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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the Maestro

“혁신은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 불가능한 것이야 말로 매력적이다”

신수정 | 120호 (2013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작성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은(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가야금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황병기(7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그에게는가야금의 명인’ ‘국악의 선구자’ ‘국악 세계화의 주역이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삶이 한국 현대 국악사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황병기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그냥 담백하게가야금 작곡가 겸 연주자.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그는 6·25 전쟁 중 피난처인 부산에서 우연히 들은 가야금 소리에 매료돼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 연주와 함께 5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작곡에 대한 애정도 대단하다. ‘미궁은 탁월한 현대음악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쉬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그는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임기를 마친 후에도 여전히 바쁘다. 지난 9월에는가야금 명인 황병기와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올해의 마지막 날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제야음악회에 참석해 연주한다. 74년부터 한번도 이사를 가지 않고 살아온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 2층 서재에서 거장이 걸어온 음악 및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학교 3학년에 가야금을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지셨다고들었습니다. 황 교수님 인생에서 가야금은 무엇인지요.

가야금이 좋아서 했지 아무런 목적이 없었어요.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가야금과 연애를 한 셈이지요. 대학 진학 때는 가야금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법대에 갔어요. 처음에 법대를 지원할 당시에는(1955) 전국에 국악과가 있지도 않았고요. 또 국악을 해서 그것을 내 직업으로, 생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법대를 졸업한 해인 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대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생겼어요. 당시 음악대 학장인 현제명 선생이 국악과 강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강사활동을 시작했어요. 강사를 하면서도 이것이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63년에 음악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한동안 음악과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74년에 이화여대에서 국악과 전임교수를 맡아달라고 요청했어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음악인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가야금이 내 전공이라는 프로의식을 가지게 됐죠. 당시 내 나이 서른여덟살 때입니다. 고등학교 때 한번, 대학교 때 한번 전국국악콩쿠르에서 1위한 경력은 있었지만 74년 이전에 나는 그저 좋아서, 아무 목적 없이 가야금을 했어요. 하지만 74년 이후부터 가야금이 내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나와 가야금은 숙명적인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직업과 결혼인데 나의 직업은 가야금 작곡가 및 연주자이며 국립국악원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어요. 2001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지금까지도 가야금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고 61년 동안 매일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살고 있어요. 요새는 연습을 많이 못해도 매일 3∼4시간은 하고 있어요. 악기를 한다는 사람이연습을 많이 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선 최소 하루에 일곱 시간 정도는 연습을 해야 해요. 나도 한창 많이 했을 때는 하루 종일 가야금만 하다시피했지요.

 

가야금은 어떤 매력이 있는가요.

그것은 모를 일이지요. 연애하는 사람에게 상대방의 어떤 점이 좋아서 연애를 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을 겁니다. 만약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전부 거짓말이지요. 연애는 상대방의 키, 얼굴 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이유로 인해 하는 것이에요. 나에게 가야금도 이와 마찬가지죠. 그저 좋아서 했어요. 연애할 때 상대방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연애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꽃도 마찬가지죠. 어떤 사람이 장미를 좋아하면 그저 장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꽃을 좋아하는 것이지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없기 때문에 그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는 것이지요.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겸임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야금 명인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대한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음악대표와 연세대 특별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1년 부산 피난 중에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동 대학교의 국악과 강사가 됐다. 첫 가야금곡인 <>을 작곡한 이래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고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등으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백남준, 윤이상, 존 케이지 등과 음악적 교류와 친분을 갖기도 한 그는 국악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악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하는 데 공로를 쌓아은관문화훈장’ ‘방일영 국악상’ ‘호암상’ ‘에밀레 대상등을 수상했다. 대표적 가야금 작곡집으로 <침향무>(1974) <미궁>(1979) <달하 노피곰>(1997) 등이 있고 저서로는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1994)가 있다.

 

지금도 매일 가야금을 연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평생에 걸쳐 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예술의 좋은 점, 음악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음악에 내 평생을 거는 셈이 돼버렸는데 음악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음악에는 오락적인 기능도 있고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기능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오락적인 기능의 음악을 위해서는 내 평생을 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음악은 전부가 명상적이고 나는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음악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떻게 보면 내 음악은 재미가 없죠. 난 재미있는 음악을 싫어합니다. 재미가 있는 것은 재미가 없어요. 이유는 나도 몰라요. 나는 운동도 유도와 철봉만 했어요. 보통 재미가 없어서 잘 하지 않는 운동이죠. 싸이의강남스타일이 굉장히 인기를 끌고 나도 그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재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음악이란 어떤 음악인지요.

가령 우리는 주로 코카콜라 같은 청량음료를 사서 마시지만 결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마시는 것은 생수예요. 물은 아무 맛이 없지만 그것을 제일 많이 마셔요. 또 누구든지 물을 제일 먹고 싶어하고요. 다른 음료는 마시지 않아도 되지만 맹물은 안 마실 수가 없어요. 생명수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똑같은 생수를 마시더라도 가능하다면 깊은 산속의 약수를 마시는 것이 더 좋겠지요. 이처럼 대중들은 새콤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생수’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 <논어>를 매우 즐겨 읽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논어> 좋아하지요. 왜냐면 <논어>는 말이 쉽고 평범해요. 특히 시대를 넘어선 말들이 많아요.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나뿐만 아니라 <논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게 좋아하는 구절인데 첫 번째 시작하는 말이에요. ‘배우고 배운 바를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悅乎)’. 이는 아주 기가 막힌 말이에요. 내가 칠십 평생을 살면서 깨닫는 것은 가장 즐거울 때가 배울 때라는 겁니다. 아무리 노인이 되고 죽을 때가 가까워져도 배우지 않으면 못 살죠. 매일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배우는 것이에요. 어린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아이들은 줄곧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잖아요. 모르는 걸 배우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사실 없어요. 그리고 공자는 배운 바를 열심히 익힌다고 안하고때때로라고 했어요.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죠. 다른 재미있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이죠. 얼마나 민주적이에요. 그것도 아니한가라고 물어봤지그렇다라고 안 했어요. 말하는 방식이 참 민주적이고 독단적이지 않아서 좋아요.남이 나를 몰라줘도 내가 노여워하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이 구절도 좋아해요. 직장이나 가정이나 친구 사이에서나 분쟁, 고민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남이 나를 몰라준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특히 직장에서는 심하지요. 상사는 부하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하고, 부하는 상사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미워하죠. 그런데 공자는 여기에 이렇게 말해요.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몰라주는 것을 걱정해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정말 기가 막힌 조언이죠. 이처럼 시대를 넘어선 말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요. 이런 구절도 생각나네요. 어느 날 제자가 공자한테 죽음 이후에 대해서 물어보니까나는 살아서 내가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죽은 다음까지 어떻게 아느냐(生未知死焉知)’고 해요. 다 맞는 말이지요. <논어> 중에서 좋은 말을 뽑아서 내 나름대로 A4 용지 다섯 장 정도의 명언집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외워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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