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베인&컴퍼니 부사장 인터뷰

글로벌化 못하면 레드랜드 추락

17호 (2008년 9월 Issue 2)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만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만이 블루오션을 항해할 수 있습니다. 레드오션 비즈니스가 없는 기업은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도, 이를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박성훈
베인&컴퍼니 서울사무소 부사장은 레드오션 시장에서 고전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1996년 베인 입사 후 소비재·유통 등 레드오션 분야의 컨설팅을 오랫동안 담당해온 그는 2006년 국내 학부 출신(서울대 경영학과)으로는 처음이자 최연소로 베인 파트너로 승진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재 베인의 산업재 및 서비스(IG&S) 컨설팅 부문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대표도 역임하고 있다. IG&S는 자동차·기계·철강·에너지·건설·조선·해운 등 산업을 담당한다.
 
박 부사장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변한 광산업의 사례를 제시하며 “영원한 레드오션은 없다”고 강조했다.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다면 언제든 블루오션에서 활동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레드오션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 레드오션은 과연 무엇인가
블루오션이라는 단어에서 ‘블루’라는 말은 ‘매력적이고 경쟁이 없으며 수익성이 좋다’는 뜻이다. ‘오션’은 ‘뻗어나갈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블루오션의 반대말을 단순히 레드오션이라 국한하기보다 ‘레드오션(red ocean)’과 ‘레드랜드(red land)’로 나눠 설명하고 싶다. ‘레드오션’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뻗어나갈 기회가 많은 시장이다. 반면에 레드랜드는 레드오션의 극한, 즉 경쟁도 치열하면서 뻗어나갈 기회도 없는 시장을 의미한다.
 
국내 차 음료 시장은 대표적 레드랜드다. 식품업체·제약업체·유통업체 등 여기저기서 넘보지 않는 업체가 없다. 많은 회사가 한 가지씩 히트 상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산업 전체의 수익률은 1% 정도에 불과하고 수출도 전무하다. 성장 가능성과 뻗어나갈 기회가 모두 없는 셈이다.
 
국내 영화나 음악 산업은 레드오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해외 진출이라는 돌파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 붐이 꺼지면 이 시장 역시 언제 레드오션에서 레드랜드로 돌변할 지 모른다.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낮은 인식 또한 이 시장이 레드랜드로 변할 위험성을 높인다. 드림웍스를 이끌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한국 파트너인 CJ그룹 관계자에게 “그 누구도 공짜와는 싸울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1000원짜리 복사품이 돌아다니지만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다. 공짜에 당할 장사는 없다. 국내 문화산업이 레드랜드로 변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 음료 시장이 레드랜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다른 기업이 공들여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유사한 컨셉트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소위 ‘카피 프로덕트’나 ‘미투(Me Too)’ 제품이 가장 극성스러운 곳이 바로 차 음료 업계다. 남양유업의 ‘니어워터’가 나오니까 롯데의 ‘2% 부족할 때’가 생겨났고, 이후 비슷한 류의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우유·발효유 시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수 없이 많다.
 
두 번째, ‘커스터머 라이프사이클’이 정말 짧다. 한때 음료 시장에서 식혜를 재료로 한 상품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요즘 식혜를 먹는다면 원시인 취급을 받지 않나. 그만큼 소비자들의 기호와 취향이 빨리 변한다.
 
세 번째, 시장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 반도체 생산처럼 수 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 아니다 보니 새로운 진입자들이 생산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네 번째, 유통구조가 열악하다. 기업형 유통채널이 확보돼 있지 않다 보니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이 고만고만한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업종을 불문하고 한국시장에는 레드오션이나 레드랜드 산업이 많은 것 같다. 이유는 무엇인가
구조적으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재벌의 경우 오너의 개인적 취향이나 다른 재벌과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시작하는 사업이 너무 많다. “저 쪽도 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해” 이런 식이다. 서로의 영역을 너무 많이 침범한다고나 할까. 이는 한국 기업의 빈약한 원천기술 보유 능력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 돈 되는 기술을 소유한 기업이 많지 않다 보니 기본적으로 높은 마진은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은 이익이 적고 자본 투입량은 많은 저마진 산업에 익숙하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의 사업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유, “저 기업이 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두 번째,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재벌처럼 행동한다. 대다수는 사업 규모에 비해 여기저기 너무 많은 시장에 진출해 어떤 분야에서도 확고하게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아도 초라하게 살아남는다.
 
세 번째, 아직 선진국에 비해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다. 기업 M&A가 활발해야 경쟁력 없는 플레이어들이 시장을 빠져나갈 기회, 잘 나가는 기업은 덩치를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 너무 늦게 포기하거나, 너무 조심하다가 덩치를 키울 타이밍을 놓치는 기업이 많다.
 
국내 기업이 레드오션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반드시 글로벌화를 해야 한다. 비단 레드오션이나 레드랜드뿐 아니라 해외 진출에 성공하지 않으면 블루오션 시장도 곧 레드오션이 된다. 신세계가 이마트를 만들었을 때 대형마트 시장은 완전한 블루오션이었다. 아무런 경쟁자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대형마트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나마 유통업은 인프라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형 선발업체의 우월적 지위가 지켜졌고, 다른 산업보다 경쟁이 덜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통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과거 레드오션이 아닌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사례는 할인점뿐만이 아니다. 주유소 시장을 보자.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의 4개 업체밖에 없는데 왜 레드오션이냐고 하겠지만 4개 업체의 제품이나 서비스 차이를 느끼는 고객은 많지 않다. 고객들이 업체 간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레드오션 시장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대형마트가 주유소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M&A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부터 통합을 단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은 이렇게 많은 업체가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기업 규모에 비해 전쟁 전선이 너무 넓다.
 
레드오션이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한국 기업에 레드오션이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이 해외에서도 통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오늘날의 성공을 이뤄낸 것은 상당 부분 LG전자 덕분이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두 업체가 국내 가전시장을 놓고 피 튀기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경쟁이 경쟁력을 낳는다. SK텔레콤,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뚜렷한 경쟁자 없이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과 LG처럼 국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했다면 해외 진출 시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한국은 몇몇 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대표하는 나라다. 한국 전체를 대변하는 몇몇 대기업이 무너지면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이 사라진다. 그나마 최근 10년 간 수십 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의 혜택을 잠시 누렸지만 이제 중국은 시장이 아니라 한국의 최대 경쟁자다.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레드오션과 관련해 경영자에게 해 줄 충고는 없나
영원한 레드오션이나 레드랜드는 없다. 지금의 레드오션이 언제 블루오션으로 변할지 모른다. 광산업을 보자. 석유가 인류 문명을 책임지면서 광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그렇지만 BHP 빌리턴, 앵글로 아메리칸, 리오 틴토 등 세계 3대 광산업체들은 그 누구도 광산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때 폐광을 사 모으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 결과를 봐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금 광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산업이다. 최종 소비자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면 모를까 어떤 시장에서도 기회는 반복된다.
 
경영자에게는 메가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고 당부하고 싶다. 광산업의 예처럼 이 시장이 ‘레드’냐 ‘블루’냐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랜드’냐 ‘오션’이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때문에 이 산업이 ‘랜드’인지 ‘오션’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언제 ‘레드’에서 ‘블루’로 변할 것이냐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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