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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성실과 겸손은 나쁜 괘도 뒤집어

박영규 | 387호 (2024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에는 길괘가 있으면 흉괘도 있다. 다행히 주역은 흉괘를 극복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우선, 주역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잘못된 방향을 설정하거나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만약에 흉괘가 나왔을 때는 다시 지괘를 뽑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암시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차에 관한 모든 비법을 스스로 익혀 다성의 반열에 오른 육우, 유배지에서 이룬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게 된 다산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과 겸손으로 정진한다면 험난한 운명을 뒤집을 수 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생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해 일상이 멈췄던 지난 몇 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그 와중에 더러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주역 64괘 가운데도 좋은 조짐을 암시하는 길(吉)괘가 있는 반면 나쁜 상황을 암시하는 흉(凶)괘도 있다. 엎친 데 덮친 상황을 암시하는 중수감(坎)괘, 벌레가 생겨 속이 썩어들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산풍고(蠱)괘, 험한 산을 만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상황을 암시하는 수산건(蹇)괘, 마실 물조차 없어진 곤궁한 상황을 암시하는 택수곤(困)괘 등이 대표적인 흉괘이다.

특히 2020년은 역병이 창궐한 데다 하늘길이 막히고, 경기는 곤두박질치는데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정치적 상황마저 암울해 사람들이 속을 끓였으니 4대 흉괘가 범벅된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새로운 희망의 끈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고 마침내 그것은 현실이 됐다. 이처럼 흉이 와도 길이 따를 수 있다. 4대 흉괘 중 하나인 수산건괘에 얽힌 육우(陸羽)와 다산 정약용의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답답하고 암울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주역이 주는 위로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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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말 것”

육우는 차의 경전으로 불리는 『다경(茶經)』의 저자이다. 마시는 차에 관한 책인데 바이블을 의미하는 경(經)자를 붙인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경은 동양 문화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책이다. 자신의 저술이 경전으로 불리게 되면서 육우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음악계에 악성(樂聖) 베토벤이 있는 것처럼 차의 세계에는 다성(茶聖) 육우가 있다. 베토벤을 비롯한 모든 성인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육우에게도 고난과 역경의 세월이 있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부모로부터 서호(西湖) 강가에 버림을 받았던 육우는 그곳을 지나던 스님 덕에 목숨을 건졌고, 절에서 다도와 불경을 배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유학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자책하던 육우는 절에서 뛰쳐나와 광대패들과 어울리면서 좌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주역을 접한 육우는 자신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주역점괘를 뽑아보는데 그때 나온 괘가 수산건(水山蹇)괘였다. 수산건괘는 물을 뜻하는 감괘(☵)가 위에 놓이고 산을 뜻하는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괘로 험한 물웅덩이와 육중한 산에 가로막혀 한 발짝도 걸음을 뗄 수 없는 상황을 암시한다. 절뚝거릴 건(蹇)자를 괘 이름으로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갖은 고생을 다한 사람을 가리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렀다’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에 쓰인 산(山)자와 수(水)자가 수산건괘에 쓰인 수산(水山)의 속뜻과 일치한다. 괘 이름인 건 자를 파자해 보면 찰 한(寒) 자와 발 족(足) 자가 나오는데 길이 꽉 막혔는데 날씨마저 엄동설한이라 더욱더 참혹한 광경을 연상케 하는 괘가 수산건괘이다.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실패한 후 퇴각하는 나폴레옹과 히틀러 병사들의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가 수산건이다. 6·25전쟁 당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중국의 인민군에 밀려 1·4후퇴를 하던 국군과 연합군의 모습도 수산건괘에 비유할 수 있다.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 절뚝거리면서 실리콘밸리를 떠나던 스티브 잡스의 당시 운명도 수산건이었다.

수산건괘의 괘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건(蹇) 이서남(利西南) 불리동북(不利東北). 건은 서남쪽으로 가면 이롭고 동북쪽으로 가면 불리하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볼 때 동북 방향이고 흥남도 서울에서 볼 때 동북 방향이다. 수산건괘에서 말하는 동북 방향은 지리적 좌표의 의미라기보다 방향 설정, 형세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메타포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릇된 방향 설정이나 형세 판단으로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을 선택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화력을 다른 곳에 집중했더라면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6·25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백만 명이 넘는 중국의 인민군이 압록강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하할 때 맥아더를 비롯한 연합군의 수뇌부가 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옵션을 선택했더라면 전쟁의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운명도 그렇다. 맥 컴퓨터 개발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다른 경로를 선택했더라면 동료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오랜 세월 광야에서 절뚝거리는 수산건의 험한 운명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쁜 점괘도 의지로 뒤집을 수 있어

육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변화를 모색한다. 그래서 다시 점을 쳐 지괘(之掛)를 뽑아본다. 처음 점을 쳤을 때 나온 괘를 본괘(本卦)라 하고 흉괘가 나왔을 때 운명을 바꾸기 위해 다시 뽑아보는 점괘를 지괘라 하는데 명리학에서는 본괘를 체(體)라 부르고 지괘를 용(用)이라 부른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처럼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인 체는 바꿀 수가 없지만 용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다. 허약한 체질을 갖고 태어나도 열심히 운동을 하면 몸을 바꿀 수 있듯이 운명도 그러하다는 것이 주역과 명리학의 설명이다.

육우가 뽑은 지괘는 풍산점(風山漸)괘였다. 바람을 상징하는 손괘(☴)가 위에 놓이고 산을 상징하는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괘가 풍산점괘인데 산 위에서 부는 바람처럼 기러기가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아갈 점(漸) 자를 괘 이름으로 썼다. 육우는 풍산점괘의 효사에 나오는 홍점우륙(鴻漸于陸)의 육(陸) 자와 기우(其羽)의 우(羽) 자를 취해 자신의 이름을 육우(陸羽)로 지었으며 자(字)는 홍점(鴻漸)으로 지었다. 수산건괘로 꽉 막혀 있던 자신의 운명을 풍산점괘로 확 트이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그 후 육우의 운명은 180도 바뀌었다. 차에 일가견이 있던 교연 스님과 당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 안진경 등의 도움을 받아 차의 세계에 입문한 육우는 중국 각지의 차 생산지를 찾아다니면서 품종과 작황을 살피고 물맛이 좋다는 샘을 직접 찾아가 수질을 조사했다. 그리고 차를 끓이는 방법, 차를 따르는 방법, 다기를 만드는 방법 등 차에 관한 모든 비법을 스스로 개발, 마침내 다성의 경지에 올랐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험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 대중의 칭송을 받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운명도 육우처럼 험난했다. 개혁 군주 정조의 신임을 받아 초계문신으로 발탁될 정도로 젊은 시절에는 승승장구했지만 든든한 울타리였던 정조가 죽은 후부터 다산의 삶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순조 1년에 발생한 신유박해에서 둘째 형 정약종과 절친한 지기였던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등이 처형되고 다산은 셋째 형 정약전과 함께 유배를 간다. 절해고지에 내던져진 다산의 운명은 한마디로 절룩거리는 수산건괘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산은 유배지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다. 전라남도 강진 귤동에 초막을 짓고 1000여 권의 책을 쌓아두고 밤낮으로 연구와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육우처럼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의지를 담아 차가 많이 나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호를 다산(茶山)으로 바꾼 정약용은 18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한 우물을 팠다. 다산의 대표 저서로 일컬어지는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아방강역고』 등은 모두 유배지에서 저술한 것이고, 유배지에서 돌아온 첫해에 펴낸 『흠흠신서』와 『아언각비』도 유배지에서의 충분한 사전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저작이었다. 젊은 시절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던 주역을 마스터한 것도 유배지에서였다. 다산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역심전』 『주역서언』과 같은 주역 해설서를 저술했다. 매천 황현은 “다산이 남긴 저작들은 그 내용과 분량에서 전무후무한 것”이라며 다산을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을 능가하는 대학자라고 평가했고, 정인보는 “다산에 대한 연구가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근세사상의 연구”라며 다산의 학문적 성취를 극찬했다.


겸손과 정진으로

다성 육우와 다산 정약용이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성실함이었다. 그들은 기러기가 질서정연하게 떼를 지어 쉼 없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했다. 주역 수산건괘 상전(象傳)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산상유수(山上有水) 건(蹇) 군자(君子) 이(以) 반신수덕(反身修德). 산 위에 물이 있는 것이 건이니 군자는 이로써 몸을 돌이켜 반성하고 덕을 쌓는다. 육우와 다산은 상전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험한 운명을 성찰하면서 부지런히 덕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흉한 운명을 길한 운명으로 바꾸었다.

수산건괘의 흉함에 대응하는 지괘인 풍산점괘의 상전(象傳)에서 공자는 다시 한번 이러한 원리를 강조한다. 산상유목(山上有木) 점(漸) 군자(君子) 이(以) 거현덕(居賢德) 선속(善俗). 산 위에 나무가 있는 형상이 점이니 군자는 이로써 어진 덕에 거하고 풍속을 선하게 한다.

다산과 육우는 이 원리에 충실했다. 두 사람 다 검소하고 겸손했으며 험한 세상의 풍속을 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산은 초가삼간에서 18년을 살면서 연구에 정진했으며 그 결과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그리고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통해 국가경영의 틀을 혁신하려 했다.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는 세상의 풍속을 선하게 하려는 다산의 고뇌를 집대성한 작품들이다.

육우도 다산처럼 오두막 띠집에서 평생을 살면서 차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고 철저한 고증과 고쳐 쓰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차의 경전으로 불리는 다경을 완성했다. 육우는 다도(茶道)를 통해 세상을 맑고 투명한 사회로 만들려 했는데 “근심과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려면 차를 마셔라”는 육우의 말에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박영규 |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chamn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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