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Close Up

로마는 패장을 차별하지 않았다

서진영 | 66호 (2010년 10월 Issue 1)

시오노 나나미는 묻는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만든 힘은 무엇인가?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의 저자 김경준은 로마의 종교, 정치 체제, 사회 시스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로마인의 ‘개방성’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시오노 나나미도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제국의 유적들이 아니라 제도와 개방성을 통한 사회질서 확립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로마의 개방성은 무엇일까?
 
첫째, 적과 외부 인재를 포용하는 개방성이다
로마 제국의 창시자,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 2대왕으로 추대된 누마는 한 나라가 물과 기름처럼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질서와 풍습을 세우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때 누마가 사용한 방법이 서로에게 적이었던 다양한 부족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백성들을 혈연이 아닌 직능을 중심으로 하여 소그룹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농부들에게는 ‘파기’라는 공동체를 설립토록 했고 도시 거주민들은 목수조합·철공조합·염색공조합·도공조합 등 직업에 따라 각 조직에 소속시켰다.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직능조합에 대한 귀속감이 강해지고 조합 사이의 경쟁도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혈연에 기반한 부족 간 대립이 완화됐다. 또한 이로 인해 잡다하게 혼합돼 있던 각 민족의 다양성은 약해지고 로마사회의 통합성이 보다 높아졌다.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고 무조건적인 동질감을 가져야 하는 혈족사회는 필연적으로 폐쇄성을 띨 수밖에 없다. 반면 직능에 따라 조직된 사회는 같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라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개방성은 로마 시민의 정의에도 이어진다. 21세기인 지금도 민족의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듯이 2500년 전 서양문명의 발상지며 민주정치가 꽃을 피운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시민도 ‘피를 나눈 자’였다. 그러나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라는 점에서 달랐다.
 
로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피부색과 출신지역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펴나갔다.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고 유력자에게 원로회 의석을 제공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는 경쟁자의 역량을 로마의 역량으로 M&A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카이사르는 “로마인은 다른 민족에게 배우기를 거부하는 따위의 오만은 갖고 있지 않다. 좋다 싶으면 그것이 적의 것이라 해도 거부하기보다 모방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피지배민족인 그리스의 신들조차 받아들였던 개방성이 있었기에, 로마인은 넓은 제국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로마인들은 국제 경제를 이용하는 합리적인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고대 로마인은 자신들이 모든 일을 독점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유연성을 갖추고 있었다. 조직력과 군사력을 밑바탕으로 삼아 세계제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이 잘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들에게 맡기는 방식을 지향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미 아웃소싱(outsourcing)의 개념을 확립한 셈이다.
 
로마 형성 초기에도 우호관계를 맺은 주변 부족에게 토목공사를 맡겼고, 강대국이 된 후에도 에트루리아인은 토목, 시칠리아인은 식량 생산, 그리스인은 바다를 통한 교역, 그리스와 소아시아 출신 지식인은 교육, 갈리아인과 게르만인은 기병 전력을 담당하게 했다. 패자인 그리스에는 교육과 문화의 주도권조차 인정했다. 승자의 권리라는 오만한 관점을 버리고 각자의 비교우위를 살리는 관점에서 핵심기능조차 아웃소싱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냉전 종식으로 세계질서가 안정을 찾고 국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교역이 활발해지자 이는 자연히 기업들의 국제 분업구조로 연결됐다. 2000년 전의 지혜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것만을 인정하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개방성은 폭넓은 경쟁우위를 만들어준다.

가입하면 무료

  • 서진영

    서진영sirh@centerworld.com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