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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 턴어라운드

궁극의 소리로 이뤄낸 부활 ‘업의 본질’에서 진주 캐내다

김현진 | 175호 (2015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MP3플레이어로국민가전신화를 쓴 아이리버는 아이폰을 필두로 한 추격자들에 밀려 한동안 존재감을 잃었다. 새 경영진과 함께아이리버의 DNA’를 떠올리던 아이리버는 소리에서 업의 본질을 찾기로 했다. 이때부터 디지털 기술을 뛰어넘는 아날로그적 사고의 전환이 시작됐고,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을 일으키고자 한티어드랍(teardrop)’ 프로젝트는 불과 3년 만에고음질 포터블 오디오로 결실을 맺었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1.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경쟁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창조적 혁신의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2. 아날로그+디지털에 인간 중심의 창조적 사고를 더하는 등 정반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결합하는 창조적 사고를 한다.

3.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해 기존 프로세스를 바꿀 수 있는 혁신의 발판을 마련한다.

4.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적극적인 개방적 협력관계를 유지, 활용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혜령(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 씨와 유준수(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보스턴에서 싹튼 새 기적

2011 5, 구글북스 개발팀 본부가 자리 잡은 미국 보스턴 메사추세츠공대(MIT) 인근의 한 호텔. 정석원 마케팅실장(상무)을 비롯한 40여 명의 아이리버 직원들의 침소는 오늘도 객실이 아닌 호텔 1층 콘퍼런스룸이었다.

 

일주일에 3번은 기본. 두 달 남짓 계속된 밤샘 투혼 끝에 영혼은 날로 피폐해져갔다.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보스턴 중심을 가로지르는 찰스 강을 만날 수 있었다. 이맘때 쯤 찰스 강은 봄볕에 반짝이며 맑은 물결소리를 낼 터였다. 그러나 당시 아이리버 직원들에게 낭만 따위는 즐길 틈조차 없었다. 매일 새벽, 물끄러미 고개를 들면 만날 수 있던 새벽별이 오히려 친구처럼 느껴졌다. 보스턴은 이들에게달콤한 낭만이 아닌매서운 현실의 도시로 기억됐다.

 

1년여를 시도한 끝에 마침 내 뚫은 구글의 빗장 앞에서 사운(社運)을 건 도전을 시도하던 때였다. 아이리버는스토리라는 전자책 단말기를 제작하면서 구글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막상 시제품을 제작해 구글북스 관계자 앞에 들이민 순간, 이들은 갑자기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기대했던 스펙이 당시스토리의 개발 수준과 차이가 컸던 탓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장길에 올랐던 정 상무의 마음이 무겁게 짓눌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서울에 SOS를 쳤다.

 

“당장 현지에서 개발 보완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가능한 직원들을 끌어모아 보스턴으로 보내주세요.”

 

이렇게 서울 서초구 아이리버 본사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들과 아이리버와 LG디스플레이의 합작회사인 ‘L&I 일렉트로닉 테크놀로지1 의 엔지니어 등 총 4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구글의 주문은전자책 서비스 내용을 보완해 제품 출시 예정일인 717일까지 적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돌아섰지만 사실상 쉽지 않은 과제임이 분명해보였다. 콘퍼런스룸 한 구석에 의자를 붙여놓고 쪽잠을 자던 엔지니어들은 하나둘 지쳐가기 시작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자 소리에 민감해졌다. 같은 테이블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치는 타자 소리, 볼펜 굴리는 소리마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헤드폰을 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방해받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때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던 한 엔지니어가 헤드폰을 바로 노트북에 연결하지 않고 손바닥만 한 기계에 꽂은 뒤 음악을 듣는 장면이 포착됐다.

 

정 상무가 물었다. “이 물건이 무엇이기에 굳이 연결해서 듣는 거지?”

 

그 엔지니어는노트북에 탑재된 사운드 카드가 좋지 않아 디지털 사운드를 아날로그로 전환시키는 PC DAC(Digital to Analogue Converter)을 따로 구입해 연결해서 듣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이렇게 음악을 들으니 힐링이 되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의 체험을 전해들은 엔지니어들이 삼삼오오 몰려들며 청음을 요청했다. 정 상무가 듣기에도 확실히 그냥 노트북에 연결해 듣는 디지털 음원과는 음질 자체가 달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똑같은 제품을 주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마침 한국에선나는 가수다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던 때였다. 업무에 지친 이들은 당대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국내 가수들의 노래를 다운받아 이 기기를 통해 들었다. 현장에 실제로 있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정 상무는 이 제품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중국산에, 디자인 역시 볼품이 없었는데도 40만 원을 호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제품의속살에 호기심이 생긴 것은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한번 뜯어보자고 제안했다. 조심스레속살을 열어본 결과, 구조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실망스럽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에이, 수십만 원짜리 제품인데 이게 다야? 우리도 만들 수 있겠다.”

 

사실궁극의 소리에 대한 욕구는 아이리버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무엇이었다. 아이리버의 창업자인 양덕준 전() 레인콤2 사장은 늘궁극의 뮤직플레이어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로 휴대용 기기에서 하이파이 음을 구현하기는 어려웠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지 못한 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약속된 717일이 왔다. 미국 전역의 대형마트 타깃에서스토리HD’가 발매됐다. 300만 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놀라운 전자책이었다. 그러나스토리HD’는 아마존킨들에 밀려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킨들보다 해상도가 월등하게 좋은 제품이었지만 소비자는 기술력만으로 제품을 선택하진 않았다. 또 구글북스팀이 구글플레이팀으로 통합되면서 전자잉크 기반의 단말기보다는 영화, 음악 등을 재생할 수 있는 컬러화면 기반 태블릿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2의 기적을 바랐던 아이리버 직원들은 크게 실망했다. 일부 직원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채 회사를 떠났다.

 

그때는 몰랐다. 진정한2의 기적을 시도할 다른 영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벽 밤을 환하게 밝혔던 보스턴 호텔 콘퍼런스홀 한 구석에서 그들도 몰랐던 새로운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혁신의 DNA가 부활하다… ‘티어드랍프로젝트

2007년 아이리버를 인수한 보고펀드는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사장이 바뀌는 등 부침을 겪던 이 회사를 이끌어줄 적임자를 찾았다. 숙고 끝에 2011년 삼보컴퓨터 턴어라운드의 주역으로 꼽히는 박일환 대표가구원투수로 영입됐다. 23년간 삼보컴퓨터에서 근무한 박 대표는 해외영업, 기획 담당 등을 거쳐 총 7년간(2003∼2010) 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박 대표는 방향을 잃고 있던, 그러나 튼튼한 엔진을 갖춘 아이리버호의 새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당시 아이리버는열심히 하면 죽는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MP3, 전자사전, PMP 등 매출을 꾸준히 내는 제품들이 있었지만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MP3플레이어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국민가전을 만들던 브랜드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일반 가전이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목숨을 연명하자니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소생 가능성이 낮은 의식불명 환자에게 시행하는 연명치료나 다름없었다. 상황을 바꿀 만한 스마트한 전략이 필요했다.

 

박 대표가 취임한 첫 주말.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주말 임원회의가 열렸다. 박 대표는 임원들에게아이리버만 갖고 있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 무렵 박 대표 역시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와 각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TV 속 청중들은 가수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오버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데 정작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눈물까지 흘릴 일인지 의아해 하지 않나. 도대체 그 차이가 무엇이기에….’

 

박 대표는 현장에서 듣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아날로그로 소리를 듣는 것인데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디지털음인 MP3 파일로3 음악을 듣기 때문에 감동의 크기에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각의 기능을 가진 많은 전자기기들이 스마트폰을 통한 컨버전스(convergence·통합)를 외치는 시기, 트렌드를 거슬러 음악이라는 주제로 디버전스(divergence·분산)를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음악재생기기 자체는 중앙처리장치(CPU) 속도도 빨라야 하고, 해상도도 중시하면서 MP3 MP4가 되고, 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기(PMP·Portable Multimedia Player)가 되는 복잡 다난한 트렌드로 가고 있었지만 그 흐름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기기의 본질인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자는 취지였다.

 

마침 이때 박태환 선수 등 유명인들이닥터드레등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가 헤드셋을 낀 채 카메라에 앞에 서기 시작했다. 20대 사이에서 고가 헤드셋 구매 붐이 일어나는 장면을 박 대표는 무척 흥미롭게 지켜봤다. 고급 음질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적지 않음을 느낀 계기였다. 박 대표는 이러한 관찰을 배경으로고음질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임원 회의에서업의 본질이 거론되자 당시 회의에 참석한 정 상무의 눈이 번쩍 떠졌다. 구글북스 프로젝트로 미국 출장을 떠났던 팀이 틈틈이궁극의 소리를 내기 위한 기술을 이미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님, 사실 고음질 플레이어는 저희가 조금씩 준비하고 있던 아이템입니다. 콘셉트 자체는 이미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원가가 높아 사업성이 불투명한 터라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박 대표는 마음속으로유레카를 외쳤다. 그리고궁극의 소리를 내는 포터블 오디오 기기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는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부 중국 업체들이 이미 포터블 오디오 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지만 음질은매킨토시’ ‘보스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하이파이 전문 업체들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아이리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포터블(portable)’ 기술에 하이파이 음질까지 탑재하면 블루오션이 열릴 것 같았다. 박 대표는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4 으로는 중국 등 우리보다 훨씬 좋은 경쟁력을 갖춘 국가 또는 기업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혁신전략, 수요를 새롭게 만드는뉴 크리에이션없이는 미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부수를 걸기로 했다.

 

시장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겹친 시기였는데도 2007년부터 LP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것이 아날로그 감성의 고음질 수요가 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날 임원회의의 결론은궁극의 휴대용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날은 잠자고 있던 아이리버가업의 본질을 찾아 명예회복에 나선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전망이었다.

 

프로젝트명은 한 직원의 제안으로티어드랍(teardrop·눈물방울)’으로 정해졌다. ‘콘서트장의 관객들처럼, 기계로 전달되는 음악을 듣고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할 정도로 완벽한 기기를 만들자는 의지에서다. 개발 과정에서 소리를 체험해보던 엔지니어들이 음악 소리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감정 표현에 서툰공대생출신들이 흘리는 눈물은 사춘기 소녀들의 그것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좋은 소리와 음악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섰다.

 

 

 

 

[DBR Mini Box 2] 아이리버는 어떤 회사?

 

 

2000년대 초, 한국 벤처의 신화로 불렸던 아이리버는 MP3 파일과 일반 CD가 동시에 재생될 수 있는 MP3플레이어를 출시하면서 혁신의 역사를 새로 썼다. 당시 아이리버의 MP3플레이어는국민가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수출 담당 이사였던 창업자 양덕준 전 사장은자유롭게 살기 위해삼성 임원 직함을 던지고 1999 120일 레인콤을 창업했다. 직원 7, 자본금 3억 원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출범 당시 레인콤의 주 사업 분야는 비메모리 반도체칩 판매였다. 레인콤은 CD 타입 MP3플레이어에 들어갈 칩을 판매하기 위해 기존 가전 제조사들에 영업을 펼치던 중차라리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자고 결심한다. 비메모리칩의 역량에 대한 기존 가전기기 업계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가전 회사로 탈바꿈하게 됐다. 2000 7월 레인콤은 국내 판매법인인 ㈜아이리버를 설립하고 그해 11월 멀티코덱 방식의 MP3 CD플레이어 ‘iMP-100’을 개발, 출시한다. 이어 2001년에는 MP3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자체 브랜드가 없었던 아이리버는 초기에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당시 미국 최대 디지털기기 생산업체인 소닉블루와 계약을 맺고리오볼트(RioVolt)’라는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이후 소닉블루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2001 12, 해외시장에서도아이리버라는 독자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i  이후 3년 만에 레인콤은 소니의워크맨이 대세였던 세계 시장을 MP3플레이어라는 새로운 무기로 재편하게 된다.

 

 

도전 정신은 다양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업계 최초로 시행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살 때 당시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똑똑해질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이후 3∼4년 후에는 업계 전반에 펌웨어ii 업그레이드 룰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1년 매출 859억 원, 영업이익 131억 원을 기록한 레인콤은 이후 엄청난 속도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서 2004년에는 매출 4862억 원, 영업이익 609억 원을 기록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레인콤은 2003 12월 당해 최고 공모가인 47000원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상장된 주식은 다시 한 달 만에 주당 124500원까지 오르는 엄청난 상승폭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추격이 본격화된 2005년부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특히 애플아이팟의 저가 공세는 레인콤이 50% 이상이었던 국내 시장 점유율(2004년 기준) 1년 만에 31%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iii 이러한 상황에서 2005년 초 아이리버는 미국 포르노 배우들이 사과를 씹어 먹는 광고를 내보내며 애플에 정면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의 등장과 아이팟미니시리즈를 통한 가격 경쟁력 등으로 아이팟이뮤직 생태계’를 완성해 나가면서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다. 뒤이어컨버전스의 집합체라 할 만한 아이폰이 등장하자 전세는 이미 역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 결과 레인콤은 2005년과 2006년 각각 222억 원, 668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2006 12, 보고사모투자전문회사(보고펀드) 430억 원을 투자해 레인콤의 지분 40%를 확보하면서 레인콤의 최대 주주가 됐다.

 

 

2009년 레인콤은 10년간 쓰던 상호를 ㈜아이리버로 변경하고 새 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내지 못했다.

 

 

2011년 박일환 대표가 선임되면서 포터블 하이파이 오디오아스텔앤컨으로 사업의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이후 2014 8 SK텔레콤은 보고펀드로부터 약 295억 원에 아이리버 지분 39.27%를 인수했다. SK텔레콤 측은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스마트 앱세서리(스마트폰 주변기기)’ 사업 확대에 아이리버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리버는 인수합병과 아스텔앤컨의 성장세에 힘입어 지난해 6년 만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흑자를 냈다.

 

 

 

 

 

 

 

 

현재 아이리버의 R&D연구소를 총괄하는 백창흠 상무는 음악 취향까지 바뀌었다. 90학번인 그는 원래 감광석, 동물원, 여행스케치류의 대중가요를 좋아했다. 그러나 음 테스트를 위해 전자음이 거의 배제된 아날로그 음들을 주로 듣다보니 자연스레 고전적인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됐다. 그는 뒤늦게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바하 등 천재 작곡가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연구팀은 자신들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인 기기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티어드랍’이라는 프로젝트명에는 또 다른 숨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한때 한국 벤처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혔다 쇠락의 길을 걸으며 눈물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한때 270(2005)에 육박했던 직원 수는 부침을 겪으며 2011 126명으로 줄었다.5 현재 아이리버에는 각각 마케팅과 R&D를 담당하는 정 상무와 백 상무를 비롯해 약 10여 명의 초기 멤버가 남아 있다. 이들은 과거의 영광과 시련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

 

비장한 이름 때문인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리버 직원들의 마음가짐 또한 특별했다.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당위감으로 이들의 심장이 다시 한번 뛰기 시작했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의 브랜딩 작업

고가의 포터블 하이파이 기기의 타깃 소비자는 음악, 그중에서도 고음질의 하이파이 음악을 즐기는 전문가나 애호가였다. 그러나 고가의 헤드셋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을 했듯소리의 맛을 잘 모르는 대중들도 신규 소비자로 끌어들일 여지가 적지 않았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한 새로운 브랜딩 작업이 절실했다.

 

하지만 한때 MP3의 대명사였던아이리버이름으로 아날로그 하이파이 오디오 사업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도요타의 고급 세단렉서스처럼 회사명을 뛰어넘는 마케팅이 필요했다. 내로라하는 컨설팅업체나 브랜딩업체에 외주를 줬다면 훨씬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이었지만 적자에 허덕이던 아이리버가 감당하기엔 벅찬 비용이었다. 알음알음 이재옥 도머스파트너스 대표를 소개받았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애니콜, 신세계백화점, OB맥주 등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설계한 브랜드 전문가다. 박 대표는 이 대표를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리곤 솔직하게 고백했다.

 

“궁극의 소리를 내는 포터블 오디오 기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이 타깃입니다. 그런데 돈이 별로 없습니다.”

 

사업계획을 들은 이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아이리버를 심정적으로 지지해 왔다 2012 1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를 투자해 브랜딩을 돕는 재능기부를 자처했다. 이 대표는 티어드랍 프로젝트의 태스크포스팀장으로 활동하며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회의실 한쪽 벽에는 브랜드를 표현하기 위한 키워드를 적은 포스트잇과 관련 이미지들이 빼곡히 쌓여갔다. 아이디어 보드에는 유니클로 진부터 캔버스 운동화, 최고급 양주, K, 박태환 등 연관성이 있을 법도, 또 전혀 상관이 없을 법도 한 사진과 단어들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1000개에 걸친 후보들 사이에서 티어드랍 팀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브랜드명은아스텔앤컨(Astell&Kern)’. ‘아스텔은 헬라어로 별(star), ‘은 독일어로 중심부를 뜻했다. ‘음악의 새로운 중심이 돼 시장을 이끌어나가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이름이다.

 

브랜드 이니셜이기도 한 알파벳 A는 로고로 활용하기에도 적합했다. 오케스트라가 음을 맞추기 위해 튜닝을 할 때 수십 개의 악기가 기준음으로 삼는 음이 A()이다. ‘음의 주파수(진동 수) 440(국제 표준)로 가장 멀리까지 전달되는 음으로 알려져 있다. 전화기 수화기를 들었을 때뚜뚜뚜하고 나는 신호음이나 갓난아이가 급박하게 엄마를 부를 때 나는응애응애소리가 모두음의 주파수에 해당된다. 누구나 식별하기 쉬워 편리하거나, 때로는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음이 모두음이란 뜻이다. 다른 음들에 비해 왜곡이 적어 사람들 사이에 가장 객관적으로, 또 멀리 들리는 음의 기준을 나타내는 A는 소리의 기준이 되고 싶어 하는 아스텔앤컨의 비전과 꼭 맞아떨어졌다.

 

아스텔앤컨의 모토는 콘서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를 그대로 음향기기로 재생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무손실 음원을 그대로 재생하는 기기를 개발해야 했다. 무손실 음원은 음악을 손실 없이 그대로 저장한 고음질 음원을 뜻한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원음 수준인 24비트, 192킬로헤르츠(k)를 구현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이 건반에 닿는 소리, 가수가 숨을 고르기 위해 조심스레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구현해 최대한 아날로그적인 음을 되살리는 게 목표다.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음원은 MP3 형식이다. 압축 코덱 기술의 발달로 16비트, 44k㎐의 형태를 갖추게 됐지만 용량은 CD 대비 10%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MP3 CD에 녹음된 가청 주파수 외의 소리가 깎여나가면서 음질이 크게 악화됐다.

 

현재 스튜디오에서 4분짜리 노래 한 곡을 녹음하면 138∼350메가바이트(MB)가 된다. 이것을 CD로 줄이면 40MB가 되고 이걸 다시 MP3로 만들면 압축률에 따라 3MB까지 줄여서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작은 소리 정보들이 소실되고 풍성한 음질을 잃게 된다.

 

가수나 작곡가들은음악이 녹음실에서 만들어질 때는 풍성했던 음질이 MP3 형식으로 변환되면서 크게 왜곡된다제대로 된 소리를 굳이 나쁜 소리로 변환시키는 꼴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에 아이리버가 주목한 것이 바로 저음질의 MP3를 넘어설 고음질 음원(MQS) 재생기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MQS파일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음원 파일 원본을 그대로 응축해 음원 손실이 거의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디지털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음을 잘게 쪼갤수록 원음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데 MQS파일은 CD 대비 500∼1000배가량 더 잘라 기록한 음원이기에 음질이 3∼4배 이상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디테일의 미학아날로그의 벽에 부딪히다

브랜딩과 함께 동시에 진행된 기술 개발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박 대표는시간을 거슬러 올라 티어드랍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1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디지털 전문가인 연구팀은 객관적인 측정치만 좋게 나오면 소리 자체도 좋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CPU(중앙처리장치)의 경우 1기가헤르츠()6 보다 3㎓가 좋은 것처럼 숫자가 평가의 잣대가 되는 일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는디테일의 미학그 자체였다. 정량적 수치로만 평가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했다. 핵심은 음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생해 낼 수 있는가였다.

 

소리의 크기(dynamic range)를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했다. , 피아노의 예를 들면 건반을 얼마나 강하게 누르는지, 약하게 누르는지에 따라 톤이 달라지고 이것이 감동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통 가정에서 쓰는 거치형 오디오에 담을 수 있는 다이내믹 레인지는 80(데시벨) 안팎이다. MP3플레이어는 90㏈을 넘지 않는다. 소리의 측정 방식은 로그함수식이어서 3㏈만 올려도 소리의 크기가 두 배가 된다. 이러한 수치를 끌어올려 스펙만 맞추면 오매불망 기다리던궁극의 소리가 날 것으로 착각했다.

 

중간 테스팅 결과는 좋았다. 뭔가물건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모두가 설레었다. 그러나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다.

 

불가능한 고지로 여겨졌던 110㏈까지 스펙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청음을 했던 개발자들은 머리를 둔탁한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개발 중간 단계에서 들었던 미완성품에 비해 소리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정 상무는지금까지삽질만 한 게 아닌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게 아닌지 멘붕(멘탈붕괴)이 왔던 때라고 기억했다. 스펙이 좋다보니 투명도(transparency)는 좋았다. 미세한 소리마저 다 들릴 정도였지만 하모니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들은 이 경험을 계기로 숫자로만 말할 수 없는 아날로그 기술의 본질에 대해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한귀동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행히 박 대표를 포함한 연구진은밝은 귀를 갖고 있었다. 박 대표는 과거 미국 주재원 시절 오디오 기기 풀세트를 갖추고 집에서 음악 감상을 할 정도로 음악 마니아였고, 직원 중에도 디테일한 음을 감별해내는 귀를 갖춘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진공관과 스피커를 적용해 소리를 머리로 학습하고 가슴으로 체득한 끝에 이 정도면 개발 취지에 비춰 부끄럽지 않은 상품이다 싶은 시제품이 완성됐다.

 

박 대표는 제품 출시에 앞서 시제품을 테스팅하던 중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했다. 한 커피전문점에서 우연히 뉴에이지 뮤지션 마이클 하퍼의 레퀴엠 앨범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흐른 것이다. 누가 볼 새라 황급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지만 들뜬 감정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AK100은 이후 진화된 버전에 비하면습작에 불과했지만 마음을 흔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티어드랍 프로젝트가 빛 좋은 개살구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각종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2012 1010, 첫 제품인 AK100을 시장에 선보였다. 소비자 판매가는 개발 초기에 책정했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인 698000원에 정해졌다. 1년 남짓 되는 짧은 시간에 부활의 첫 페이지를 완성한 것이었다.

 

많게는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다른 하이파이 오디오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MP3플레이어를 듣던 일반 소비자를 유인하기엔 비싼 편이었다. ‘이 가격에 과연 팔릴까회사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발팀은한 달에 300대만 팔아도 좋겠다며 큰 기대를 걸지 않으려 애썼다.

 

뚜껑을 열고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첫 달에 3개월치 예상 판매 물량을 합친 만큼의 주문(1000)이 들어왔다. 일본, 중국 등 해외시장의 반응도 뜨거웠다. 부피가 큰 고가의 음향기기로만 듣던 MQS파일을 휴대전화보다 작은 사이즈의 포터블 기기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소비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같은 달 27일 일본에서도 아스텔앤컨이 출시됐다. 소리에 관한 한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소리의 종주국일본에서 헤드폰 박람회를 소개하는 팸플릿 표지에울트라손’ ‘젠하이저등 명품 브랜드와 함께 아스텔앤컨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첫 출시 당시 소개 자료는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만 준비했지만 각국 매체나 소비자들의 자발적 번역에 힘입어 서구 매체에도 빠르게 소개됐다.

 

초기 물량이 소진되면서 해외에서 선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진 아스텔앤컨의 보디(body)는 국내 공장에서 수공 작업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엔지니어들도 신이 났다. 아이리버 출범 초기, 생산 물량을 대기 위해 사무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생활했던 그때 그 시절 생각이 났다. 품질 및 생산공정관리 직원까지 합쳐 현재 40명 수준인 R&D연구소 내부에서 레인콤 출범 초기인 2001년 입사한 연구원은 4명이다. 당시 20∼30대 초반이었던 이 직원들은 어느덧 중년에 가까워져 스티로폼을 깔고 잘 만큼의 체력은 받쳐주지 않게 됐지만 대신 회사 앞 여관을 공식 숙소로 정하고 아스탤앤컨을 위한 밤샘 연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티어드랍’ 프로젝트의 첫 번째 성공작 탄생. 잠자던 혁신의 유전자를 일깨운 결과였다.

 

 

 

궁극의 소리를 만들어라-AK 시리즈의 탄생

아이리버 개발팀은 AK100에 만족하지 않았다. 좀 더 본질적인궁극의 소리를 탐험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다행히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디지털 파일을 아날로그 파형으로 바꾸는 것은 아스텔앤컨의 핵심 기술이었다. 기존의 고급 하이파이 업체 관계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에 용기 있게 도전한 셈이었다.

 

잊혀졌던 한국의 한 작은 회사가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기존 고급 오디오 업계 관계자들이 먼저 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특히디지털 시대 탓에 소외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며 아날로그의 대가들이 발을 벗고 나섰다.

 

소리를 듣는 데 있어 탁월한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골든이어(golden ear)’가 차례로 도움의 손길을 내뻗으면서 아스텔앤컨의 소리는 한 단계씩 진화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박 대표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이 중 하나는 일본인인 고() 카네모리 타카이 씨7 . 일본 프리미엄 음향기기 브랜드파이널 오디오 디자인의 창업자였던 그는 AK100을 접한 뒤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서 그는 화이트보드에 자신의 추억과 그 추억에 섞인 특급 경험들을 쉴 새 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40년간 아날로그 기술로 오디오를 만들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들려준 것이다. 이후 그는 박 대표와 친구가 됐고 틈날 때마다 물리학과 심리학, 그리고경험학이 더해진 얘기들을 들려줬다.

 

카네모리 타카이 씨는 소니에서 오디오 비즈니스 부문을 총괄하며 슈퍼오디오시디(DSD)를 개발한 요시히사 모리 씨를 소개해줬다. 박 대표는 모리 씨에게 노력만 하면골든 이어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후천적인 것만은 아니다.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천재라도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20년은 들어야소리 장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생 소리를 듣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소니에 입사했다는 그는 입사 후 회사의 결정에 따라 바로 오스트리아로 보내졌다. ‘라이브 클래식 공연을 따라다니며 소리를 기억하고 오라는 미션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아날로그 음이라는 심오한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이엔드 스피커계의 마이스터로 꼽히는 유국일 메탈사운드디자인(MSD) 대표도 은인이 돼줬다. 유 대표는 이재옥 대표의 손에 이끌려 우연히 AK100 출시 현장에 참석했다 아스텔앤컨과 인연을 맺게 됐다. 유 대표는 1억 원에 육박하는 소리 측정기도 감별해내지 못하는 소리를 판별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아스텔앤컨을궁극의 소리로 튜닝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유 대표가 만든 PRO EQ가 내장된 AK120 2013 5월 출시됐다.

 

 AK100의 다음 버전인 AK120은 내장 메모리 용량을 2배로(32GB에서 64GB) 늘리고 제품의 세로 길이를 10㎜ 더 키웠다. ‘포터블 기기의 강점을 살려 더 컴팩트한 모델을 개발하지 않은 것은 핵심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크기는 다소 양보하더라도 좀 더 나은 소리를 원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2013년 미 <월스트리트저널>올해의 주목할 IT’ 기기 중 하나로 아스텔앤컨을 선정했다. 같은 해 영국의 오디오 전문 잡지 <사운드&비전>포터블 뮤직 플레이어가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뮤직 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보냈다.

 

아스텔앤컨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출시된 AK240은 특히 해외 미디어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뉴욕타임스> 2014 2그동안 숱하게 나온 홈시스템을 능가하는 포터블 플레이어라고 평가했다. 오디오 마니아 커뮤니티헤드-파이(Head-Fi)’현재 오디오 시장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는 플레이어라고 평하기도 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일본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도 AK240이다. 정 상무는일본 오디오쇼에 참석해보면 AK240을 대놓고 꺼낸 채 들고 다니는 일본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저가의 중국산 제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반드시 주머니 속에 넣은 채 청음하는 것과 비교되는 한 장면이라고 소개했다.

 

업계에선 어느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아날로그 세계를 정복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AK240의 외관은 알루미늄 계열인 두랄루민 소재로 제작하는데 외부 재질을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꾼 모델을 준비하면서 전문가들에게 청음을 요청하자소리가 다르게 들린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연구소 측은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완전히 같은데 소리가 달라졌을 리 없다고 반박했지만 실제로 면밀히 소리를 들어보니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제품 표면의 전도성 차이로 이 같은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연구팀을 긴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아이리버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주거 문화 및 라이프스타일의 특성상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비해 포터블 제품의 수요가 낮은 서구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었다. 주거공간이 상대적으로 넓고, 집에서 편안히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서구 소비자들은 AK 포터블 제품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동을 거치형 오디오 기기에서도 느끼고 싶어 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CES 2015’에서는 아스텔앤컨의 첫 번째 거치형 모델인 AK500N이 베일을 벗었다.8 이 제품은 영국의 오디오 전문지 <왓하이파이>로부터 ‘Stars of CES 2015’ 상을 수상했다.

 

2월 국내에 정식 출시된 이 제품의 혁신 포인트는 전원 공급 중 발생하는 전기 신호 노이즈를 막기 위해 내장 배터리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다. 220V, 110V를 외부 전원에 꽂는 순간 60㎐ 정도의 외부 노이즈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음악을 재생할 때는 외부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 내부 배터리를 가동하고 음악을 끈 뒤에는 스위치를 다시 돌려 외부 전원으로 충전이 되게 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최고급 오디오를 듣는 마니아의 귀는 회를 한 점 먹고 이 생선이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를 구분해내는 미식가 수준을 넘어 언제 어느 바다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인지를 감별해낼 정도로 예민하다. 그들은 뮤직 디바이스 액정에 화면이 뜰 때와 뜨지 않을 때조차 미세하게 소리가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해 낼 정도였다. 내장 배터리 설계는 이러한 마니아를 위한 장치였다. 네트워크 오디오 플레이어 ‘AK500N’은 아스텔앤컨이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중 가장 비싼 1400만 원에 책정했다. CD도 직접 재생하는 것보다 리핑(ripping)9 후 재생하는 것이 소리가 더 낫다는 판단하에 리핑 소프트웨어도 별도로 제작했다.

 

아스텔앤컨은 현재 지나치게 고가에 형성된 오디오 시장을 정상화시켜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나만의 리그를 펼쳤던 기존의 고가 오디오시장이 아스텔앤컨의 등장에 긴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보스’ ‘매킨토시등 전통적인 오디오의 강자들은 디지털 시장을 어려워한다. 별다른 혁신이 없었기에 약 20년간 큰 부침 없이 20조 원 규모의 시장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신규 소비자가 유입되기보다는 마니아 중심의 소비자가 그대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아이리버의 목표는 이 같은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기준 기기로 자리 잡다

정 상무가 아스텔앤컨이 고급 오디오 시장에 안착했음을 확인한 계기는 오디오 쇼에서였다. 고급 하이파이 시장은 범용성이 높은 소비자 가전 시장과는 완전히 달랐기에 기존 마케팅, 유통 공식을 답습할 수는 없었다. 첫 제품 출시 후 지난 30개월간 영업팀과 마케팅팀이 주력했던 일은 헤드폰, 이어폰 전시회, 오디오 쇼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참여한 전시회만 50여 곳에 달한다.

 

소리로 승부를 거는 하이파이 오디오 업계에서 최선의 마케팅은 직접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다. 정 상무는 ‘AK100’ 출시 직후 참석한 첫 해외 헤드폰·이어폰 쇼에서 대부분의 업체가 자사의 헤드폰 및 이어폰을 아이팟에 연결해 듣게 하는 모습을 봤다. 자사 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한 기준기기(reference device)로 아이팟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딱 1년 후. 같은 전시회를 찾은 정 상무는 아이팟을 사용하던 업체들이 일제히 기준 기기를 아스텔앤컨으로 교체한 모습을 봤다.

 

자사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많이 판매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소리를 내는 기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포터블 음향기기로 이들이 아스텔앤컨을 선택한 것이다.

 

JH오디오의 제리 하비(Jerry Harvey)로부터 전시회 때 아스텔앤컨 플레이어를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해외영업팀 직원으로부터 이 요청을 전달받은 정 상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운드 엔지니어 출신인 제리 하비는 인이어(In-Ear) 모니터 이어폰을 발명한 헤드폰·이어폰 업계의 대가로 현재 미국 뮤지션의 절반 이상이 그가 만든 이어폰을 쓴다. 최고의 전문가도 인정할 정도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생각에 정 상무의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비 대표는 이후 아이리버 본사를 직접 방문하는 등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아스텔앤컨을자사 제품의 성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로 표현하기도 했다.

 

‘음원으로 승부를 건다는 초심으로 돌아온 점과 혁신의 DNA를 꺼내든 점, 최고급 전략을 구사한 점 등은 실제 아이리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2013년 약 80억 원에 달했던 영업적자는 지난 해 약 15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전환되며 턴어라운드의 기틀이 됐다. ( 2) 전년 대비 매출은 다소 줄었지만 수익성이 우수한 제품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SK텔레콤의 인수 호재까지 맞물리면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적개선은 아스텔앤컨이 견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2011년 매출에서 약 19%를 차지했던 전자사전은 지난해 약 6%로 줄어든 반면 하이파이 오디오 부문은 2012년 약 18%에서 2014 54%로 크게 뛰어올랐다. ( 1)10

 

 

 

‘독한 운명혁신으로 승부하다

세계 오디오 시장에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한 아스텔앤컨의 다음 도전 과제는 청음을 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거치용 제품이 출시되면서 비용 문제가 대두됐다. 스피커 등 관련 장비를 가지고 해외 오디오쇼에 참석하려면 거의 작은 방 한 개 분량의 짐을 매번 바리바리 싸서 이동해야 했다.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들고 효율은 떨어진다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전 세계 주요 국가에 상시 청음 공간을 설치하자는 비전을 세웠다. 음악이배경이 아닌주인공’이 되게 하려는 시도로 장기적으로 전 세계 20여 개국에 관련 공간을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 뱅앤울룹슨처럼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청음 공간을 운영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무료 이용 시설이다 보니 오히려 소비자들이 이용하기에 눈치가 보이고 이용 비율이 떨어지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이에 소정의 입장료를 부과함으로써 당당하게 사용하게 한다는 게 아스텔앤컨이 세운 원칙이다. 소리의 경험은 일단 일정 수준에 길들여지면 하향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리의 질에 서서히물 들여가게 하려는 전략이다.

 

 

 

 

[DBR Mini Box 1]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 인터뷰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사진)는 엉뚱하게도아스텔앤컨을 알면 불행해진다는 말로 인터뷰 포문을 열었다. 베이스기타의 대가 앤서니 웰링턴에 따르면 인식(awareness) 4단계가 있는데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지 못하는(unconscious, not knowing)’ 단계엔 욕심이 없어 행복했던 인간이내가 뭘 모르는지 아는(conscious, not knowing) 단계에 가면 부족한 점을 깨닫게 돼 불행해진다는 설명이었다. 웰링턴은내가 알게 됐음을 인식하는(conscious knowing)’단계에서조차 인간은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더욱더 지식을 쌓아야겠다고 욕심을 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감을 만족할 수 있는 시기는내가 알게 됐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아지경의 경지(unconscious knowing)’.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몰두하던 일을 진정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아스텔앤컨이 제공하는 고음질의 세계 역시 이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부터 좀 더 좋은 소리를 찾고 싶은 생각에 불행해진다는 역설적 의미라며아날로그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하이파이 오디오 세계에 한번 발을 담근 순간 마지막 단계인 무아지경까지 이르러야 하기 때문에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리버에 합류하기 전부터도 이 회사의 행보에 항상 관심을 가져왔다는 박 대표는앞으로 아이리버를혁신적인 뮤직 컴퍼니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음질 플레이어라는 어려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아이리버가 갖고 있는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조화시키는임베디드 솔루션(embedded solution) 능력이다. 다양한 플랫폼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셈인데 이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 의외로 많지 않다. 또 하나는 과거 MP3플레이어나 최근 출시된 제품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에 의해 검증된 디자인 능력도 출중한 편이었다. 이러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다티어드랍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됐다.

 

 

세계 시장에 아스텔앤컨을 선보일 때

과거 MP3 신화를 일으켰던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이 도움이 됐나.

확실히 처음 들어본 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아날로그 기술로 승부를 거는 고급 오디오 시장에서 디지털 기술로 각인된 기업이 새롭게 도전했다는 점은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첫 제품인 AK100을 선보인 직후까지도과연 이렇게 작은 기계에서 좋은 소리가 나겠냐며 콧방귀를 뀌던 전문가들이 실제 청음 이후이런 기술이 가능하다니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결국 소리 자체가 가장 큰 경쟁력이 됐던 셈이다.

 

 

고음질 포터블 기기 시장은 기존 거치형 모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적긴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추격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소니의 ‘NW-ZX2’를 비롯해 아이바소 ‘DX90’, 하이파이맨 ‘HM-901’ 등이 후발주자로 등장했다.

 

똑같은 피아노,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고 해도 소리가 다르게 들리듯 아날로그 세계에서 경쟁할 때의 장점은 서로 똑같은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차별화된다는 점이다. 또 아이리버는 아날로그 전문 기기 업체들이 갖추지 못한 월등한 소프트웨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날로그에 대한 이해도와 디지털 기술을 겸비한 경쟁자는 다행히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퍼스트무버로서 우리의 경쟁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전 모델의 임계점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제는 완성도를 어느 정도는 갖춘 상황이라 디테일의 영역에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아이리버의 비전은 무엇인가.

뮤직 플레이어를 만드는 기업을 넘어서뮤직 컴퍼니가 되는 것이다. 음악은 감동을 주는 것을 넘어 사람을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김광석의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마지막 부분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쇼팽의 피아노 소곡 4번과 놀랍게 닮아 있다. 이 소곡은 남편이 먼저 떠나간 아내의 무덤에서 부르는 노래다. 음악이 시대와 장르를 넘어서며 공감대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뮤직 컴퍼니로서 아이리버가 할 일이 앞으로도 많은 것 같다. 음악을 듣는 방법에는 무의식적으로 듣는 히어링(hearing)과 경청해서 듣는 리스닝(listening)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스텔앤컨 같은 고음질 기기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가수의 숨결, 연주자의 손끝에서 튕겨 나오는 아날로그적 소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리스닝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한 뒤 스마트폰으로 듣는 저음질 음색이나 거리의 싸구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조차 습관적으로리스닝하게 되지만 이런 소리들은 소음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한 번리스닝을 했던 사람들은 고음질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음질 기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여지는 충분하리라고 본다.

 

 

앞으로의 주력 사업으로 설정한 아스텔앤컨

이외에 아이리버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이 있다면.

이제 일반 가전 시장도 재창조(reinvention)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없다. 사람들이 이제 가전의 진화는 올 때까지 온 것이 아니냐고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개인적으로 일본의발뮤다라는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고교를 중퇴하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던 테라오 겐 사장이 창업한 회사인데 이중팬이 달린 선풍기를 만들어 히트시켰다. 이 선풍기의 소음은 18(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20)로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팬을 이중으로 단 이유는 그가 한 공장을 방문했을 때 관찰한 경험 때문이었다. 열기로 가득한 공장 안에서 근로자들이 대형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선풍기 바람을 사람들이 직접 쐬도록 설치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이렇게 하는 게 더 시원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겐 사장 본인도 음악을 통해 소리를 연구하던 사람이라 선풍기에서 만들어진 바람(wave)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여러 조각으로 깨져서 멀리까지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두 개의 팬이 돌아가는 가운데 거기서 발생하는 바람이 서로 부딪히며 깨지는 원리를 적용한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아이리버도발상의 전환으로 혁신을 일으키는 제품을 만들려고 한다. 어떤 회사라도 만들 수 있는 일반 가전 분야는 사업 영역을 점차 축소해나갈 예정이다. 기존에 답습해온패스트 팔로어전략은 중국의 전략일 순 있어도 국내 기업의 전략이 되기엔 약발을 다했다고 판단한다. 이제 남은 것은 재창조를 통한 혁신뿐이다.

 

 

재창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재창조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먼저 넘어야 할 산은나 자신또는우리 기업이라는 깨달음도 체득하게 됐다. 나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음악은 실제로 나와 아이리버 직원들의 창조의 원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그들의을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작업이고, 이를 실현할 만한 기술은 그 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범한 제품들만 만들어왔던 것이다. 평범한 선풍기를 혁신한발뮤다처럼 소비자가 가려워하는 곳을 긁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또 다른 도전 과제는 네트워킹이다. AK240 모델부터는 와이파이 기능을 넣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앱스토어를 연동하는 등 최소한의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쉽게 음원이 전송되고 재생되는 아이리버만의에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향후 도전 과제다. 아이폰이 아이튠즈, 앱스토어 등으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유사 업종을올 킬(all kill)’하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됐던 과거에서 배운 생존 전략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혁신 기업의 특성상 아스텔앤컨의 경쟁자는 그 자신이다. 그러나 추격에 나선 후발 주자 중에서 신경이 쓰이는 상대는 있다. 바로 일본의소니. 아이리버가 과거 전 세계 IT 업계에서 화제가 됐던 것은 1990년대까지 삼성, LG 등 대기업도 감히 넘보지 못했던 거대한 벽, ‘소니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조차 소니의 신제품을 베끼는 데만 급급했다. 반면 아이리버는 휴대용 음악 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소니워크맨의 벽을 넘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데 성공했다.11

 

2001, 소니와 비교 광고를 했던슬림X’

 

정 상무는 2001 12, CD 타입 MP3플레이어 모델 중슬림X’란 제품이 출시된 당시, ‘Sorry Sony’라는 광고 카피를 만들어 이슈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슬림X’는 일반적인 CD 타입 MP3플레이어의 두께가 25∼32, 소니의 일반 CD플레이어 두께가 18㎜ 안팎이던 때 16.7㎜인 제품을 들고 나와 화제가 됐다.

 

그동안 여러 부침을 겪었던 소니 역시 음원 플레이어 메이커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음질 플레이어인 워크맨 ‘NW-ZX1’ ‘NWZ-ZX2’를 잇따라 내놓으며 아스텔앤컨을 추격하고 나섰다. 선두주자와 추격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무림의 고수들이 칼을 겨누게 된 격이다. 일본의 유명 오디오 잡지 <스테레오사운드>는 올해의 디지털 플레이어 부문에서 포터블 플레이어 모델로는 유일하게 아스텔앤컨 AK240 2등의 영예를 안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등을 차지한 소니의 ‘HAP-Z1ES’를 비롯해 다른 모든 모델은 거치형 제품이었다. 포터블 모델 중에서는 아스텔앤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을 일본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한편 이 결과를 놓고일본의 견제가 엿보인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일부 국내 오디오 업계 관계자들은지난해 1등을 차지할 경우 이듬해 후보작에서 제외하는 관행을 깨고까지 한국 업체에 1등을 주지 않고자존심을 지키려한 의도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아이리버 관계자들은 소니와의 비교를 묻는 질문에소니 워크맨 시리즈가 출시된 뒤에도 유명 헤드폰, 이어폰 업체들이 소스 기계(기준기기)로 아스텔앤컨을 사용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고음질 플레이어의 시장 자체가 넓어져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평가했다. 소리 자체만 놓고 보면 아직까지 우위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과거 한결같을 줄 알았던 MP3플레이어가 아이폰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것처럼 또 다른 위기는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아이리버는 다른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피하자는 의미에서 자체 진화를 거듭한 신제품들을 비교적 자주(6개월에 한 번꼴) 출시하고 있다.12 신제품 출시 주기가 더딘 고급 오디오 업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덕분에 아스텔앤컨의 부스는 각종 오디오 박람회에서 각 업체 관계자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공간이 됐다.

 

과거의 성공 엔진을 다시 장착하게 된 아이리버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아이리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이렇게 답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갈 때만 빛이 나는독한 운명이 있는 것 같다. 도전의 DNA 때문이 아닐까?”

 

 

 

성공요인과 시사점

아이리버의 아스텔앤컨 시리즈는 매스마켓을 지향하던 가전기기 업체(Consumer Electronics Player)로서는 공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시장, 즉 최상의 프리미엄 시장(Top of the Line)을 뚫어 불과 3년 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보기 드문 사례다. 특히 후발주자로 출발했던 대부분의 한국 기업 입장에선 전무후무한 성공 사례로 아직도 글로벌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에 매우 소중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번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 네 가지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시사점 1.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경쟁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창조적 혁신의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 혁신이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무엇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창조적 혁신을 성공시킨 주인공들은 기존 시장의 경쟁 법칙이나 혹은 기존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경쟁구조와는 전혀 무관하게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후발주자이거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업일수록 생존을 위한 대안이창조적 혁신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점은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의 대부분은 쉽게 포기하거나 주저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원이 풍부하고 기업 성과가 매우 좋은 상황에서도 성공시키기 어려운 창조적 혁신을 기업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추진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갖는다. 그러나 매우 공교롭게도 창조적 혁신의 씨앗은 전무후무한 곤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아이리버는 바로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창조적 혁신을 성공시킨 대표적 사례다. 기존 제품을 부분적으로 개선시키는 점진적 혁신을 시도할수록 경영상황이 악화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아스텔앤컨 시리즈로톱 오브 톱을 추구해 창조적 혁신의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리버의 주력 제품이던 MP3플레이어를 포함해 아이리버가 출시한 각종 포터블 디지털 기기들이 스마트폰에 의해서 잠식되면서 경쟁력을 급속도로 상실했다. 또 마지막 회생 카드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구글북스 프로젝트마저 실패로 끝났다. 이렇듯 새로운 희망을 찾기 어려워진 시점에서 아이리버는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 궁극의 뮤직 플레어이어 대한 창조적 혁신의 기회를 발견했다.

 

아이리버의 부활은 위기나 실패를 맞을수록 이에 매몰되지 않고 창조적 혁신의 기회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교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추진하고 철저히 몰입하는 기업만이 창조적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시사점 2. 정반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결합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가 중요하다. (아날로그 + 디지털) + 인간 중심의 창조적 사고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환경 변화는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업들에게 창의성은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 됐다. 그런데 창의성이라고 하면 쉽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영 현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만드는 창의성은 이러한 통념과 반대로 기존 기술이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조합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창의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애플의 예를 보자. 휴대전화 시장뿐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시장을 뒤흔들었던 아이폰의 실체를 해부해 보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없었다. 이미 존재하던 휴대폰 기술과 아이팟의 기술을 새롭게 결합시킨 것이 애플의 창조적 혁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모든 조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창조적 사고는 인간과 휴머니즘을 가장 중요한 축으로 활용할 때 빛을 발한다. 아스텔앤컨은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감동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자신도 모르게 흘리게 되는 수정 같은 눈물에서 찾아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이리버는궁극의 소리에 감동하고 공감하는 인간의 본성에 집중했고, 그러한 감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갈망하는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전체 조직이 몰입한 결과 아스텔앤컨을 탄생시켰다. 기존 디지털 시장이 압축과 효율을 추구하던 포터블 디바이스에 몰입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아이리버는비록 기계로 전달되는 음악일지라도 아날로그 사운드의 감동을 전할 수 있어 고객들이 음악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다는 역발상에서 출발했다. 이런 역발상은 아이리버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디지털 기기의 강점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새롭게 추구하기 시작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결합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아이리버의 생각은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결합될 때 인간의 진정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 차원의 경쟁에 몰입하고 있는 많은 회사들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시사점 3.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해야 기존 프로세스를 바꿀 수 있는 창조적 혁신이 가능하다 (‘Aim Something Impossible! Aspiration Level(요구 수준)’을 끌어올려라.)

아이리버가 어떻게 이런 창조적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리버가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창조적 프로세스들을 주목해야 한다.

 

진화경제학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엽적인(localized) 경험에 의존한 행동( path-dependent search behavior)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특히 성공의 경험과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기업일수록 성공 공식으로 통했던 기존 루틴과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찾으려는 편협한 탐색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아이리버는 기존 디지털 음악 전문기기에서 아날로그 파형의 하이파이 음질을 구현하는 혁신적인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방식과 프로세스를 모두 포기해야 했다.

 

아이리버는업의 본질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남들이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따라서 결코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했다. 계속되는 경영 악화로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긴 했지만 아이리버의 태생적 정체성은 원래소리였다. 아이리버는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에 집중했다. 궁극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정량적 수치로만 판단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런 과정에서 디지털 파형을 아날로그로 바꾸는 방법, 전기 신호 노이즈를 없애기 위해 내장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창조적 혁신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아스텔앤컨 시리즈는 외형적으로 디지털 기기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아날로그다. 그래서 디지털 시장을 앞서가는 세계적인 경쟁자들도 감히 추격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시사점 4.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적극적인 개방적 협력관계(Multilateral Open Alliances)를 활용했다.

아스텔앤컨이 아무리 궁극적인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이런 소리를 고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AK시리즈가 구현하는 고품격 사운드를 고객에게 최소한의 왜곡도 없이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스피커, 헤드셋, 이어폰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직접 내부에서 개발하는 방식을 택한다. 장기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양산하는 전략적 단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리버는 모든 것을 섣불리 직접 개발하는 방식을 포기하는 대신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우호적인 동료로 바꾸는 전략을 선택했다. 해당 분야에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력을 인정하는 동시에 아이리버와의 협력을 통해 해당 제품들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다면적인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스위스의 골드문트, 미국의 제리하비 오디오, 독일의 베이어다이내믹 등과 같이 세계적인 기업들이 100년 가까이 축적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동시에 해당 제품을 아이리버가 새롭게 튜닝하는 협력 방식을 활용했다. 물론 이런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여지없이 AK 시리즈가 구현하는 고품질 사운드의 기술력이 원천이었다. 바로 이런 개방적 협력 전략은 불과 3년 만에 아이리버를 세계 최고 하이파이 오디오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앞으로 도전과제

다른 기업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성과를 창조한 아이리버지만 아이리버의 앞날에 새로운 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리버에는 과거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겪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에서도 남다른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1. ‘AK240’을 능가하는 새로운 혁신! 과연 가능할까?

아이리버가 초기 모델인 AK100에 이어 해외 전문 미디어로부터현재 오디오 시장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는 플레이어라고 찬사를 받는 AK240을 내놓는 데까지는 불과 3년이란 짧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처럼 단시간 내에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아스텔앤컨이지만세계 최고라는 평가는 아이리버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아이리버는 과거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후발주자들에 의해 빠르게 따라 잡혔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후발주자 및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고 나섰다. 시장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 결과 아스텔앤컨 시리즈는 기술적으로 이미 궁극의 소리를 구현하는 단계에 근접해 있으며 포터블 기기가 갖는 본원적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최대 임계치에 도달해 있다. 아이리버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AK240을 혁신적으로 능가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제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아이리버의 앞길에는새로운 불가능에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경쟁사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절대로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2. 프리미엄 시장이 갖는 본원적인 한계점에 대한 도전

프리미엄 고음질 음악기기 시장은 매우 정적이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다. 매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되는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는 신제품이 빠르면 4년에 한 번 정도씩 등장한다. 기존 소비자 가전제품 시장과는 달리 시장 규모 자체도 크지 않지만 해당 제품이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전체 음악기기 시장에서 프리미엄 고음질 시장이 차지하는 범위는 1% 정도이며 이 비중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

 

아이리버는 포터블 기기에서 영역을 확장해 AK500N이라는 데스크톱 플레이어 신제품을 출시해 새로운 성장 및 매출 규모를 달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AK240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을 창조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던 사례라면 AK500N은 기존에 존재하는 시장에서 기존 고객들의 충성도를 이전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물론 AK500N의 음질에 대해 해외 미디어들은 “2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구현할 수 있는 소리를 10분의 1 가격에 구현한 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리버가 이런 시장에서 새로운 지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킬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3.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도전

AK 시리즈는 기존의 MP3플레이어로 인식돼 있는 아이리버 브랜드와는 근본적인 차별화를 실현해야 한다. 특히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과거 아이리버가 개척해뒀던 기존 유통망을 AK시리즈가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다. 해외시장의 경우 선도 지위를 확고하게 굳힌 브랜드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자기 취향과 개성이 매우 강한 시장인 만큼 형성된 고객층이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포터블형 시장에서도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저가형 경쟁 모델들이 많기 때문에 2500만 원으로 책정될 예정인 AK500 시리즈13 가 경쟁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AK시리즈가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유통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또 유럽이나 일본 등 전문가 수준의 고객군이 포진한 시장에서 신생 브랜드로 신규 고객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박남규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namgyoo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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