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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SK루브리컨츠의 글로벌 전략

실무진 판단 믿고 글로벌 시장 돌진,‘틈새시장’ 고급 윤활기유 최강자로 우뚝

이미영,류주한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SK루브리컨츠는 불과 20년 만에 내수용 윤활유 기업에서 글로벌 고급 윤활기유 시장 내 1등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SK루브리컨츠의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이미 포화된 일반 윤활기유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고급 윤활기유 시장을 겨냥해 기술개발 역량과 투자를 집중했다.
2) 자사가 보유한 기술력과 마케팅 네트워크를 해외 주요 에너지회사의 잔사유(미전환유)·공장부지 등 생산역량과 결합한 합작법인(Joint Venture)을 통해 고급 윤활기유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3) 글로벌 인력을 전체 인력의 60%까지 확대, 미국, 유럽, 인도 등 6개 해외 법인 설립 등 해외 시장에 적합한 인력 및 조직 배치를 통해 마케팅 역량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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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1 는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중 수익률이 좋은 알짜기업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5358억 원, 영업이익 4683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매출 3조1690억 원, 영업이익 513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루브리컨츠의 주력 상품은 ‘유베이스(Yubase)’라는 고급 윤활기유다. 사실 SK루브리컨츠제품 중 우리에게 익숙한 건 지크(ZIC)라는 윤활유 제품이다. 하지만 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지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다. 그것도 국내 시장에서 대부분 판매된다. 나머지 87%는 윤활유 제품의 원료인 유베이스가 담당하고 있다. BP(British Petroleum), 셸(Shell) 등 글로벌 정유사들도 프리미엄 윤활유 제품을 만들 때 유베이스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엔 이런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SK루브리컨츠의 전신인 옛 유공의 윤활유 사업부는 해외에서 모든 원료를 납품받아 제조해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윤활유 원료의 핵심인 윤활기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국내 시장에만 집중해 글로벌 윤활유 업계에선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더니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다. 이들이 주목한 건 틈새시장이었다. 현재 규모가 작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에 세계 시장 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 규모가 컸지만 이미 포화상태인 일반 윤활기유 시장에 진출하는 대신 시장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도 선뜻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않았던 고급 윤활기유 개발에 집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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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동맹 체제도 구축했다. 인도네시아, 일본, 스페인 등 해외 유력 정유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든 것이다. SK루브리컨츠의 기술력에 협력사가 보유한 원료와 공장 부지 등 생산력을 더했다. SK루브리컨츠는 이들과 함께 만든 해외 생산기지를 포함해 유베이스를 하루에 총 6만800배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40% 수준이다. 당분간 어떤 경쟁사도 넘볼 수 없는 리딩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20년까지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연평균 5∼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SK루브리컨츠의 전망은 더욱 밝다. SK이노베이션에서 분리된 자회사로는 최초로 기업공개(IPO)도 추진 중이다. SK루브리컨츠가 글로벌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소매상에서 글로벌 틈새시장 선도주자로

1. 세계 최초 고급 윤활기유 개발

SK루브리컨츠의 전신은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부다. 1990년대 초까지 이 사업부는 회사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윤활기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제품을 만드는 핵심 원료를 글로벌 회사에서 수입해 만들었다. 국내 시장 규모도 다른 나라에 비해 작았기 때문에 ‘로컬 소매상’ 정도의 위상만 갖고 있었다.

독점적 지위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사업이 위기를 맞은 건 1990년대 초 산업자율화가 이뤄지면서다. 해외 기업들과 손잡고 국내 기업들이 윤활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차별화된 기술도, 가격 경쟁력도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국내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특히 윤활기유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S-oil의 등장은 위협적이었다. 가격 경쟁력이 뒤져 자칫하면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상황이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유공 윤활유 사업부는 윤활유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윤활유의 핵심 원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생산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SK그룹은 1992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일반적으로 시장에 통용되고 있는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생각보다 윤활기유 생산을 위한 투자금이 많이 들었고 윤활기유는 정유사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도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초 예상액보다 적은 1200억 원을 투자해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에 도전하겠다고 경영진을 설득했다. 일부 경영진은 반대했다. 당시 일반 윤활기유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며 고급 윤활기유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글로벌 회사들도 뛰어들지 않는 사업에 도전하는 건 무모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일각에서는 승산이 있는 게임이란 의견도 나왔다. 이미 글로벌 정유회사들이 장악한 일반 윤활기유 생산 대신 아직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성장성이 큰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기존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 고전하기보다 새로운 영역에서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경영진은 연구진의 손을 들어줬다. 향후 고급 윤활기유에 대한 시장 수요가 늘어날 확률이 높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에서 선도자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고급 윤활기유는 점도(Viscosity Index)가 높아 휘발성이 낮아져 윤활유를 오래 쓸 수 있고 자동차의 엔진 마모를 더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만약 대량 생산이 가능하면 엔진 피로도가 높은 일본 시장이나 환경규제가 엄격한 유럽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경영진도 미래 시장에 승부를 걸어볼 만한 기술이라고 생각해 투자를 결정했다. 국내 시장의 규모가 미미하더라도 선도적인 투자로 전 세계 윤활기유 시장에서 1%의 점유율만 확보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판단한 것이다.

SK루브리컨츠는 1995년 고급 윤활기유 ‘유베이스’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유명 글로벌 정유회사도 도전했다가 경제성 등의 이유로 포기했던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SK루브리컨츠는 고급 윤활기유 맞춤형 생산 공정을 만들었다. 일반 윤활기유와 고급 윤활기유의 성질이 다르다. 일반 윤활기유는 ‘상압 잔사유’에 탈왁싱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상압 잔사유는 원유를 상압식으로 증류해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원유를 뜻한다. 반면 고급 윤활기유는 여기에 공정을 한 단계 더 추가한 잔사유를 활용한다. 많은 정유사들은 상압 잔사유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추가로 생산하기 위해 수소화학분해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생산된 휘발유와 경유를 제외하고 남은 잔사유가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쓰이는 것이다.

두 윤활기유의 성질이 다르지만 정유사들은 각각의 생산설비를 따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급 윤활기유를 생산할 때에는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할 수 없었다. 고급 윤활기유 수요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일반 윤활기유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선 큰 손해였다.

SK루브리컨츠는 원유 정제 과정에 윤활기유 정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공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반 윤활기유 생산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비한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집중해 맞춤형 생산 공정을 만든 것이다.

휘발유와 경유 등을 추가로 생산하는 공정과 고급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공정에 공통적으로 수소화학분해 공정이 들어가는 점에 착안했다.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하지 않고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공정을 연결해 연료유와 고급 윤활기유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공정 절차가 끝나더라도 다시 처음 공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 형태로 설계해 공정을 거친 후에도 남은 잔사유는 다시 연료유 제조 공정으로 돌아가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 SK루브리컨츠는 원유정제 공장이 있는 울산공장에 고급 윤활기유 생산 공정을 추가로 연결했다.이렇게 유베이스가 탄생했다.

윤활기유 생산에서 중요한 공정인 탈왁싱 과정도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했다. 경쟁사들은 잔사유에 있는 왁스 성분을 용제(solvent)로 걸러내는 방식을 적용하는 반면 SK루브리컨츠는 촉매제를 이용해 왁스 성분을 다른 성질로 변화시켜 잔사유에서 걸러내지 않아도 됐다. 원료 손실이 적어지니 그만큼 수율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SK루브리컨츠는 통합 공정을 통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수율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투자비용은 당초 예상했던 1200억 원에서 800억 원으로 줄었다. 기존 1배럴의 고급 기유를 생산하기 위해선 94배럴의 원유가 필요했는데 통합 공정을 이용하면 23배럴의 원유로 충분했다. 이 공정은 23개국에서 특허로 인정받았다.

또한 연구개발과 공장 설비 구축을 한꺼번에 진행해 준비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촉매를 이용한 탈왁싱 공정과정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선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가 필요했다. 문제는 파일럿 테스트를 하기 위한 설비를 만드는 데만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SK는 이 과정을 과감하게 아웃소싱으로 돌려 시험 설비를 갖추고 있는 미국 회사에 위탁했다. 여기서 생산된 시제품을 활용해 윤활유 제품을 개발했으며 유베이스 본격 양산 전 고객사들을 다니며 마케팅 활동을 수행했다.

파일럿 테스트가 진행될 동안 울산 공장에는 고급 윤활기유를 만들기 위한 공장이 동시에 건설됐다. 파일럿 테스트와 설계, 조달 및 시공(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EPC)을 한 번에 진행해 3년 만에 연구개발, 공장 건설을 모두 완료했다.

이후에도 관련 기술 개발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00년 고급기유 생산량이 1995년의 2배로 확대되자 SK는 2004년 울산 제2공장을 지었다. 제품라인도 다양화했고, 수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다. 한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맑아야 하는 윤활기유가 뿌옇게 된 것이다. 외국 메이저 업체에서 수입해 온 촉매제가 문제였다. SK루브리컨츠 연구진은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할 때 이런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요소 기술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2004년부터 25명의 연구진, 4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기약 없는 연구가 시작됐다. 촉매 관련 공정 기술은 전 세계를 통틀어 세 회사만이 가진 희소한 기술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2005년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생산지에 따라 성질이 조금씩 다른 원유의 특성상 공정 원료와 과정을 세밀하게 변화시켜야 했다. 다양한 조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촉매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그렇게 1000번도 넘는 실패가 반복됐다.

2011년 SK루브리컨츠는 촉매제 개발에 성공했다. 엑손모빌, 셰브런, 셸에 이어 세계적으로 윤활기유 촉매 기술을 보유한 4번째 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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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영

    이미영mylee03@dong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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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주한

    류주한jhryoo@hanyang.ac.kr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 직접투자 실무 및 IR, 정책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국내외 학술 저널 등에 기술 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비시장 전략, PMI, 그린 공급망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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