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대박 비결? 당연한 일을 남보다 철저히 할 뿐”

1호 (2008년 1월)

[
동아일보]
옷값 3분의 2로 낮춰 ‘고객 창조’… 10년새 매출 600% 늘어
안전하게 간다는 건 곧 퇴보… 난 5년만 더 하고 물러날 것”
 
세계 동시 불황으로 각계에서 비명이 들리지만 일본의 중저가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만은 과거 최고 이익을 경신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1984년 시골 양복점에서 시작해 전국 750여 점포를 거느린 의류체인점으로 변신한 유니클로는 1997년 도쿄(東京) 진출 이후 10년간 매출액 60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유니클로가 속한 ‘패스트 리테일링’의 주가도 불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여서 대주주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0) 회장 겸 사장은 올해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일본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 현재 세계 어패럴시장에서 갭, 자라, H&M 등에 이어 매출액 6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세계 1위가 목표다.
 
고객 시장의 창조와 성장을 모토로 하는 야나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일본에서 ‘야나이즘’이라 불리며 ‘도요타이즘’을 뛰어넘을지가 주목받고 있다. 3일 도쿄 구단시타(九段下)의 패스트 리테일링 본사에서 그를 만나 불황일수록 강해지는 유니클로의 비결을 들어봤다.
 
○ “고객을 창조한다”
비결은 없다. 당연한 일을 철저히,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할 뿐이다. 어떤 기업이건 해야 할 일은 같다. 현장도 중간관리직도 경영자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을 어디까지 철저하게 하느냐, 어떤 수준까지 하느냐가 문제다. 가령 우리는 팔린 상품과 팔리지 않은 상품, 팔리는 매장과 아닌 매장을 매주 철저히 조사한다. 문제가 있으면 그주에 해결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의외로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이 적지 않다.”
 
그는 “불황일수록 실력이 드러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소비자가 더욱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는 유니클로를 패션과 생활필수품의 중간 정도로 규정하고 ‘공업제품으로서의 캐주얼 의류’ 개념으로 접근했다. 이런 개념은 H&M이나 자라처럼 패션 그 자체를 파는 옷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입을 수 있다.
 
정직하고 품질과 기능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싼 제품은 기호나 감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중시하는 가치다. 유니클로는 ‘모두가 좋은 캐주얼을 입게 하려는 새로운 일본 기업’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정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요즘은 세계에 유니클로의 사고방식이 잘 전달된다고 느낀다.”
 
그는 피터 드러커의 ‘고객의 창조’ 개념을 교과서처럼 여긴다. 기업은 만들고 싶은 것,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올해 들어 불황으로 사기가 떨어진 일본인들의 멋내기를 돕겠다며 만든 저가브랜드 ‘지유’의 ‘990엔짜리 청바지’에 그대로 반영됐다. 개발팀이 회의를 거쳐 가격을 1490엔으로 하겠다고 보고한 자리에서 그는 “990엔으로 가자”고 잘라 말했다. 그 대신 매출목표를 50만 장에서 100만 장으로 늘렸고,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명품 디자이너 질 샌더 씨와 손잡고 세련되고 절제된 커리어우먼 룩을 ‘유니클로의 가격’에 선보이겠다며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 “끊임없는 개선, 완성이란 없다”
일본 제조업의 특징은 끝없는 개선과 보완을 통한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 유니클로에서는 일본 제조업 현장에서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령 2003년 처음 출시된 기능성 내의 ‘히트테크’는 2005년에는 촉감을 개선했고 2007년에는 세탁을 거듭해도 기능이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등 진화를 거듭해 2005년 450만 장, 2007년 2000만 장, 지난해에는 2800만 장을 팔았다. 이런 과정에서는 힘이 부치면 남의 힘도 서슴없이 빌린다.
 
“2000년 소재 개발을 부탁하기 위해 임원 전원이 일본 최대의 섬유회사인 ‘도레이’를 찾아갔다. 도레이의 섬유기술이 세계 1위였기 때문이다. 공동개발을 시작해 몇 년 뒤 히트테크가 태어났다. 그간 만든 시제품만 수백 벌이다. 도레이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섬유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상품화하거나 대량 판매하는 ‘마케팅 기술’이 없었다.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지금 도레이 공장에는 히트테크 전용 라인이 설치돼 있을 정도다. 속옷과 겉옷 기능을 통합한 ‘브라톱’도 매년 고객들의 조언이 반영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한중일 힘 합하지 않는 것 아깝다”
그는 2010년 연매출 1조 엔, 2020년 세계 1위를 목표로 세우고 있다. “현재는 10%대에 불과한 수출을 80%대까지 끌어올릴 생각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아시아가 차지할 거다. 아시아의 주요국에 진출해 거기서 넘버원이 되겠다. 지금까지는 유럽이나 미국의 1위가 세계 1위였지만 앞으로는 아시아 1위가 세계 1위가 되리라고 본다.”
 
목표가 너무 원대한 건 아닐까. “나는 이상이나 희망 같은 것의 수준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요즘 경영자들은 너무 현실만 생각해서 이상을 잊어버린 사람이 많은 거 아닐까.”
 
그가 한국에서도 의류업계 1위가 되겠다고 말한 데 대해 “그런 말 하면 한국에서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충고하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한국에서 1위’라 해도 현지 기업과 손을 잡고 하는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중국 모두 ‘자국 최고주의’가 너무 강하다. 폐쇄적 민족주의라고나 할까. 역사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너무 안타깝다. 경제는 이미 글로벌화돼 있다. 난 가끔 한국과 일본, 중국이 한 나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면 미국 이상의 국가가 된다. 이미 국가의 시대는 지났다. 아시아의 시대이고 그 중심은 한중일 3국이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중심이 되기 어렵다.”
 
○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 없다”
그는 2002년 일본IBM 출신을 영입해 사장으로 임명하고 회장으로 물러났지만 3년 만에 다시 사장 겸 회장 직을 스스로 맡았다.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하는 성격은 아닐까.
 
그가 너무 안정 지향이란 점이 나와 맞지 않았다. 안정 지향은 ‘지금 이대로로 좋다’는 뜻인데, 세상은 계속 변한다. 본인은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 자체가 퇴보가 된다. 세상의 흐름을 앞서거나 최소한 세상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그의 경영전략은 도요타자동차의 세계 전략과 비교되곤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과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영광이다. 지금은 상장회사 전부가 주춤하고 있을 뿐, 도요타의 노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건 회사건 성장하지 않는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
 
▼‘잠돌이’ 청년을 번쩍 깨운건 책임감▼
“24세때 아버지 양복점 경영 떠맡아
월급쟁이 했다면 오래전에 잘렸을 것”
 
그에게는 ‘카리스마 경영자’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정작 본인은 과장된 말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사원들이 열심히 해주니 실적이 나올 뿐이다. 다만 24시간 일을 생각하는 건 맞다. 일종의 ‘내 사업’이라는 오너십 같은 건 있다. 기본적으로 난 보통사람, 범인(凡人)이다. 내성적인 데다 사교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범인의 마음을 알고 범인을 중심으로 한 회사가 아니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나왔다. 대학 시절 경영학을 공부했나.
당시 학생운동 탓에 대학에서는 거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학생운동은 젊은이들의 무책임한 이상주의로 들려 공감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하도 잠만 자 별명이 ‘네타로’(잠돌이 정도의 뜻)였다. 책 보고 음악 듣는 것 외에는 빠찡꼬 마작 등에 빠져 지냈다. 꿈도 ‘일 안 하고 평생 사는 거’였을 정도로 나태한 젊은이였다. 그러다 부친의 양복점에 입사해 1년 정도 지난 24세 때 정신이 번쩍 들 일이 생겼다. 부친이 갑자기 가게 경영을 내게 떠맡겨 버린 거다. 정식 사장 취임은 1984년이었지만 이때부터 책임감의 무게를 알게 됐다. ‘종업원 생계가 걸려 있는데,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없다’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자각했다. 내가 만약 어딘가에 취직해 월급쟁이를 했다면 오래전에 잘렸을 거다.(웃음)”
 
― 2월 미국 포브스지에 따르면 자산 61억 달러로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그 돈은 다 세금으로 일본 재무성에 들어가지 않을까. 내 나이 60인데, 5년만 더 현장 사장으로 일할 생각이다. 경영은 체력이 필요해 초인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65세가 한계라고 본다. 그래서 내 가장 큰 과제는 이 5년간 사내에서 후계자를 육성하는 것이다. 혹 내 체력이 유지되지 않게 됐는데 이 일을 이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건 가장 불행한 일이다.”
 
회장의 마음에 드는 경영자가 쉽게 나타날까.
사내에 경영자 육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팀 경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영이란 스포츠 같은 것이어서 경영자의 책임을 부여하고 실천 속에서 공부나 연습을 시키면 몸에 익어 간다. 유럽에서도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넓히려 하므로 앞으로는 경영진 절반 정도는 외국인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 6위 의류회사 ‘유니클로’ 이끄는야나이 다다시 日 패스트 리테일링 회장>
―1949년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출생
―1971년 와세다대 정경학부 졸업한 뒤 대형 유통체인 자스코(현 이온)에 입사했다가 10개월 만에 퇴사
―1972년 부친이 경영하던 오고리(小郡)상사에 입사. 이 회사는 당초 남성용 신사복을 판매했으나 캐주얼 의류로 전환
―1984년 오고리상사 사장 취임. 같은 해 ‘유니클로’ 1호점을 히로시마(廣島)에 오픈
현재 일본 전국에 750여 개 점포 외에 한국 미국 유럽 등 세계 6개국에 진출
―2009년 미 경제지 포브스 아시아판 ‘일본의 부자 1위’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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