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감정 절제, 과연 미덕일까?

113호 (2012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오랫동안 CEO들을 대상으로 심리클리닉 강좌와 상담을 진행해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가 리더들에게 필요한 마음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경영자들이야말로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인생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생기(生氣)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운, 활력이 넘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생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 불안, 우울, 두려움,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우리 마음속에 한번 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리하면 웬만해서는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몸에도 이상이 나타난다. 그것이 신체화 증상이다.

 

서명훈 씨(가명, 45)는 평소 자신이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당신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돌덩이 같은 사람이란 아내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대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줄 알았다. 다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었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우울할 때도 많았다. 때로는 그의 화를 돋우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 모든 감정들을 잘 통제해 오고 있다고 믿었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화가 난다고 해서 그것을 겉으로 팍팍 드러낸다는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는 자신의 패를 남들에게 읽히는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그건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수를 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포커페이스가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친구들 중에는 더러 감정적으로 좌충우돌하는 타입이 있었다. 그들은사는 게 힘들다, 요즘 같아선 우울하고 불안해서 앞이 안 보인다,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이 꼴 저 꼴 안 봤으면 좋겠다하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 친구들일수록 여자 문제를 일으키거나 해서 험한 꼴을 봤다. 나중에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편하게 하소연할 상대가 필요했노라고 주장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아무한테나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부수면서 주사를 일삼는 친구도 있었다. 그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런 친구들을 경멸했다. 자기 감정 하나 다스릴 줄 몰라서야 남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험한 세상에서 남한테 우스운 꼴 안보이고 성공하고 싶다면 감정을 앞세우면 곤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사업상 아주 중요한 사람과 미팅을 하게 됐다. 회사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리였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그는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뱉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그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신히 수습은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점점 그 두려움의 감정이 커지면서 이제는 비행기나 차를 타는 일조차 잘할 수가 없었다. 운전을 하고 고가도로를 지나가거나 다리를 건너갈 때면 자동차가 꼭 난간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비행기 역시 날다가 추락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한번 밀려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그는 견디다 못해 상담을 받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상태를 남들이 눈치챌까봐 전전긍긍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에 선배가 먼저 공황장애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날 선배는 말했다.

 

“너, 내가 이런 얘기 하니까 이해가 안 되지?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들 중에 비슷한 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더라. 다들 꽁꽁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그런데 내가 상담을 받아보니까 그게 숨기기만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너한테도 말해 주는 거야. 내가 죽을 뻔하다 살아나 보니까 알겠더라. 그러니 너도 조심해. 문제가 있으면 나처럼 키우지 말라는 뜻이야.”

 

그제야 서명훈 씨는 선배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문제는 지나치게 감정을 억압한 것이 원인이었다.

 

 

불행한 포커페이스

정신과적 병명 중에 문화 관련 증후군이 있다. 한 개인이 속한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정신적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화병이 여기에 속한다. 화병은 말 그대로 화가 나서 생기는 병으로 증상이 주로 불과 관련이 있다. 주로 여성들에게 많은데 마음속에서 불이 난다, 불이 돌아다닌다고 호소한다.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서는 한겨울에도 마음에 불이 나서 옷도 벗고 창문도 열어젖히고 살았다는 분들이 많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환기가 안 되면 마음에 차곡차곡 억누르기만 해 왔던 감정이 썩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치 켜켜이 쌓아놓은 퇴비에서 열이 나듯이 마음에서도 열이 생겨 화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한번 입력된 정보는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이 의식을 하든 안하든 거기에 매달리게 돼 있다. 마치 음식에 체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소화불량이 되면 어떤가? 음식만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아프다. 기의 흐름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감정도 제때에 제대로 표출이 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고여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서명훈 씨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미팅에서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지 못하는 증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평소 성공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성공한 모습만 보였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공해야 하는데 만약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컸던 것이다.

 

그와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불면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감정이 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만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도 몸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를 떠올려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면서 심장이 마구 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갑자기 배가 뒤틀리는 건 사랑이라는 감정에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몸에도 똑같이 영향을 준다.

 

물론 감정을 아주 잘 숨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손이 떨린다든지, 몸의 자세를 바꾼다든지 해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 우리 몸 자체가 감정을 느끼는 도구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이다.

 

언어의 치유 기능

감정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내부나 외부에서 경험하는 일에 대해서 인지와 생리현상이 서로 뒤섞여 일어나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감정이 몸에 영향을 주어 반응이 일어난 다음에 생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차적이고 본능적이기 때문에 더욱 명백하게 한 개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무섭다. 그러면 그 무서운 감정이 당장 내 몸에 영향을 미쳐 그 사람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하지만 내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려면 그런 내색을 하면 곤란하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관계에서는 그 사람에게 더 복종하고 잘해주려고 한다. 그런 경우 나는 의식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그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내 몸의 고통은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불면증이나 공황장애의 증상들 역시 의식적으로는난 힘들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가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말 그대로 희로애락이다. 다른 감정들은 이 네 가지 감정의 합성물이다. 따라서 적절하게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삶의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강제로 억압한다는 것은 곧 삶에서 윤활유를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일찍이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그 엔진을 가동시키는 가솔린이라는 비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제대로 다스리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어가 중요하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느낌을 좀 더 풍요롭게 기술하는 경험을 체득한다면 굳이 감정을 억압할 필요가 없다. 마치 창문을 열어 방안에 고여 있는 공기를 바꾸듯이 마음도 말을 통해 일종의 환기를 시키는 셈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 특히 불안이나 우울이 깊어지면 좌뇌의 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언어로 표현하면 좌뇌의 기능이 활성화하면서 현실 적응 능력이 회복된다. , 내 안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 밝음과 따뜻함, 부드러움과 유쾌함, 장난스러움과 호기심을 되살린다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활력이 넘치게 되지 않겠는가.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 mind-open@mind-open.co.kr

필자는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로 현재 마인드앤컴퍼니 대표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에서 주역과 정신의학, 리더십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미국의사경영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음을 읽다> <미운 오리새끼, 날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등 자기계발, 대인관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책들을 10여 권 넘게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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