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 논란]
AI 거품론 핵심 지목된 ‘순환거래’
오픈AI-오라클 등 거미줄처럼 얽혀… 기업 한곳 삐걱대면 연쇄위기 우려
‘빅쇼트’ 버리 “선순환 아닌 사기” 직격… 젠슨황 “가치 창출 선순환 진입” 반박
최근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는 원인으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거품론의 핵심 근거로 ‘순환 거래(Circular Deals)’가 주목받고 있다. 순환 거래란 AI 업체들이 서로 투자하고, 그 투자금으로 AI 칩 등을 구매해주는 방식의 거래를 의미한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약 147조 원) 투자를 발표하고, 오픈AI는 그 투자금으로 엔비디아의 AI 칩 수백만 개를 구매하는 식이다.
AI 거품론자들은 순환 거래 생태계에 얽힌 특정 기업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 AI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어려워지며 거품이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맞서 성장론자들은 순환 거래가 선순환으로 이어져 실질적인 AI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엔비디아-오픈AI-오라클, 거미줄처럼 얽힌 거래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17∼21일) 코스피는 롤러코스터처럼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다 3.95%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뉴욕증시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지난주 2.74%, 이달 들어 6.12% 하락했다. 증시 변동성 지수도 치솟았다.
엔비디아의 호실적에도 AI 기업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영화 ‘빅쇼트’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 다음 날인 20일(현지 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을 지목하며 “나열된 모든 회사는 매출 인식이 의심스럽다”며 “미래에 이것을 선순환이 아닌 사기로 간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업들의 순환 거래를 ‘사기’라고 저격한 것이다.
실제로 AI 업체들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순환 거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순환 거래 문제가 대두된 것은 9월 엔비디아가 고객사인 오픈AI에 대한 100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또 오픈AI는 같은 달 오라클로부터 클라우드를 공급받겠다며 3000억 달러(약 442조 원)의 계약을 맺었다. 이어 오라클은 데이터센터 구동을 위해 400억 달러(약 59조 원) 규모의 엔비디아 AI 칩을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아직 적자 상태인 오픈AI에 투자한 자금이 오라클을 거쳐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분 거래도 얽혀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MS는 오픈AI의 지분을 27% 갖고 있고, 오픈AI는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큰손 고객이다. 엔비디아는 AI 특화 데이터센터 기업인 코어위브의 지분을 5% 보유하고 있는데, 코어위브는 엔비디아 칩을 사들여 데이터센터를 AI 기업들에 빌려주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오픈AI, 앤스로픽 등 AI 기업들이 흑자를 내기 시작하면 선순환이 되지만 문제는 적자가 지속되고 어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만약 데이터센터에 대한 지출 열기가 꺾이게 되면 엔비디아와 MS 같은 기업들은 이중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AI 거품론 줄다리기’ 당분간 이어질 듯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AI 성장론자들은 AI 순환 거래는 과거 닷컴버블 때와 달리 데이터센터 건설 등 실질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황 CEO도 최근 1년 만에 62% 급증한 매출 실적을 발표하며 “우리는 AI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오픈AI는 3년 전 선보인 챗봇의 주간 사용자가 지난달 8억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빠르게 성장하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도 월간 사용자 10억 명을 달성하는 데 5년이 걸렸는데 오픈AI는 이보다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수익을 내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거품론과 성장론이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조정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지컬 AI가 적용된 의료기기나 자동차가 나오는 등의 구체적 성과가 없으면 거품 우려가 이어질 수 있다”며 “코스피가 일시적으로 3,500 선을 깰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거품론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가격이 조정되고 미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재개하면 증시가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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