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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멀리 봐야 보인다

장대련 | 204호 (2016년 7월 lssue 1)

 

 

마케팅이라는 학문에 입문한 지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첫 논문은 학부 시절 읽었던 테오도르 레빗 하버드대 교수의마케팅 근시(Myopia)’에 관한 연구였다. 논문에서 레빗 교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치우쳐 소비자와 경쟁자, 그리고 제품을 정의하는 근시안적 마케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대의 변화를 고려해 더 근본적이고 트렌드를 꿰뚫을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후 하버드대에 진학해 레빗 교수와 자주 교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모든 이슈를 그만의 범상치 않은레빗 스타일로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와 더불어 마케팅 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질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레빗 교수가 마케팅 근시의 위험성에 대해 역설하고 논문을 게재했던 시기는 환경 변화가 거의 없고 미국이 국제 경영을 지배했던 1960년대였다. 변화가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21세기에 여전히 레빗 교수의 경고를 잊고 있는 기업과 마케터가 많다는 사실은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스마트폰, 3D프린팅, 공유경제 등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업혁명은 기존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레빗 교수가 주장했던 근본적이고 대세에 걸맞은 안목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올해 한국마케팅학회 회장직을 맡은 후로 마케팅 분야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부쩍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면서 레빗 교수에게 배운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마케팅은 경제학, 수학, 심리학, 사회학 같은 기초 학문에서 파생된 분야로 근본 자체가 간학문적이다.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마케팅 연구의 흐름을 보면 소비자의 생리적 반응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차원에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fMRI)도 사용하고 있고 더 현실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 가상현실 도구도 이용하고 있다. 의학과 전자공학처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분야까지 마케팅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 현재 마케팅의 트렌드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영화 감상을 무척 즐겼다. 최근 독립영화인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영화를 직접 만드는 기회까지 갖게 됐다. 처음에는 낯선 영역에 뛰어든다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지금은 직접 감독, 제작한 단편영화 ‘Call Coho’로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며 어엿한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실 겉보기에 마케팅과 영화 제작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분야 모두 특정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표적 청중에게 적중할 콘셉트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영화와 영상제작 분야도 마케팅을 발전시키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학교에서 영화 제작법을 배울 수 있는 ‘Ad & Film Camp’ 수업을 MBA 코스로 개설했는데 최고 인기 과목으로 발돋움했다. 수강생들은 전문 영화인의 강의와 지도하에 광고와 영화의 콘티를 쓰고, 고가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하고, 편집도 직접 해본다. 이 수업을 통해 수강생들은 창의력을 발휘해 구상하는 것과 이를 잘 구현하는 것, 즉 구상과 구현의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게 된다. 또 더 나아가 시간관리와 팀워크가 창조가 중요한 산업에서 핵심적 중추임을 깨닫는다. 창의성을 배우고 싶어 영상 제작 수업에 참여했던 MBA 수강생들이 역으로 창의성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는 경영이라는 점을 배우는 것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마케팅학회도 이런태풍이 마케팅 분야에 미치는 여파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업 전반의 구성원들도 이런 태풍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다각도로 짜야 할 것이다. 이때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이면에 숨은 근본적 이슈와 트렌드를 파악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한국마케팅학회 회장

 

필자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Journal of Marketing> <Management Science> 등 유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저서로<마케팅 서바이벌> <트랜스 시대의 트랜스 브랜딩> <Mastering Noon Nopi> 등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MOOC(온라인공개강의) 플랫폼인 ‘Coursera.org’에서 ‘International Marketing & Cross-Country Growth’에 대한 특화 과정 강의를 맡고 있다. 시사적인 경영 이슈에 관해 ‘Harvard Business Review Online’에 블로깅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독립영화 ‘I, Profess’ ‘Call Coho’를 기획 및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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