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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용병의 신’이성계, 나하추의 꿈을 꺾다

임용한 | 145호 (2014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14세기 말 중국은 원과 명의 교체기였다. 그러나 몽골의 군대는 비록 중원은 빼앗겼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국에 들어가 살던 몽골족은 100년도 안 돼 몽골족의 야성을 잃었다. 하지만 요동과 몽골 본토에 살고 있는 몽골족은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때 심양을 수도로 삼고 요동과 만주 서부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몽골인이 나하추(納哈出)였다.

 

그는 혼란을 틈 타 만주의 패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 먼저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의 군현을 습격해서 명의 동진을 저지시켜 놓고 혼란 상태인 간도지방을 석권하려고 했다. 간도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지역이 지난 100년간 원나라가 점령했던 쌍성총관부(고려의 동북면, 현재의 함경도 일대)였다. 1356년 공민왕의 영토 수복작전과 쌍성총관부의 통치자였던 이자춘의 배신으로 쌍성총관부는 다시 고려의 영토가 됐다. 그러나 고려에 불복하는 여진족과 고려인, 원의 잔존세력은 이 지역에 남아 있었다.

 

동북면의 위기

 

1362 7월 나하추의 대군이 동북면을 침공했다. 홍건적과 왜구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바닥난 고려는 나하추에 대항할 군대가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과거 쌍성총관부의 수장이었고 동북면의 토호인 이자춘의 토착병이었다. 그러나 이자춘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동북군의 지휘권은 겨우 20대였던 그의 아들 이성계에게 인계됐다. 고려가 동북면을 다시 빼앗기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음력 7월이면 습하고 무더위가 한창인 때다. 말과 사람이 금방 지치고 전염병 발병 위험도 높다. 전쟁하기에는 아주 좋지 않은 기후지만 그만큼 장점이 있다. 8∼9월이면 추수철이어서 한 달만 작전을 하면 점령지에서 군량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 공격에 실패해도 적국의 농사를 완전히 망치거나 곡식을 약탈해 돌아갈 수 있다. 적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군대는 절반 이상 와해수준이 된다. 그러면 2차 공세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다.

 

나하추의 진격로는 알 수 없지만 북청을 점령하고 홍원을 지나 함흥으로 내려온 것을 보면 함경북도의 두만강 하류 지역으로 들어와 해안을 따라 남하한 것 같다. 심양에서 여기까지 오는 경로는 상당히 멀고 험하다. 그러나 몽골군의 후예답게 이성계가 근거지인 함흥을 떠나 북상하기도 전에 벌써 북청을 지나 함흥 북쪽의 홍원까지 왔다. 쌍성총관부의 90%를 단숨에 석권하고 최남단의 수도만 남겨둔 셈이었다.

 

나하추는 북쪽 홍원에, 이성계는 함흥에 있었다. 두 군대의 사이에는 함관령과 차유령이라는 두 개의 고개가 있었다. 보통은 함관령이 함흥으로 들어오기에는 더 좋은 통로였다. 해발 463m에 좁고 바위가 많아 쉽지 않은 고갯길이었다. 차유령은 함관령보다는 완만하지만 북쪽으로 멀리 돌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산길 구간이 훨씬 길었다.

 

나하추는 나연티무르라는 만호에게 1000명의 병사를 주어 선발대로 파견했다. 정예 기병 1000이면 보통의 보병 1만에 맞먹는 군대다. 그들의 목표는 일단 고려군의 방어거점이 될 수 있는 함관령을 확보해 고려의 군사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나연티무르는 한 치도 주저 없이 진군해 함관령을 확보했다. 고려군은 그림자도 없었다. 함흥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할 고개를 거저 내어줬다는 건 고려군이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거나 겁을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최소한 나연티무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략 요충을 쉽게 확보한 나연티무르는 2차 목표 고려군의 전력 테스트와 동향 파악을 위해 고개를 넘어 덕산 벌판까지 진출했다. 고개에 수비대를 남겨 둬야 했으니 병력은 500명 정도였을 것이다. 너무 적은 병력같지만 몽골군을 따라 잡을 군대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500명 정도만 돼도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정찰과 전술기동을 하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고려군의 야습과 위기, 그리고 역습

 

그날 밤 덕산 벌판에서 야영을 하는 나연티무르의 군대를 고려군이 덮쳤다. 나연티무르는 패주해 달아났다. 기습을 당했지만 튀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오전에 넘어온 함관령이 길을 막았다. 이것이 함정이었다. 한국의 좁고 가파른 고갯길에서 기병 질주는 불가능하다. 반면 고려군은 몽골군 못지않게 기병이 강하고 산비탈에서도 능숙하게 말을 탔다. 게다가 옛날 고갯길은 고개를 바로 오르지 못하고 굽이굽이 좌우로 뒤틀면서 올라간다. 그런데 홍원 쪽 사면보다 함흥 쪽 사면이 가파르고 길은 북쪽 능선과 산자락으로 우회하며 더 심하게 휘어 있다. (이것은 이성계가 함관령에 방어진지를 펴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 준다. 고개에서 대치할 경우 함흥 쪽에서 지원과 보급추진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밤에 적군을 뒤로 두고 구불구불 휘어 있는 초행길을 따라 퇴로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생 끝에 함관령을 넘은 나하추는 전군을 동원해 덕산 벌판에 진을 쳤다. 반면 이성계는 덕산에서 하루 길 이상은 떨어진 골짜기로 들어가 진을 쳤다. 몽골 정예기병들이 잔뜩 독이 올라 대비하고 있는 반면 자신의 병력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고려군이 농성전을 택했다고 판단한 나하추는 다시 하루를 진격해 골짜기 앞을 봉쇄했다. 그날 밤 고려군이 또다시 야습을 감행했다. 나하추의 본대를 보고 고려군이 전의를 상실했다고 판단한데다 전날 함관령을 강행 돌파하고 덕산에서 밤새도록 야습을 대비하느라 지쳤던 나하추군은 이날의 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나하추는 다시 함관령을 넘어 홍원으로 후퇴했다.

 

두 번이나 패배한 나하추는 홍원에 주둔하면서 병사를 쉬게 하고 군세를 정비했다. 그러자 이성계가 함관령을 넘어 나하추에게 도전했다. 적에게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하추군은 대군이고 전투경험도 많다. 지금까지는 나하추군이 긴 행군에 지치고 고려의 지리와 지형에 적응하지 못한 덕을 봤다. 그러나 작은 승리를 거두면서 전투를 오래 끌면 적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가능하면 빨리, 미처 적이 적응하고 정신을 차리기 전에 승부를 끝내야 했다.

 

그러나 이성계의 용감한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평지에서 진을 정비한 나하추군은 강했다. 승기를 잡지 못한 고려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하추는 추격을 지시했다. 고려군은 함관령을 넘어서 돌아가야 한다. 며칠 전 고려군에게 당한 그대로 보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고갯길에 막힌 고려군은 위기를 맞았다. 고려군은 좁은 도로에 갇혀 좁은 종대로 늘어섰고 나하추의 선봉대는 고려군 후미를 따라 잡아 살육을 시작했다.

 

산 위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이성계가 갑자기 말을 몰아 고개 아래로 쳐 내려가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였다. 이 역습이 처음부터 준비된, 즉 일부러 패배하고 적을 끌어들인 뒤에 공격한 역습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성계의 무용담에 초점을 맞춰 마치 이 역습을 이성계 혼자 해낸 것처럼 묘사해 놓았다. 그러나 정황을 알고 보면 이것도 지형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런 지역에서의 전투 방식을 훈련해 놓은 덕에 얻은 승리였다. 함관령 고갯길은 옆의 산등성이와 사면으로 크게 휘면서 올라온다. 즉 산의 정상을 향해 좌우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휘어지기 때문에 비탈 위쪽에서 보면 추격군도 측면을 길게 노출하게 된다. 또 계절이 한여름이어서 비탈에는 잡목이 무성하다. 아무리 후퇴 중이라고 해도 소부대만 배치해도 적의 측면을 자르고 습격할 수 있다. 이성계는 이런 지형적 특성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최후의 한 수

 

나하추로서는 지형도 낯설고 산악전투에 서툰 군대를 이끌고 고갯길 전투를 여러 번 벌였던 게 패인이었다. 이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그는 전력의 상당 부분을 낭비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었고 객관적 전력은 여전히 우세했다. 며칠 휴식을 취한 뒤 나하추는 최후의 공세를 폈다. 몽골군이 함관령을 돌파해 함흥평야로 진군했다. 이제 정신을 차린 그는 이성계의 군대를 추격하기보다는 함흥 자체를 초토화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함흥으로 진군했다. 그래야 이성계의 군대를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끌어낼 수 있었다. 이성계가 전투를 포기하고 숨는다면 그의 근거지는 초토화될 것이고 지역 기반과 지도자로서의 인망을 상실할 것이다. 어떻게든 이성계를 끌어들여 나하추가 원하는 평야에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성계는 나하추의 선택을 피할 수 없었다. 함흥평야에서 결전이 벌어졌다. 예상대로 승리는 나하추의 것이었다. 이성계는 도주했고 나하추는 추격했다. 그러나 이성계에게는 지금까지 숨겨왔던 최후의 한 수가 있었다. 나하추는 고려군의 규모를 알지 못했다. 전투의 양상으로 보건대 이성계는 그동안 정예 주력으로 나하추를 상대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전체 병력을 끝까지 숨겼다. 나하추가 이성계를 따라 잡았을 때 삼면에서 고려군이 나타났다. 이성계는 결전을 앞두고 대담하게 병력을 삼분해서 각각 다른 길을 따라 한 지점으로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 부대를 거느리고 나하추를 이 지점으로 유인했다.

 

실제로는 새로 출현한 두 개 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해도 극적인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적군의 출현은 병사들을 크게 동요시킨다. 게다가 나하추군은 고려군의 계략에 몇 번이나 당한 상황이었다. 나하추군은 공황에 빠졌고 삼면에서 포위 섬멸됐다. 나하추는 소수의 병력을 거느리고 간신히 전장을 탈출했다.

 

 

용병의 신

 

나중에 나하추는 고려에서 온 사신에게 이성계의 안부를 물으면서용병의 신이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황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이성계가 잘 싸운 것은 알겠지만 나하추와의 전투는 임팩트가 없다. 마지막 전투는 거의 정면대결에서 이겼다. 기록이 과장됐고 실제로 나하추군이 약했던 건 아닐까?

 

사실 이런 전투를 설명하기가 가장 어렵다. 우리는 극적인 전술과 명확한 계략이 있어야 대단한 승리를 거둔 것 같다고 여긴다. 하지만 전투의 80%는 용병술의 승리다. 그럼 용병술이란 뭘까? <손자병법>에서 용병의 요체는적이 강하면 후퇴하고 물러서면 공격하라” “능력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여라. 공격할 것 같지 않을 때 공격하라고 말한다. 이 금언은 아주 유명하지만 사람들이 문구에 집착해서 숨은 뜻을 모른다. 적이 강하면 물러서라는 말은 사실 너무 당연하고 굳이 <손자병법>을 몰라도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다. 이 금언의 요체는 상대가 나의 의도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적이나 아군이나 사용할 수 있는 패는 정해져 있다. 예상치 못한 기발한 패를 창안하는 건 매우 특수한 경우다. 결국 승부의 관건은 내가 사용할 패를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성계의 전투처럼 지형, 병사의 심리, 리더십 등 모든 것을 동원해 전황을 내 페이스로 끌고 가야 한다. 모든 명장들이 하나같이 전투의 승리를 위해 주도권을 장악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도권이란 곧 패의 선택에서 우선순위를 확보하고 자신에게 가용한 패는 점점 더 많게, 상대에게는 점점 더 적게 만들어 적군을 초조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업에서 미래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투자와 준비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실제로 전투에 투입되는 모든 요소들에서의 준비를 뜻한다. 단순히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인력, 조직, 사기, 행동방식, 리더십 등 모든 요인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훈련과 준비에 임해야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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