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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새버짓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 교수: 즉각적인 혁신을 위한 전략

‘해커식 사고’가 혁신을 향한 지름길
허점 찾고, 편승하고, 패턴을 끊어라

정리=백상경 | 408호 (2025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시간과 예산, 자원이 충분해야만 혁신이 가능하다는 말은 틀렸다. 그 모든 것이 부족하더라도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문제를 해결할 땐 지나치게 근본적인 부분부터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는 식으로 얼마든지 문제를 풀 수 있다. 단숨에 문제를 해결하는 해커의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크게 4가지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① 이미 존재하지만 겉보기엔 관련 없어 보이는 시스템이나 관계를 활용하는 ‘편승하기’

② 모호함을 이용하거나 가장 명확하게 적용할 수 없는 규칙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허점 찾기’

③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는 ‘차선책 찾기’

④ 자기 강화적인 행동 패턴을 끊어버리는 ‘회전교차로’



파울로 새버짓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 교수

옥스퍼드대의 공학과학부와 사이드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전문 분야는 창업, 지속가능개발, 시스템 변화 및 혁신 관리다. 창업을 통해 불공정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스콜센터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더럼대의 조교수로도 근무했다. IBM 비즈니스 오브 거번먼트 어워드, 독일 과학기술부의 그린 탤런트 어워드, 서식스대의 올드햄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저서 『네 가지 우회 전략: 치열한 조직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들(The Four Workarounds: Strategies from the World’s Scrappiest Organizations for Tackling Complex Problems)』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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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비즈니스포럼 2024에 연사로 참석한 파울로 새버짓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 교수

혁신을 해야 한다.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하지만 시간도 자원도 없다고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자원이나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도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다. 시간 또한 그렇게 많이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위한 4가지 체계적인 사고 방식을 제시한다.


잠비아의 건강 혁신

아프리카 잠비아의 시골로 한번 가 보자. 인구 대부분이 극심한 기아와 빈곤에 빠져 있다.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가 설사다. 설사는 5세 이하 아동의 사망을 일으키는 두 번째로 많은 원인이다. 간단해 보이는 문제지만 해결은 매우 어려웠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잠비아의 시골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의약품의 가격은 낮고, 공급은 복잡하며, 사람들은 너무도 가난하다. 처방전을 받거나 냉장 보관을 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약이지만 공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대로 보급하고 복용하게 만들면 많은 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야말로 난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건 한 작은 조직이었다. 콜라라이프라고 하는 스타트업이 주인공이다. 1%에 불과했던 잠비아의 설사약의 보급률을 수년 만에 50%까지 끌어올렸다. 이들은 코카콜라의 촘촘한 유통망에 주목했다. 생명을 구하는 약품은 구하기 힘들었지만 코카콜라는 어디에나 있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에서조차 말이다. 어디를 가든 가게를 들어가면 코카콜라를 판매한다. 나 또한 오래전 시스템 혁신 컨설턴트 자격으로 아프리카와 아마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주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오지다. 그런데 현지인들이 숲에서 딴 과일, 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함께 코카콜라를 건넸다. 아마존 밀림 깊숙한 곳이나 아프리카 시골 구석구석을 막론하고 코카콜라는 유통된다. 코카콜라는 있는데 의약품은 없는 지역들을 보면서 콜라라이프는 의약품을 코카콜라 상자에 얹어서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의약품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코카콜라의 유통망에는 도매업체와 소매업체는 물론 중간 유통상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코카콜라 병을 도시에서 시골 구석구석으로 전달하는 트럭, 즉 교통 운송업체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콜라라이프는 결국 이미 시스템과 기반시설이 모두 갖춰진 영역을 포착하고 곧바로 활용한 것이다. 콜라에 살짝 끼워 넣은 형태로 설사약을 보급한 것이다.

콜라라이프의 사례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너무 근본적인 방향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번 인프라를 새로 만들고 큰 예산을 투입할 필요는 없다. FMCG(일용소비재, Fast-Moving Consumer Goods)의 경우 너무나도 강력한 인프라들이 구축돼 있다. 어디든 인프라가 깔려 있다 보니 이를 잘 이용해 헬스케어 난제를 해결하는 게 가능했다. 당신이 전자제품 업체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를 비롯한 전혀 다른 업계의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예산이나 인프라, 우리 업계의 자원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바깥으로 돌릴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외부에는 정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잘 포착하기만 하면 비용을 거의 쓰지 않고도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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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처럼 문제 해결하기

연구를 시작할 때 나는 컴퓨터 해커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뚫는 방법, 시스템 중심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종합화학업체 다우케미컬부터 시작해 월드뱅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기업, 기관과 일하면서 시스템 중심 사고와 취할 수 있는 접근법을 추천하고 권고했다. 그런데 사실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다. 조화와 협력, 연계 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대개 비슷한 것이 많았다. 좀 더 기발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나는 접근법은 없는지 고민하다가 생각이 미친 게 컴퓨터 해커들이었다. 해커들은 단숨에 공격한다.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도 빠르게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내용을 바꿔버린다. 해커의 접근 방식을 써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문제, 반도체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커의 방식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해커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스템을 어떻게 해킹하는지 직접 살펴봤다. 가장 악명 높은 해킹 방식은 ‘트로이의 목마’다. 이름의 유래인 그리스신화의 이야기처럼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몰래 내부로 침투한 이후 공격을 감행한다. 해커들은 수많은 사이버 보안 장애물 때문에 컴퓨터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접근 권한이 있는 사람을 악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컴퓨터 시스템 접근 권한이 있고, 내가 해커라고 해보자. 여러분이 가진 접근 권한을 내가 탈취해서 시스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굳이 권한을 탈취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시스템에 접근할 때 같이 따라 들어가는 식도 가능하다. 즉 장애물이 있을 때 이를 돌파하거나 없애버리려고 하기보다는 피해 가는 것이다. 장애물을 우회하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콜라라이프도 마찬가지였다. 유통망을 구축하거나 보건의료 예산을 증액하지 않더라도 장애물을 살짝 우회하면 코카콜라의 인프라에 무료로 편승해 설사약을 대대적으로 보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 바로 해커의 접근 방식이다. 특히 자원이 별로 없는 소규모 기업들에서 상당히 기발한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사례가 자주 목격되는데 이들 역시 해커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가지 접근 방식

① 편승하기(piggyback)

해커처럼 문제를 풀 수 있는 4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피기백(piggyback)’, 즉 편승하기다. 이미 존재하지만 겉보기엔 관련 없어 보이는 시스템이나 관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콜라라이프가 편승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방법을 우리가 처한 환경과 조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케냐의 통신사 사파리콤이 만든 엠페사(M-pesa)의 이야기를 아마 들어봤을 것이다. 휴대전화만으로 현금의 디지털화폐 전환, 화폐 저장 및 이체가 가능한 서비스로 케냐에서만 2000만 명 이상이 사용 중인 일종의 모바일 뱅킹이다.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은행 계좌가 없다. 아프리카 인구의 5%만이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금융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은행 지점도 설립해야 한다.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도 설치해야 한다. 게다가 은행업은 규제가 많은 산업이다. 이런 수많은 제약 속에 케냐 사람들은 금융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이로비에 사는 사람이 몸바사에 사는 부모님께 돈을 송금하려면 몸바사에 가는 사람을 찾아서 돈가방을 맡겨야 했다. 기업의 경우는 상황이 더 나빴다. 은행 계좌 없이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파리콤은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지 않았다. 통신 인프라를 활용해서 우회했다. 굉장히 좋은 편승하기의 사례다. 당시 은행 계좌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다들 휴대전화는 가지고 있었다.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변기의 보급률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물론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라 구형 노키아 전화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엠페사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 케냐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전국에 흩어진 통신사 매장을 찾아 현금을 주면 크레디트를 적립해줬다. 예를 들어 5달러를 매장에 주면 5달러의 크레디트가 내 휴대전화로 들어오고 이걸 통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엠페사는 이미 정착된 이 시스템을 활용했다. 사람들이 매장에서 충전한 휴대전화 크레디트로 생수나 커피를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은행 인프라가 없지만 통신 관련 인프라를 활용해 수백만 명에게 단숨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우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가 이렇게 구축됐다.

또 다른 편승하기 사례는 바로 에어비앤비다. 에어비앤비는 집을 빌려주고 싶은 사람과 숙소가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굉장히 생소한 가치 제안이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단기로 임대할 빈집을 찾으려면 부동산을 찾아가야 했다. 아니면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 같은 서비스를 이용했다. 크레이그리스트는 중고물품 등을 거래하는 생활정보 사이트였다. 뭐든 이곳에 올려 판매할 수 있었다. 이 크레이그리스트 서비스에서 취급한 서비스 중 하나가 바로 숙박업이었고 여기서 에어비앤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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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는 하나의 플랫폼이 됐고 실리콘밸리에서 이용자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용자 네트워크를 더욱 확장해야 하는데 마케팅에 투자할 돈이 별로 없었다. 스타트업이 갖는 일반적인 어려움이기도 하다. 에어비앤비는 편승하기 방법을 통해 문제점을 우회했다. 경쟁사의 자원을 이용하는 형태로 말이다. 크레이그리스트의 경우 숙박이나 임대주택을 찾는 사용자가 훨씬 많이 있었다. 하지만 UX(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좋지 않았다. 숙박에 특화한 플랫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집을 등록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크레이그리스트에 숙박할 수 있는 집의 매물을 올리면 에어비앤비에 함께 올려도 되는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더 많은 곳에 매물을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레이그리스트에 등록한 매물은 에어비앤비에도 올라갔는데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에만 특화한 플랫폼이다. 훨씬 더 좋은 비주얼로 노출을 했다. 결과적으로 에어비앤비를 모르는 사람들이 크레이그리스트에 집을 올리고, 에어비앤비가 여기에 접근해 자신들의 플랫폼에 더 멋진 형태로 매물을 올려주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숙박 매물을 올리는 사람이나 숙박할 곳을 찾는 사람 모두 점점 에어비앤비를 먼저 찾게 됐다. 이렇게 에어비앤비는 큰 성장을 했다. 경쟁사인 크레이그리스트의 인프라에 편승해 급격히 성장한 것이다. 정말 천재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핵심은 일단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와 자원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고 편승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경쟁사나 코카콜라, 통신사 인프라에 편승하는 것 모두가 가능하다. 예산이나 시간, 인프라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② 허점(loophole) 찾기

다음은 허점 찾기다. 허점은 모호함을 이용하거나 가장 명확하게 적용할 수 없는 규칙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현재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에게 합법적이고 안전한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페미니스트 낙태 찬성 단체가 있다. 이들은 낙태가 허용되는 네덜란드 국적의 배를 타고 공해상으로 이동한다. 근본적으로 낙태가 금지된 국가의 여성들도 공해상에서 네덜란드 국적선을 타고 낙태 시술을 받으면 어느 나라의 법도 어기지 않는 상태가 된다. 윤리적 논란을 떠나 비즈니스 측면에선 이것 역시 허점 찾기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우버다. 우버라는 회사가 처음 시작됐을 때를 생각해보자. 우버는 택시와의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공유 경제라는 말을 강조했고 새로운 기술을 간과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택시라는 말을 쓰는 순간 시의회의 단속을 받게 되고 정해진 규정을 지키게 된다. 규제 당국의 눈을 피하고 그들이 관할 영역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우버는 항상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했다. 아주 애매모호한 용어로 빠져나갔고 택시와의 연관성을 배제했다. 우버는 또한 수익이 아니라 빠른 성장에 초점을 뒀다. 규제 당국이 어쩌지 못할 정도로 회사와 서비스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이런 부분에서 규제 당국의 허점을 피한 것이다. 특히 뉴욕에서 그랬다. 뉴욕의 정치인과 법률가들은 우버가 택시와 겹치는 업종이며 따라서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금지하기엔 우버가 너무 커져 버렸다. 대마불사1 가 된 것이다. 새로운 우회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③ 차선책(next best) 찾기

세 번째 혁신 방법은 차선책(next best) 찾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잘 엮어서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규범의 허점 찾기가 두 번째였다면, 세 번째는 보유 자원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인 토퍼 화이트2 의 사례가 있다. 그는 처음엔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일 뿐이었다. 사업가도, 사회적 기업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여행 도중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됐다. 중저소득 국가 전반에서 불법적인 벌채가 수없이 자행되고 있었다. 삼림이 황폐화하면서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넓고 광활한 지역에서 어떻게 불법 벌채를 막을 수 있을까. 그는 위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열대우림은 지나치게 넓어서 그 안에서 나무를 베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는 없다. 파악한다 하더라도 이미 그들이 나무를 베고 도망간 이후에야 현장을 찾아갈 수 있다. 드론이나 헬리콥터를 사용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예 순찰대가 숲을 계속 돌아다니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꺼내 든 것은 휴대전화였다. 아마 여러분 모두 일생에서 6번 정도는 휴대전화를 바꿨을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 쓰던 제품은 전부 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휴대전화는 사실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앱만 설치하면 충분히 쓸 만한 물건이 된다. 그래서 토퍼 화이트는 쓰레기 더미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하기 시작한다. 휴대전화에 캐노피를 씌워서 태양광 에너지로 충전하고 작동하게 만들었다. 주안점을 둔 것은 소리였다. 동물들의 소리나 새들의 지저귐, 빗소리 등 여러 가지 숲의 소리 속에서 전기톱을 작동하는 소리를 감지하게 했다. 자연의 소리와 다른 이질적인 소리를 휴대폰에서 인식하고 관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구조다. 벌채가 이뤄지는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피커 설치 반경 1㎞ 이내를 수색하면 불법 벌채를 금세 적발할 수 있다. 이 스피커를 1㎞ 간격으로 촘촘하게 두면 숲 전체를 빠짐없이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있는 자원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새로운 것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물건만 쓸 것도 아니다. 사람의 머리라는 자원도 잘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자원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의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대법관이자 진보적인 견해로 유명한 인물이다. 대법관, 판사가 되기 이전에 하버드대 로스쿨과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재학할 때도 그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여성이고, 어머니이자,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법조계에선 어찌 보면 낙인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루트거스대(Rutgers University)에서 법학 교수로 일을 시작했는데 점점 흥미로운 사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겪는 성차별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됐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남편과 함께 여성의 권리를 위해 나섰다. 그런데 방법이 특별했다. 남성이 차별을 당하는 사건, 즉 성별이 반대인 사건을 찾아 반론을 펼친 것이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사건에 대해서 먼저 남성이 차별받는 사건을 승소하고 이를 선례로 여성 차별 사건을 해결하는 식이었다.

버려진 휴대전화를 재활용한 것이나 여성에게 차별적이었던 법을 남성에게 적용한 후 다시 여성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든 방법 모두 차선책에 해당한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 이미 주어진 것을 활용해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아주 복잡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용도를 변경하고 재조합을 하면 된다. 이런 방식을 통하면 성차별적인 문제나 경제 불안, 정치적 소요 문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당장 주변에 있는 것을 나름의 차선책으로 사용해야 한다.

④ 회전교차로(the roundabout)

마지막 혁신 방법은 회전교차로 방법이다. 자기 강화적인 행동 패턴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간을 벌고, 협상하고, 대안을 개발하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평가나 결정을 늦추는 것은 때때로 불가피하게 보였던 상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겐 형이 있다. 모든 형제가 그렇듯 우리도 엄청나게 싸우곤 했다. 서로 주먹질을 하다 보면 나중엔 죽일 듯이 싸우게 되는데 이렇게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는 과정이 바로 자기 강화적인 행동 패턴이다. 처음엔 그냥 싸우다가 나중에는 서로 죽느냐 사느냐 하게 되는 것이다. 눈사태가 발생하는 것도 작은 돌이 구르다가 점점 더 큰 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되돌려서 정상화하고자 하는 게 회전교차로 방법이다. 내가 인도 델리를 걷던 때의 일이다. 델리에는 큰 문제가 있다. 도시 전체가 아주 좁은 공간을 걸어가야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걷다 보면 누군가의 집 옆이다. 그 담벼락엔 많은 이가 소변을 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인도는 다 그러니까 어쩌겠느냐,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상황에서 우회 방법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한 집주인은 벽에 그림 타일을 붙였다. 인도의 신들을 그린 타일이었다. 신 앞에서 소변을 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종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소변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실제로 점점 소변을 보는 사람이 줄고 벽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위생적으로나 미관상으로나 해결이 됐다. 이것이 바로 소변을 보는 사람들의 자기 강화적인 행동을 끊어버리는 해법이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벽에 소변을 봤겠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단절한 것이다.

대기업인 휴렛팩커드(HP) 사례도 있다. HP는 창업 초기 규모가 작을 땐 재빠른 혁신 기업이었다. 그땐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마음껏 쏟아내도 됐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조직은 엄격해지고 관료적으로 변했다. 직원들은 점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고 느꼈다. 이렇게 가는 회사는 미래가 없다. HP는 규모가 커질수록 혁신과 멀어지고 혁신에 둔감한 회사가 됐다.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패커드는 혁신은 돈이 많이 들고 기술의 잠재력 역시 처음부터 알아보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시장에서 제품으로 나왔을 때 정말 가치가 있을지도 미리 알 수 없다고 느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HP의 엔지니어였던 찰스 하우스는 혼자서 대화면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애매모호한 초기 아이디어가 있을 때가 아니라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고 거의 제품 출시가 가까워졌을 때가 돼서야 팩커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혁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기 강화에 빠진 상황에서 혁신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혁신은 예산·시간 없이도 가능하다

설명한 모든 방법은 막대한 예산 없이도 가능한 것들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효과까지 미미하진 않다. 오히려 매우 큰 혁신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해왔던 똑같은 방식, 애매모호하고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평범한 방식을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돈이나 시간이 없다는 똑같은 핑계를 대지 않고 새로운 방식의 접근을 시도해봐야 한다. 편승하기, 허점 찾기, 차선책 찾기, 회전교차로, 이 네 가지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면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혁신의 씨앗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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