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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vs. Business Strategy

가미카제와 델타항공의 실패, 공통점? 사람의 소중함 잊었다

김경원 | 184호 (2015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쟁 사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실시한 가미카제(神風) 공격의 성과는 일본 군부의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쳤음. 자살 공격에 투입된 병력 중 단 14%만이 실제 적군 함정에 돌격할 수 있었음. 전세가 기울자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와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무작위 투입. 그 결과 항공기 품질이 갈수록 떨어져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훨씬 많아지는 일까지 발생, 패전의 주요 빌미가 됨.

경영 사례: 델타항공은 1990년 이후 불황과 고유가의 이중고로 적자가 지속되자 대대적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을 실시. 이후 1990년대 중·후반 외부 여건이 좋아지자 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꾀하다 2004년 또다시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 이 과정에서 수많은 숙련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회사를 떠나 2005년 파산 보호 신청을 내는 지경에 이름. 2007년 파산 보호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델타는 노스웨스트항공과 합병 후 감원을 최소화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조건을 내걸며 다시금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

 

편집자주

전략은 원래 전쟁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전략의 이론은 중국의 <손자병법>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에 이어 20세기 영국의 리델 하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정립되고, 또 실전에서 적용돼 왔습니다. 그만큼 경영 전략은 실제 전쟁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점이 많습니다. <전쟁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경원 박사가 전쟁 사례로부터 얻은 전략적 교훈이 어떻게 실제 경영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전쟁 사례를 통해 의미 있는 경영 전략의 지혜를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손자병법>에 제시된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기 위해 전쟁 전 따져봐야 할 일곱 가지 계책은 사실상 모두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회사가 회생전략 수립 단계에서 기획 담당자들이 자주 범하게 되는 실수는 감원 등으로 인건비를 절약하면 머지않아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인력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문제는 명예퇴직 등을 통해 감원 목표를 세우고 인력을 줄이면,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순으로 회사의 존립에 꼭 필요한 핵심인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은커녕 실적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다음 사례는 전쟁과 기업경영에서도사람 중시여부가 승패 및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 사례: 일본의 패전 원인과 가미카제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 9∼10월경 일본은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미국 함대가 남태평양의 섬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면서 북상해 오고 있었지만 몇 번의 큰 해전에서 패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이나 전함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변변한 반격조차 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궁지에 몰린 일본군 수뇌부는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직접 적함에 돌진시키는 자살 공격을 생각해냈다.

 

‘가미카제(神風)’ 1274년에서 1281년 사이에 몇 차례 일본을 정벌하러 온 고려, 몽골의 연합군이 탄 함대를 그때마다 수장시켜 쿠빌라이의 일본 정복을 좌절시킨 태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해군은 이런 자살공격을 수행할 부대에가미카제 특별 공격대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이후 일본 내에서는 모든 형태의 자살 공격을 가미카제라고 통칭하게 됐다.

 

첫 번째 공식적인 가미카제 부대는 1944 1019일 조직됐고 세키 유키오(關行男) 대위가 지휘를 맡았다. 그가 이끄는 5대의 제로센 전투기는 1025일 오전 미 해병대의 필리핀 레이테 섬(Leyte Island) 상륙을 엄호하던 미 함대에 공격을 가해 호위 항공모함세인트 로(St. Lo)’를 격침하고 다른 함정 몇 척도 손상을 입혔다. 처음에는 제로센 같은 전투기에 250㎏짜리 폭탄을 두 개 달고서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기와 함께 적의 함정에 돌진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연료도 적진에 도달할 만큼만 주어졌다. 돌아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가미카제의 공격수단도 다양해졌다. 폭격기에 실려가다 적의 함대 근처 상공에 이르면 분리돼 조종사가 적 함정으로 조종해 들이받는 로켓추진 폭탄오카(櫻花)’, 잠수함에서 발사된 후 인간이 조종해 적함으로 돌진하는 어뢰카이텐(回天)’, 쾌속보트에 폭탄을 가득 싣고 적함으로 돌진하는신요(震洋)’ 등이 대표적 예다. 모두 인명 경시의 산물들이다.

 

가미카제 공격의 성과는 일본 군부의 당초 기대보다는 훨씬 못 미쳤다. 가미카제 공격을 시도하러 온 비행기 중 중간에 미 해군기에 의한 요격 및 미 함정의 대공포화로 대부분이 격추되고 단 14%만이 이를 뚫고 해군 함정에 실제 돌격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자살공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최고 고급 인력인 조종사가 4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의 인명 경시풍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부터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보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항공기 생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숙련공이 없는 공장은 비숙련 부녀자가 채웠고 이를 감독해 품질을 유지해줘야 할 기술자마저 없으니 전투기 등 항공기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다. 최전선에서도 일선 정비병들에게 총을 들려 전장에 투입시키다 보니 종국에는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훨씬 많아지는 일도 생겼다. 결국 종전 무렵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보다 더 심각한 자멸의 길을 걸어갔다. 60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며 일본군 조종사 중 최고의 격추왕으로 꼽히던 사카이 사부로( 井三郞)라는 사람은 전후에 한 인터뷰에서일본이 패전한 원인은 좋은 기술 인력과 숙련된 전사를 가볍게 여긴 탓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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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원

    김경원

    -(현) 디큐브시티 대표이사 겸 대성산업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 리서치센터 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CJ그룹 전략기획총괄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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