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리더십

마음을 얻어야 이긴다

26호 (2009년 2월 Issue 1)

리더십은 포지션이 아닌 선택
리더십이 단지 높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리더십에 관한 모든 문제를 간단히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대 조직에서조차 지위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휘관에 따라 휘하 부대가 사기충천한 강군이 되기도 하고, 지리멸렬한 오합지졸로 전락하기도 한다.
 
필자가 그 동안 많은 경영자와 리더를 코치하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리더십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리더십을 하나의 규범이나 당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자신의 리더십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직위가 리더십을 보장한다는 생각처럼 빈약한 사고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직위를 떠나는 순간 스스로 존재감을 잃는다. 리더십은 위치·과업·목표와 같은 행동(doing) 측면만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와 같은 존재(being) 측면을 포함하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영향력 문제다. 다시 말해 리더십은 내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강하게 미치고 있느냐를 말해 주는 척도다.
 
어렵고 힘든 경제위기 시대에 많은 리더가 ‘위기가 왔으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서 직원들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보자. ‘이 위기 시대에 나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조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그들이 스스로, 즐겁게 과업을 달성하게 할 것인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감성 리더십’이다.
 
감성의 역할
리더의 감성 능력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EQ 이론’을 창시한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 박사는 미국 기업 간부 380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성공한 리더들이 어떻게 사람의 ‘감성’을 이용하여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고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리더가 감성 능력을 습득하고 훈련하는 것이 성공적인 조직 운영의 필수 요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감성지능(EQ)이 높은 리더가 그렇지 않은 리더보다 직무 수행력과 실적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골먼 박사는 사람들의 성공 요인을 지능지수(IQ)에 관한 것과 EQ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종류의 직업군에서 IQ와 EQ가 차지하는 성공 비중이 각각 평균 33%와 66%로 나타났다. 성공에 있어 EQ가 IQ보다 2배나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특히 리더십을 필수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직업군에서는 EQ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이끄는 관리자 직군(people managers), 고위 임원(executives), 고객 담당자(customer service)의 경우 EQ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5%였다. 반면에 IQ는 15%에 불과했다. 똑똑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거기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결론이다.
 
잘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리더는 혼자 일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성과를 내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때문에 필자는 ‘자기 업무의 전문가’를 뛰어넘어 ‘사람 전문가’인 사람이 훌륭한 감성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중소기업 경영자의 체험담이다. 이 경영자는 직원과 함께 지방 출장을 가려고 새벽에 서울역에서 KTX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코 앞에 다가왔을 즈음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잔뜩 목에 잠긴 목소리의 이 직원은 전날 저녁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도저히 출장을 못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뜻밖의 말에 경영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으며 또한 매우 당황했다. ‘이제서야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현지에서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할 건가’라고 혼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에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이 경영자는 화를 참았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다. “몸이 아프면 우선 회복해야지. 당황스럽지만 할 수 없군. 우선 내가 가서 일을 처리한 뒤 나중에 결과를 알려 줄 테니 그때 의논합시다.”
 
직원은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영자는 출장을 다녀온 뒤에 실제 현지 미팅 결과를 자료화해서 직원에게 보냈으며, 다음 계획을 상의하는 회의도 가졌다.
 
이 경영자는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은 분이었다. 대기업 직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자사 직원의 훈련 정도나 업무 자세에 대해 실망한 적이 많았던 이 경영자는 자연히 잔소리와 질책도 늘었다. 그런 그가 출장을 취소한 직원을 순순히 참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화가 무척 났지만 직원의 입장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차피 출장을 함께 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가뜩이나 몸도 좋지 않은 데 제가 벼락치듯 화까지 내면 그는 결국 출장을 오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불편했을 겁니다. 나중에 직원 얘기를 들어보니 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필자는 우연히 그 직원과 직접 얘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출장을 못 가겠다는 전화를 했을 땐 사장님 반응에 놀랐습니다. 단단히 혼날 각오를 하고 걸었거든요. 출장 후 결과를 메일로 보내주셨을 때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을 정도니까요.”
 
그 당시 심정을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사장님이 저를 사람 취급을 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마지못해 다녔을 겁니다. 지금은 사장님이 저를 믿어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말 제 마음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고수와 하수
사람 관리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 사람 관리의 고수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응하여 마음을 얻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인간은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대할 때 “월급을 받고 있으니 회사에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차원적 전제를 가지고 대한다면 직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 리더는 아직 갈 길이 먼 하수다.
 
고수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자신만의 꿈이 있고, 벅찬 흥분과 쓴 실망을 맛보면서 살아가는 인격체다. 아직 내가 모르는 가능성도 있고, 인정받기를 바라고, 조건만 되면 열정을 동원해 조직에 기꺼이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원 안에 내재한 열정과 가능성을 이끌어내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람 전문가다.
 
감성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푸시(push) 전략 대신 풀(pull) 전략을 쓴다. 푸시 전략이 훈계하고 질책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라면, 풀 전략은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경청하고 질문하고 격려하는 접근법이다.
 
어떤 일이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 리더가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이 리더의 말은 직원들에게 서두르는 마음, 죄책감, 저항감, 방어적 태도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감성 리더들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잘 안 된 요인이 무엇입니까”라는 식으로 질책을 하지 않으면서도 원인이 무엇인지 차분히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 다음에는 “일을 빨리 진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도와줄 사항은 무엇입니까”라며 함께 일을 해결하는 파트너 입장으로 부하에게 다가간다.

일이 급하다고 밀어붙이기만 하면 금방 사람들이 움직일 것 같지만 업무 의욕만 떨어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의 지시를 받아 억지로 하는 일은 누구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훈계와 질책은 큰 효과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상사가 여전히 일방적인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흔히 이런 리더들은 상대방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아 이런 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리더 스스로가 생각할 때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다.
 
감성 리더십의 핵심은 ‘나’ 중심 사고에서 ‘상대방’ 중심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과 규칙은 잠시 제쳐놓고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부터 관심을 갖는 것이다. 리더가 자신의 전문성에만 갇혀 ‘나는 이미 다 안다’는 태도로 일관한다고 생각해 보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다면 리더 자격이 없다.
 
업무 성과는 뛰어나지만 감성 리더십이 부족한 리더는 흔히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잘 알지 못하며 또한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옳음을 사람들이 몰라줘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느냐다. 감성 리더를 달리 표현하면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를 업무에 센스 있게 적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감성 리더다.
 
경제 위기 시대의 감성 리더십
21세기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누구나 고도화된 지식 노동에 매달린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창의력과 자발성이다. 이를 발휘할 수 있게 어떻게 조직 문화를 만드느냐가 리더들의 과제다.
 
리더들이 EQ수준을 높이려면 ‘웃음’의 위력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크게 성공했지만 정작 즐기는 능력이 너무나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즐기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개인의 삶이나 리더십에서 매우 중요한 결핍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인생이 스피드 경주와 다른 이유, 조직이 한 인간에게 열정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조직 내에 웃음을 조성할 수 있다면 조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심각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게 만들어 조직원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야말로 리더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보여 줘야 할 때다. 원래 배는 썰물이 되었을 때 그 밑바닥을 보여 주는 법이다. 밀물인 때는 모든 배가 다 멋지게 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물이 싹 빠져 나갔을 때가 돼서야 그 배의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위기가 왔다고 겁만 주는 리더십, 위기니까 독재도 필요하다며 나만 따르라는 독선의 리더십, 잘못하다간 큰일이 나니 일단 조용히 생존하고 보자는 보신형 리더십…. 이제는 제발 이런 리더십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위기 때 더욱 빛나고, 조직의 어려움을 내 개인의 어려움처럼 공감하도록 만들고, 겁을 집어 먹은 조직원에게 강력한 비전과 위안을 주는 감성 리더들을 만나고 싶다.
 
필자는 서울대 소비자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대 경영학 석사를 이수했다. 한겨레신문 교육연구소 사무처장, 한국 리더십센터 부사장 등을 거쳐 현재 한국코칭센터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유쾌하게 자극하라: 사람을 키우는 리더의 코칭 스킬>, 역서 <우리 팀만 모르는 프로젝트 성공의 법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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