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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CS윈드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

CEO도 ‘지옥훈련’ 마다않은 뚝심 세계 풍력발전기 시장에 바람 일으키다

이방실 | 187호 (2015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CS윈드의 글로벌 오퍼레이션 성공 비결

1) ‘() 수주 후() 투자원칙 통해 리스크 최소화

: 안정적인 물량을 먼저 확보한 후 생산 설비 투자에 나섬으로써 초기 사업 리스크 최소화. 공장 설립 후 2∼3년 내 투자금 회수에 성공.

2) 체계적 훈련 프로그램 및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

: 풍력타워 생산을 위한 핵심 기술인 용접 역량 제고를 위해 WTC(Welding Training Center) 구축, 현지 생산근로자 대상으로 용접 실기는 물론 이론 교육까지 체계적으로 실시. ‘CTQ(Critical to Quality, 핵심품질인자)’ ‘4M(Man, Material, Method, Machine)’ 기준에 따라 상시 품질 관리로 불량 재발률 감축.

3) 리더의 솔선수범 통해 생산성 혁신을 조직문화 혁신 계기로 전환

: ‘500MH(Man-Hour)’ ‘40DCT(Dream Comes True)’ 등 전사적 차원에서 생산성 혁신 제고. CEO 이하 본사 임직원들까지 직접 현지 생산법인에서 상주하며지옥훈련에 가까운 혁신 프로젝트에 동참, 조직문화 혁신.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예림(이화여대 국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CS윈드는 풍력발전기의 핵심 기자재인 풍력타워 전문 제조업체다. 2003년 베트남에 생산법인을 설립한 이후 현재 중국과 캐나다 등 해외 곳곳에 생산기지를 운영 중이다. 2004년 뉴질랜드로 풍력타워 첫 선적을 시작한 이래 작년 말까지 CS윈드가 전 세계에 공급한 풍력타워 누적 개수는 총 6475기다. 현재 CS윈드는 베스타스 윈드시스템(Vestas Wind Systems), 지멘스 윈드파워(Siemens Wind Power), GE에너지(GE Energy)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풍력발전기 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업체로 세계 육상 풍력타워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적히든 챔피언이다. 현재 종업원 1120명 중 충남 천안에 있는 본사 직원은 65명에 불과할 정도로 글로벌화돼 있다.

 

CS윈드는 지난해 매출액(연결재무제표 기준) 3292억 원에 영업이익 688억 원으로 21%라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역시 1684억 원의 매출액에 317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19%)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풍력에너지 시장조사 업체인 덴마크의 메이크컨설팅(Make Consulting) 2012년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 CS윈드를생산 능력 기준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춘 풍력타워 제조업체라고 평가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해외는커녕 국내 풍력타워 시장에서조차 존재감이 없던 한국의 중소기업이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뛰어난 글로벌 오퍼레이션 능력과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전 세계 풍력타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CS윈드의 성공 요인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

 

 

 

방화문 제조업에서 풍력타워 제조업으로

 

CS윈드(옛 중산풍력)는 창업자인 김성권 회장이 2003 1231일 베트남에 사재를 털어 설립한 CS윈드타워( CS윈드베트남)를 모태로 하는 회사다. 하지만 CS윈드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약 10년간 건축용 철물자재 구매 전문가로 사업 경험을 쌓은 김 회장이 1989년 한국으로 돌아와 설립한 중산정공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 회장은 자체 제조 기반 없이 단순 중개업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한국으로 돌아와 중산정공을 세우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창업 초기 중산정공은 철물을 구매해 고객사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방화문과 핸드레인 등의 제품도 직접 만들어 팔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강구조물 사업 경험도 쌓아갔다. 하지만 1998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건설사들이 줄지어 공사를 중단하면서 중산정공도 위기에 내몰렸다.1 김 회장은당시 사재를 출연해 회사 부도는 막았지만 철물 및 철구조물 사업의 전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풍력타워 사업에 뛰어든 계기다.

 

김 회장이 신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염두에 뒀던 원칙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중산정공의 핵심역량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어떤 산업보다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에 진출한다. 셋째, 생산 기지는 저비용 생산이 가능한 해외에서 시작한다. 김 회장은 이 세 가지 기준에 맞춰 새롭게 진출할 산업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김 회장은 중산정공의 핵심역량을 1) 철물 및 강구조물 사업 실행을 통해 쌓은 생산 노하우와 2) 세계 곳곳의 건설 현장을 누비며 축적한 글로벌 오퍼레이션 능력으로 봤다. 이 두 분야에서만큼은 국내 어떤 회사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러한 분석하에 김 회장은 성장성이 높은 산업이 무엇일지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특히 풍력산업에 주목하게 됐다.

 

풍력산업은 크게 1) 발전된 전기를 송배전하고 판매하는 전력회사 2) 풍력단지 개발을 담당하는 디벨로퍼(developer) 3) 단지에 조성될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제조업체 등 세 단계로 가치사슬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중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는 크게 1) 터빈(turbine) 제작업체 2) 블레이드(blade) 제작업체 3) 타워(tower) 제작업체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대부분 터빈 제작업체에서 주요 기자재를 조립해 풍력발전기를 최종 완성한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풍력타워였다. 풍력타워야말로 중산정공이 그동안 주력해온 철물 및 강구조물 생산 노하우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당시 중산정공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서 진행한 미국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가해 9기의 화력발전소 굴뚝을 제작, 성공적으로 납품한 상황이었다. 풍력타워는 후판 커팅(cutting), 벤딩(bending) 등 철판 가공 기술과 각 부품을 연결하는 용접(welding) 기술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화력발전소 굴뚝 제작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더욱이 풍력발전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였다. 김 회장이 풍력타워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게 된 이유였다.

 

 

 

 

납품실적 전무한 상태에서 풍력타워 수주 성공

 

풍력타워 사업 진출을 결심하면서 김 회장은()수주 후()투자를 원칙으로 삼았다. , 일단 클라이언트로부터 주문을 확보한 후 인건비가 낮은 해외 국가에서 풍력타워를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투자를 하기보다는 안정적인 물량부터 확보하겠다는 발상인데 현실적으로 봤을 때 실현 가능성이 거의제로에 가까운 사업모델이었다. 풍력발전기 업체에 풍력타워를 납품할 기회라도 얻으려면 일단 풍력타워를 만들어 납품한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김 회장은 납품실적은커녕 실제 만들어 놓은 타워 하나 없이 주문부터 받아내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심지어 김 회장은 풍력타워를 생산할 공장조차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공장을 지어야 하겠지만 물량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장을 짓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사업 초기엔 개도국 현지 협력업체와 손을 잡고 중산정공이 수주해 온 물량을 생산하고, 추후 수익이 나면 그 돈으로 자체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풍력타워를 생산할 나라로 중국과 베트남 두 곳을 두고 저울질하다 최종적으로 베트남을 택했다.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갖추기는 두 나라 모두 비슷했지만 질적 측면에서 봤을 때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공산화로 인해 우리나라와 수교가 단절됐던 베트남은 1992년 이후 양국 간 관계가 회복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1995년엔 미국과의 교류도 재개돼 대미(對美) 우회 수출기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풍력발전의 최대 수요처가 미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베트남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으로 보였다.

 

이후 중산정공은 베트남 현지에서 수주를 맡길 협력 업체 물색에 나섰다. 동시에 중산정공은 2002년 미국 LA에 영업 사무소를 설치하고 풍력발전기 업체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새로운 거래선을 뚫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납품 실적은커녕 공장도 없는 한국 기업이 무턱대고 수주부터 하겠다는 발상에 어떤 기업도 중산정공을 만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넘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 보내던 2003년 초,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세계 풍력발전기 시장 3위 업체인 덴마크의 NEG-마이콘(2004 1월 베스타스에 인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이전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 왔던 NEG-마이콘은 당시 뉴질랜드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 와중에 마침 중산정공이라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풍력타워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관심을 표명한 것이었다. 거리상 베트남에서 타워를 생산해 뉴질랜드로 운반하면 유럽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인건비와 물류비를 줄일 수 있어 비용 우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NEG-마이콘이 중산정공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접한 김 회장은 그 즉시 덴마크로 날아갔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미팅은 성사됐지만 정작 김 회장을 만나 본 NEG-마이콘 관계자들은 납품 실적도 전무한데다 자체 생산 기반도 없다는 사실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끈질기게 설득에 나섰다. 비록 풍력타워를 직접 생산한 적은 없지만 화력발전 타워를 제작한 경험과 다년간의 글로벌 오퍼레이션 경험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당장 자체 공장이 없다뿐이지 포스릴라마(한국 포스코건설과 베트남 국영기업 릴라마 간 합작사) 등 협력사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 부담은 크지만 성공만 하면 생산 단가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으니 한번 해볼 만한 도전 아니냐고 주장했다. 몇 개월 동안 김 회장의 끈질긴 설득에 반신반의하던 NEG-마이콘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개도국에 생산기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돼 NEG-마이콘은 2003 11월 중산정공의 손을 잡았다. 2004 4월부터 8월까지 뉴질랜드에 설치될 총 55기의 풍력타워 공급 계약을 중산정공에 맡긴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결국 CS윈드타워는 풍력타워 납기일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사는 2004 8CS윈드타워에 손해배상 청구를 해왔다.

 

사면초가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전환

 

수주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문제가 터졌다. 당초 생산을 맡기려던 포스릴라마에 대한 포스코건설의 투자가 중지되면서 포스릴라마가 풍력타워 생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이에 중산정공은 서둘러 베트남 국영기업 릴라마와 새롭게 생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릴라마마저 생산 능력 한계를 이유로 총 55기의 풍력타워 중 35기밖에는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결국 2003 12월 김 회장은 사재를 털어 베트남에 CS윈드타워( CS윈드베트남)를 설립하고 곧바로 공장 착공에 나섰다. 잇따른 돌발 변수로 인해 당초 자신의 계획보다 훨씬 빨리 공장 건설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납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는 상태에서 부랴부랴 공장을 짓다 보니 한쪽에선 공장을 짓고, 다른 한쪽에선 타워를 만드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졌다. , 한편에서 후판을 커팅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벤딩 작업을 위한 공장을 짓고, 벤딩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엔 다음 공정을 위해 용접 공장을 짓는 식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아슬아슬하게 타워 제작과 공장 건설을 병행하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까지 몰아쳤다. 이로 인해 마지막 공정 단계인 페인팅 작업을 위한 공장의 절반이 훼손됐다. 원래 페인팅 공정에선 페인트를 칠한 후 벌레 한 마리도 표면에 붙지 않도록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밀폐는커녕 아예 공장 지붕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설상가상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결국 CS윈드타워는 풍력타워 납기일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더욱이 릴라마에서 제작해 납품한 35기의 풍력타워 중 일부에 심각한 품질문제까지 제기됐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사인 베스타스(원래 계약 주체였던 NEG-마이콘을 합병한 회사) 2004 8 CS윈드타워에 총 223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해왔다. 납기 지연으로 인해 누적된 출항 지연금과 품질에 문제가 있는 채 납품된 풍력타워에 대한 손실금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당시 CS윈드타워는 초기 공장의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적자 규모만 150만 달러에 달한 상태였다. 베스타스 측의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중산정공과 CS윈드타워의 자산 규모는 두 회사를 합쳐도 1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해 손해배상 청구금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김 회장에게 변제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베스타스는그럼 공장이라도 통째로 넘기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서 김 회장의 협상력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그는잘못은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천재지변 탓도 크다. 3년만 시간을 달라. 이자 비용까지 포함해 반드시 갚겠다. 대신, 배상금을 갚으려면 먼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 우리를 한번만 더 믿고 수주 물량을 몰아달라. 그 수익으로 배상금을 한 푼도 빠지지 않고 모두 갚겠다고 설득에 나섰다. 이어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데 납기일이 늦어진 데에는 베스타스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신용장 개설을 늦게 하는 바람에 선적이 지연된 측면도 있으니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다 보면 손해배상금이 적정한 금액인지부터 논란이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양사 모두에 이익이 되지 않는 소모전이 될 게 뻔하다. 최선의 길은 우리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며 은근한 압력도 가했다.

 

 

김 회장이 이 같은 제안을 한 지 얼마 후, 베스타스의 소렌 할모(Soren Halmo) 사장이 김 회장에게 직접 회신을 했다. 베스타스 본사가 위치한 덴마크로 와서 직접 얼굴을 보고 담판을 짓자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지체 없이 덴마크로 날아갔다. 김 회장은냉랭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베스타스 사장의 반응이 의외로 호의적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할모 사장은 김 회장이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금 규모를 180만 달러로 낮춰주고 변제 기간은 5년으로 연장해주면서, 대신 향후 5년간 베스타스에만 타워 물량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다. CS윈드로선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베스타스가 이렇게 흔쾌히 김 회장의 제안을 수락한 데에는 베트남 현장에 파견됐던 베스타스 직원들의 보고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CS윈드타워가 베트남에 공장을 건설할 당시, 베스타스는 기술 지원을 위해 덴마크 본사 직원들을 베트남에 파견했었다. 이들은 천재지변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납기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CS윈드타워 임직원들의 헌신과 열정을 직접 목도했고,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본사 경영진에게 CS윈드타워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이 정도 성실성을 가진 회사라면 오랜 기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실무자들의 의견에 경영진도 마음을 연 것. 이처럼 드라마 같은 과정을 통해 CS윈드타워는 굴지의 풍력발전기 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음으로써 풍력타워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CS윈드의 전신 중산풍력 설립, 중국에 생산기지 구축

 

이후 김 회장은 2006 8월 현 CS윈드의 전신인 중산풍력(2007 8 ‘CS윈드로 사명 변경)을 국내에 설립했다.2 중국에 두 번째 생산기지 설립을 앞두고 한국에서 해외 생산기지를 관리할 수 있는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산정공의 경우 해외투자 부적격 업체로 분류돼 해외시장에서 풍력타워 사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산풍력은 그해 9월 중국에 CS윈드테크( CS윈드차이나, 2011 6월 사명 변경)를 설립했다. 베트남에 이은 두 번째 해외 생산기지였다.

 

CS윈드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고객 기반을 다변화하려는 목적이 컸다. 베트남 법인을 통해 베스타스와 공급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한 건 사실이지만 단일 고객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향후 안정적인 사업 운영과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S윈드타워는 베스타스와의 독점 공급 계약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고객선 다변화를 위해선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김 회장은 강력한 풍력에너지 육성 정책을 통해 시장 잠재력이 크고 인건비가 싼 중국 시장 진출을 결심한다. 비록선수주, 후투자원칙에는 어긋나지만 중국 시장이 세계 최대의 풍력자원 보유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다 베트남에서의 사업이 안정화되고 있는 만큼 중국의 경우엔 선투자가 적절하다고 봤다.

 

김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CS윈드테크는 베스타스 외에도 지멘스 윈드파워, GE에너지, 가메사(Gamesa) 등 유력 풍력발전기 회사를 잇달아 새로운 공급처로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지멘스(2007 8) 및 베스타스(2007 9)와는 각각 5년의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 중국 법인 역시 베트남 법인에서처럼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노력 가운데 중산풍력은 2007 12월 골드만삭스로부터 5020만 달러(한화 약 472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로써 CS윈드는 중국 시장 진출과 함께 거래선 편중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풍력타워 수출 대상 지역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다각화하는 성과를 이뤘다.

 

 

CS윈드베트남 공장 전경

 

 

북미 지역 풍력발전의 신()수요로 부상한 캐나다 공략

 

베트남과 중국 시장에 진출한 CS윈드는 2011년 캐나다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북미 시장에도 진출한다. CS윈드캐나다 역시 CS윈드베트남처럼 안정적인 수주 물량부터 확보한 경우다. 2010 1월 삼성물산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와 체결한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조성 사업(풍력발전 용량 1069, 이하온타리오 프로젝트’)에 풍력타워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확정 지은 후에야 생산기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CS윈드가 캐나다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데에는 중국 법인( CS윈드테크)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파트너사인 지멘스가 큰 도움이 됐다. 온타리오 프로젝트에 발전기 공급업체로 참가하기 위해 삼성물산 관계자를 만난 지멘스 측에서이 정도 대형 프로젝트에 성공하려면 CS윈드가 아니면 힘들다 CS윈드를 적극 추천했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은 CS윈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CS윈드의 풍력타워 업력 자체가 짧은 것도 있었지만 CS윈드가 그간 해외 사업에 집중해 온 탓에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국내 다른 풍력타워 업체와 온타리오 프로젝트에 공급할 타워 납품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멘스가 CS윈드를 고집하자 삼성물산은 지멘스에 CS윈드가 온타리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협력사인지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지멘스는 기꺼이 이 요청을 받아들여 파트너사인 CS윈드의 강점을 조목조목 분석한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 삼성물산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삼성물산과 양해각서를 맺었던 국내 풍력타워 제조업체가 돌연 프로젝트 참여 포기 의사를 밝혀왔다. 풍력타워 제조 경험이 적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타워를 생산한 경험이 많지 않아 온타리오 프로젝트 같은 대형 사업에 뛰어드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전까지는 상도의상 프로젝트 참여를 고려하고 있지 않던 CS윈드 입장에선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CS윈드는 캐나다 시장 진출 기회를 잡게 됐다.

 

2010 9, 캐나다 생산법인 설립을 위한 사전조사단이 온타리오 주에 첫발을 내디뎠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윈저시에서 무상 제공하는 부지에 공장을 신축하라고 CS윈드에 제안했다. 하지만 건물을 새로 짓는 건 CS윈드에 부담이 너무 컸다. 이에 따라 CS윈드는 신축 대신 윈저시에 있는 자동차 및 항공기 부품 회사인 밸리언트(Valiant)의 공장을 매입해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가격이 문제였다. 밸리언트가 매각가로 2300만 달러 이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CS윈드 협상 대표자로 나선 김성섭 현 CS윈드 대표(당시 CS윈드 부사장)윈저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선 800만 달러면 부지를 마련할 수 있다며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사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협상 전략이었다. CS윈드 공장 부지 선정은 윈저시 지역 경제와 밀접해 있는, 굉장히 예민한 사안이었다. 이를 간파한 김 대표는 윈저시 바깥에서 공장 부지를 확보하겠다고 압박하면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보고 이런 전략을 취한 것이다.

 

김 대표의 판단은 옳았다. 6개월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2011 2 CS윈드는 밸리언트 매입가를 1650만 달러로 낮춘 것은 물론, 윈저시 정부로부터 15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공장을 매입(CS윈드 부담금 1500만 달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더해 윈저시 정부로부터 공장 인근에 풍력타워 보관을 할 수 있는 대단위 부지를 49년간 무상 임대 받았고, 공장과 직접 연결되는 철로 건설 지원 약속까지 받아냈다. 김 대표는과거 베트남과 중국에서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해 운영한 경험이 협상에서 큰 도움이 됐다초기 공장 설립 및 운영 시 감내해야 할 합리적 비용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상대편을 설득해 나갔기에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어리스크를 최소화한 덕택에 캐나다 진출 후 2년여 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고 덧붙였다.

 

 

 

CS윈드캐나다 공장 전경

 

CS윈드 캐나다는 2011 11월부터 풍력타워 생산을 시작했다. 공장을 가동한 지 불과 4년도 채 안 됐지만 CS윈드캐나다는 현재 CS윈드 전체 매출액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2013년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제재 조치를 고려하면 비록 사후적 해석이긴 하지만 CS윈드의 캐나다 시장 진출은 회사의 명운을 가른신의 한 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력발전은 태양광 등 여타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마찬가지로 각국 정부의 정책 육성과 지원을 토대로 성장해 왔다. 이는 그만큼 다른 산업에 비해규제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 각종 보조금 혜택을 누리며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갑작스런 규제 변화로 인해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CS윈드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기 전 CS윈드는 중국과 베트남 법인의 생산 물량 상당수를 북미 지역에 공급해 왔었다. 하지만 2013 1월 미국이 자국 풍력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 관세(베트남 법인에는 51.54%, 중국 법인에는 57.67%)를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중국 및 베트남법인에서의 대미(對美) 수출이 전면 중단됐다. 엄청난 타격이었다. CS윈드베트남의 예를 들면 2012년 대미 수출 물량만 1200억 원에 달했는데 반덤핑 제재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2013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66%나 줄어들었다. 실제로 2011 CS윈드 전체 매출액은 1823억 원에서 2012 CS윈드캐나다 실적이 반영돼 3179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했지만 2013년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그해 2965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김 회장은만약 CS윈드가 2010년 캐나다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회사가 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 및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

 

 

 

CS윈드는 풍력타워 생산을 시작한 지 불과 5년여 만에 베스타스로부터 ‘Best Supplier Award(2009 6)’, 지멘스로부터 ‘Global Supplier Award(2009 10)’를 각각 수상했을 정도로 풍력타워 품질이나 납기 준수, 생산성 등 모든 측면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CS윈드가 고객사로부터 이런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베트남과 중국 등 개도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품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현지 생산근로자들의 용접 기술 역량 배가를 위한 교육 및 훈련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풍력타워는 대개 20∼30m 길이의 섹션(section) 여러 개를 이어 조립한다. 한 개 섹션은 길이에 따라 8∼36개의 스커트(skirt, 후판을 사다리꼴 치마 모양으로 자른 후 둥그렇게 말아 세로봉합용접[longitudinal seam welding]해 제작)를 원주용접(circumferential seam welding, 스커트의 원 둘레를 돌아가며 용접)해 이어 붙여 만든다. 또한 추후 타워를 조립할 때 섹션과 섹션을 연결할 수 있도록 섹션 양 끝부분에는 플랜지(flange, 단조 처리된 원형 이음새)를 용접해 붙인다. 이뿐 아니다. 타워 최하단부 섹션에 출입문을 만들거나 플랫폼, 사다리 등 타워 내부에 수많은 부품을 장착할 때에도 용접이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플랫폼을 고정하는 브래킷은 타워당 많게는 600개 정도 들어가는데 일일이 손으로 용접해야 한다. 이처럼 풍력타워에선 용접이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CS윈드의 첫 해외 생산기지인 베트남의 경우 설립 초기엔 숙련된 용접 기술자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체계적으로 용접에 대한 교육을 받은 숙련공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용접을 배웠거나 기초 장비를 다룰 줄 아는 수준에 그쳤다. 이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에도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제 멋대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용접 품질을 높이려면 전문가들이 정해 준 지침을 그대로 따라 진행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가령 용접할 때 적용할 전압과 전류는 얼마로 할 것인지, 한 번 용접할 때 걸리는 시간은 얼마로 유지할 것인지 등 정해진 지침을 그대로 따라 진행해야 불량률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 용접사들의 경우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할당된 작업량을 빨리 끝낼 욕심에, 혹은 지침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 편한 대로 작업하다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이에 따라 CS윈드베트남은 공장 한편에 용접훈련센터(WTC·Welding Training Center)를 세우고 작업자들의 역량 제고에 집중했다. 용접 경력이 있는 작업자들에게도 체계적으로 실무 교육을 다시 시킨 것은 물론이고 이론 교육까지 병행했다. 상황별로 용접 지침이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차근차근 가르침으로써, 왜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지를 작업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업무가 끝난 뒤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 가면서 따로 교육 시간을 마련했다. 강사들은 회사 내외에서 다양하게 충원했다. 이론 교육의 경우 베트남 기술전문대 교수를 초빙했고, 실무 교육은 현지 용접사 중에 능력이 뛰어난 용접사들을 강사로 세웠다. 국제용접엔지니어(IWE·International Welding Engineer) 등 글로벌 전문 자격증을 세 개나 갖고 있는 황규민 과장 등 천안 본사 직원을 베트남으로 직접 불러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양성호 법인장( CS윈드 전무)을 포함해 한국인 주재원들도 베트남 현지 작업자들과 함께 용접 교육을 받았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풍력타워 생산에 가장 중요한 용접에 대해 모른다면 현장 관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CS윈드는 용접 공정에서의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베트남 외 중국, 캐나다 등 각 생산법인마다 WTC를 설립해 현지 노동자들의 용접 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되 생산기지마다 숙련도 차이에서 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동화 수준 역시 높인다는 전략이다. 황규민 CS윈드 과장은자동화를 통해 작업자들에게 요구되는 기술 역량 수준을 최대한 낮출수록 새로 생산기지를 구축했을 때 공장 운영 정상화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숙련된 용접공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고 기초 용접 교육만 받은 작업자만으로도 무리 없이 생산 현장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3

 

또한 CS윈드는 ISO 제정위원으로 QMS(Quality Management System·품질관리시스템)의 세계적 전문가인 보르게 닐슨(Borge Nielsen)을 강사로 초빙, 품질관리를 위한 컨설팅도 받았다. 김 회장은말이 컨설팅이지 사실상 정신개조 교육이나 마찬가지였다매번 강사료로 10만 달러씩 지급해 가며 베트남 공장으로 초청하기를 수차례 거듭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을 포함해 CS윈드 전 임직원은 물론 부장급 이상 중간관리자까지 서울에서 베트남으로 날아와 현지 직원들과 함께 품질경영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교육을 받았다고. 3주 정도 집중 교육을 받은 후에는 배운 내용을 실제 기업 현장에 적용하고, 몇 달 뒤 컨설턴트인 닐슨을 다시 초청해 점검, 계속해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해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CS윈드는 풍력타워의 품질관리를 위해 반드시 체크해야 할핵심품질인자(CTQ·Critical to Quality)’ 세 가지를 정립해 이를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첫 번째 CTQ는 용접이다. 용접이 잘못되면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발생하는 진동에 의해 타워에 금이 가기 쉽고, 심한 경우 타워 자체가 넘어지는 등 치명적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페인팅이다. 풍력타워에서 페인트는 단순히 미관상 보기 좋게 만들려고 칠하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풍삭(風削)을 견딜 수 있도록, 도끼로 찍어도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코팅하는 게 페인팅의 목적이다. 이렇게 하려면 철판의 녹을 제거하는 블래스팅(blasting) 공정부터 표면 밀착도를 최대한 높여 일정한 두께로 균일하게 바르는 게 중요하다. 셋째, 편평도(flatness). 기본적으로 풍력타워는 각 섹션을 이어 붙여 조립한 후 맨 꼭대기에 육중한 터빈을 올려 발전기를 완성한다. 따라서 각 섹션마다 편평도를 맞추지 못하면 발전기를 지탱하기 힘들다. 양성호 전무는풍력타워를 제조하는 데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품질 관리가 필요하지만 이 세 가지만큼은 6시그마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CS윈드는 CTQ 관리를 위해 불량 발생 시 그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4M(Man, Material, Method, Machine)’ 기준에 따라 분석하는 시스템도 함께 구축했다. , 불량이 1) 사람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2) 자재의 문제인지 3) 공정 방법상 오류인지 4) 기계 불량인지로 분류해 그에 맞춰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불량 재발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양성호 전무는이전까지는 불량이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했다그러다 보니 똑같은 문제가 자꾸 발생해 불량률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4M 기준에 따라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를 분석해 들어가면서 불량률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 사람의 잘못(: 매뉴얼에 제시된 지침을 따르지 않고 용접)이라면 작업자를 불러서 재교육을 시키고, 철판이나 용접봉이 문제라면 자재 관리 프로세스를 점검했으며, 작업 방법의 구조적 문제(: 베벨링[beveling, 용접을 할 모재(母材)의 접합단 모서리를 일정한 각도로 비스듬하게 깎아 홈(groove)을 만드는 작업] 개선각도, 용접 시 적정 전압 등 가이드라인의 문제)라면 매뉴얼을 개선하고, 기계 불량이라면 기계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다 보니 불량 재발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적절한 인센티브와 진정성 있는 접근 통해 생산성 제고 및 의식구조 개선

 

CS윈드의 첫 해외 생산 기지인 베트남의 경우 설립 초기 현지 인력들의 생산성은 극히 저조했다. 지금은 한 사람이 충분히 담당하는 커팅 공정에도 초기엔 4명이 달라붙어 일을 했을 정도로 생산성이 낮았다. , ‘철판 운반수치 측정커팅 기계 조작스크랩(scrap, 커팅 후 남은 철조각) 청소등 크게 네 가지 공정 각 단계마다 한 사람씩 붙어 일을 했다. 벤딩 공정도 마찬가지였다. ‘철판 말기가용접(tack welding, 본용접을 하기 전 위치를 고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는 용접)→스커트 이동등 한 명이 해도 충분한 공정을 세 명이 달라붙어 진행했다. 처음 공장을 세웠을 땐 일단 사람을 많이 써서라도 타워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비효율이 있더라도 생산을 강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성 제고에 대한 니즈는 커져갔다.

 

CS윈드베트남 경영진은 현지 직원들에게 적절한 당근을 제시함으로써 작업자들스스로생산성을 높여가도록 했다. , 작업조마다 인원 수를 감축한 만큼 그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인센티브 형식으로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예를 들어, 4명이 하던 일을 3명으로 해내면 한 명치 봉급을 세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혁신 활동의 목표가 임금 삭감이 아니라는 점을 근로자들에게 분명히 인식시켜 베트남 직원들 스스로 생산성을 높여갈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처음엔 직원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작업효율을 높인 조에 약속한 포상이 주어지자 너도나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작업조 근무 인력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생산성과는 별도로 경영진의 골치를 썩인 건 현지 작업자들의 의식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설립 초기 베트남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는 것은 물론, 종종 고철이나 케이블, 공구 등 부품이나 자재를 훔쳐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경비와 작업자들이 결탁해 절도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 공안들과 협력해 공장 주변의 순찰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외부 제재와 감시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용접 기술이야 WTC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가르칠 수도 있고, 생산성 역시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지만 사람의마인드를 개조하는 건 억지로 바꾸려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2010 CS윈드베트남 법인장으로 취임한 양성호 전무가 베트남 생산 근로자들의 가정 방문을 시작한 건 바로 이 같은 고민의 결과였다.

 

 

양 전무는 법인장으로 취임한 직후 통역을 대동한 채 베트남 현지 용접사들의 가정을 일일이 찾아 다녔다. 그리고 용접사 부인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해 주며당신 남편은 우리 회사에서 정말 중요한 핵심 인재다. 부디 남편한테 잘 해줘라. 퇴근하면 안마도 좀 해주고, 바가지는 절대 긁지 말아달라. 우리 회사 핵심 인재인데, 집에서 기분 상해 출근하면 회사 업무에 큰 차질을 빚는다며 일일이 손을 잡고 부탁을 했다. 한국과 비슷한 가부장적 문화권인 베트남의 특성을 고려해 직원들의와이프들을 대상으로 가장의 권위를 살려주는 데 힘쓴 것. 양 전무는직원들 스스로 애사심을 갖게 하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우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 전무는 그렇게 자신이 법인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총 400여 명의 용접사들을 방문(당시 약 700여 명 되는 현장 근로자 중 60%)했다. 그의 진심은 통했다. 양성호 전무는가정 방문한 직원들을 다음 날 회사에서 만나면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다회사 대표가 주재원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을 방문해 주는 것도 드문 일인데 심지어 부인과 자녀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워주니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원래 공장 청소도 자발적으로 안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바닥에 철 부스러기 한 조각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깨끗한 공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절도 사례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처방을 하지 않으면

한국도 아닌 해외, 그것도 개도국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리더부터 솔선수범해 PIP(Productivity Innovation Project) 추진

 

CS윈드는 또한 2010년 이후 베트남, 중국, 캐나다 등 각 사업장별로 PIP(Productivity Innovation Project·생산성혁신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며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베트남과 중국의 경우 ‘500MH(Man-Hour)’라는 기치 아래 PIP를 추진했다. 이는 섹션 1개를 생산하는 데 최대 500MH까지 투입하는 걸 목표로 삼는 생산성 혁신 프로젝트다. 2010년 당시 CS윈드베트남 법인에서 섹션 1개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MH는 약 2000MH였다. 사실 CS윈드 입장에선 이 정도 수준으로도 사업하기에 지장은 없었다. 당시 유럽에 있는 경쟁 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600MH였지만 베트남 공장의 경우 인건비가 워낙 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유럽 업체들보다 더 효율적인 MH 수준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었다. 김 회장은실제로 컨설팅회사에 의뢰해 CS윈드베트남 공장의 설비 능력과 작업자들의 근무 행태를 6개월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근로자들이딴 짓안 하고 제대로 일할 경우 섹션 1개를 생산하는 데 최대 460MH까지 낮출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여기에 10% 완충을 둬 ‘500MH’로 목표를 잡고 생산성 혁신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500MH’ 프로젝트다.

 

CS윈드의 PIP는 생산기지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천안 본사에 있는 본사 직원들까지 동참하는 게 특징이다. CS윈드베트남의 경우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3개월 일정으로 ‘500MH’ 프로그램을 추진했는데, 이때마다 김 회장은 물론 본사 소속 임원과 각 부서 중간관리자 등 총 20∼30여 명이 베트남 공장에 3개월간 상주하며 PIP에 참가했다. 물론 이들이 타워 생산 작업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베트남 현지 근로자들이 500MH 달성을 위해 그날 목표로 할당된 작업량을 잘 소화하고 있는지, 작업자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며독려하는 일을 맡았다. 사무실에는 잠시도 들어가지 못했다. 아침 7시반부터 오후 5시반까지 하루 종일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과 함께했다. 매일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책을 강구해 다음날 반영토록 했다. 목표를 달성한 작업자에게는 한 달치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100달러를 포상금으로 줬다. 2011 500MH 프로젝트 기간 중엔 작업자들에 대한 포상금으로만 5만 달러를 썼을 정도다.

 

김 회장은한참 낮에는 기온이 35도 이상 올라가기 때문에 1리터짜리 물을 7병까지 마신 적도 있다말이 좋아생산성 혁신 프로젝트지 솔직히지옥 훈련에 가깝다고 귀띔했다. 스스로도지옥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 김 회장은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처방을 하지 않으면 한국도 아닌 해외, 그것도 개도국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중요한 건 현지인들에게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며자신들만 고생시킨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CEO는 물론 본사 임직원 모두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동참한다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전사적 차원에서 PIP를 추진한다고 말했다.

 

 

CS윈드캐나다 생산성혁신프로젝트(PIP) ‘40 DCT’

 

CS윈드캐나다는 ‘40 DCT(Dream Comes True)’라는 슬로건하에 지난해 4월 두 달간 PIP를 추진했다. 당시 캐나다 공장의 주당 섹션 생산량은 26개였는데 이를 4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였다. 불가능한 수치로 보이는 꿈과 같은 목표를 기필코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 이름도 ‘40 DCT’로 정했다. ‘자국공장 부품 구매법에 의해 캐나다 현지에서 생산한 타워에 대해선 높은 마진율을 보장해줘 주당 섹션 생산량 26개로도 충분했지만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도전적 목표를 설정했고 결국 이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도 천안 본사에서 김성섭 대표를 포함해 총 18명이 캐나다 현지 법인에 합류해 현지 생산근로자들과 함께 PIP에 동참했다.

 

 

도전 과제 및 향후 사업 계획

 

CS윈드는 2014 1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직후 공모가 과대 선정 논란 등으로 인해 주가가 급락했다. 심지어 악성 루머(: ‘캐나다에 법인은 있지만 실제 생산 설비는 없다’ ‘캐나다 공장이 노사분규로 폐쇄됐다)에 시달리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에 대해 김성섭 대표는 “CS윈드 캐나다는 온타리오 주윈저-에섹스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2015 올해의 사업 우수상 (2015 Business Excellence Awards)’ 시상식의 대기업 부분에서올해의 최우수 회사(the best Large Company of the year)’로 선정됐을 만큼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캐나다 법인과 관련한 루머는 근거 없는괴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여전히 CS윈드 주가는 상장 이후 한번도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밑돌고 있다.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실제 CS윈드의 2015년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684억 원, 317억 원을 기록, 작년 상반기(매출액 1757억 원, 423억 원) 대비 각각 4%, 25%가 줄어들었다. 중국 법인 매출 축소에 따른 공장 가동률 저하로 고정비가 늘어나면서 실적이 악화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제 CS윈드차이나의 올 상반기 가동률은 0.2%에 불과해 18100만 원 매출액에 당기순손실만 329700만 원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김성섭 대표는캐나다에선 2016년까지 1.6GW의 풍력발전단지 추가 건설이 예정돼 있어 향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중국 법인 역시 하반기에 약 170억 원 규모의 풍력타워를 생산해 영국으로 수출할 예정이어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CS윈드베트남은 최근 미국 상무부에서 덤핑 무혐의 판정이 확정돼 관세율이 다시 0%로 내려감에 따라 회복이 예상된다. 김 대표는미국 풍력시장은 전통적으로 CS윈드의 최대 시장이었다며 “덤핑 무혐의 최종 판정에 따라 그동안 중단됐던 대미 수출 재개로 베트남 법인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CS윈드는 향후 해상풍력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목표다. 김성섭 대표는해상 풍력의 경우 육상 풍력에 비해 훨씬 대규모 투자로 진행된다타워 단가가 커지는 만큼 수익성 역시 육상 풍력에 비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CS윈드는 지멘스 윈드파워와 손잡고 영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북해를 중심으로 해상풍력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영국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6 CS윈드는 영국 해상풍력 발전시장의 메인 사업자로 참여 중인 지멘스 윈드파워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영국 동부 지역에 해상풍력타워 공장을 신규 건설하기로 했다.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CS윈드는 유럽 해상풍력시장의 중심인 영국에 내년 중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2017년부터 지멘스에 해상풍력타워 납품을 시작한다.

 

 

 

덴마크 베스타스로부터 ‘2011년 올해의 공급업체상(Supplier of the Year Award 2011)’

수상한 CS윈드. (사진 왼쪽 김성권 회장)

 

시사점

 

불과 10여 년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풍력타워 제조시장에서 세계적인 시장 지위를 만들어낸 CS윈드 사례가 한국 기업들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업 시작 초기부터 글로벌 마켓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주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영전략에서는내수시장의 저주(Curse of Domestic Market)’라는 용어가 있다. 내수시장이 클수록 해당 국가에 있는 기업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속도가 늦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다. 한국 기업들을 보면 내수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하지 않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CS윈드는 풍력타워 제조시장 진출 초기부터 국내 시장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풍력타워 시장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무모할 정도의 수주 노력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CS윈드를 탄생시킨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최초의 수주를 받기까지 비록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후에 추가적인 수주를 받거나 혹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을 때 매우 우호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창조할 수 있었다.

 

 

둘째, 베트남이라는 생산기지를 단순한 저임금의 나라가 아닌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진출하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해당 국가의 낮은 인건비를 활용하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CS윈드는 낮은 인건비에 만족하지 않고 베트남 공장의 생산성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낮은 임금을 이용하려는 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근로자들의 역량 제고 활동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CS윈드는 장기적으로 해당 근로자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결국 공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역발상을 했다. 그리고 현지 직원들의 역량 제고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종업원들의 훈련 및 교육에 투자했다. 국내 많은 기업들의 임직원 가운데는교육이 과연 기업 성과를 올릴 수 있는가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종업원에 대한 교육 투자의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CS윈드는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창조적 사고를 활용하면 교육을 활용해서도 얼마든지 세계 최고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셋째, 끊임 없는 생산성 혁신 노력을 통해 진정한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CS윈드는 2010년에 풍력타워 제조에 필요한 시간을 500시간대로 단축하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CS윈드는 세계 최고라는 단어에 스스로 만족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혁신의 목표를 올리고, 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베트남 생산법인에서 축적한 노하우(know-how)를 캐나다 법인과 공유하거나, 혹은 반대로 캐나다에서 축적한 역량들을 베트남과 중국으로 이전하려는 노력들을 지속하고 있다. CS윈드가 매출액 기준으로는 아직 5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베트남, 중국, 캐나다, 한국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상당한 수준의 지식관리 체계(Knowledge Management System)를 구축하고,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CS윈드의 지식관리 노력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쟁력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창조하는 좋은 밑바탕이 될 것이다.

 

넷째, 한국인 경영자와 관리자가 함께 참여하고 마음을 교감하는 혁신활동을 통해 해외 근로자들의 진심이 담겨 있는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도 혁신활동에 대한 진정성 있는 참여를 유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CS윈드는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현지 근로자들로 하여금 회사의 생산성 제고 노력 및 혁신활동에 현지 근로자들의 가슴에서 스스로 우러나는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CS윈드가 이렇게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최고경영자와 한국에서 파견된 관리자들이 직접 혁신활동 및 교육에 참여하는 솔선수범 정신이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현지 법인장이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을 동반해 현지 근로자의 가정까지 방문하는 적극적인 교감활동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외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구실 중의 하나는 당연히 관습 및 문화적 차이다. CS윈드는 문화적 차이가 더 이상 실패를 대변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 기업들에게 증명해 주고 있다.

 

이방실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박남규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namgyoopark@gmail.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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