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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SNS시대 글쓰기는 필수역량 자신감 갖고 첫 문장에 결론 담아라”

조진서 | 151호 (201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두 명의 대통령과 두 명의 전경련 회장의 스피치라이터로 일한 강원국 씨가 권하는 연설문, 보고서 잘 쓰는 법

1. 초고는 버리라고 쓰는 거다. 최대한 빨리 쓰고 90% 이상 고치면서 좋은 글을 만들어라

2. 내가 회장이라고, 내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써라

3. 첫 페이지, 첫 문장에 결론을 담아라. “이런 계약이 있는데 이건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처럼. 시장상황 설명, SWOT 분석 등은 뒤쪽으로 미뤄라

4. 한 사람의 머리보다 여러 사람의 머리를 모아 만드는 글이 더 좋다. ‘독회(讀會)’를 열어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연아(한성대 산업공학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임원부터 말단 직원까지 직장인이라면 매일같이 하면서도 매번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보고서 작성과 발표다. e메일, 파워포인트 등 많은 도구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남들에게 보여줄 보고서를 쓰고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일의 핵심은 당사자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부하는 부하대로, 상사는 상사대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고민한다. 외부의을 설득해야 하는 컨설턴트나 세일즈 담당자들에겐 더욱 중요한 능력이다.

 

이건희, 제프 베조스 같은 유명 경영자들은 각자 화법은 다르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어록이 될 정도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교과서로 여겨진다. 좋은 CEO는 직원들에게, 주주들에게, 그리고 고객들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효과적인지를 잘 터득하고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직업인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넬슨 만델라, 윈스턴 처칠, 바락 오바마 같은 정치인들은 몇 마디의 말과 몇 문장의 글로 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곤 했다.

 

대한민국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데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통령일 것이다. 대통령이 새해 첫날에 하는 국정연설, 삼일절, 광복절 등에 하는 기념사, 국회에서 하는 국회연설, 각종 행사에서 하는 기념사, 축하사, 추모사 등은 국가의 수반이 국민에게 쓰는 일종의 보고서다. 이런 연설들은 종종 TV에서 생중계되며 수십만에서 수천만의 국민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접한다.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5000만 국민의 여론과 외국과의 외교관계가 형성된다. 연설은 대통령의 세일즈 피치다.

 

연설문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생각을 담지만 문구는 대한민국 최고의 글쟁이들이 청와대 연설문 작성팀에 모여서 작성한다.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의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남을 설득하는 화술에는 도가 통한 사람이지만 이들마저도 연설문 작성에서는 프로 글쟁이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미묘한 표현 차이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반대로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언론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은 이 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 행정관으로 3,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 비서관(팀장)으로 5년을 근무했다.

 

서울대 외교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대우증권 홍보팀에서 일하던 그는 대우그룹 20년사를 쓰는 일을 맡은 것을 계기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의 스피치라이터가 됐다. 대우그룹 해체 후에 청와대로 스카우트돼 연설문팀에서 총 8년을 근무했다. 이후 몇몇 기업을 거쳐 작년 5월부터 출판사 메디치미디어의 편집주간으로 일하던 그가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것은 올 225일이다(이날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일이기도 하다). 출간 한 달 남짓 지난 41일 기준으로 22쇄를 찍고 3만 부 이상이 팔렸다.

 

출판사를 찾아 저자를 만났다. 출판사도 청와대 인근에 있었다. 그는 “20년 넘게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청와대와 여의도, 이 두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연설문 전문 라이터가 된 계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

글쓰기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외교학과를 다녔지만 대학 4년 내내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느라 고시 공부를 못 하고 취업하게 됐다. 대우증권 홍보팀에 입사해 대언론팀에서 일하던 중 대우그룹 20년사 편찬을 맡게 됐다. 물론 내가 직접 쓰는 건 아니고 은퇴한 언론인 한 분을 섭외했다.

 

그런데 그분이 가져오는 글을 살펴보니 다른 회사의 사사에서 표절해오고 있었다. 이를 상사에게 보고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글을 맡길 사람이 없게 되니그럼 네가 한 번 써봐라이렇게 된 거다. 또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을 쓸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그 자리로 불려갔다. 김 회장의 연설문을 3년 썼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 자리에 가면 다 쓰게 돼 있더라. 보통 사람들이 글 쓰는 걸 두려워하는데 그런 자리에 갈수록 오히려 쓰기가 쉬워진다. 그룹사 사장들이 모이는 회의에도 들어갈 수 있고 원하는 자료는 요청하면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글 쓰는 걸로 밥 벌어먹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계속여길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살았다. 대우증권 시절 한 번, 청와대 시절 한 번 사표를 쓴 적도 있다. 지금도 그렇다.

 

나도 이 책이 왜 이렇게 잘 팔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런 목적으로 책을 낸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고 대통령 연설문은 예로 든 것뿐이다. 두 대통령과는 아무런 개인적 관계가 없다. 처음 김대중 정권에서 제의를 받았을 때도 국내에서 경제 관련 연설문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이 나 말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IMF 관리체제 당시 대우그룹이 망하고 나서 대우증권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마침 청와대 연설담당 행정관 밑에 경제 분야를 담당하던 행정관 자리가 공석이 됐다 해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됐다.

 

기업 회장들은 파워포인트를 쓸 일이 없다. 이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그냥나도 회장이다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연설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쓰기가 중요하다곤 하지만 일반 사람들도 대통령이나 기업 회장처럼 글 쓰고 연설할 일이 많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는 누구나 말하고 글 쓰는 것을 강요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나만 해도 출판사에 왔더니 페이스북을 하라고 강요받고 있다. 이제는 그런 SNS를 통해 소통이 되고, 유통이 되고, 홍보가 되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하지 않으면 출판사를 못 다니는 세상이다. 만인이 연설을 하는 시대다. 기업 CEO, 야채장수든 누구든지 나와서 연설을 한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모르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리라고 본다. 사실 지금까지는 남이 쓴 것,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 보는 시대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퍼스널 미디어의 시대이고, 각자가 주체가 되는 시대다. 스스로 그런 역량이 없으면 도태되리라 본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미국을 보면 안다. 미국 사회에서 에세이를 쓰고 스피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국에서도 말하기와 글쓰기는 필수 덕목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조선시대부터신언서판(身言書判, , , , 판단력을 보고 사람을 평가함)’이라 하지 않았나. 조선은 과거시험, 즉 문학 에세이 시험으로 공무원을 뽑던 나라다. 그런 시대가 곧 다시 올 것이다. 기업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말하기와 글쓰기로 역량을 평가받고 있다. 리더십의 특성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첫 번째 단계가 지시와 통제, 명령이고 두 번째 단계는 판단을 잘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그것을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해야 하는 것, 마음을 사는 것이다. 1970∼80년대에는 손발로 하는 리더십, 불도저식 리더십이 중요했다. 추진력 강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실행능력이 리더의 최대 덕목이었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방향을 잘 잡아서 가는 것이 기업 경영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머리를 쓰는 지적 리더십이었다. 이제는 감성적인 리더십의 시대다. 감성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말과 글이다.

 

요즘 기업에선 발표할 일이 있을 때면 파워포인트를 많이 쓴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것과 전통적인 방식, 즉 말로만 연설하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지.

장단점이 있다. 나도 어디 가서 강연을 할 때 파워포인트를 띄워 놓을 때가 있다. 내가 가야 할 이정표를 세워 놓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강연하기가 쉬워진다. 대신 정해 놓은 틀에 얽매이게 된다. 파워포인트의 문자와 그림에 얽매이게 되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없다.

 

그런 도구 없이 맨 몸으로 연설을 하게 되면 사실 막막하다. 하지만 생각의 여백이 많아지기 때문에 말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머리 안에 자기도 모르는 생각을 품고 있다. 파워포인트 없이 얘기를 하다 보면내가 언제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아이디어들도 말로 튀어나오게 된다.

 

기업 회장들의 연설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

첫째, 자신감이다. 기업 회장들은 파워포인트를 쓸 일이 없다. 이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그냥나도 회장이다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연설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높은 곳에서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회장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사원, 대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둘째, 회장들은 다각도로 생각을 한다. 한 면만을 보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의 입장을 고려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셋째, 이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기본적으로 기존 생각에 얽매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쓴다. 통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없고 혁신이 없다. 통념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다 보면 너무 비판적이 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대안을 가지고 통념을 깨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들은 절대 현재만 보지 않는다. 성공한 CEO들은 항상 미래를 길게 본다. 자기 세대가 아니라 자기의 자식 세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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