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2012년 가을 호에 실린 메릴랜드대 로버트 H. 스미스 경영대학원 교수 리투 아가왈(Ritu Agarwal)과 MIT 슬론 경영대학원 정보 시스템 연구센터장 피터 웨일(Peter Weill)의 글 ‘The Benefits of Combining Data With Empathy’를 번역한 것입니다.
ARS(전화 자동응답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몇 차례 음성 명령을 반복한 후 간신히 서비스 담당 직원과의 대화를 요청할 기회를 얻게 되는 불만스러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 프로세스 및 시스템 최적화에 과도하게 많은 관심을 쏟은 탓에 정작 고객과의 정서적인 유대감 구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대기업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전 세계의 비즈니스 환경을 예측하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를 포착하고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려면 고객의 요구에 좀 더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접근방법(비즈니스 프로세스와 기술을 최적화하는 능력, 정서적인 관계를 육성하는 능력, 공감을 토대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능력 등 3개의 역량을 결합하는 접근방법)을 찾아낸 기업도 있다. 필자들은 이런 접근방법을 ‘소프트스케일링(softscaling)’이라 부른다.
고객에게 공감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면 사실상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는 이성적인 영역(좌측)과 정서적인 영역(우측) 간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이런 접근방법이 인도 뉴델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오토바이/스쿠터 제조업체 히어로 모토코프(Hero MotoCorp)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생각해 보자. (2010년까지 혼다자동차(Honda Motor Company)가 히어로 모토코프의 지분을 일부 소유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히어로 모토코프 역시 판매, 서비스 방문, 추가 부품 수요, 기타 고객 경험 관련 요인 등 중요한 활동을 추적하는 고객 관계 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CRM)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토코프의 기존 CRM 시스템은 기초 데이터를 관찰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시장의 전반적 인구 통계가 얼마나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인도의 노동시장에 대량 유입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모터 스쿠터를 구입할 때 상당한 불편을 느꼈다. 심지어 겁을 내는 여성도 있었다. 스쿠터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 같은 여성 고객의 우려를 파악한 모토코프는 여성 고객을 겨냥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저스트 포 허(Just 4 Her)’라는 신규 프로그램을 도입해 전용 전시실에 여성 직원을 배치했다. 여성들은 커튼이 드리워진 전시실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쿠터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히어로 모토코프는 기술을 활용해 현지의 결정권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방식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좀 더 효과적으로 최적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모토코프는 현재 세계 최대 이륜자동차 생산업체다.
요즘은 경제 주기, 환경 상황, 비즈니스 모델, 고객의 요구 등이 좀 더 빠르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변화를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융통성 있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새로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통적인 고객층 및 자국 시장을 벗어나 확장을 시도하는 기업이라면 특히 이런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진출하려는 시장 환경의 변동성이 크다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본 논문의 토대가 된 연구가 진행된 장소는 인도지만 이 전략의 핵심 원칙들은 다른 개도국 시장뿐 아니라 고객의 요구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선진국 시장 내 일부 부문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연구 내용’ 참조.)
연구 내용 인도에서 2년 이상 집중적인 현장 연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본 논문을 작성했다. 본 논문에 언급된 5개 기업은 연구진이 고위급 경영진, 주요 고객, 비즈니스 파트너 등에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사례 연구 데이터 수집을 위해 65명의 경영진 및 비즈니스 파트너와 1∼2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인터뷰 진행 시에는 연구진이 개발한 구조화 인터뷰 방식을 활용했다. CEO/회장, 마케팅, 금융, IT, 운영, 인사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사장들이 인터뷰에 참가했다. 필자들은 히어로 모토코프 사례 연구를 위해 생산 공장을 방문, 오토바이 생산 프로세스를 관찰했다. 또 여러 곳의 대리점을 방문해 소매 유통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파악했다. 맥스 헬스케어(Max Healthcare)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병원 시설을 둘러봤다. 또한, 바티 에어텔(Bharti Airtel)이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파악하기 위해 바티 에어텔의 기관/개인 고객 및 파트너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조사 대상 기업에 대한 1차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 성과, 뉴스 보도, 기타 공개적으로 활용 가능한 정보와 관련된 좀 더 구체적인 2차 데이터를 수집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내용을 녹음했으며 녹음 내용을 문서로 전환해 차후에 정성적인 방법을 활용해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유효성 점검을 위해 연구 대상 기업 경영자들과 분석 자료를 공유했으며 변동성이 높은 환경하에서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전 세계 경영자들이 참석한 여러 워크숍에서 분석 자료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
가파른 성장을 위한 소프트스케일링
1991년 이후, 인도는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초래한 일련의 경제 개혁을 경험했다. 이와 같은 성장 정책은 인도의 중산층을 확대하고 오토바이, 자동차, 통신, 주택 담보 대출, 의료 등 다양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필자들은 운송, 통신 등 일부 산업의 불확실한 인프라, 정치적 변화, 규제 변화, 고객의 요구 변화 등 불확실성이 높고 변화 속도가 빠른 환경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기업 경영진, 고객, 공급망 파트너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런 활동을 묘사하기 위해 기업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용어를 분석한 결과 한 가지 명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활동 중인 산업도 다르고 사용하는 용어도 달랐지만 필자들이 살펴본 성공적인 기업 중 상당수가 매우 유사한 성장 전략을 활용하고 있었다.
소프트스케일링은 최적화가 갖고 있는 우수한 특징들(예: 6시그마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을 한데 모으고 열정, 참여, 관심을 통해 고객과 정서적 유대감을 구축한다. 히어로 모토코프, 바티에어텔(Bharti Airtel), 타타자동차(Tata Motors), 주택개발 금융공사(Housing Development Finance Corp.), 맥스헬스케어(Max Healthcare) 등 필자들이 살펴본 5개 기업은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근거 기반 공감 방식(evidence-based empathy grounded in data analytics)을 활용해 최적화와 정서를 통합했다. (그림1) 이 전략은 매우 불안정하고 자원이 제한돼 있는 환경하에서 기업이 시장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회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들이 연구한 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 연간 35∼40%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매우 높은 수준의 이윤을 달성한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기회를 포착했다. 예를 들어, 지난 5년 동안 타타자동차는 꾸준한 매출 상승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매우 높은 수준의 이윤 증가를 경험했다. 손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재규어(Jaguar)와 랜드로버(Land Rover)를 매수하고 두 브랜드를 정상화시킨 전략 역시 타타자동차가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 인도에서만 1억60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최대 통신기업 에어텔은 재인 아프리카(Zain Africa)를 인수해 아프리카에 위치한 15개 국 이상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전략에 박차를 가했다.
소프트스케일링을 구성하는 요소
성공적인 소프트스케일링은 3개의 핵심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한다. 첫 번째 활동은 직원과 고객, 공급업체, 기타 비즈니스 파트너로부터 충성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서적 유대감을 키우는 것이다. 두 번째 활동은 적은 비용을 들여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 측면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공감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데이터(최적화된 프로세스 및 기술을 통해 습득)와 현지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결합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활동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프트스케일링을 위해서는 세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정서적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
서구의 기업들은 정서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들이 연구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정서가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1 열정은 공식적인 계약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를 다지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뉴델리 근처에서 11개의 병원을 운영하며 1500명 이상의 의사를 거느리고 있는 맥스헬스케어는 고객과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전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소비자 고문단을 구성했다. 소비자 고문단에게는 맥스헬스케어의 모든 시설에 전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맥스헬스케어 소비자 고문단은 이런 권리를 바탕으로 시스템의 모든 측면을 검토해 어떤 부분이 원활하게 돌아가며 어떤 부분이 개선을 필요로 하는지 면밀히 조사한다. 정서는 기업과 고객 간의 관계, 기업과 직원 간의 관계, 기업과 가치사슬 파트너(예: 중개인, 공급업체, 판매업체, 대리인)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과의 관계.타타자동차의 공장 직원들과 제품 엔지니어들은 주기적으로 트럭 운전사, 택시 운전사, 승용차 기사 등을 만난다. 타타 경영진은 이런 만남을 ‘나카 방문(naka visits)’이라고 칭한다. (‘나카(naka)’는 힌두어로 ‘길모퉁이’ 혹은 ‘검문소’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운전기사들과의 만남은 제품 엔지니어들이 고객 피드백을 수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타타자동차 직원들은 운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움푹 패인 도로에서 차축이 망가진 이야기, 엔진이 과열된 이야기, 자동차가 소 떼와 충돌한 이야기 등을 전해 듣는다. 이 과정에서 제품 개발 실험실에서는 결코 재현될 수 없는 공감 어린 마음과 친밀함을 갖고 고객의 기대치와 제품의 실제 성능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실험실, 생산 라인, 사무실 등으로 돌아온 타타 직원들은 고객들과 좀 더 강력한 정서적 관계를 갖게 된다.
기술도 타타자동차가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어디서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은 타타자동차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제공한다.2 타타자동차는 매달 고객 및 중개인과 400만 건이 넘는 문자메시지를 교환한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제품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서비스 약속을 일깨워주기 위한 내용, 신모델 출시 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고객과의 관계는 타타자동차의 브랜드를 강화할 뿐 아니라 고객과 타타자동차와의 관계를 ‘개인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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