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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에서 배우는 불황 극복의 지혜

이민훈 | 27호 (2009년 2월 Issue 2)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불황은 소비자에게는 구매력 저하, 기업에는 매출 부진이라는 변화를 각각 가져다 줬다. 이 변화는 곧 기업 환경의 혼돈과 침체로 이어졌다. 특히 평소에도 자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온 중소기업은 그 누구보다 이 불황의 칼바람을 매섭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열악한 경영 환경을 딛고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로 우뚝 선 작은 기업들이 있다. 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도 견디기 힘든 불황의 칼바람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한국 강소 기업들의 성공 비결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소중한 지혜를 찾아보자.

세계 시장을 명중시킨 삼익 활
양궁은 한국의 오랜 올림픽 금메달 효자 종목이다. 양궁 경기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선수들 활에 선명하게 새겨진 ‘SAMICK’ 마크가 눈에 익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사용하는 활은 모두 삼익스포츠가 제작했다. 양궁 활은 소비자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개발에 뛰어들 만한 매력이 없는 상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활 시장을 미국 호이트와 일본 야마하가 양분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활을 만드는 기업은 단 3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가내 수공업 형태로 이뤄지는 형편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삼익스포츠는 끊임없는 도전과 연구 개발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끝에 현재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삼익 활을 탄생시켰다.
 
삼익스포츠는 삼익악기의 활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명품 활’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일반 활은 손잡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지만 삼익의 활은 카본 소재를 사용한다. 활의 불모지 한국 시장에서 명품 활을 만들기 위해 삼익스포츠는 1995년부터 4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 종의 카본을 모두 시험하는 거대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샘플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평균 5000만∼1억 원을 투자하고, 생산 설비와 검사 장비도 모두 직접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제품 개발비만 20억 원이 넘게 들 정도였다.
 
이런 노력 끝에 삼익 활은 마침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 출전자의 90%가 삼익 활을 사용했으며, 현재 세계 레저 양궁 시장에서도 점유율 45%를 장악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운영하는 올림픽 박물관에 한국 제품으로는 유일하게 전시된 물품이 바로 베이징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우승자 장쥐안쥐안이 기증한 삼익 활이다.
 
삼익스포츠의 연 매출은 약 5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브랜드 명성과 탄탄한 기술력이라는 자산은 삼익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공존하는 심로악기
미국 바이올린 전공생의 30%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악기로 연습한다. 이 브랜드가 바로 심로악기다. 원래 바이올린 등 현악기는 100% 인간의 솜씨로만 제작하기 때문에 산업화가 매우 어렵다. 아름다운 울림을 내려면 나무로 된 몸통 안쪽을 부위마다 다른 두께로 깎아야 하는데 기계로는 이 굴곡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악기를 만드는 장인의 솜씨가 어떠한가에 따라 악기 가격이 수백 만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악기는 제작 후 갈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은 악기가 제작 몇 백 년 후인 현재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필요하지는 않다. 초심자나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함부로 쓸 수 있는 저가 제품이 필요하다. 그런데 얇은 나무를 여러 장 붙여 기계로 압축하는 프레스 공법은 내구성이나 음질이 너무 떨어져 사용하기가 꺼려진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에 심로악기는 ‘기계로 손처럼 깎는 기술’에 도전했다.
 
약 2년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심로악기는 바이올린의 정교한 굴곡을 기계로 깎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가구 공장에서 나무를 깎아 장식이 화려한 유럽 가구를 제작하는 공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수제 바이올린 제작에는 170단계의 기본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심로악기가 개발한 이 기술은 170단계 공정을 불과 40단계로 대폭 단축했다. 게다가 품질도 더욱 좋아져 그야말로 일석이조 효과를 누렸다.

심로악기는 동시에 공격적인 마케팅도 추진했다. 2002년 독일의 악기 제작회사가 모여 있는 마르크 노이 키르헨에 공장을 내고 현지에서 악기 제작 장인들을 초빙해 제작 공정을 진행했다. 악기처럼 평판이 중요한 품목에서는 전문가들을 우선 공략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장인들을 공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심로는 프랑크푸르트 악기 박람회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심로가 악기 시장에서 차지한 위치는 유명 연주자들의 연습악기, 이른바 세컨드 악기였다.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 덕분에 심로악기는 숱한 중소기업이 도산한 외환위기 때를 포함해 1978년 창업 이후 30년 동안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OEM
에서 프리미엄 자기로 변신한 한국도자기
최근 2, 3년 동안 세계 최고의 명품만 취급한다는 중동 왕실에 한국도자기 제품이 입성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브랜드력이 취약했던 한국 제품은 70% 이상이 주문자제작생산(OEM) 방식으로 공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자기 브랜드를 달고 세계 시장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자기는 1943년 설립 이래 70년 가까이 도자기라는 한 우물만을 파온 회사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 개발에 매진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프라우나’라는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프라우나 도자기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왕복선 외벽에 세라믹 소재를 붙인 기술이 녹아 있다. 한국도자기는 이 기술을 이용해 스와로브스키 원석 및 금과 같은 보석을 도자기에 박아 넣고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는 중동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독자적인 엠블럼 사용, 회화적 느낌을 살린 예술성 높은 디자인, 철저한 수작업 제작 방식 고수 등을 통해 제품의 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현재 프라우나는 중동의 한 국가 왕실 자기로 납품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합 끝에 세계 최고 7성급 호텔인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식기로도 뽑혔다. 이런 가운데 유럽·러시아·중남미 지역 부호들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 이민훈 | - (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브랜드, 기업이미지, 유통전략 연구
    - 삼성SDI 상품기획 및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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