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은 무장이다. 잊지 못할 명장면들이 펼쳐지는 장소도 거의 모두가 전쟁터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전쟁문학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지에서 사실성이 가장 결여된 부분이 전쟁 장면이다.
우선 관우, 장비, 여포의 카리스마를 대변하는 상징물인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방천화극부터가 허구다. 이런 무기는 송나라 이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 실제 원소의 100만 대군은 10만, 형주 공격 때 동원한 조조의 100만 대군은 15만, 적벽대전 때는 25만 명 정도였다. 제갈량은 운남 원정에서 일종의 지뢰를 이용해 대승을 거두는데, 이 시대에는 화약이 발명되지 않았다. 적벽 하늘을 태우고, 화공 때마다 등장하는 유황도 이 시대에 없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전쟁과 관련해서 삼국지가 남긴 최고의 허구는 바로 진법이다. 팔문금쇄의 진부터 시작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진법은 환상적이다. 진이 한 번 발동되면 사방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병사들이 몇 배로 늘어나며, 심하면 안개가 끼고, 환상 속에 적군을 가두기까지 한다. 이 영향으로 진법을 계략이나 함정과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진법 자체를 허구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 정도전이 만든 진법이 있다고 하면 정말 그런 것이 있었냐고 흥분하는 사람을 여러 명 봤다.
전투는 팀플레이, 진법은 軍의 대형
그러나 진법은 신비한 전술이 아니다. 그저 군의 대형일 뿐이다. 전투는 격투기가 아니고 팀플레이이기 때문에 적절한 분업과 대형이 필요하다. 이 원리는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법 연구가 활발하던 때는 조선 초기였다. 정도전, 하륜, 변계량, 하경복이 차례로 진법을 저술하고 나중에 문종과 세조도 뛰어들었다. 당시에 군사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다 보니 새로운 진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법의 목적은 조직의 목적과 같다. 바로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며,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진법에서 사용하는 대형은 일반적으로 사각, 삼각, 원형, 직선, 곡선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돌격할 때는 삼각형, 수비할 때는 사각형, 포위되면 원형, 포위할 때는 곡선(날개)형을 주로 사용한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월형, 학익, 장사진 등 대형 종류가 많고 또한 대단히 복잡하다. 여기에 새로운 조합이 가해진다. 진은 모든 부대가 똑같은 형태로 포진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별로 다른 대형을 형성하며 움직인다. 중군은 사각, 우군은 삼각, 좌군은 곡진, 후군은 사각이다.
또 진마다 내부에 여러 병종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옛날 군대의 병력 구성은 지금보다 더 복잡했다. 병종은 크게 기병, 보병, 궁병으로 구분된다. 기병에는 중장, 경장의 구분이 있으며, 무기를 기준으로는 기창병과 기궁수로 나뉜다. 보병도 장창병, 단창병, 도수, 궁수, 노수(석궁), 도부수(도끼), 방패, 돌팔매, 총통(화약무기) 등의 병종이 있다. 당연히 이 배치도 진의 형태와 지형, 전술목적과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맞춰야 한다. 이 요인들을 모두 반영해서 순열 조합을 계산하면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패턴 익혀뒀다 실전 때 적용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며, 전투 중에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무선통신 기술이 없던 시대여서 신속한 연락과 일사불란한 지휘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깃발과 소리로 신호를 보내야 했다. 북을 치면 전진이고, 징을 치면 후퇴다. 북이나 징이 빠르게 울리면 빨리 움직이고, 천천히 울리면 천천히 움직인다. 이것도 훈련 때는 가능하지만 전투 중에는 잘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아군과 적군의 소리, 부대별 신호가 서로 뒤섞여 누가 어느 부대로 보내는 신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전투 중에 복잡한 기동과 변형은 불가능하다. 대개는 적의 진형을 예상하고, 미리 익혀둔 패턴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