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편집자주
개인과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협상 능력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경쟁의 강도가 치열해 질수록 사회는 ‘불통(不通)’과 ‘분열(分裂)’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소통(疏通)’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과학적 방법론이 절실한 때입니다. 기업 대상 맞춤형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 교육기관인 HGS 휴먼솔루션그룹이 협상 전략과 기술, 갈등관리 등 소통의 과학에 대해 소개합니다.
협상 3.0의 시대다. 정해진 크기의 파이 안에서 내 것을 최대한 많이 챙기는 협상 1.0을 지나 파이를 키워서 ‘서로’ 많이 챙기는 협상 2.0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파이만 키우는 것으론 부족하다. 진짜 협상 고수는 상대의 ‘감정’과 ‘인식’ ‘행동’ 모두를 바꾼다. 그래서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과 진짜 파트너가 된다. 이를 통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가치(values)를 충족시키고 더 큰 가치(value)를 만든다. 이게 ‘협상 3.0’이다. 협상 3.0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인 상대의 ‘감정’을 공략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왜 ‘감정’인가?
협상을 잘하기 위해선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뇌를 ‘이성적 판단’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뇌는 이성적 판단을 내릴 뿐 아니라 감정도 결정한다. 뇌의 쾌락 중추에선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파민이 우리가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먼저’ 분비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을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의 영향을 먼저 받는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하는 말이 어떤 메시지인가를 ‘이성과 합리’로 판단하기 전에 ‘감정 운동’이 먼저 일어난다. 결국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상대에 대한 마음 관리가 먼저다. 상대에게 내 말이 먹히도록 하려면 먼저 마음의 벽을 허물고 관계를 쌓아야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 최고의 인기 교수이자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의 저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그는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1 에서 ‘북한과 협상을 잘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 단계는 양국 대표가 점심을 같이 먹는 겁니다. 정치 이슈는 피하고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기만 하세요. 이렇게 스무 번쯤 만나며 서로 알게 된 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협상 안건을 따지기 전에 ‘관계’를 먼저 고민하고 ‘감정’을 만족시키라는 뜻이다. 협상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협상 상대가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갖도록 하기 위한 협상법은 뭘까? 4가지 원칙이 있다.
감정협상 1원칙익숙함으로 다가가라
한 다큐멘터리에서 재미난 실험을 했다.2 대학생들에게 5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자신의 이상형을 고르도록 했다. 선택이 끝난 후 사진을 뒤집어 보라고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본인이 고른 사진 뒤에는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마술을 부린 거냐고? 아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고른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본인의 사진을 ‘이성’으로 바꿔 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나와 닮은 이성’을 나의 이상형으로 꼽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바로 ‘미러링(mirroring)’ 효과 때문이다. 미러링이란 상대가 나와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상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호감을 갖게 된다는 심리학 용어다.자신과 닮은 사람을 이상형으로 고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대구 지역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유명 연예인이 된 김제동. 그가 말하는 행사 진행 성공 노하우도 미러링이다. 행사 참가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익숙한 얘기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 대학교 행사 진행을 예로 들면 의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진행에서는 간단한 의학 용어들을 사용하고, 법대 행사에선 몇 가지 법조 용어를 외워 진행을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행사 참석자들이 ‘저 사람이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구나’란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미러링이 갖고 있는 힘은 비즈니스 현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어떨 땐 그것이 기업을 살리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맥도날드다.3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후 무슬림 사이에서는 반미 감정이 극에 달했다. 중동국가에서는 KFC, 피자헛 등 미국 레스토랑이 습격 당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무슬림이 60% 이상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딱 한 군데, 자카르타의 맥도날드 매장만 피해가 없었다. 비밀은 미러링이었다. 이 매장 직원들은 다른 곳과 달리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고 일했다. 매장 입구엔 ‘거룩한 알라신에 맹세코, 인도네시아 맥도날드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미러링을 통해 그들과 한편임을 적극 어필한 것이다.
그럼 협상 상대와는 어떻게 미러링을 할 수 있을까? 미러링 효과를 톡톡히 본 협상이 있다. 독일의 투자은행 드레스너뱅크(Dresdner Bank)와 세계적인 가구 디자인 업체 이케아(IKEA) 간에 있었던 제휴 협상 사례다. 이 두 회사가 제휴를 맺는다고 발표했을 때 성공할 것이라고 본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조직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드레스너뱅크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투자은행이었다. 반면 이케아는 아주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극과 극의 두 기업이 만난 것이다.
하지만 협상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로 타결됐다. 비결은 간단했다. 보수적인 드레스너뱅크의 협상단은 어울리지도 않는 힙합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서 협상장에 나타났다. 반면 이케아 협상단은 영화 ‘영웅본색’을 연상시키는 까만 양복을 있고 협상장에 등장했다. 상대방의 기업문화에 맞추려는 서로의 모습에 양측은 박장대소했고 협상은 잘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 미러링의 힘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오해한다. 무조건 상대방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아니다. 따라 하기 전에 상대 협상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다.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따라 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입을 수도 있다.
감정협상 2원칙 작은 ‘Yes’부터 시작하라
문제 하나 풀어보자. 당신은 노사 협상을 담당하는 사측 대표다. 연봉 인상률, 정년 연장, 성과금 지급 기준, 직원 휴게실 리모델링 등 4개의 안건이 있다면 협상을 어떤 순서로 진행해야 할까? 어떤 협상가는 이렇게 말한다. “싸울 힘이 충분한 협상 초반에 연봉 인상률같이 중요한 걸 먼저 타결시키고 그 다음에 다른 안건들을 협상해야 한다.” 이들은 중요하고 까다로운 이슈가 풀리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협상 안건이 많을 때 하나하나 협상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한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첫 번째 태도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에 상대가 별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좋다. 하지만 상대도 그 안건을 중요하게 생각할 땐 협상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첫 단추부터 끼우기가 힘들어 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양측 모두 “이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 생각을 갖기 쉽다. 그렇다면 여러 이슈를 한꺼번에 협상하는 두 번째 태도가 좋을까? 아니다. 이때는 협상의 진전 자체가 힘들어진다. 양측이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서로 요구만 하다 보면 핑퐁게임이 되기 십상이다.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기는커녕 정해진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가에만 매달리다 지치게 된다.
그럼 협상 순서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사례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유치전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한참 늦게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공동 유치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공동 유치를 위해선 양국이 합의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중 가장 중요했던 건 결승전을 어디서 치를 것인가와 공식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알다시피 결승은 일본에서, 공식 명칭은 ‘한일 월드컵(Korea-Japan World cup)’으로 정해졌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다. 이 안건들이 협상 테이블에 언제 올라왔는지, 그리고 정해진 시점이다. 초반엔 양국 모두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입장료, 광고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슈들을 먼저 협상했다.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는 협상 중반이 지나서부터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유는? 처음부터 ‘세게’ 부딪히면 공동 유치 자체가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양국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협상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 눈치챘는가? 협상 안건이 많을 때는 타결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협상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협상은 왠지 잘 풀릴 것 같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Yes-set’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몸이 관성의 법칙에 영향을 받듯, 뇌과학자들은 뇌도 ‘항상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큰 고민 없이 “예스(Yes)”라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을 계속 받으면 우리 뇌는 ‘Yes’라는 단어와 친해진다. 그래서 “Yes”인지 “No”인지 고민되는 질문에서도 “Yes”라는 답을 할 확률이 높다는 것.
예를 들면 이렇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은 당신. 처음부터 “저랑 같이 드라이브하실래요?”라고 말하면 확률은 반반이다. 대신 이렇게 시작하면 확률은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먼저 “날씨가 많이 풀렸죠?”처럼 상대가 별 거부감 없이 “Yes”를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하라. 그 다음 “이런 날씨엔 교외 나가서 바람 쐬면 참 좋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랑 같이 가실래요?”라고 묻는 식이다.
이런 접근법은 국가 간의 FTA와 같이 큰 규모의 협상에서도 적용된다. 쌀, 자동차 등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들은 FTA 1차, 2차 협상 땐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 내용들은 어느 정도 협상이 무르익었을 때 하나둘씩 협상 테이블로 올라온다.
다양한 협상 이슈가 있다면 서두르지 마라. 쉬운 것부터 하나씩 밟아나가라. 이를 통해 상대와 나의 생각을 ‘Yes’로 맞출 수 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Yes”가 이어지면 상대는 “No”라고 답하기 쉽지 않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건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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