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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MS, 한국식 경영에 일침을 놓다

하영원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어떤 문제건 그 문제를 만들어 낸 생각의 수준으로는 풀릴 수 없다(Problems cannot be solved by the same level of thinking that created them)”는 경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의 원칙을 가지고서는 뉴턴 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물리적 현상들을 아무리 설명하려고 노력해도 풀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아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뉴턴 역학에서 풀리지 않던 숙제들 중 상당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한 단계 높은 시각을 통해 해결됐다. 즉 1차원적 문제는 2차원적 시각을 갖기 이전에는 해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2차원적 문제는 3차원적 시각에 의해서나 풀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했는가’라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문제 자체의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지식(higher-order knowledge)을 동원하고 또한 적용해 보는가’하는 점일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사고의 중요성
기업의 구성원들은 수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특히 기업의 사활이 걸린 의사결정과 관련한 문제들은 분명 그 문제의 사고 차원보다 한 수 위의 사고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최근 매출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는 어떤 기업이 하나의 대안으로 별 생각 없이 요즘 유행하는 타 기업의 인수합병(M&A)을 고려해 본다고 하자. 이 같은 생각은 경우에 따라 1차원적 사고일 수 있다.
 
매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다른 기업과의 M&A를 통해 기업의 외형을 획기적으로 키워보자는 생각은 M&A 이후에 우리 기업과 피합병 기업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기업의 성장을 위해 신상품 개발이나 시장 개발 등 다른 방법이 M&A보다 효과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은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단순한 사고다. 또 M&A가 궁극적으로 우리 기업이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이 적절한 시점인지, 우리가 치러야 하는 재무적인 대가는 적절한 것인지 등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처럼 복잡한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4차원 또는 5차원적 고려 없이 단순하게 1차원적으로만 사고할 경우 기업 성장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지식기반 경제 아래에서는 이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높은 차원의 시각에서 지식을 활용하려는 기업 구성원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 기업의 경영패러다임 혁명을 위한 단초로서 SKMS(SK Management System)에 주목한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SKMS는 기업 경영의 원칙과 방법론 등 구성원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지식들의 집적체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가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본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본격적인 고도 성장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에 우리 기업들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며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산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해 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고차원적 경영 관련 사고보다 경영자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훨씬 더 중요한 기업의 성공요인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기업들의 성공 공식이 벽에 부닥치고 있다는 느낌을 주더니 급기야 1997년에는 외환 위기로 대표되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우리 기업들은 무언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우리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경영 패러다임은 바로 고차원적 경영지식의 집적을 통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지식들을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SKMS를 하나의 ‘지식 플랫폼 (knowledge platform)’으로 보고, 이 같은 지식 플랫폼이 21세기적 경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식 플랫폼으로서의 SKMS
SKMS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자신의 기업 경영 경험을 토대로 실제 경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경영관리체계를 완성하고자 1970년대에 마련해 1979년부터 SK그룹(당시 선경그룹)에 적용하기 시작한 경영시스템이다. 사실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절대 빈곤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장 내일 일을 걱정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면에서 고 최 회장이 21세기에 주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지식 기반 경제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경영철학을 당시에 제창하고 나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SKMS는 경영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일된 정의를 통해 그룹 내 경영자들이 경영의 본질을 바르게 알고 똑같이 이해하며 이를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 SKMS의 핵심은 구성원의 두뇌 활용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데 있다. 고 최 회장은 자본, 기술, 원료 등 다양한 생산 요소들이 있지만 사람이라는 요소가 가장 결정적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사람 요소 중에서도 두뇌 활용이 가장 다이내믹한 요소라고 여겼다. 따라서 SKMS에서는 구성원의 두뇌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관리가 필수적인 요소들을 ‘동적 요소’라고 부른다.

고 최 회장의 생각 가운데 재미있는 부분은 사람이 신체를 활용해 많은 일을 수행할 때에 피로를 쉽게 느끼면서 한계를 뚜렷이 인식하는 반면에 두뇌 활용의 경우에는 그 자체에 재미를 느끼면서 오히려 자발적이고(voluntarily) 의욕적으로(will-ingly)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면 구성원들이 거의 한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되리라고 가정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SK그룹에서 실천에 옮겨오고 있는 SUPEX(Super Excellence) 추구도 바로 이 같은 두뇌 활용의 극대화가 가지는 폭발성을 가정했다는 점에서 SKMS와 맞닿아 있다. 보통 SUPEX를 추구하는 상황에서는 우선 구성원이 풀어야 하는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구명해 내는 ‘입체적 로케이션(location) 파악’ 단계를 거쳐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인인 핵심 성공요소(KFS, Key Factor for Success)를 찾아내고, KFS에 인간으로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극한치를 찾아내 SUPEX 목표를 설정한다. 그 후 장애 요인을 하나씩 패기 있게 제거해 나감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궁극적 목표인 SUPEX와 중기 목표인 CBA
2000년대 들어서면서 SKMS는 SUPEX가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구성원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정도로 먼 목표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우려해 3년 정도의 중기적인 목표로서 ‘Challen-ging But Achievable(CBA) Goal’을 중심으로 SUPEX를 추구하는 방법인 ‘To Be Model’을 개발했다. 이처럼 SKMS에는 구체적인 기업 경영의 방법론뿐 아니라 SK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인 경영의 기본 이념도 포함돼 있다. 경영의 기본 이념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간위주 경영’이라는 경영원칙도 결국 두뇌 활용과 통한다. 즉 구성원들이 두뇌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SUPEX 추구 환경 조성’에 기업이 힘씀으로써 남다른 기업 성과를 얻어내 SK의 주주와 소비자뿐 아니라 모든 이해 관계자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을 SK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기업의 가치관이나 이념뿐 아니라 일 처리 방법에 대해서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기술해 문서화한 경우는 드물다. SKMS는 이런 면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영 시스템이다. SKMS는 이미 12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진화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KMS가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SKMS가 기업 내에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경영지식을 집적하고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식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항해를 도와줄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경영 패러다임을 애타게 찾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SKMS는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편집자주 고 최종현 회장의 10주기 추모 행사의 일환으로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와 SKMS의 발전 방향’이란 주제의 경영학술 세미나가 8월 28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서울대, 서강대, KAIST 주최로 열렸습니다. 이 세미나에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서강대 하영원 교수가 기업 경영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연구 결과를 DBR을 통해 소개합니다.
 
필자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등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으며, 한국마케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영학회와 한국마케팅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도 받았다.
  • 하영원 | - (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현) 서강대 지식서비스R&D센터장
    - (전) 한국마케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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