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인문 고전 강독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열렸다. 종말과 대변혁이라는 상반되지만 한 모습인 예언이 있는 해이기도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한 김정은의 등장과 대선과 총선이 함께 있는 올해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어수선한 한 해가 될 듯하다. 세계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다. 금융시장의 탐욕을 비판하며 시작된 시위는 뉴욕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그리스 사태 이후 유럽의 경제위기와 이란의 핵 문제 역시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다. 그야말로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사회를 불안까지도 수출하는 사회라고 했는데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그러하다. 불안은 국경의 벽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미래를 희망과 긍정, 여유와 낙관만으로 맞이할 수 없게 한다. 전자기기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실시간으로 세계를 넘나들며 세계인과 대화를 나누고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정보를 접하지만 그럼에도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 중 하나가 시대를 밝혀줄 리더다. 불확실을 확실함으로 바꿔줄,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환히 열어줄 리더는 그만두고라도 희망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선명한 세상을 함께 만들며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줄 리더를 열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어둠에 갇힌 나라와 시대를 구원해줄 초인(超人)을 염원했던 것처럼 갈래갈래 나뉘고 분열된 세계, 자신의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나는 옳은데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여기는 미움과 불통의 시대를 구원해줄 구원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제자인 번지(樊遲)가 인(仁)과 지(知)를 묻자 공자는 애인(愛人)과 지인(知人)이라고 대답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것’이 인과 지라는 것이다. 번지가 말귀를 못 알아듣자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등용해 굽은 사람 위에 올려놓는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한다. 이에 대해 자하(子夏)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순임금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皐陶)를 등용하니 불인(不仁)한 자들이 사라졌고, 탕임금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윤(伊尹)을 등용하니 불인한 자들이 멀어졌다”는 것이다. 리더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올바름과 곧음, 따뜻함과 넉넉함으로 신뢰받는 리더의 말 한 마디와 행동은 불인(不仁)한 자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따라서 적재적소에 합당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사람을 제대로 아는 지인(知人)이고 그를 등용함으로써 사람과 세상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애인(愛人)인 것이다. 다산(茶山)은 통치자의 덕목을 ‘사람을 알아보는 총명함[지인지철(知人之哲)]’과 ‘합당한 사람을 등용하는 지혜[용인지혜(用人之慧)]’라고 했는데 이는 국가뿐 아니라 규모가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이와 함께 리더가 갖추고 행해야 할 덕목이 구덕(九德)이다. 구덕은 고요(皐陶)가 우(禹)임금에게 제시한 통치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고요는 순과 우의 시대에 법을 관장하던 재상이었다. 맹자는 제자인 도응(桃應)이 순임금의 아버지인 고수(瞽瞍)가 살인을 했다면 고요가 어떻게 했을지를 묻자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상대가 누구든 법의 잣대에 따라 올곧게 판결을 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가 천자인 우(禹)임금에게 통치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제시한 것은 법이 아닌 덕이었다. 우는 홍수로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려 왕이 된 자였다. 아버지인 곤(鯤)이 둑을 세워 물을 막으며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치수를 해결한 것이다. 그는 14년간 현장에서 살면서 물에서는 배를, 육지에서는 수레를, 진흙에서는 썰매를, 산에서는 나막신을 타면서 토지를 분별했고 산을 따라 나무를 제거하고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르게 해 산과 물을 다스림으로써 거대한 중국 문명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러한 공으로 천자가 됐지만 우임금은 자신의 공과 말만 앞세우지 않았다. 언제나 신중했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좋은 말[창언(昌言)]에는 절까지 했다. 통치자의 열린 귀가 있었기에 고요는 구덕을 제시할 수 있었다.
고요가 제시한 구덕은 다음과 같다.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하고[관이율(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자신의 뜻과 생각이 확립돼 있으며[유이립(柔而立)], 고집스러우면서도 공손하고[원이공(愿而恭)], 어지러움을 다스리면서도 자신을 통제하는 경(敬)의 자세를 유지하며[난이경(亂而敬)], 익숙하면서도 굳세고[요이의(擾而毅)], 곧으면서도 온화하며[직이온(直而溫)], 간략하면서도 자세하고[간이렴(簡而廉)], 굳세면서도 치밀하며[강이색(剛而塞)], 강건하면서도 옳고 바름에 합당한 것[강이의(疆而義)]. 이 아홉 가지가 리더가 갖춰야 할 덕이다. 고요는 상반되는 두 내용을 말이을 이(而)로 연결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최적의 상태인 중용(中庸)의 도를 제시했다.
고요가 제시한 구덕은 세상의 변화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과 변치 말아야 할 가치가 함께 내재된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상황도 변하고 때도 변하며 한순간도 머물러 있는 적이 없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열린 마음이고 귀 기울임이며 소통이다. 그것이 관(寬)·유(柔)·원(愿)·난(亂)·요(擾)·직(直)·간(簡)·강(剛)·강(疆)이며 변화의 중심에 둬야 할 가치가 율(栗)·립(立)·공(恭)·경(敬)·의(毅)·온(溫)·렴(廉)·색(塞)·의(義)이다. 상황과 때에 따른 변화와 지켜야 할 가치, 이 둘을 아울러 중용의 도를 취할 때 올바른 통치의 도를 구현할 수 있다.
고요는 매일 이 가운데 세 가지 덕을 펼치기만 해도 가(家)를 지닐 수 있고 여섯 가지 덕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실천해 다스리면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지도자의 수신과 그로부터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aura)인 덕은 집안과 나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바탕이다. 특히 덕은 사람을 얻고 마음을 모으는 놀라운 능력이며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힘이다. 마치 자석과 같은 것이다. 책받침 위에 쇳가루나 못을 올려놓고 책받침 밑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쇳가루와 못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자석은 주위에 있는 철을 끌어모은다. 강하면 강할수록 더 넓은 영역에 강력하게 작용해 뿌리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덕의 모습이다.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뭇별들이 향하는 것처럼 몸보다 마음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기에 그 힘은 놀랍다.
고요가 제시한 구덕이 이러한 힘이다. 이것이 사람을 알아보고 제대로 된 사람을 등용할 수 있는 지인과 애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럴 때 실력과 인품, 능력과 덕을 갖춘 사람이 관직에 있게 된다. 그 영향력은 관료들을 변화시키고 공적(公的) 영역이 활성화돼 불만과 불평이 없어지고 모두가 때에 맞게 열심히 일하는 신명나는 사회가 되게 한다. 구성원 모두가 제 역할을 하는 사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노력하는 사회,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통해 더 넓고 깊게 사고(思考)할 수 있는 사회, 남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회,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이러한 사회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리더를 우리는 꿈꾸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지난해와는 달랐으면 하는 희망으로 굳은 결심을 한다. 보다 나은 세상과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세계는 더 복잡하며 갈등과 분열, 불확실함과 불연속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며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있어 풀 수 있는 해법도 묘안도 쉽지 않다.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한 사람의 역할과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지만 리더의 수신과 덕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이기 때문에 그 감동은 파발마(擺撥馬)보다 더 빠르게 전해져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달콤한 말과 표정이 아닌 바른 삶과 올바른 가치관이 바탕이 된 실천과 행동,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통해 함께 불확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를 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럴 때 굽은 사람이 스스로 바르게 되는 공효(功效)가 있고 그로 인해 사회가 치유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며 분열과 미움이 아닌 조화와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한 시대, 변혁의 새해에 리더가 구덕을 갖춰야 할 이유다.
권경자 철학박사 iyagy2@hanmail.net
필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유교철학·예악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명지대, 조선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강의 중이며 성균관대에서 2년 연속 우수 강사상을 받았다. 저서로 <유학, 경영에 답하다>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한국철학사전(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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