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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의 그물로 백성을 감싸 안다

김영수 | 34호 (2009년 6월 Issue 1)
사마천이 <사기>에서 일관되게 제시하는 이상적인 리더는 ‘덕(德)’을 갖춘 리더다. 사마천은 덕을 갖춘 리더의 자질로 다음 3가지를 추구했다.
 
①자현(自賢): 리더 자신의 유능한 자질과 능력
 
②구현(求賢): 유능한 인재를 갈망함
 
③포현(布賢): 리더와 리더가 발탁한 인재의 자질과 능력을 실천함
 
특히 세 번째 ‘포현’의 핵심은 백성들에게 널리 이익이 미치도록 하는 자질이다. ‘자현’과 ‘구현’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포현’을 이끌어낸다. 이 3가지 리더의 자질은 리더십의 단계이고, 포현은 리더십의 완성 단계라 할 수 있다.
 
사실 리더십에 대한 모든 논의의 핵심은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문제다. 인재를 발탁하는 리더의 자세가 곧 백성들에 대한 태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 하(夏)나라에 이어 두 번째 왕조인 상(商) 왕조를 건립한 상탕(商湯)은 인재 기용에 대한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폭정의 왕조에 혁명을 일으키다
상탕은 하 왕조에서 상(또는 은[殷]) 종족을 이끌던 제후로, 하 왕조의 마지막 왕인 걸(桀)을 내쫓고 혁명에 성공했다. 그는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천자(天子)는 하늘의 명을 받아 하늘을 대신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이므로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개념인 ‘천명(天命)’을 바꿔 최초의 변혁을 이뤘다.
 
당시 이윤(伊尹)이 걸 임금의 폭정을 걱정하며 “지금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자, 걸 임금은 “백성에게 군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다. 태양이 없어져야 나도 없어진다”며 일축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일제히 “태양아, 빨리 없어져라. 우리도 너와 함께 망하련다” 하고 노래를 부르며 걸 임금의 오만함을 비꼬았다. 민심은 이미 걸에게서 떠나 있었다.
 
걸 임금은 갖가지 가혹한 형벌을 만들어 반항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하루는 혹형을 지켜보던 걸이 대신 관용봉(關龍逢)에게 즐겁고 통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관용봉이 “이 형벌은 마치 봄날에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라하고 에둘러 비판하자, 걸은 “다른 사람의 위험만 눈에 보이고 네 자신의 위기는 안 보이지?”라며 즉각 그를 활활 타오르는 불더미 속으로 처넣어 죽였다. 관용봉은 중국 역사상 바른말을 하다 죽임을 당한 최초의 충직한 신하로 기록돼 있다.
 
걸의 이 같은 악정을 예의주시하던 탕은 착실하게 세력 기반을 넓혀 나갔다. 아울러 걸에게서 떠난 인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인재 회유책도 함께 실행했다.
 
삼고초려의 원형은 상탕
탕은 많은 인재들을 뽑았는데, 그중에서도 이윤과 중훼를 좌상과 우상으로 기용한 점이 가장 돋보인다. 그는 출신과 지위를 불문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뽑았다. 특히 하 왕조의 속국이던 유신(有莘) 부락의 이윤을 발탁한 것은 탕의 혁명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탕이 이윤을 뽑은 일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이윤은 유신 부락의 인재로 이름이 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걸의 폭정에 실망한 그는 탕이 어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탕을 만나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탕이 유신 부락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딸려가는 노예가 되어 요리 기구를 둘러메고 탕에게로 갔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이렇게 전한다. 탕이 이윤의 유능함을 알고는 그를 기용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탕은 포기하지 않고 다섯 번이나 사람을 보내 결국 이윤을 맞이했다. 마지막에는 탕이 직접 이윤을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훗날 유비가 제갈량을 맞이하기 위해 제갈량의 초가집을 3번 찾았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원형이 바로 탕이 이윤을 맞이하는 이 대목이다. 당시 탕이 이윤을 직접 모시러 갈 때, 탕의 수레를 몰던 자가 “이윤처럼 비천한 자를 왜 귀하신 몸께서 직접 가서 데려오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탕은 “여기 눈과 귀를 밝게 하는 영약이 있다면 누군들 먹으려 하지 않겠는가? 나라도 기꺼이 먹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윤을 모시러 가는 것은 영약이나 뛰어난 의사에 비할 수 있다. 그를 모셔오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손실이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행여나 대사를 그르칠까봐 그 마부를 내려놓고 이윤에게 갔다고 한다.
 
‘법망’ 대신 ‘덕망’으로 다스리다
탕의 지극 정성에 감동한 이윤은 탕을 따라 상나라로 왔다. 그러고는 하나라로 다시 가서 동정을 살피겠다고 자청했다. 이렇게 해서 탕은 하나라의 내부 정세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라의 실력을 몇 차례 시험한 끝에 정벌을 결정하게 된다.
 
탕은 주변 제후국들의 동향과 민심의 향배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덕을 선전하는 이벤트성의 세련된 정치술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른바 ‘덕망(德網)’의 리더십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 일화가 전해진다.
 
하루는 탕이 교외에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기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탕은 “어허! 한꺼번에 다 잡으려 하다니”라며 그물의 세 면을 거두게 하면서 “왼쪽으로 가려는 것은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려는 것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오. 내 명을 따르려 하지 않는 것만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오”라고 축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후들은 탕의 덕이 금수에까지 미쳤다며 감탄했다. 이것이 그물의 세 면, 또는 자신이 원하는 한 면을 거두게 했다는 뜻의 고사성어 ‘망개삼면(網開三面)’ 또는 ‘망개일면(網開一面)’의 기원이다.
 
이 고사는 백성들의 소소한 범법 행위를 저인망식으로 훑어 단속하는 야박한 법의 그물 즉 ‘법망(法網)’이 아닌, 덕으로 백성들을 감싸는 덕의 그물인 ‘덕망’의 정치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상탕은 이러한 덕망의 정치로 민심을 얻었다. 법의 그물은 한계가 뻔하지만 덕의 그물에는 한계가 없다. 고래가 빠져나갈 정도로 성긴 그물이라도 그것을 용인하는 덕망이 공존하는 한 백성의 삶은 넉넉하다. 상탕의 덕망의 리더십이 갈망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세상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소름이 끼친다.
 
백성을 보면 정치가 보인다
탕은 덕망의 정치로 민심을 얻어 하의 걸을 내치고 혁명에 성공했다. 덕망은 탕의 리더십을 대변하는 용어로, 그 후 수천 년 동안 법치와 덕치의 효율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법치든 덕치든, 통치의 대상은 백성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선후가 바뀔 수는 있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백성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는 이를 제대로 통찰한 리더만이 성공했다.
 
탕의 덕망은 늘 백성을 향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노선을 방해하는 갈(葛)이라는 제후국을 정벌하기에 앞서 천명한 다음의 말이 그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맑은 물을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백성을 살펴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알 수 있다.”
 
탕은 이윤을 기용해 하나라의 정세를 살피는 첩자로 활용했고, 자신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 그물의 세 면을 트게 하라는 덕망의 이벤트를 연출해 여론을 자기 쪽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노회한 리더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탕의 리더십의 근저에는 늘 백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백성을 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알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준다.
 
정치가 유별난가? 정치가 어려운가? 정치는 ‘바른’ 마음가짐으로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백성을 보라. 그러면 정치가 보인다. 백성을 고달프게 하지 않는 ‘덕망’을 강조했던 상탕의 리더십이 던지는 메시지다.
 
필자는 고대 한·중 관계사를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동안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으며, 2002년 외국인 최초로 중국 사마천학회의 정식 회원이 됐다. 저서로 <난세에 답하다> <사기의 인간경영법>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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