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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없는 K-혁신 리포트: 알에스케어의 전동 보조 키트 ‘무브온’

“혁신은 명사가 아닌 동사”
아이디어보다 ‘상품화 어떻게’가 중요

김동영 | 327호 (2021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알에스케어는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수동 휠체어에 부착할 수 있는 전동 보조 키트 ‘무브온’을 개발했다. 하지만 전동 보조 키트는 기존 제도에 없는 카테고리여서 판매를 확대하기 어려웠다. 규제샌드박스의 실증 특례를 통해 전동 보조 키트가 의료기기로는 분류됐지만 정작 의료기기로 심사받을 기준조차 없었다. 알에스케어는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 위해 직접 심사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휠체어 시장에 다양한 전동 보조 키트 상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했다. 알에스케어 사례는 혁신의 아이디어 자체보다 그것을 상품화해 시장에 출시하기까지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고도 스스로 이동을 결정할 수 있다. 내 삶도 어디든 주도적으로 끌고 갈 자신이 생겼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손길이 아무리 세심하다 한들 결국 남의 손이었다. 전동 휠체어는 무겁고, 비싸다. 게다가 전동 휠체어에 대한 국가 지원도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호흡기장애, 심장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평지에서 100m 이상 보행하기 어렵고 손을 쓰기가 어려운 사람”에게만 해당된다.1 이마저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와 건강보험 가입자만 대상자인 탓에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은 장애인들이 많다. 이런 현실에서 수동 휠체어에 전동 기능을 추가한 ‘수동 휠체어용 전동 보조 키트’는 더할 나위 없는 대안이 됐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수동 휠체어의 장점에 전동 기능을 추가해 생활 반경과 이동 거리를 넓혔다. 알에스케어서비스(이하 알에스케어)가 선보인 ‘무브온(move-on)’이 많은 장애인에게 환영받은 이유이다. 휠체어가 장애인의 발이라면 전동 보조 키트는 장애인을 위한 전동 킥보드인 셈이다.

장애인의 독립적 이동을 고민

첫 휠체어는 싼값에 얻은 중고 제품이었다. 누구보다도 활발했던 고등학교 시절, 자동차 사고로 척수가 손상되면서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김동민 알에스케어 대표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다른 사람이 오래 타서 교체 시기가 온 휠체어를 얻어 탈 수밖에 없었다. 사고로 몸무게는 43㎏까지 줄었지만 첫 휠체어는 엉덩이 하나가 더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결국 허리까지 망가져 척추측만마저 발생했다.

척수장애인에게 휠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달은 그는 휠체어 제작에 관심을 갖고 무작정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좋은 휠체어가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서 보고 배웠다. 맞춤형 휠체어를 제작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휠체어 하나만 바꿔도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그의 고민은 2008년, 결국 회사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보다 편리한 동시에 현재 쓸 수 있는 근육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돕는 맞춤형 휠체어를 설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독일 최대 장애인 보장구 박람회인 레하케어(Reha Care)에서 전동 보조 키트를 접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계기였다. 해외 제품을 국내에 직접 들여올까 생각도 했지만 우리나라 환경에 맞지 않았다. 지나치게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에 직접 개발을 결심했다.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데다 탑승자의 자세를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간편하게 탈부착할 수 있는 전동 보조 키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가볍고, 간편했고, 탈부착만도 5분씩 걸리는 해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하기 편리했다. 무엇보다 전동 보조 키트를 장착하는 데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수동 휠체어에 의지하는 대부분 장애인이 허리를 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연결 부위를 편리하게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초 만에 수동 휠체어에 부착할 수 있는 전동 보조 키트 ‘무브온’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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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동 휠체어에 500와트의 힘을 가진 전동 기능이 더해지면서 언덕이나 카펫, 잔디가 깔린 공간도 도움 없이 이동할 수 있다. 편의 기능도 세심하게 추가했다. 클랙슨, 야간 주행을 위한 라이트, 대용량 리튬이온배터리와 함께 해외 출장 시 비행기 운반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당연히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장애인총연합회 보급 사업, 경기도 재활공학연구소에 보조 기기로 납품할 수 있게 됐다. 2017년에는 마침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근로 장애인용 보조 공학기기 지원 대상2 에 선정됐다. 공단의 보조를 받으면 더 많은 장애인에게 어디든 스스로 이동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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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음’의 역설

사람들은 세상에 없던 상품과 서비스가 나오는 데 열광한다. 새로움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중요한 기업에 이는 분명 중요한 혁신의 인센티브로 작동한다. 하지만 새로움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새로움은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과 많은 장애인 유관 단체로부터 큰 호응을 받던 전동 보조 키트의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보조 공학기기 지원 품목이 되려면 해당 기기가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 혹은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 기기 지원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상 보조 기기인지 정의가 필요했다.3 의료기기로 판정이 되면 별도의 인증 절차가 필요하고, 장애인 보조 기구로 볼 경우 별도 인증 없이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식약처와 보건복지부의 해석이 상이했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복지부는 장애인 보조 기구로 판단했다. 식약처는 전동 보조 키트 자체는 의료기기가 아니지만 수동 휠체어와 결합해 사용할 경우 의료기기법상 불법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래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역시 최종적으로 근로 장애인용 보조 공학기기 지원 대상에서 무브온을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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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 다시 지원 대상 품목에 선정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전동 보조 키트의 의료기기 적합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아예 없다는 점이었다.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야 판매를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기준 자체가 없었다. 기존 휠체어의 분류 기준인 전동 휠체어 혹은 전동 스쿠터로 전동 보조 키트를 설명할 수 없었다. 기준 마련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식약처에서 지원하는 ‘신개발 의료기기 등 허가 도우미’ 제도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전례가 없고 판단할 기준이 없어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4 역시 전동 보조 키트는 전동 휠체어, 전동 스쿠터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성능이나 안전을 시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인증 심사 기준을 직접 만들어오라는 답변마저 들었다. 이후 2017년 장애인의 안정적인 생활 지원을 강화하는 취지로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자 다시 한번 식약처에 의료기기 혹은 보조 기기 여부를 문의했다. 그러자 ‘의료기기법’에 의한 의료기기와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 기기 지원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한 보조 기기 모두에 해당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국민신문고’에 문의해봤지만 결국 주무부처인 식약처에 문의하라는 답변뿐이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황에서 일반 장애인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수요는 다양한 곳에서 발견됐다. 2018년 4월 국가유공자 휠체어 양궁팀의 요청으로 전동 보조 키트 무브온을 납품하고, 같은 해 6월과 11월에는 한국장애인총연합회에서 추진하는 전동화 키트 지원사업에 납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합법도 불법도 아닌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점도 이때쯤이었다.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혁신의 제도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뭐라도 해야 했다. 입소문은 해외까지 퍼져 일본 등에서 구매를 원하는 요청마저 있었다. 해외에서 무브온의 경량성과 탈부착 이점을 카피한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해외 전시회에 덜컥 참여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그러던 중 알에스케어가 개발한 전동 보조 키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국민신문고 옴부즈맨 측에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소개했다. 2019년 1월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산업융합법’이 시행되면서 기준이 없어서 출시하지 못한 제품과 서비스에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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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2019년 1월17일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 분야 가운데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에 신청했다. 오랜 기간 고민해 온 터라 그간의 과정을 신청 사유에 자세히 담았다. 국내외 시장 동향은 물론 제품의 특징 및 차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근로 장애인을 실증 특례 대상으로 삼았다. 규제를 유예받으려는 목적은 분명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 선정됐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보조 공학기기 지원사업에 다시 납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테스트 결과가 중요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19년 2월, 산업융합 규제샌드박스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무브온을 실증 특례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동안 의료기기와 보조 기기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전동 보조 키트가 심사 과정에서 드디어 의료기기로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규제로 작용했던 ‘의료기기법’의 하위 규정인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이 개정돼 의료기기 품목에 ‘휠체어동력보조장치’가 신설(2019년 11월20일)되면서 관리의 근거가 마련됐다. 이후 2021년 4월에는 ‘휠체어동력보조장치 허가(인증) 심사 가이드라인’5 도 마련됐다. 규제샌드박스로 규제가 유예되자 무브온을 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2년간 500대를 판매하며 약 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직접 인증 기준 마련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실증 특례가 부여된 기간 동안 의료기기에 적합한 기기임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샌드박스 통과 이전에는 비즈니스 자체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전동 보조 키트에 대한 정의가 생긴 만큼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했다.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전동 보조 키트 분야 1호 사업자인 알에스케어만큼 상세하게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샌드박스 기간이 끝나도 규제 유예 없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려면 하루빨리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의료기기 심사 대상자이면서도 심사 기준을 직접 마련해야 했다. 자문단을 꾸리고, 필요한 시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 용역도 발주했다. 많은 전문가의 의견도 들었다. 여기에는 경쟁사도 포함됐다. 알에스케어의 사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장애인들의 이동을 위한 일이기에 기준을 마련하는 중요한 과정에 필요한 내용이라면 모두 듣고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2021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과 함께 ‘휠체어동력보조장치 허가(인증) 심사 가이드라인’을 완성해 발표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전동 보조 키트를 처음 만든 엔지니어 입장에서도 일부 인증과 시험 기준은 불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주무부처의 보수적인 입장도 조율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든 의료기기가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이유에서 찾은 원동력

사실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기업 입장에서 손해에 가깝다. 직접 기준을 마련했다고 해서 주무부처로부터 별도의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난 3년간 의료기기 여부에 대한 회신조차 받지 못해 힘들었는데 규제샌드박스의 도움으로 겨우 비즈니스의 출발선에 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의료기기 인증심사 기준마저 스스로 만들어야 하다니. 경영자 입장에선 세상에 없는 상품을 만들었다는 명목으로 벌을 받는 것만 같았다. 인증 기준은 다른 잠재적 경쟁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알에스케어가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심사 기준 수립 과정에 관여한다는 것은 알에스케어만 가진 기술을 심사 기준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경쟁 기업이 알에스케어를 따라잡는 데 몇 년은 족히 걸릴 테고 알에스케어는 그 사이 선도자의 이득을 누리며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에스케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회사만의 이득을 위해 장애인들이 더 다양한 전동 보조 키트를 선택할 권리를 빼앗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장애용품들이 다양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욕창 예방 방석을 수입해 판매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사용하는 ‘공기 패드형 욕창 예방 방석’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판매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의료기기 설립 허가 기준에 욕창 예방 방석은 반드시 ‘격차형 방석’이어야 한다는 점이 언급돼 있었다. 시장에는 보다 기능이 좋은 벌집형 방석, 무늬가 없는 젤 타입 방석도 존재하지만 누군가가 허가 기준에 껴 넣은 한 줄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장애인은 격자형 무늬의 방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6 아마도 욕창 방석이 시장에 출시된 초기 누군가가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삽입한 규정일 것이다. 김 대표 역시 동일한 전략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음 휠체어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사업으로 돈을 벌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가족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비즈니스를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려면 경쟁이 필요하다. 알에스케어도 생각지 못한, 보다 다양한 형태의 전동 보조 키트들이 등장해 서로 경쟁해야 장애인들의 삶이 더욱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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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스케어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

알에스케어는 단계마다 등장하는 난관을 뚫으면서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현재는 규제 유예로 인해 근로 장애인 대상으로만 판매할 수 있지만 이미 알에스케어의 그간의 노력을 잘 아는 많은 사람이 전동 보조 키트가 의료기기로 허가됐을 때를 대비해 판매를 문의하고 있다. 알에스케어 역시 무브온 이후 전동 보조 키트를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할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편리하고, 안정적인 제품으로 경쟁에 대비하려는 모양새다.

① 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닌 아이디어의 구현 과정

알에스케어가 보여준 노력은 현실에서 혁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혁신의 민낯인 셈이다. 혁신은 언제나 성장의 원동력이자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비춰진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혁신은 결코 곱상하지 않다. 알에스케어의 노력이 보여주는 것처럼 현실에서 혁신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다. 아이디어가 아닌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곧 혁신이란 의미에서다. 혁신을 구현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기존 체제에서 어떻게 관리돼야 할지 끊임없이 제도와 협의해야 하고, 제도가 해결해주지 못한 공백을 함께 보완해줘야 한다. 알에스케어가 심사 기준을 수립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듯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이 혁신을 이해해주길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혁신은 세상의 공감을 얻으려는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혁신도 사무실 밖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혁신 기업의 속도와 같을 수가 없다. 세상이 이해한 혁신은 더 이상 혁신이라 할 수 없을지 모른다.

② 혁신은 기존 기업에 더 유리

이번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혁신이 기존 기업에 유리한 측면이 크다는 점이다. 언제인가부터 혁신은 마치 스타트업, 명문 교육 코스를 중퇴한 젊은이들의 몫인 것처럼 여겨진다. 20살에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 27살에 에이버앤비를 공동 창업한 브라이언 체스키 같은 극적이고 화려한 스토리가 많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혁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설득하는 경험과 능력이 필수적이다. 혁신은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됐을 때 성공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창업이 활발한 미국에서 중장년 창업자들의 성과가 돋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7∼2014년 미국의 창업자 270만 명 중 상위 0.1%의 성공 신화를 쓴 스타트업의 설립자 평균 나이는 45세다. 또 성공 확률도 50대 창업자가 30대 창업자의 1.8배에 달한다.7 알에스케어 역시 맞춤형 휠체어 분야에서 한번 성공을 경험한 기업이다. 아무런 실적이 없었다면 약 3년의 시간을 유의미한 성과 없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혁신이 세상에 등장하기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었기에 혁신을 구현할 수 있었다. 전동 보조 키트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 역시 오랜 기간 수요자인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서 어떤 휠체어가 필요할지를 고민한 과정 덕분이다. 무엇보다 기존 맞춤형 휠체어를 만들던 많은 협력사가 존재했기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현해낼 수 있었다. 비즈니스의 방향이 아무리 옳고, 잠재력이 크다 해도 3년을 기다려줄 협력 기업들은 없다. 하지만 무브온 이외에도 다른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했던 경험이 있던 덕에 상대적으로 조급하지 않게 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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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혁신 ≠ 시장성

한편 혁신과 시장성은 동의어가 아니다. 기존에 없던 상품과 서비스가 제도화 과정을 거쳐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이슈이다. 알에스케어가 그간의 노력에 비해 아직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그레이드한 전동 보조 키트를 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에스케어는 대표 본인이 장애인이며, 장애인 직원 6명과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알에스케어가 외부에 장애인 기업 혹은 사회적 기업으로 비춰지길 원하지 않는다. 휠체어를 누구보다 잘 다루는 전문가를 고용했을 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직원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비자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시장성 높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고급 인력이다. 맞춤형 휠체어를 생산하는 알에스케어에서 직원의 장애는 제약이 아니라 강점이다. 『Why Startups Fail』의 저자인 톰 아이젠만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친구들을 만날 때 구현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좋은 친구들이란 직원, 협력업체, 투자자, 조언자 등 비즈니스의 성공을 돕는 주체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비즈니스 생태계에 대한 노련한 경험과 노하우,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좋은 친구들을 모이게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세상이 수십 번 바뀌더라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현실에 소개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알에스케어처럼 제도와 환경에 맞서 직접 발로 뛰며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낼 때 혁신은 비로소 사무실 밖을 나와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영 KDI 전문 연구원 kimdy@kdi.re.kr
필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 연구원으로 디지털•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아리랑TV ‘BizTechKorea’에 출연하고 있다. 비영리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 회장, LG하우시스 경영 자문위원으로활동하고 있다.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필자는 디지털·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중앙대 겸임교수이며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 협회장을 지냈다. KBS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경제 코너에 출연 중이다. 한국경제신문 주간 칼럼 ‘4차산업혁명이야기’와 ‘디지털이코노미’ 필자이며 EBS ‘위대한 수업(Great Minds)’의 자문위원(경제 분야)을 맡고 있다.
    kimdy@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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