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창의성만큼 많은 연구자들과 연구결과들이 있고 갖가지 해석과 다양한 창의성 개발 기술이 제시돼 있는 주제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성 연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의성은 역설적이란 점이다. 전문가의 지식이 많아질수록 창의성은 제약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해당 내용에 무지한 이들에게 창의성이 잘 발휘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트리즈의 기본 가정은 창의적인 해결안이 필요한 나의 문제를 실은 누군가 이미 풀어 놓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남이 이미 풀어놓은 문제의 해결안’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게 트리즈의 가정이다. 창의적인 해결안이 필요한 공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 혹은 창의적 해결안이 필요한 공학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는 무지에 대해 현장에서 고민할 기회가 필자만큼 많았던 이도 드물 것이기에 지면을 통해 그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무지의 3 단계
필자가 현장에서 만났던 무지(無知)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단계는 어떤 사실이나 절차로 표현되는 지식, 그 자체를 모르는 무지다. 두 번째 단계는 자기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이며, 마지막 단계는 다른 사람들은 아는데 자기만 그 해결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다. 1단계 무지는 우리가 흔히 교육 수준이 낮다고 일컫는 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2단계, 3단계 무지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많이 발견되는 무지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해결안이란 어떨 때 얻을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말로 창조적인 해결안은 이 세 가지 범주의 무지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경계를 넘고자 노력할 때 얻을 수 있다.
1단계 무지는 지식과 접하기만 하면 바로 해결된다. IT 발달로 언제 어디서고 필요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현대에는 1단계 무지 때문에 발명이나 착상을 하기 어려운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관건은 검색 엔진에 어떤 내용을 입력할 것인가 정도다. 2단계, 3단계 무지가 심할 경우 검색 엔진에 입력할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 1단계 무지를 해결하는 데 유일한 방해물이라 할 수 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무지가 끼치는 해악은 더 커진다. 그러나 그 해악을 알아차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2단계, 3단계 무지는 1단계 무지를 없애기 위해 지식을 알아갈수록 부지불식 중에 증가하는 ‘역설적’ 무지다. 자기가 아는 많은 지식의 지평선에 갇혀 그 너머의 지식들, 혹은 지식들 틈새의 빈 구멍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올바른 관점을 가진 지식인들이라면 지식이 증가할수록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지식의 틈새를 지적하거나 메워주는 외부의 자극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지식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관점을 가진 지식인들은 그러한 자극이 들어올 때 그 자극에 대해 부정하고 그 자극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외면한다.
송미정
- (현)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 삼성종합기술원 연구혁신센터 차장
-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