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ting Machiavelli

“내 손에 무기가 들어올 때까지 침묵하라”

120호 (2013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는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개보다 못한 대우를 받은 <군주론>

남아 있는 기록과 편지내용을 보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513 8월에서 1514 1월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산탄드레아의 시골 농장에 유폐돼 있던 마키아벨리는 이 책의 출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군주론>의 초고를 읽어 본 피렌체의 출판업자는 마키아벨리를 크게 실망시켰다. 피렌체 공화정의 전직 고위관료, 즉 전() 정권의 핵심 참모였으며 메디치가문에 대한 반란 혐의로 투옥된 경력을 가진 사람의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모름지기 출판사란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군주론>의 출간이 끝내 거절되자 마키아벨리의 상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마키아벨리는 꿈을 접지 않았다. 비록 출간은 거절됐지만 메디치가문의 리더에게 직접 <군주론>을 헌정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디치가문의 심복들에게 <군주론>의 헌정 기회를 달라고 졸라대던 마키아벨리는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된다. 1517, 그러니까 <군주론>이 탈고된 지 2년쯤 지났을 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문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군주론>의 헌정식 일정이 잡힌 것이다.

 

원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느무르의 공작줄리아노 데 메디치(교황 레오 10세의 동생, 1479∼1516)에게 헌정하려고 했지만 그가 1516 3월에 임종하자 생각을 바꾸어 줄리아노의 조카였던우르비노의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1492∼1519)에게

<군주론>을 헌정하기로 한다. 막내 삼촌 줄리아노가 늘 병석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조카 로렌초가 실질적으로 피렌체의군주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둘째 삼촌이자 교황이었던 레오 10세의 명령에 따라 피렌체의 군 사령관의 자격으로 우르비노를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1516 6). 그 무공(武功) 덕분에 로렌초는우르비노의 공작이라는 공식 직함을 얻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병약했던 줄리아노보다 탁월한 무공과 리더십을 갖춘 로렌초 데 메디치를 알현하고 직접 <군주론>을 헌정키로 했다. 마키아벨리의 절친했던 친구 베토리가 헌정식을 주선해 주었다.

 

마키아벨리는 깨끗하게 친필로 필사한 <군주론> 한 권을 들고 메디치궁정으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로렌초를 기다렸다. 그러나 메디치가문의 지도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침 그 헌정식에 참여했던 또 다른 사람이 사냥개 한 마리를 선물로 바쳤는데 로렌초는 그 사냥개만 어루만졌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모욕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정말 그의 <군주론>개보다 못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메디치궁정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군주론>을 한 페이지만 읽어본다면 당장 메디치가문이 자신을 다시 불러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정말 개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깨끗이 꿈을 접기로 했다. 아니, 강력한 영웅의 도래를 꿈꾸던 <군주론>에 대한 희망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원래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웅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 자체를 바꾼 것이다. 메디치가문으로부터 모멸을 당한 마키아벨리는 생의 목표를 수정한다. 메디치 같은 영웅의 도래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시대의 영웅을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이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도된 곳이 바로루첼라이 정원(Orti Oricellari)’의 공부모임이었다.

 

 

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

피렌체 역에서 내리면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이다. 두오모(피렌체 대성당)와 우피치미술관 등 피렌체의 주요 관광지들은 이 성당 건물의 왼쪽 방향에 모여 있다. 이 성당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100m쯤 걷다보면 갑자기 피렌체 주택가에 작은 숲이 나타난다.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진 주택가 한복판에 피렌체의 명문가 루첼라이(Rucellai)가 만든 도심의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생애 후반을 바쳤던루첼라이 정원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정원의 한적한 벤치나 풀밭의 그늘진 곳에 앉아 피렌체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과 함께 로마사 공부를 시작했다.

 

루첼라이 정원은 15세기 피렌체의 현자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설립하고위대한 자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가 그 명맥을 유지시켰던플라톤 아카데미(Academia Platonica)’의 정신을 계승한 피렌체 지성인들의 학술, 친목 단체였다. 루첼라이 정원은 피렌체의 소장파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고전을 공부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가던 공부 모임에서 출발했다. 원래 베르나르도 루첼라이가 1490년대에 처음 설립했는데 그가 1514년에 임종하자 그의 조카 코지모 루첼라이(Cosimo Rucellai, 1495∼1519)가 모임의 좌장을 맡았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젊은이들은 장차 피렌체를 이끌어 가는 동량(棟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치 사상가 차노비 부온델몬티, 역사학자 자코포 나르디, 정치가였던 로렌초 스트로치, 문학가 안톤프란체스코 델리 알비치, 루이지 알라만니, 필리포 데 네를리, 바티스타 델라 팔라 등이 이 모임의 정규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1518년부터 마키아벨리는 이 모임에 초청을 받아 이들의 정신적 스승이 됐다. 실업자였던 마키아벨리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던 귀족 젊은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추렴해 약간의 보수를 주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이 청년들 앞에서 <로마사 논고>를 처음 발표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집필하던 중에 <로마사 논고>라는 새로운 집필 프로젝트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1514년 초부터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틈틈이 작업을 하다가 1517년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사 논고>에 매달렸다. <군주론>이 메디치가문으로부터 냉정하게 거절당한 직후부터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메디치가문에 대한 기대와 꿈을 접는 대신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품었다는 뜻이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는 피렌체의 미래 지도자들을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그만의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였음이 서문에서 바로 드러난다.

 

“나의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이 행운을 만나는 기회를 잡는다면 언제든지 지금 세상의 잘못을 피해 옛 세상의 선례를 본받게 하고 싶습니다.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하느님의 은혜를 넉넉히 받아 이것을 실행할 힘을 가진 사람이 나오길 간절히 바랍니다.”1

 

마키아벨리는 이 피렌체의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수치와 모욕감을 안겨준 메디치가문과 다르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군주론>이 갑자기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쳐진 책이었다면 <로마사 논고>지금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군주가 될 만한 덕망이 높은미래의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기대는 계속 이어진다.

 

(저는) 이 책을 실제로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군주가 될 만한 덕망이 높으신 분, 저에게 높은 지위와 관직, 또는 부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은 없지만 가능하다면 아낌없이 주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분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무릇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실제로 관대하게 베푸는 자와 관대하게 베풀 수 있는 능력만 가진 자를, 또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가진 자와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자를 명백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2

 

사실 루첼라이 정원의 공부 모임에 참여하던 피렌체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메디치가문의 참주 정치에 반대하면서 모든 시민이 주인 되는 공화정의 회복을 최대 목표로 삼았던 일종의 정치단체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의 이상에 목말라 하던 이 젊은이들을 위해 진정한 승리의 비밀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메디치 같은 강자의 횡포를 물리치는 방법을 전수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젊은이들을 위해 <로마사 논고>뿐만 아니라 <전쟁의 기술>이란 실무적인 전쟁의 지침서를 집필했다. 미래의 리더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피렌체를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마키아벨리의 의지가 반영된 책이다. 마키아벨리 생전에 유일하게 <전쟁의 기술>이 출간된 것도 이 젊은이들의 성원과 재정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피렌체 제2 서기장이란 최고위직을 지냈던 마키아벨리는 시대의 영웅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피렌체를 신정정치로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불에 타죽은 수도사 사보나롤라,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 된 체사레 보르자, 2의 카이사르를 꿈꾸며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꾸며 전쟁도 불사했던 교황 율리우스 2, 피렌체 공화정의 원로였던 피에트로 소데리니,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가문의 영광을 이끈 메디치가의 첫 교황 레오 10, <군주론>의 헌정대상이었던우르비노의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 등.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눈에 비친 그들은 진짜 영웅이 아니었다. 마키아벨리의 눈에 그들은 모두 가짜 영웅이었고 사이비 군주였을 뿐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가짜와 엉터리들에게 추상과 같은 비난을 퍼붓는다.

 

“지금까지 군주는 옥석이나 금으로 몸을 꾸미는 것, 일반인보다 훨씬 호화로운 치장을 하고 침식을 행하는 것, 가까이에 첩을 두는 것, 신하를 탐욕스럽고 거만한 태도로 지배하는 것, 무위도식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 무훈에 따라 병사에게 계급을 하사하는 것, 국책에 이견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 매도하는 것, 자신의 말이 신탁의 선고이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군주가 배워야 할 내용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3

 

메디치라는 꿈을 접은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에서 비로소 솔직한 인간이 됐다. <군주론>에 등장했던 여우처럼 남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심중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에게 약자가 강자의 횡포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지금까지 그는 강자를 위해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 강자의 하수인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약자의 수호성자로 변신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마키아벨리 본인도나는 주저함 없이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로마사 논고>의 집필을 시작한다.4

 

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던 마키아벨리는 이들에게 영웅이 되는 방법이 아니라 강자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왜 우리는 늘 당하고만 살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늘 강자에게 짓밟히는 나약한 약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우리는 메디치가문의 참주정치가 초래한 독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우리는 바르젤로 감옥에 갇혀서 날개꺾기 고문을 당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 조국 피렌체는 늘 강대국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신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형국이 됐는가?

 

마키아벨리는 이 대목에서 르네상스적인 인간으로 변신한다. 르네상스란다시()’란 뜻의(Re)’탄생을 뜻하는네상스(Naissance)’가 결합된 말이다. 이탈리아와 피렌체가 다시 강대국으로 탄생하려면 고대 로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만약 강자의 횡포에 억눌려 살던 삶을 청산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면 위대했던 로마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약자가 강자의 횡포와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된 교육밖에 없다.

 

“운세가 좋으면 거만해지고 나쁘면 기가 죽는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여러분의 생활이나 여러분이 받았던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방법이 연약하고 겉치레가 되면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것이고, 이와는 다른 교육을 받으면 여러분 또한 다른 종류의 인간이 돼 세상사에 대해서 좀 더 풍부한 지식을 얻게 되고 행운에 취하고 역경에 실망하는 일도 그다지 없게 될 것입니다.”5

 

그렇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외침이었다. 약자가 강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된 교육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강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우리가 작은 성취 때문에 우쭐해지고 작은 시련이나 미미한 역경에 부딪혔을 때 쉽게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 공부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강자의 논리에 따라 써놓은 역사책의 정답을 불변하는 역사의 진리라고 잘못 믿어 왔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짜놓은 사회 시스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오히려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애를 써 봤지만 팍팍한 우리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받았고, 애써 공부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겉치레식 공부가 우리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를 영원한 약자로, 우리 사회의로 만든 것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를 잘못 해왔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외쳤다.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이빨을 굳게 깨물고 주먹을 뿔끈 쥘 것이 아니라 책을 펼치라고. 고전의 지혜로 빠져들라고! 위대했던 참영웅의 시대인 로마시대로 돌아가자고! 참된 교육을 통해 모든 인간은 자유를 얻으리니 부디 피렌체의 젊은이들이여!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펼치시라! 그러면 당신들이 더 이상 메디치와 같은 강자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를 얻게 되리라! 작은 행운에 우쭐대지 말고 시련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말라! 참된 공부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지니!

 

 

피렌체 청년들에게 고함

<로마사 논고>는 강자의 논리를 뒤집는 책이기 때문에 혁명의 지침서라고 해도 좋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의 첫 번째 장에서 이 책의 목적을 정확하게 밝힌다. 강자의 횡포를 이겨내고 공화정의 이상을 지상에서 실현했던 로마의 역사를 통해그것을 모범으로 삼고 그 선례를 따르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제1권 첫 번째 장의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역사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꼭 챙기기 바란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는 비록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도움 때문에 조금이나마 목적지의 가까운 곳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장차 뜻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너무 긴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기대해 본다.”6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를 쓴 목적은 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이장차 뜻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뜻하는 목적이란 메디치가문을 전복시키고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강자의 전횡과 횡포가 피렌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뜻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에게 <로마사>를 강의한다.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의 첫 번째 열권에 대한 해설서의 형식으로, ‘뜻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로마가 위대했던 이유는그 도시의 기원이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행동의 의해 시작됐기 때문이다.7 로마는 이상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왕정, 귀족정, 민주정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권력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한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8 그러나모든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에 의해이런 완전한 공화정은 점차 힘의 균형을 잃고 한 개인이나 집단에 권력이 쏠리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강자의 횡포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공화국의 경우 10인회(Decemviri legibus scribundis)가 바로 그런 강자 집단이었다. 원래 시민 대표로 10명을 뽑아 입법부의 역할을 맡긴 제도였지만(기원전 452년 설치) 이들은순식간에 폭군으로 변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9 언제 어디서나법률의 제약을 받지 않는 권력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반드시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10인회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Appius Claudius Crassus, 기원전 451∼449년 활동)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집정관과 호민관 제도를 폐지하고 집단 독재체재로 로마사회를 갈등국면으로 몰고 간다. 마키아벨리는 아피우스의 행적을 기록한 리비우스의 <로마사> 부분을 다시 분석하면서 약자였던 로마 민중들이 어떻게 아피우스의 전횡과 독재에 대항했는지를 보여준다.

 

아피우스와 10인회의 전횡이 극에 달한 사건이 바로 유명한베르기니아 사건(Verginia Affair)’이다.10 로마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10인회의 수장 아피우스는 미모를 가진 베르기니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다. 자기 집안의 노예를 사주해서 베르기니아를 그 노예의 딸이라고 주장하게 만든 것이다. 베르기니아가 노예의 딸이라면 아피우스가 노예의 딸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마법상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기니아의 생부(生父)는 딸의 억울한 처지를 재판정에 호소하면서 정의가 실종됐다고 울부짖다가 딸을 살해하고 만다. 딸의 순결을 지키겠다는 신념에서 저지른 친족 명예살인이었던 것이다.

 

 

 

로마 평민들은 아피우스의 전횡과 10인회의 독단에 반발했고 모두거룩한 산으로 불리던 베칠리우스 산(Mount Vecilius)으로 올라가 집단 파업을 일으켰다. 초유의 국가 파업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로마 평민들은 산 위로 올라가 농사를 포함한 모든 생산 활동과 군복무를 거부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10인회 대표가 성산(聖山)으로 올라가 평민대표와 타협책을 논의했다. 로마 평민들은 세 가지를 요구했다. 호민관 제도를 부활시킬 것과 공직자를 임명할 때 평민대표(호민관)의 자문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10인회 대표는 이 두 가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요구는 10인회 대표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10인회 멤버 전원을 공개 화형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10인회의 대표는 로마 평민들 앞에 서서당신들이 잔혹한 행위를 비난하면서, 스스로 그런 잔혹한 행위를 하겠단 말이요?”라면서 제안을 거절한다.

 

마키아벨리는 아피우스와 10인회의 사건을 통해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지 않고 사는 법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우선 모든 인간이 잠재적인 악당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가르친다. 아피우스가 그런 악당의 대표 격이다.

 

10인회 사건은 인간이 선량하게 태어났더라도, 또한 교육을 통해 교양을 갖추더라도 얼마나 쉽게 타락해버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인품이 변해 버리는지 그 실례를 보여준다.”11

 

이런 악당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에 따라 무분별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처벌받게 된다는 견제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강자는 적극적으로 감시돼야 하며 그 권한이 도에 지나칠 경우 그것을 견제하는 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성산(聖山)에서 파업을 일으키면서 10인회에 대항했던 로마 평민들을 비판한다. 10인회의 대표에게 자신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말로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약자는 강자에게 자신의 딱한 처지를 말로 호소하지 말고그들의 세력과 권위를 압도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한다.12

 

약자의 위치에 있는 로마 평민들이 강자의 위치에 있는 10인회 대표들에게 “10인회 멤버를 전원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한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피해가 닥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비판했다.

 

“이 사건을 보면, 무엇을 요구하면서우리가 이것을 요구했을 때 여러분은 이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솔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 속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요구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한테서 무기를 빼앗을 때도 그것으로 당신을 죽일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일단 내 손에 무기가 들어오면 그때는 아무 것도 꺼릴 것 없이 행동해야 한다.”13

 

약자들의 수호성자인 마키아벨리의 이 섬뜩한 제안을 들었을 때 루첼라이 정원의 청년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마키아벨리는 강자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우선 자신의 정체를 속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강자를 타도해 버리겠다는 의도를 발설하지 말고 때를 기다렸다가일단 내 손에 무기가 들어오면 그때는 아무 것도 꺼릴 것 없이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약자들의중심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 1, 44장의 제목을리더가 없는 대중은 힘이 없다고 잡았다. 약자들에게 중심인물(리더)이 없으면 그들은 오합지졸일 뿐이다. 마키아벨리는루첼라이 정원의 젊은이들이 뜻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중심인물이 되라고 요구한다. 왜 약자는 강자의 횡포에 당하고만 사는 것일까? 왜 약자는 강자가 자신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계속 추구해 나갈 때 아무 말 못하는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에게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대답할 용기를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14 대답할 용기를 가진 자가 강자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비르투스(Virtus)의 덕목으로 다시 돌아간다. 비르투스, 즉 용기를 내란 말이다. 이 세상의 약자들이여 스스로 운명에 맞서고, 용기와 기개를 잃지 말라. 자신의 속내를 강자에게 알리지 말고 일단 내 손에 무기가 쥐어지기 전까지 침묵과 위장으로 일관하라. 일단 내 손에 무기가 들어오면 그때는 아무 것도 꺼릴 것 없이 행동하라. 이것만이 살 길이다. 승리의 여신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SK케미칼 고문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15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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