 ‘쇼어’다. 즉, 오프쇼어링은 바다 건너로 보낸다(off-shor-ing)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융에서는 본국과 다른 세율과 다른 규제의 적용을 받는 역외로 돈을 보낸다는 의미로 쓰이고, 제조업에서는 가치사슬상의 생산 활동을 바다 건너 타국으로 보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는데, 워낙 널리 쓰이게 돼 ‘∼쇼어링’이라는 표현이 생산 활동을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접미사가 돼 버렸다. 이는 마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한 ‘∼게이트’라는 표현이 부정부패 스캔들을 뜻하는 접미사가 된 것과 유사하다.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꾸준히 증가하던 오프쇼어링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의 부상(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함께 그 추세가 둔화되며 오히려 리쇼어링이 주목받게 됐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과 이에 더해 진정한 검은 백조(black swan) 사건이라고 할 코로나19로 인해 각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특히 실업률 등 일자리 문제가 각국 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생산 활동을 타국으로 오프쇼어링한 자국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리쇼어링에 대한 요구는 한층 강화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국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지구상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 건너 아시아로 옮겼던 것이 화근이 돼 아주 단순한 개인용 보호 장구조차 제때 구비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본 미국 국민들이 오프쇼어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더 잘 대처한 국가들이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대만•베트남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유럽 제조업의 핵인 독일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DBR mini box

쇼어링(shoring)의 구분 i

● 오프쇼어링(Offshoring) ii : 기업의 가치사슬상의 생산 활동(원자재 조달, 연구개발, 디자인, 제조, 물류, 고객 서비스 등)을 본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행위

● 니어쇼어링(Nearshoring): 오프쇼어링을 할 때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인접국으로 이전하는 행위

● 온쇼어링(Onshoring): 기업의 가치사슬상의 생산 활동을 본국 내에서 생산성이 더 높거나 비용이 더 낮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행위

● 리쇼어링(Reshoring): 오프쇼어링됐던 가치사슬상의 생산 활동을 본국으로 재이전하는 행위

한편으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냉전 종식 이후 30여 년간 지속돼 왔던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 것 또한 오프쇼어링에 대한 대중의 관점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선진국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낮아진 생산비용이 저렴한 공산품 가격과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일자리 부족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오프쇼어링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국 기업의 오프쇼어링을 통해 외국이 경제 성장과 국력 강화를 이루는 반면 자국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생각하게 되자 오히려 리쇼어링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관점에선 리쇼어링의 의미는 무엇일까. 또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시도할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 리쇼어링이 국가 정책으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들에 대해서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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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의사결정에서 거래비용의 역할

올해 세상을 떠난 올리버 윌리엄슨 전 UC버클리대 교수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선택을 설명한 거래비용이론에 대한 공로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시장이라는 제도가 일반적으로 매우 강력하고 효율적이지만 시장에서의 거래에 따르는 몇 가지 부수적인 비용을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위계 조직기업이 오히려 더 저비용 고효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비용이론은 기업의 해외 진출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탐색비용, 협상비용, 이행강제비용 등을 포함하는 거래비용이 경제 활동의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고 이러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범위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때 핵심 개념은 특유 자산(specific asset, 거래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 가치를 갖는 자산으로 지리적 근접성, 기술이나 디자인의 정합성, 인적 자본 투자로 인한 전문성 등)의 존재와 계약의 불완전성인데, 이들의 존재로 인해 효율적으로 보이는 시장 거래의 이면에 본인의 비가역적 투자 이후에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재협상을 요구받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비용의 존재 때문에 수출이나 라이선싱 계약 등이 아닌 직접 생산을 위해 오프쇼어링이 일어난다고 본다.

오프쇼어링의 주된 동기는 본국에서의 비용 상승이며, 특히 고임금으로 인한 노동비용의 상승, 각종 규제로 인한 생산비용의 상승,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율로 인한 세 부담의 상승 등이다. 이에 따라 지난 30년간 임금이 저렴하고, 규제의 강도가 낮으며 법인세율이 낮은 외국, 특히 저개발국으로 오프쇼어링이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사결정은 기업 활동에 잠재돼 있는 거래비용을 도외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규제가 적으며 법인세율도 높은 저개발국을 선택해 생산 시설을 이전했는데, 막상 현지에서 생산을 하다 보니 현지 사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시행착오가 잦고, 경영 활동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보호가 미비해 일관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정치인과 관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예기치 않은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면 오프쇼어링의 장점은 상당 부분 상쇄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본사와의 추가적인 의사소통 비용, 연구개발과 생산의 지리적 분리로 인한 제품 출시 지연, 현지 자회사 통제의 어려움에 기인한 경쟁력 저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오프쇼어링에서 핵심적인 고려사항이 현지 정부의 우호적 지원이며, 여기에는 각종 인허가의 신속한 처리, 법인세의 면제 및 감면, 부지의 제공, 시설 투자 자금 지원 등이 포함된다. 해외 직접투자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증진하려는 현지 정부들은 다양한 혜택을 통해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이때 유의할 것은 투자 결정 단계와 투자 완료 이후에 투자 기업과 현지국 정부 사이의 협상력의 균형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고 투자 결정에 이르는 단계에서는 투자 기업이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지만, 일단 투자 결정이 되고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이후에는 이를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고 비용이 크므로 점점 더 현지 정부의 협상력이 강화된다. 다시 말해, 거래비용 중 이행강제비용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때 현지 진출국이 기업 활동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보호가 잘돼 있고 정치가 안정돼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오프쇼어링을 통해 생산시설을 이전한 이후 발생하는 추가 규제나 세금 인상 등으로 생산비용이 더 들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정치적 위험(political risk)이라고 부른다.

정치적 위험

정치적 위험에는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과 같은 재앙적 위험부터 국유화, 협박, 납치, 테러 공격과 같은 심각한 수준의 위험도 있고, 일방적인 무역 장벽이나 외국 기업 차별 정책 시행, 과실 송금의 제한, 외국 기업에 불리한 세금 제도,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본국과 현지 진출국의 입장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곤란함도 여기에 포함된다. 본국과 현지 진출국 간의 입장 차이로 발생하는 경영상 어려움의 사례로는 홍콩 디즈니랜드와 사드 배치 등의 사례가 있다. 디즈니가 홍콩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했을 때, 디즈니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신혼부부들이 많았는데 중국 문화권에서는 결혼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에는 하객들에게 유명한 중화요리인 샥스핀 수프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그러나 디즈니의 본국인 미국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동물 학대를 이유로 상어의 지느러미를 채취하는 것에 반대해 샥스핀 수프를 판매할 경우 디즈니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디즈니는 홍콩 디즈니랜드 내에서 샥스핀 수프 판매를 중지하고, 혼주를 대신해 결혼식 하객들에게 사과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매출 감소와 소비자들의 불만 등과 같은 비용이 발생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갈등도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정치적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소비재 산업에서 영향이 커서 문화, 화장품, 소매유통 기업들이 불매 운동 및 정부의 제재 조치로 인해 철수하거나 매출이 대폭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정치적 위험에 대해 측정과 관리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선, 측정의 문제부터 보자면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서 정치적 위험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학계와 업계에서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리더가 사라진 세계』 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이안 브레머가 대표로 있는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이 대표적이며, 학계에서도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의 제자인 빗 헤니쉬(Witold Henisz)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교수 등이 국가별 정치적 위험과 안정성 지수를 개발해 공유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1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치적 위험을 어떻게 측정, 비교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그림 1]의 세로축은 정치적 안정성의 정도를 나타내며, 가장 안정성이 낮은 국가는 0, 가장 안정성이 높은 국가는 1의 값을 갖는다. 정치적 안정성이란 정치적 위험의 반대 개념으로, 주요 국가 정책이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네 개의 국가가 등장하는데 미국은 정치적 안정성의 지표가 0.8에서 0.9 사이로 매우 높으며 21세기 전체에 걸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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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 직후 7개의 이슬람 국가 시민에 대해서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법원에서의 검토를 통해 법률에 반하는 명령이므로 무효라는 결정이 내려진 적이 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정치적 안정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는 다소 낮지만 역시 0.7과 0.8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볼리비아의 경우 21세기 초반에 0.6 정도를 유지하다가 2006년 이후 급속히 안정성이 낮아져서 0.4 미만으로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보 모랄레스(Evo Morales) 전 대통령(재임 2006.01∼2019.11)이 취임한 2006년에 자원 민족주의를 내세워 외국계를 포함한 모든 원유와 천연가스 기업들을 국유화한 데 따른 영향이다. 이후 2010년에는 외국계 전자산업 기업들을 추가로 국유화했고, 이 또한 지표의 하락에 반영돼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경제 정책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안정성이 최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2013년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시행한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들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위험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도 측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를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우선 기업 차원의 노력, 다음으로 국제기구를 통한 제도적 노력, 마지막으로 국제기구를 통한 보험의 제공 등의 접근법을 소개한다.

파인버그 럿거스대 교수와 굽타 메릴랜드대 교수는 2009년에 출간된 논문에서 정치적 위험이 큰 국가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운영 전략과 정치 전략을 통해 정치적 위험을 관리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2 이들에 따르면, 운영 전략이란 정치적 위험은 외국에 진출한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므로 대신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운영적 위험을 줄임으로써 위험의 총량을 관리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운영적 위험은 가능한 한 많은 생산 활동을 내부화함으로써 직접 수행해 달성할 수 있다. 정치 전략이란 정당, 주요 공직자, 언론 매체 등 정치에 영향력이 있는 개인 및 집단을 직접 상대해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지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정치 전략 수립과 실행에 대한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진출국의 정치적 위험이 높을수록 직접 생산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고, 따라서 기업들이 운영 전략을 정치적 위험 관리에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 전략을 실행한 경험이 많은 기업은 이러한 운영 전략에 덜 의존하는 현상 또한 관찰돼 기업들이 운영 전략과 정치 전략을 상호대체적으로 사용함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계약의 일방적 파기나 차별적인 조세 및 경제 정책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에 대해 알아보자. 대표적인 제도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 조정(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제도가 있는데, 해외 직접투자 기업과 진출국 정부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치적 위험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소송으로 큰 논란을 가져오고 있는 바로 그 제도다).

마지막으로, 세계은행에서 설립한 다자간투자보증기구(MIGA, 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에서는 저개발 분쟁지역에 기업들의 투자를 통한 경제 회복과 성장을 유도할 목적으로 투자 보증을 제공하며, 이는 정치적 위험에 대한 보험 성격을 갖게 돼 투자 자금 조달 시 보다 낮은 이자율로 조달이 가능하게 한다. 리쇼어링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이와 같은 정치적 위험이 적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본국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거나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기업들은 리쇼어링 전에 정치적 위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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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들의 리쇼어링 현황

AT커니는 리쇼어링 지수 연차보고서 2020년도 판에서 미국의 경우 2019년도에 아시아 저비용국(LCC, low-cost countries)들로부터의 수입이 전년도에 비해 7.2% 감소했으며, 따라서 제조업 수입지수도 전년도에 비해 감소한 12.1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미국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조업 생산물 1달러당 12.1센트가 아시아 저비용국으로부터 생산된 것이라는 의미다. 이 보고서에서는 2019년도의 이러한 변화가 지난 10년간의 추세를 반전시킨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결과라고 하며, 2008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리쇼어링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미•중 무역 전쟁의 결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감소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900억 달러 규모). 다만 이와 같은 중국으로부터의 제조업 수입 감소가 모두 리쇼어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 그중 과반수(520억 달러)는 유럽, 멕시코, 아시아 기타 국가 등으로 이전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3 즉,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리쇼어링보다는 리컨피겨링(reconfiguring, 재배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의 제작에 사용되는 원소의 개수는 몇 개일까?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원소의 개수는 약 118개이며 이 중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했던 원소는 84개라고 한다. 2016년 MIT Technology Review에 실린 아티클에 따르면 그중 75개가 휴대전화의 생산에 사용된다 4 고 하니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얼마나 전지구적(global), 더 나아가 전우주적(universal) 제품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러한 휴대전화의 생산에 글로벌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앞의 아티클에 따르면 애플 아이폰의 경우 모든 부품을 ‘국산화’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부품들로만 제작하게 될 경우 최대 13% 정도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고 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애플이 부품을 모두 국산화하는 리쇼어링을 자발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판매 가격의 13%에 해당할 정도의 세제 및 규제 완화의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는 애플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100% 리쇼어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활 수준의 하락과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경제에서 글로벌 공급망은 필연적이므로 리쇼어링 정책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성공적인 리쇼어링을 위한 조언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시(Shih) 교수는 2014년 MIT Sloan Management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성공적인 리쇼어링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5

첫째는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으로, 제조업의 대규모 리쇼어링에는 숙련된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적이다. 리쇼어링 초기에는 높은 이직률이 필연적인데,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생산 과정에 필요한 요구사항들을 숙지시키고 꾸준한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숙련도를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승진과 보너스 같은 외적 동기부여 방식보다도 성취감이나 개인의 성장과 같은 내재적 (intrinsic) 동기부여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둘째는 숙련 격차의 극복으로, 경쟁력 있는 리쇼어링을 위해서는 생산 과정 혁신(production process innovation)을 통한 효율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 많은 엔지니어가 작업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하게 되면 오프쇼어링 기간의 공백 동안 엔지니어의 교육과 훈련이 중지돼 적절한 경험과 역량을 가진 작업장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해외 진출국에서 작업장 리더급의 엔지니어를 초청하거나 인접 산업 분야에서 초빙해 공정 관리와 후임자 양성을 맡길 수밖에 없다.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역량 있는 작업장 리더급 엔지니어를 자체적으로 양성할 수 있느냐에 따라 리쇼어링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는 적절한 자본장비율의 결정이다. 리쇼어링을 하게 되면 막연히 자본장비율을 높여 해외 진출국에서보다 적은 노동력을 가지고 더 높은 자동화를 통해 작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인건비가 높고 기술 수준이 높은 본국으로의 리쇼어링이라 하더라도 자본장비율이 반드시 높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설비투자의 회수 기간을 충분히 고려하고 적절한 자본장비율을 결정해 투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급 기반의 재구축으로서 리쇼어링 해당 기업뿐 아니라 필요한 부품 및 중간재, 소위 ‘소부장’ 산업 기반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 공급망에 대한 전략적인 관점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서만 오프쇼어링을 통해 약화됐던 산업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인건비 절감을 통한 단기적인 이윤 극대화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공급 생태계 구축과 교육 훈련을 통한 숙련된 노동력 양성이 리쇼어링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우므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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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쇼어링보다 리컨피겨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전면적인 해체와 완벽한 리쇼어링이란 불가능하다. 대신 변화된 환경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리컨피겨링을 어떻게 현명하게 실행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설계하고 실행할 때 회계적인 운영 비용뿐만 아니라 거래비용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필요한데, 이 중 리쇼어링과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이 정치적 위험에 따른 계약의 이행 강제 비용이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 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치 체제의 안정성과 기업 활동에 대한 제도적 보호 정도가 높은 국가를 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일단 해외 직접투자가 이뤄지면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고, 최소 십수 년 이상 현지에서 운영할 것을 전제로 계획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니어쇼어링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데, 이때 거리를 지리적 거리만이 아닌 문화적, 제도적 거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와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들에 투자함으로써 정치적 위험에 따르는 거래비용을 줄이는 방식의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가 가능할 것이다.

외국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환경 조성

마지막으로, 경제 정책의 측면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2018년도 IMF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6300억 달러로 세계 전체 GDP의 1.79%를 차지한다. 세계 12위 규모다. 인구 규모(28위)나 국토 면적(110위)에 비해 월등한, 자랑할 만한 성과이나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세계 경제 전체를 좌우할 규모는 되지 못한다. 한편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총교역액/GDP)는 80.8%로 세계 평균인 56%보다 월등히 높으며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 중 이보다 높은 무역의존도를 보이는 나라는 독일(86.9%)이 유일하다.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27.2%로 중국(29.4%)을 제외하면 경제 규모 세계 20위 이내의 나라 중 어느 나라보다 높다. 이상의 통계 수치들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소규모 개방 경제이며, 글로벌 공급망과의 유기적 결합이 경제적 번영을 위한 주요 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같은 큰 자국 시장을 가진 국가가 주장하는 리쇼어링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들이 리쇼어링을 주장하며 자국 기업들을 불러들이는 와중에서도 외국 기업들을 유인해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국 기업 운영에 좋은 나라가 곧 외국 기업 운영에도 좋은 나라라는 자각하에 불필요한 규제의 정비, 정치적 안정성과 투명성 제고, 기업친화적 정책 등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의 리쇼어링과 동시에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고용 증진과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 교수 jonjmoon@korea.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Production and Operations Management』 『Journal of Business Ethics』 『경영학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 문정빈 문정빈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ESG와 지속가능 경영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경영학 연구』 『전략경영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전략경영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jonjmoon@kore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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