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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Innovation - 몬터레이 카운티

스타인벡의 열정을 낳은 땅,자연에 날개 달다

김민주 | 86호 (2011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101번이나 해변의 1번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몬터레이 카운티가 나온다. 이 지역은 미국 서부 해안을 대표하는 드라이브 코스를 자랑하는 명소로 이름이 높다.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정착했으며 골프 등의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이 지역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1902∼1968)과 연관이 깊다. 스타인벡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모두 받은 미국의 대문호다. ‘미국 동부엔 헤밍웨이, 서부엔 스타인벡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서부의 자연과 정서, 시대적 배경을 잘 녹여냈다. 빼어난 자연과 스타인벡의 문화유산을 찾아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명작의 고향, 몬터레이
스타인벡의 작품에는 몬터레이의 삶과 정서가 묻어난다. 그의 작품 중 처음 호평을 받은 ‘토르티야 대지(Tortilla Flat)’는 몬터레이에 사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과 유머로 정감 있게 다룬 소설이다. ‘분노의 포도’나 ‘승산 없는 싸움’은 그의 고향인 샐리너스(몬터레이 카운티의 대표도시)에서 살았던 경험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또 스타인벡의 ‘캐너리 로(Cannery Row)’는 과거 번성했던 정어리 통조림 공장들이 몰려 있던 몬터레이를 배경으로 하는 휴머니즘이 담긴 소설이다.
 
스타인벡의 고향인 샐리너스를 비롯한 몬터레이에는 그와 관련된 관광지가 많다. ‘존 스타인벡 박물관(National Steinbeck Center)’은 샐리너스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그가 저술했던 소설들을 전시해놓고 작품들의 배경 등을 세트로 만들어 각종 소품들과 함께 모아뒀다. 몬터레이 지도를 펼쳐놓고 작품에 등장하는 지역들을 따라가며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는 점도 이채롭다. 그와 관련된 인터뷰 영상, 음성파일, 각종 미디어, 영화 등도 함께 소장하고 있다. 특히 스타인벡의 작품 세계를 시대별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인터렉티브한 세트장이 인상적이다. 작품 해설을 통해 스타인벡과 그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다. 스타인벡의 생일인 2월27일에는 지역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조촐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이곳에서는 매년 스타인벡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기간에는 스타인벡과 관련된 주제로 다양한 세미나와 워크숍이 진행된다. 2011년 8월 초에 31번째 페스티벌이 개최될 예정이다. 샐리너스에는 스타인벡의 생가도 복원돼 있다. 이곳은 식당과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선 관광지 중 하나다. 샐리너스에는 매년 7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로데오대회가 열린다.
 
스타인벡과 관련해 유명한 곳이 몬터레이시에 위치한 ‘캐너리 로’다. 몬터레이만은 과거 어업의 중심지로 번성했는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기간에는 통조림 산업이 번창했다. 캘리포니아답게 많은 이민자들이 건너왔고 가난한 이민자들이 어업과 통조림 산업에 주로 종사했다. 통조림 공장은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데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남획으로 정어리 어획량이 급감하자 캐너리 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타인벡은 1930년 첫 번째 결혼 후 ‘캐너리 로’ 근처 마을에 정착해 글을 썼다. 당시 번성하던 이곳을 관찰한 작가는 1945년 소설 ‘캐너리 로’를 발표해 큰 인기를 얻는다. 소설 발표 이후 이곳이 미국에서 꽤 유명해졌지만 쇠퇴한 산업을 돌릴 수는 없었다.

캐너리 로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다. 이곳을 추억하는 사업가들이 텅 빈 공장을 개조해 레스토랑을 열었고 대성공을 거뒀다. 공장 외관을 그대로 둔 채 쇼핑몰, 식당 등으로 개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곳을 개발하는 회사들도 생겨났다. 지금은 스타인벡 흉상이 입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의 광장을 스타인벡광장이라 부르고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 촬영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간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이곳은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거리로 성장했다. 스타인벡이 ‘캐너리 로’ 작품을 발표하고 소설이 유명해지자 지자체는 ‘오션스 뷰 에버뉴(Oceans View Avenue)’를 아예 ‘캐너리 로’로 바꿨다.
 
출신지의 유명인을 내세우는 지역 마케팅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몬터레이가 독특한 것은 유명인과 함께 과거의 추억을 팔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전성기를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캐너리 로의 전성기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 감동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을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통조림 공장의 외관을 보며 소설 속의 도시를 느끼는 동시에 현대적인 가게, 레스토랑 등의 관광 서비스를 통해 현재의 만족을 동시에 추구한다. 몬터레이는 스타인벡과 캐너리 로라는 현실의 소재들을 가상의 소설과 잘 연계시켜 훌륭한 관광지로 도약할 수 있었다.
 
 
몬터레이는 어떤 곳?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는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위치한 서부 해안의 유서 깊은 지역이다. 9767㎢의 면적에 40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몬터레이 카운티에는 가장 큰 도시인 인구 15만의 샐리너스(Salinas)를 비롯해 몬터레이시(City of Monterey), 시사이드(Seaside) 등이 모여서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몬터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럼센오로네라는 토착 부족이 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탐험한 스페인의 탐험가 세바스티안 비즈카이노는 1602년 이 지역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몬터레이 백작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붙였다. 1770년 스페인 탐험대장인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와 세라 신부가 이곳에 캘리포니아 건설의 전초기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최초의 공립학교, 극장, 벽돌주택, 신문사 등 ‘캘리포니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이 많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멕시코 땅이 됐다. 1821∼1848년 캘리포니아의 주도였다.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1846년부터 미국에 편입됐다.
 
이 지역은 몬터레이만을 중심으로 하는 어업이 매우 발달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업이 붕괴됐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용한 휴양지로 거듭났다. 연간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는 천혜의 자연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는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위치한 서부 해안의 유서 깊은 지역이다. 9767㎢의 면적에 40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몬터레이 카운티에는 가장 큰 도시인 인구 15만의 샐리너스(Salinas)를 비롯해 몬터레이시(City of Monterey), 시사이드(Seaside) 등이 모여서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몬터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럼센오로네라는 토착 부족이 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탐험한 스페인의 탐험가 세바스티안 비즈카이노는 1602년 이 지역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몬터레이 백작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붙였다. 1770년 스페인 탐험대장인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와 세라 신부가 이곳에 캘리포니아 건설의 전초기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최초의 공립학교, 극장, 벽돌주택, 신문사 등 ‘캘리포니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이 많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멕시코 땅이 됐다. 1821∼1848년 캘리포니아의 주도였다.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1846년부터 미국에 편입됐다.
 
이 지역은 몬터레이만을 중심으로 하는 어업이 매우 발달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업이 붕괴됐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용한 휴양지로 거듭났다. 연간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스타인벡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요소라면 이곳의 자연 풍광들은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는 요소다. 몬터레이는 미 서부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와 레포츠, 골프 코스 등이 어우러진 최고의 휴양지다.
 
자동차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바로 몬터레이에 있다. 미 서해안을 따라 달리는 캘리포니아 1번 도로(California State Route 1)다. 하이웨이 원(Highway One)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포브스, 론니플래닛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일생 동안 꼭 달려봐야 하는 코스 50곳’ 중 하나로 이곳을 꼽았다.

몬터레이 반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드라이브 코스는 역시 ‘17마일 드라이브’다. 몬터레이 반도를 한 바퀴 돌듯이 이어져 있는 이 도로가 처음 열렸을 때 길이가 17마일 정도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9.6마일로 줄어들었다. 이곳은 다른 도로들과 달리 사기업인 페블비치 코퍼레이션(Pebble Beach Corporation)이 소유하고 있는 부지에 나 있는 길이다. 거주민이 아닌 사람이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리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시간도 정해져 있다. 단, 도보와 자전거를 이용할 때는 무료다.
 
이 코스를 따라 가다 보면 도로 가운데를 따라 빨간줄이 계속 쳐 있다. ‘경관도로(Scenic drive)’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모두 26군데에 관광 포인트를 표시해뒀다.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이 포인트에 내려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외로운 사이프러스 나무’, 히치콕의 영화 ‘새’를 촬영했던 ‘버드 락’, 바다사자 등의 진기한 동물들, 골프 코스로 유명한 페블비치가 볼거리다. 도로폭이 그리 넓지 않지만 사설도로인 만큼 관리도 잘돼 있다. 지역 전체가 리조트처럼 꾸며져 휴양지로서는 그만인 곳이다. 입구에 위치한 마을인 퍼시픽그로브(Pacific Grove) 역시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이 높다.
 
페블비치 골프장은 미국 PGA투어의 메이저 대회 중에 하나인 US오픈 100주년 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1879년 미 대륙 간 철도사업으로 돈을 번 네 명의 부자인 리랜드 스탠퍼드, 찰스 크로커, 콜리스 헌팅턴, 마크 홉킨스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함께 리조트, 호텔, 골프장에 투자했다. 오늘날의 페블비치가 만들어진 계기다. 바다를 내려다 보며 라운딩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골프장이다. 현재도 US오픈을 비롯한 각종 대회가 열리며 대회가 없는 기간에는 방문객들에게 개방된다. 골프장 입구에 세워진 아이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상이 인상적이다.
 
드라이브 코스에 자리한 카멜(Carmel -by-the-Sea) 지역은 영화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때 시장으로 일했던 도시다. 이 도시는 예술가 마을로도 유명하다. 주민의 25%가 예술가라서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나 알찬 미술가들의 자그마한 갤러리들이 많다. 특색 있는 간판들과 조각들로 마을 전체가 예술품 같은 느낌, 동화 속 마을 같은 느낌이다. 시 당국의 강력한 인테리어 규제 때문이다. 당국은 보도블록과 우편배달 서비스를 금지하고 벽이나 차양 등을 고급스럽게 꾸미도록 규정했다. 매년 ‘카멜 예술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몬터레이시에 위치한 베이 아쿠아리움(Bay Aquarium)은 600여 종 3만5000마리 이상의 바다생물들이 살고 있는 수족관으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이곳은 휴렛패커드를 창업한 패커드 일가가 사재를 기부해 만든 수족관인데 ‘자갓 서베이 미국판(Zagat Survey US)’이 미국 최고의 수족관으로 꼽은 명소다.

지자체의 고객 지향적 마케팅
미국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유하고 있는 관광지가 많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몬터레이를 찾는다. 몬터레이 당국이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골프나 하이킹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패키지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지역인 몬터레이 카운티가 자체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지역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길이 관광 활성화에 있기 때문이다.
 
몬터레이 관광국은 홈페이지를 비롯한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관광국 공식 홈페이지(www.seemonterey.com)는 어느 나라의 관광청 홈페이지 못지않게 친절하게 꾸며져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도 활발하다. 이 홈페이지는 마케팅 관련 상인 ‘HSMAI’s 2010 Adrian Award’ 브론즈 메달을 받았다. 또 “See Yourself in Monterey”라는 캠페인은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관광국은 그룹 단위의 관광객들이 1박 이상 숙박하며 레저를 즐기고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통해 여행의 성격별로 다양한 여행코스를 제안한다. 연인과의 로맨스, 가족 간의 여행, 친구들과의 여행 등의 콘셉트에 맞는 호텔부터 여행지, 식당을 맞춤형으로 추천하고 일정에 따라 여행계획도 제시한다.
 
관광국은 전체 예산의 77%를 마케팅, 영업, 고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쓴다. 이들은 관광을 통해 2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4100만 달러의 세수를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존 스타인벡과 몬터레이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그는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연을 맡아 유명해진 영화 ‘에덴의 동쪽’의 원작자이며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스타인벡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미국 사회를 생생하게 그려낸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에는 강력한 사회의식과 휴머니즘이 녹아 있다. 1939년에 쓴 ‘분노의 포도’로 퓰리쳐상을 탔다. 1961년에 쓴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tent)’로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존 스타인벡은 몬터레이 카운티의 샐리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청의 출납관리였던 독일계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책을 곁에 두고 자랐다. 샐리너스는 ‘세계의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상추, 토마토, 마늘 등 각종 채소 재배가 활발한 전형적인 미국 농촌이었다. 스타인벡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미국 농촌의 삶에 눈을 떴다. 그의 대표작인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 속의 리얼한 농촌에 대한 묘사는 고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스타인벡은 스탠퍼드대 영문학과에 진학해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학자금 부족으로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다가 대학을 자퇴하고 신문기자로 생활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타인벡은 과수원의 노동쟁의를 다룬 소설 ‘승산 없는 싸움’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인 ‘분노의 포도’는 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와 소설의 배경인 오클라호마에서 금서 판정을 받는 등 끊임없는 논란을 만들어냈다. 정부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해 미행을 붙이기도 했다. 그는 1952년에 대작 ‘에덴의 동쪽’을 써서 다시 명성을 떨친다.
 
그는 60세가 되던 1962년 ‘미국에 대해 글을 쓰면서 미국의 시궁창 냄새를 모른다는 것은 범죄’라며 애완견인 찰리와 75일간 미국 전역을 여행했다. 그리고 ‘찰리와 함께한 여행-아메리카를 찾아서(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를 남겼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We do not take a trip; a trip takes us)’이라는 명문을 남긴 이 책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이 해에 노벨상까지 수상하며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실제 도시와 맞지 않는 묘사, 부인과 동행했다는 이야기 등이 퍼지면서 ‘여행기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과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다
몬터레이는 존 스타인벡의 고향과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매년 300만∼400만 명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건축물이나 관광지 없이도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비결은 뭘까.
 
첫째, 몬터레이는 과거를 그대로 두지 않고 끝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스타인벡을 그냥 과거의 대작가로 남겨놓지 않았으며 캐너리 로를 화려했던 통조림골목으로 마냥 남겨두지 않았다. 필요하면 지역 이름도 바꿨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스타인벡을 추억할 수 있도록 스타인벡 페스티벌을 열고 통조림공장들의 외관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관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쇼핑몰, 식당, 호텔로 개조했다. 현재와 과거를 조화시킨 것이다.
 
둘째, 아름다운 자연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몬터레이의 자연 풍광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해안도로와 어울릴 때 더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될 수 있다. 친절한 홈페이지와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다가갔다. 수족관, 골프장 등 자연을 보존하면서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을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여행의 패턴이 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지역을 종횡무진 다니는 관광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지역에서 오래 체류하며 만끽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파리에만 일주일 체류하는 우리나라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강진, 장흥, 해남, 완도, 진도를 비롯한 전남 끝자락의 남도 기행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을 감싸 안는 멋진 풍광과 유서 깊은 역사, 스타인벡의 문화예술적 자취를 잘 비벼낸 몬터레이의 사례는 한국 지자체들이 달라진 소비자들의 여행 패턴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일러주는 교과서다.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 김민주 김민주 |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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