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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Case Study

200조 엔… 300년 기업… 행복공장… ‘정보혁명 리더’ 손정의의 꿈은 이제 출발!

이우광 | 186호 (2015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성공한 재일교포 3세 기업인으로 잘 알려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겐용맹과감(勇猛果敢)한 도박사라는 별명이 있다. 재일교포라는 꼬리표 때문에라도 일본 내에는 그를 질시, 폄훼하려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돈은 잘 벌지만 이노베이션은 없다는 비판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손정의의 횡보를 보면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과 다른 큰 전환점이 느껴진다. 아시아 중시 전략이 그중 하나다. 그는 2010 30년 비전선포식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울먹였다. 일본 이민 후 판자촌에 살던 시절, 동네 잔반을 모으기 위한 리어커를 끌며 할머니는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가 초조하게 좇고 있는 거대한 꿈의 최종 목표는 이런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하 손정의)은 초조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최근 발간된 저서, <손정의의 초조>에는나는 아직 1%도 성취하지 못했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가 가진 재산은 2014 3월 기준, 184억 달러로 명실상부한 일본 제일의 부자다.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과 부호 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다. 또 일본 최고의 경영자 반열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다. <닛케이비즈니스> 2014 11월에 선정한사장들이 뽑은 일본의 베스트 사장에는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에 이어 2위에 뽑혔다. 경영의 프로들이 손정의의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쥔 손정의는 왜 지금, 무엇 때문에 초조한 것일까?

 

손정의에게는 인생의 장대한 목표가 있다. 그는 2010년에 발표한 소프트뱅크 30년 비전에서정보혁명의 리더가 되고, 소프트뱅크를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울 것을 선포했다. 1957년생인 그가 80세가 좀 넘는 2040년에 소프트뱅크를 시가총액 200조 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현재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은 약 10조 엔이다. 아직 목표의 5% 정도에 불과하니 초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일본인은 손정의를 알고 있지만 일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자신을세계적인 정보혁명의 리더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초조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허풍쟁이인가? 치밀한 전략가인가?

 

손정의의 이러한 인생 목표는 좀 황당한 꿈으로 들릴 수도 있다. 사실 일본 비즈니스계에서는 소프트뱅크 사외이사인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 일본전산 나가모리 회장과 더불어 손정의를 ‘3대 허풍쟁이로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손 사장의 허풍이 제일 스케일이 크다는 소문도 있다. 손정의를 깎아내리려는 평가 중 하나다.

 

하지만 시가총액 200조 엔 기업이라는 목표는 그냥 단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목표치다.

 

계산법은 이렇다. 그는 세계 톱10 기업을 만드는 것을 20대부터 인생의 목표로 삼아왔다. 그리고 2040년에 세계 톱10 기업이 되려면 시가총액이 적어도 200조 엔은 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정보통신혁명이 어느 정도 진전된 2040, 전 세계 정보통신 기업 수는 약 500만 개, 시가 총액은 1000조 엔이 될 것이므로 소프트뱅크의 계열·투자 기업 수는 이 수치의 0.1% 5000개는 돼야 하고 시가총액도 그 20% 200조 엔 정도는 돼야 정보통신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는 셈법이 나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허풍쟁이라는 별명처럼 너무 과한 목표라 할 수도 있지만 손정의는정보혁명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이념과 이를 실천하는 수단으로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기업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셈법에 깔린 철학이다.

 

그는 각 시대별로 세계 톱10 기업의 사례를 들기를 좋아한다. 100년 전인 1900년에 시가총액 10위 기업에는 노스웨스턴철도나 유에스스틸, 스탠더드오일 등 철도나 철강, 석유 기업이 상위였다. 그러나 30년 전인 1985년에는 IBM, AT&T, 스미토모은행 등 컴퓨터나 은행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최근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들어 있다. 이처럼 그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회사가 톱10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0년 후에는 어떤 회사가 톱10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손정의는 정보통신 혁명이 상당히 진전된 2040년에는 정보통신 기술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톱10에 들어갈 것으로 봤다. 그런 이유로도 시가총액 200조 엔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손정의는 지금까지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뤄냈다. 단기적으로는 약간의 곡절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혀 흔들림 없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왔다고 그는 자부한다. 그는 이미 19살 때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손정의에게는용맹과감(勇猛果敢)한 도박사라는 별명이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중국 알리바바에 대한 투자수익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는 2000년 알리바바에 20억 엔을 투자했다. 그리고 2014 9월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자 손정의는 약 8조 엔의 평가이익을 얻었다. 투자에 따른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의 투자가 도박으로 비쳐지지만 사실 손정의는 도박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념과 인생 목표에 따라 투자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는 창업 이래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기본 설계도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따라서 50대인 지금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시키고 60대에 승계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손정의가 보여준 파격적인 경영 횡보도 이와 연관 지어보면 이해가 간다. 그는 최근 한국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해 화제가 됐다. 일본에서는 인도 출신 구글 부사장 니케슈아로라를 165억 엔 이상을 들여 스카우트하고가장 중요한 후계자 후보라 발표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또 지난 6월에는 휴머노이드 로봇페파를 제조원가에도 못 미치는 198000엔에 판매했다. 이 로봇은 1분 만에 1000대가 모두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40년에 세계 톱10 기업이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착실하게 선행투자를 하고 인프라를 구축에 애쓰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횡보는 손정의가 느낀 초조함이 실제 경영활동에 반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정의의 신념은 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

 

‘정보혁명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겠다’ ‘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가 되겠다는 손정의의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손정의는 2010년 소프트뱅크의 30년 비전선포식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울먹였다. 이 자리에서 평소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적인 얘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비전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적인 자리임에도 과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다. 그가 20살 때 구청에 호적등본을 떼러 가보니 주소가사가현 도스시 5헌도로 무번지로만 나와 있었다고 한다. 왜 번지수가 없을까 생각해보니 조부(孫三憲)가 대구(동구 팔공산 부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지낼 곳이 없어 철로변 무허가 판자촌에서 거주했기 때문이었다. 무허가 판자촌이니 당연히 주소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조부는 생활이 어려워 채소나 가축을 키워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 또 밀주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한다. 어린 손정의는 할머니가 동네 잔반을 모으러 가는 리어커에 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손정의는 이때 할머니로부터 인생철학을 배웠다고 실토했다.

 

할머니는마사요시(正義)!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너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해라라고 조언했다. 이때 손정의는 남을 도와주는 인생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6세에 미국 UC버클리로 유학가기 전, 할머니와 함께 대구를 방문한 이야기도 했다.

 

유학을 가기 전, 자신의 뿌리가 있는 한국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1973년께다. 할머니로부터 일본에서 입던 헌옷가지를 선물로 받은 친지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때 그는 기업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 평생 힘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사실 그가 유학을 갈 시점에도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져 고등학교를 중퇴한 형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의 유학을 극구 만류했다. 어려운 형편에 유학을 간다는 손정의에게 친척들은이기주의자! 냉정한 놈이라고까지 했다. 가족과 친척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가 유학을 단행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형이 현재의 가족을 책임지면 나는 장래의 가족을 책임지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기업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종잣돈을 벌어 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미국에서 자동 번역기를 발명해 얻은 수익 1억 엔을 가지고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보다도 더 강한 또 하나의 동기가 있다. 자신과 같이 일본에서 차별받고 있는 젊은 재일교포들에게나도 하면 된다는 모범과 꿈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유학에서 돌아온 뒤 성()을 한국식의 손()으로 쓰고 있는 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손정의의 집안이 당시까지 일본에서 쓰고 있는 성은 일본식인 야스모토(安本)였다. 때문에 손정의 혼자서 손 씨 성을 쓰는데 대한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재일교포 집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정의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성공으로 차별에 시달리던 재일교포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어릴 때 한국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했다. 차별 탓에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꿨다. 국적이나 인종 때문에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다 똑같은 것이기에 국적은 단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차별받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 공헌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이 작용했을 것이다.그는 1990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가르침을 상기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성공 프로세스를 발명하는 손정의

 

유학 후에는 일본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공부에 매달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업을 세우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발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쓴 방법론은 이랬다. 먼저 3개의 키워드를 생각한 뒤 나열하고 PC를 통해 랜덤으로 3개의 키워드를 조합한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런 뒤 그 조합으로부터 발명품의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렇게 도출된 아이디어를 참신함, 비용, 어프로치하기 쉬운 것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런 뒤 종합점수순으로 발명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250개의 발명 아이템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중 하나가 사업을 위한 종잣돈 마련에 도움을 준 음성자동번역기다. 이 번역기를 만들기 위해 처음 생각했던 세 개의 키워드는 스피치 시스템, 사전, 액정 디스플레이였다.

 

그는 이를 제품화하기 위해 UC버클리 연구자들을 설득하고 역할을 분담해 시제품(prototype) 개발을 완성했다. 이 사례는 손정의의 비즈니스 설계 패턴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의 성공 공식이자 그를 규정하는 키워드는성공 프로세스 발명가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발명을 해서는 큰 기업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해 발명을 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이를 실천해온 것이다.

 

이런 수법을 정보혁명에 적용한 것이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손정의의 사업 방법론,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지금 인류는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제3의 혁명인 정보혁명이 개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여명기에 불과하며 20∼30년 후에는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보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보혁명의 주도자는 누구일까? 이는 어느 시대나 벤처기업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은 과거에 축적한 자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혁신에 도전해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된다. 따라서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란 벤처가 커나가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혁명을 배후에서 받쳐주는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손정의는 스스로 이러한 인프라 제공자의 중심에 서겠다는 것이다.

 

정보통신 인프라 기업의 의미

 

그렇다면 정보통신 인프라 기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먼저 손정의는 30년 이후에도 기업이 생존할 확률은 0.02%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한 분야에 고집하는 기업은 오랫동안 생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향후 30년 이상 존속하고 세계 톱10 기업이 돼 번영을 지속하는 조직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보통신 분야에서 특정 칩이나 소프트·하드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진화하는전략적 시너지 그룹조직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손정의는 말하자면 웹형 조직, 분권, 초고속 스피드 의사결정, 자립·분산분권·협조형 기업이 키워드인 기업조직을 구상하고 있다.예를 들어 기업에 투자할 때 종래 일본 기업들은 51% 이상의 소유를 고집하지만 손정의는 20∼40%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자본이면 동지적 결합을 하는 파트너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굳이 지배할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다. 지배하려하면 중앙집권적이 되고 대기업병에 걸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중국의 알리바바나 타오바오의 경우도 그 정도 지분을 매입했다. 손정의는 이들 파트너 기업들이 분산분권형으로 자기 증식을 거듭하고 협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조직을 생각하고 있다.

 

 

 

손정의가 생각하는인프라에 대한 생각은 남들과는 좀 색다르다. 정보나 인맥도 인프라라고 보는 것이다. 손정의는 30대 중반 자신의 인생목표대로 큰 모험을 감행한다. 일본에 귀국한 이후 후쿠오카에서 설립한 컴퓨터·소프트웨어 도매사업 회사 일본소프트뱅크를 1994년 도쿄증시에 상장시켜 3000억 엔이라는 큰 자금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 뒤 곧바로 메가톤급 매수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중 800억 엔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운영사인 컴텍스 인수에, 2000억 엔은 PC 관련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 지프 디비스 인수에 썼다. 이들 기업은 당시 정보혁명을 이끄는 인프라 회사였다. 1990년대만 해도 기술력이 있는 벤처들조차 인맥이나 정보가 없어 자금조달이 쉽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전시회고 출판사라고 판단했다. 둘 다 인사이더 정보의 보고다. 이를 손에 쥐면 장래성이 있는 벤처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벤처 데뷔 후에도 이들 매체를 통해 홍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을 지원할 수도 있다. 이들 미디어를 통해 벤처를 키우면 정보혁명은 크게 진전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1995년 컴텍스 인수 후 오너가 됐음을 선언하면서나는 앞으로 벤처 투자를 본격화할 것이다. 나에게 무엇이 보물인지 가르쳐 달라. 이것이 컴텍스를 매수한 목적이다라고 천명했다. 이때 당시 한 컴텍스 관계자는그렇다면 야후에 투자하세요라고 조언했다. 당시 야후는 종업원이 10명도 안 되는 벤처였다. 그러자 손정의는 그 자리에서 100억 엔을 출자하기로 한다. 이러한 빠른 결정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속도다. 결과적으로 야후는 소프트뱅크에 수조 엔의 이익을 가져다줬다.

 

손정의가 컴텍스를 매수해 얻은 귀중한 자신은 바로 인맥이다. 컴텍스의 전시회 전시장이나 지프의 출판물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IT 업계 거물이 직접 방문하거나 구독하는 대상이다. 이러한 인프라의 오너라는 존재는 업계 리더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누구라도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실제로 손정의는 컴텍스 개회 직후 빌 게이츠로부터 골프를 함께 치자는 제안을 받았으며, 스티브 잡스와도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손정의는 이 두 개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정보와 인맥을 한꺼번에 거머쥐게 됐다. 미국 IT업계의 최고 인맥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2800억 엔은 저렴한 액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후 손정의의 사업전개는 전부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라는 관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보다폰의 일본 법인을 인수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비롯됐다. 보다폰을 인수했던 당시, 세계 시장은 유선통신에서 무선통신으로 향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동통신 플랫폼에서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벤처들의 수요가 많았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미국 제3위 휴대전화통신업체인 스프린터를 216억 달러에 인수했다. 정보혁명 인프라가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다 스프린터가 위치한 미국 실리콘밸리가 정보통신혁명의 메카였기 때문이었다. 실리콘벨리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벤처 투자를 위한 고급 정보를 손에 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손정의가 중국의 알리바바에 투자한 것은 2000년이지만 알리바바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은 야후 투자의 성공담을 세계에 홍보한 덕분이었다. 알리바바는 손정의의 이러한 투자 태도에 끌렸고, 투자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손정의는 알리바바와 야후 중국을 통합하는 중계 역할을 했고 야후 재팬의 노하우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에서는좋은 투자 안건이 생기면 누구나 먼저 손정의에게 가져간다는 소문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도 손정의는 주목받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손정의가 구축한 그룹 리소스에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손정의는 정보혁명의 인프라 제공자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투자로타임머신 경영종료

 

사실 손정의에게는타임머신 경영자라는 별명이 있다. 미국에서 보급된 기기나 서비스를 시차를 두고 일본에 적용하는 비즈니스에 능하다는 의미다. 야후나 아이폰을 일본에 도입한 것 등이 좋은 사례다. 또 중국 알리바바 투자처럼 운 좋게 고수익을 올리는 투기가라는 이미지도 있다. 때문에돈은 잘 벌지만 이노베이션은 없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손정의의 횡보를 보면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모델에서의 변화가 엿보인다.

 

먼저 아시아 중시 전략이 역력해졌다는 점이다. 손정의는 최근아시아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에도 중국이 중요하다고 하고 알리바바 등에 투자해 대박을 낸 경험이 있다. 앞으로 소프트뱅크가 아시아 중시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배경은 이제 일본에서의 타임머신 경영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달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국내에서의 모바일에 대한 투자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고 인구 감소, 고령화 사회로 인터넷에 친숙하지 못한 고령자들이 늘어나 사업기반이 약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투자한 스프린트가 계속 적자를 내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도 거세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미국에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도 기업인수 후 곤경에 빠진 적이 많았기 때문에 역경을 딛고 사업을 성공시킬 가능성은 있지만 향후 미국·일본 시장에서의 투자는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아시아 시장은 향후에도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인도는 2050년경 미국은 물론 중국에 버금가는 경제규모에 달하는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제 규모뿐만이 아니다. 2015년 현재 인도의 24세 이하 인구는 47%에 달하고 65세 이상 고령화율도 6%에 불과하다. 일본의 26%와 비교가 안 될 젊은 사회이다. 게다가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16000만 명으로 미국과 비슷한 숫자이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현재 약 500만 명으로 미국을 이미 앞지르고 있다. 전자상거래시장은 2014 2500억 엔 규모이지만 2021년에는 이의 30배인 76000억 엔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미 인도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예를 들면 전자상거래 업체 스넵 딜, 배차서비스 업체인 오라 등에 투자해 막대한 수입을 거뒀다. 이들은 인도의 알리바바에 비할 수 있다. 게다가 인도에서는 타임머신 경영이 아직도 통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소프트뱅크가 인도에서 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도네시아도 매력 있는 투자처다. 인구는 25000만 명이고 60세 이상 인구가 9%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터넷 인구비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교육열이 높아 문맹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에는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손정의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도 출신의 아로라 부사장을중요한 후계자로 지칭하며 거액을 들여 영입한 것이다. 손정의의 연봉이 13100만 엔( 1230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아로라 부사장를 영입하는 데 쓴 비용 1655600만 엔( 1555억 원)은 창업자 연봉의 100배 이상에 달하는 파격적인 금액이다.1 그러나 손 사장은 아로라의 정보력·안목·인맥에 비하면저렴한 연봉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가 알리바바에 투자해 무려 8조 엔의 수익을 올린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실제로 아로라는 작년 9월 이후 한국, 인도 등을 포함해 벌써 7건에 투자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최고경영자급의

임원을 영입할 때는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능력에 대해

직접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가진

인재가 아니면 아예 영입을

하지 않는다.

 

인재를 영입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소프트뱅크는 511일 결산발표회에서 글로벌화를 가속화하기기 위해 사명을소프트뱅크그룹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본사를 순수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고 기존 소프트뱅크를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아로라 부사장을 ‘Soft Bank Group President’라고 칭했다. 사실상 아로라를 후계자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손정의는 아로라 부사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미국에 전화를 하는 공을 들였다. 신생 지주회사소프트뱅크그룹에 큰 목표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손정의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기업은 세계 최대 투자펀드인 독일의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와 미국의 구글이다. 손정의는 이들 회사를 넘어서서 세계 최고의 투자기업을 일구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이들 회사에서 상당한 실적을 쌓아온 아로라 부사장이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프트뱅크가 크게 성장한 배경에는 인재 영입이 큰 역할을 했다. 1995년에는 노무라증권 출신의 기타오 씨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했다. 그는 4800억 엔이라는 자금을 조달하면서 미국에 과감하게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는 공을 세웠다. 2000년에는 야스다신탁은행 가사이 행장을 영입해 보다폰 등 이동통신사업을 매수할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이처럼 손정의는 사업의 도약 단계에 맞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물을 적절한 타이밍에 영입해 왔다.

 

그가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데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과거 소프트뱅크를 위해 일한 실적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기타오는 노무라증권에서 소프트뱅크 기업공개(IPO)에 큰 역할을 했다. 아로라는 구글의 검색엔진을 야후재팬에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로 경쟁하는 기업끼리 제휴하는 어려운 비즈니스였지만 최종적으로 아로라와 합의하는 데 성공하면서 야후재팬이 구글의 검색엔진을 탑재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이때 손정의는 아로라를 높이 평가하게 됐다고 한다. 최고경영자급의 임원을 영입할 때는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능력에 대해 직접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가진 인재가 아니면 아예 영입을 하지 않는다.

 

둘째는 손정의가 직접 영입 설득에 나선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먼저 헤드헌터 회사를 통해 기업명을 밝히지 않고 컨택한 다음 이직 의사가 있으면 구체적인 설득 과정에 나서는 일반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전화한 뒤 몇 번이고 직접 만나 설득을 한다. 아로라 부사장은 한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남부 이탈리아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손정의가 여기까지 찾아와 설득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셋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로라는 소프트뱅크에 온 이유를성장성이 높은 아시아에서 일을 한다면 갈 곳은 소프트뱅크뿐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야후재팬을, 중국에서 알리바바를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뱅크에서 인도 출신인 자신이 경영자로 적합하다는 것은 손정의와 아로라의 뜻이 같았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프트뱅크는 성장의 한계가 없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손정의가 성장에 꼭 필요한 인재를 탁월한 교섭 능력을 발휘해 반드시 영입해오기 때문이다.

 

‘이노베이션’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

 

손정의는이노베이션이 없다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로봇페파사업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정보혁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라는 그의 이념을 구현하기에 딱 맞는 사업이 바로 로봇 사업이다. 그는 앞으로는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행복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로봇이 고령화 등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정의는 2040년경에는 로봇 수가 사람 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로봇의 플랫폼이나 클라우드를 미리 확보해야 향후 도래할 로봇 사회의 인프라를 거머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손해를 보는 사업이고 소프트뱅크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2040년에는 주력사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개발에 관여해 출시 직전에 성능을 획기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또 중국의 알리바바, 대만의 홍하이를 끌어들여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아시아 전략의 장기포석으로 볼 수 있다. 또한소프트뱅크월드 2015’에서는 로봇뿐 아니라 앞으로 정보혁명을 선도할 인공지능, IoT/M2M, 클라우드 등에 대해 법인들을 상대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리고 손정의가 직접 강연도 했다. 최근 정보혁명이 제조업 등으로 확산되자 본격적으로 정보혁명의 리더다운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손정의의 진정한 꿈

 

사실 손정의의 꿈은 2040년까지 200조 엔 규모의 기업을 이루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300년 가는 기업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300년 기업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왔던 선견지명, 미래 설계능력, 실천의지 등을 보면 반드시 이루지 못할 꿈도 아닌 듯하다. 손정의는 이상만 높은 사람이 아니다. 이상을 현실 세계에서 설계해내는 탁월한 프로세스 설계자이다.

 

재일교포라는약점때문에 일본인들은 그를 더욱 허풍쟁이로 취급했을 수 있다. 편견 때문이 아니라면 제조업, 대기업 기반의 일본 기업사회에서 그는 전통적인 경영자들과 차이가 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여러 약점을 딛고 당당하게 기업이념을 실천해나가는 모습에 이제 일본인들도 상당수가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는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요금을 받고 있는 일본의 정보통신업자’ NTT에 도전해 이동통신사업의 경쟁시스템을 이끌어냈다. 손정의에게 국적이나 인종은 무의미하다. 그는정보통신 혁명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범인류적인 사랑 실천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별로 앞에 나서지 않던 그는 최근 부쩍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 그의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장 한계에 부닥친 일본 기업들도 그를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손정의가 한국의 쇼셜커머스 업체에 거액을 베팅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정보혁명의 리더인 손정의가 우리 인터넷 기업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유니클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성숙 산업인 의류업을 유지하면서도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장기 침체를 맞고 있는 일본에서 새로운 분야, 새로운 시장,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나가는 손정의의 비즈니스 모델은 장기침체라는 파도를 코앞에 마주하게 된 우리 기업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우광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wklee@kjc.or.kr

 

필자는 중앙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경제학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주로 일본 경제와 산업·기업 등을 연구했고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 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등이 있다.

  • 이우광 | -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저자
    wklee@k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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