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예술 관점에서 본 관찰
지도, 관찰의 다큐멘터리
지도는 다큐멘터리다. 지도는 세상에 대한 관찰이자 기록이다. <지도 1>에서 문자, 도표, 범례를 없애면 점·선·면·화소 4가지만 남는다. 외식 프랜차이즈 점포 3개는 점(點·point)으로 표시했다. 주요 도로망은 선(線·line)으로 펼쳐진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중간에 가평점이 있다. 가평점은 서울시 경계에서 30㎞ 떨어졌다. 서울시는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면(面·polygon)으로 다룬다. 가평점 고객의 자택지를 기준으로 매출분포를 그렸다. <지도 1>의 황갈색 농도는 가평점의 매출이 벌리는 밀집도다. 지도에서 밀도는 화소(畵素·pixel)로 표현되며 모두 정량값을 담고 있다. 진할수록 매출비중이 높다.
가평점의 고객들은 어디에서 올까? 수원점이나 인천점과 비교된다. <지도 1>에서 가평점의 매출분포를 나타내는 황갈색 분포는 가평점 인근에 짙게 표현되나 서울에 더 넓게 퍼져 있다. <지도 1> 오른쪽 아래에 작은 표가 있다. 3개 매장의 거리별 매출비중을 보여준다. 고객의 주소지를 GIS에 입력해 분석한 결과다. 매장에서 2㎞ 반경을 적용할 때 수원점은 58%, 인천점은 42%인데 가평점은 8%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고객이 타지에서 온다. 서울 고객의 비중만 45%였다.
<지도 1>은 3개 매장을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3개 매장의 월평균 매출은 기존 매장 평균의 2배를 기록하고 있다. 가맹점 모집이 어려운 시기에 매장 크기, 상권 인지도, 총투자비가 훨씬 낮은데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외식업 경험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의외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찰과 분석이 시작됐다.
지도의 시작은 돌멩이였다. 현존하는 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사냥지도’로 돌멩이에 새겨져 있다. (그림 6) 스페인 동굴에서 석기시대 유물 600점과 함께 발굴됐다. 1만3600여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냥지도’에는 습지, 강, 평야, 산이 그려져 있고 특정 위치에 사슴과 순록이 새겨져 있다. 생존에 필요한 가장 절박한 정보를 입력해 놓았다. 생존을 위해 사슴과 순록의 동선을 파악했고 어디에서 사냥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석기인들은 사슴·순록과 자연환경을 관찰해 사냥지도에 기록했다. 생존을 위한 관찰기록이다. 그들에게 지도는 미학이 아니라 존망의 관찰을 취급한다.
관찰, 표면에서 깊이로
미술도 점·선·면·화소를 다룬다. 점·선·면·화소는 화가의 손길을 거쳐 캔버스에 새롭게 태어난다. 화가마다 4가지 구성요소를 다르게 배합한다. 청년시절 폴 세잔(Paul Cezanne)은 파리의 살롱전에 번번이 떨어졌다. 1863년부터 1866년까지 연달아 입선에 실패했다. 살롱전에 거부당한 젊은 화가는 드가, 시슬레, 르누아르, 모네, 쿠르베도 있었다. 신문마저 세잔의 작품을 조롱했다. 10년의 야유를 견디며 1874년 첫 번째 ‘인상주의 작품전’이 열렸고 세잔은 석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서른여덟에는 낙향을 결심한다. 기존 미술평단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는 선언이 탄생한 배경이다. 세잔은 고향 엑스에 정착한 후 은둔자처럼, 구도자처럼 매일매일 자신만의 작업에 몰입한다. 예술에서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을 예술가 자신만의 개성이라고 세잔은 되뇐다. 세잔은 개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출발점을 관찰에서 찾았다.
<그림 1> ‘사과가 있는 정물’은 세잔의 화풍이 정립된 절정기에 탄생된다. 세잔은 재능이란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늘 새로운 감정을 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세잔에게 본다는 것은 곧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곧 구상한다는 의미였다. 세잔에게 관찰이란 대상에서 특징을 추출해내는 것이었다. 그저 대상을 엄밀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조화를 찾는 것이며 그것들을 새롭게 독창적인 논리로 다시 배열하는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관찰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고 형상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은 너무나 많은 기억 속의 이미지들에 시달려 피로해 있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박물관들의 그림이며, 수없이 열리는 전시회들이며….” 피로한 눈으로는 관찰하는 대상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기 어렵다. 세잔은 파리의 번잡한 일상, 박물관의 전시작품, 기존 화풍의 살롱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정립해 나간다.
세잔은 한 가지 주제를 붙들고 몇 달씩 씨름했다. “색깔은 깊은 곳의 단층들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가의 재능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지요.” 작업실로 찾아온 젊은 화가에게 일러준 조언이다. 본질은 표면보다는 깊이에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다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네. 자연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엔 그대로 머무르는 게 하나도 없지. 그래서 예술이란 자연의 순간적 떨림과 편린들,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네. …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개입하게 되면 와장창! 모든 것은 달아나 버리고 만다네.”1
세잔은 눈앞에 보이는 껍데기들은 잊고 진짜의 형체를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잔을 방문한 젊은 화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세잔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들어 풍경을 굽어보더니 집어삼킬 듯한 눈으로 오랫동안 캔버스를 훑어봤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이 표면보다는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사람들은 표면만을 변형시키고 꾸미고 치장하려고 한다. 세잔은 루소와 밀레 같은 화가들이 탁월하게 풍경을 조립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물의 외부에서 사물 속의 깊이를 파악해낸 관찰의 힘 때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나는 향기마저 볼 수 있다
최근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은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로 2011년 2월,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 원)에 팔렸다. 경매가 아닌 개인 간의 거래였다. 판매자는 그리스 선박 재벌 게오르게 엠비리코스, 구매자는 카타르 왕가였다. 경매 최고가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로 2013년 11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240만 달러(약 1528억 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종전 최고액은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대표작 ‘절규’인데 소더비 경매에서 기록한 액수가 1억1990만 달러였다.2
세잔의 작품이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면 그건 관찰력의 독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잔에게 관찰의 의미는 진정한 앎이었다. 세잔은 진정으로 알아야 새로움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한 앎을 방해하는 것은 오래된 아집이라고 되뇌곤 했다. 남들이 보던 대로 보는 것을 독창성의 방해자라고 봤다. 세잔은 자연 속에 완전히 몰입해 그것과 함께 싹을 틔우고 바위의 고집스러운 색채와 산의 합리적인 완고함과 공기의 유동성과 태양의 열정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다. 세잔은 ‘신록 속에서 나의 뇌수 또한 나무의 수액과 함께 물결치며 흐르고’ 싶어 했다.
“그는 양탄자에 놓인 3개의 두개골을 그리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이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것은 그의 생활습관이다. 아침 일찍 작업실로 나와 6시부터 10시30분까지 그림을 그리고 엑스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풍경을 그리기 위해 곧바로 모티프로 가서는 저녁 5시까지 앉아 있고,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는 즉시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일년 내내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말년의 세잔을 방문한 젊은 화가는 엑스에 머문 한 달 내내 세잔이 두개골 그림 앞에서 관찰하고 창작하는 것을 지켜봤다. 세잔의 작품은 매일 색과 형태가 조금씩 변해갔다.
폴 세잔은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곧잘 침잠해 들어갔다. 메를로 퐁티는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을 탈내면화로 묘사한다. 우선 그는 사물의 다양한 지층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꼼짝하지 않은 채 세잔 부인의 말처럼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그저 바라만 봤다. 세잔은 말했다. “풍경은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풍경과 자신이 하나가 돼 서로 흘러 넘치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표현했다. 세잔은 깊은 관찰을 통해 정신적 산만함에서 벗어나 대상과 하나가 되는 창조적 몰입상태에 빠져들곤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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