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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축구 영상 인공지능(AI) 분석 서비스 ‘비프로일레븐(bepro11)’

경기 촬영·분석·편집 원스톱 서비스
EPL 프로팀도 ‘축구 빅데이터’에 반했다

김성모 | 291호 (2020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 국내 스타트업이 전 세계 축구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축구 영상 인공지능(AI)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프로일레븐(bepro11)’이다. 2015년 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업체는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뛰고 있는 리그에 진출해 있다. 13개 국가에서 534개 팀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스타트업이 해외 축구 시장에서 이처럼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4가지다.

1. 적극적인 실행력으로 현장에서 부딪치며 시장과 고객 니즈를 파악했다.
2. 글로벌 업체들이 나눠서 차지하고 있던 영역(영상 촬영, 경기 분석, 편집 서비스)을 통합해 하나의 서비스로 제공했다.
3. AI를 활용한 기술력으로 다른 업체들과 차별화했다.
4. 도어투도어-리그-국가 등으로 계약을 확대하는 ‘단계별 비즈니스 전략’을 활용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유동현(서울대 지리교육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오늘부터 쓰겠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붙을 ‘칼리아리 칼초’ 팀의 경기부터 분석해주실 수 있을까요. 칼리아리의 직전 5경기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난해 2월 말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볼로냐 FC 1909는 강등권인 18위에 머물러 있었다. 3월3일 리그 중위권 팀인 우디네세 칼초한테까지 패배한 볼로냐.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루 뒤, 볼로냐 관계자가 현지에서 한 국내 스타트업과 미팅을 가졌다. 축구 영상 인공지능(AI)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였다. 볼로냐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기도 전에 계약을 결정했다.

이후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계약 이틀 후 칼리아리에 관한 자료를 받은 볼로냐는 이를 기반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주말 경기 결과는 2대0 승리. 이후에도 볼로냐는 이 업체로부터 상대 팀에 관한 분석 자료를 받아 경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상대한 토리노와 사수올로, 키에보를 전부 꺾었다. 심지어 우승권 팀인 나폴리까지 제압했다. 결국 볼로냐는 20개 팀 중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강등을 피한 것이다.

볼로냐 관계자는 “2부 리그로 떨어졌으면 TV 중계권료 수백억 원과 각종 스폰서십을 날렸을 거다. 좋은 선수도 1부 리그 팀들이 데려가 수년 동안 1부 리그 승격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며 해당 스타트업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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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2015년 2월 문을 연 ‘비프로일레븐(bepro11)’이다. 축구 영상 AI 분석 플랫폼 업체인 비프로일레븐은 직접 개발한 카메라로 경기를 촬영한다. 3D 스티칭 기술로 경기장 전체를 포착한 영상을 만들고, 경기장과 훈련장에 있는 모든 선수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AI는 슈팅, 패스, 태클 등 각종 움직임을 구분하고 이를 데이터로 전환한다. 또 공간 변화와 경기 상황을 분석해 팀과 선수에게 맞춤형 리포트를 제공한다.

현재 비프로일레븐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은 534곳에 달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뛰고 있는 리그에 비프로일레븐의 고객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태국 등 총 13개 국가에 진출해 있다. 국내 K리그 팀들은 이미 2018년부터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비프로일레븐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 촬영부터 영상 편집, 데이터 분석, 코치진-선수 정보 공유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해외 유수의 팀들은 영상 촬영 및 편집, 데이터 분석, 정보 공유 플랫폼을 여러 업체로부터 제각각 구입하고 있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를 하나로 합쳐 축구팀들이 우리와 상대 팀의 수많은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비프로일레븐은 직접 캠코더로 사람이 촬영하던 기존 방식에서 운동장에 네트워크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를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현해 비즈니스를 스케일 업(scale-up)했다. 리그 수준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했다. 또 ‘비디오 데이터 애널리시스’ ‘비프로 에디터’ ‘매치 라이브 피드’ 등 다양한 상품군을 구성해 선택권도 다양화했다. 여기에 한 개의 리그에서 다수의 팀과 계약을 맺으면 리그 전체와 ‘공식 딜’을 맺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키웠다.

이 같은 사업 성과로 비프로일레븐은 알토스벤처스와 KT인베스트먼트에서 55억 원을,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60억 원을 투자받았다.

비프로일레븐은 ‘선수 스카우팅’과 ‘롱테일 인터랙티브 브로드 캐스팅 미디어(공을 중심으로 따라다니는 기존 방식이 아닌 시청자가 보고 싶은 장면을 선택해 볼 수 있는 중계)’ ‘선수의 스페셜 영상 자동 제작’ 같은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향후 농구, 미식축구 등 다른 스포츠 종목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최종 목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스카우팅 사업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축구계에서 메시의 스탯(Stat, 능력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제2의 메시’가 어디 있느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레스터 시티의 수비수 해리 맥과이어를 8000만 파운드(한화 약 1180억 원)에 데려왔다. 이런 선수들을 조금 더 빨리, 그것도 세계 각국을 직접 가지 않고도 찾을 수 있다면 구단이 쉽게 지갑을 열지 않겠나. 비프로일레븐이 축적하고 있는 데이터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강현욱 비프로일레븐 대표)

비프로일레븐은 어떻게 빠른 시간 안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을까. 세계 최고 축구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비프로일레븐의 성장 비결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DBR mini box I 



2015년 2월 강현욱 대표가 창업한 비프로일레븐(bepro11)은 축구 영상 인공지능(AI) 분석 플랫폼 업체다.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는 크게 영상 촬영 및 편집, 데이터 분석, 정보 공유 플랫폼 등 3가지다. 운동장에 설치한 카메라로 경기, 훈련 모습을 촬영해 코치진에게 실시간으로 영상 정보를 제공한다. 코치진은 해당 영상을 편집해 선수들과 중요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의 핵심은 AI와 분석관의 각종 분석 데이터다. 고객은 슈팅, 패스, 드리블돌파, 스프린트 등 선수별 정보부터 세트피스, 탈압박, 역습 등 팀 전술 관련 데이터까지 수백 가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 해당 정보를 클릭하면 여기에 맞는 영상을 ‘북마크’처럼 볼 수 있게 한 것이 장점이다. 코치진과 선수는 PC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현재 독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태국 등 13개 국가의 534개 팀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촬영한 비디오 수만 1만1209개에 달하며 5098개(누적 1만4639경기)의 영상을 분석했다. 비프로일레븐은 각 팀에서 리그와 상품 구성에 따라 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금액을 받고 있다. 향후 선수 스카우팅과 중계방송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또 축구 이외에 농구, 미식축구 등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힐 계획도 가지고 있다. 최종 목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소비자형 창업가’ 된 아마추어 공격수

“이런 거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보통 고객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불편한 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이를 ‘소비자형 창업가(User Entrepreneur)’라고 한다. 강현욱 비프로일레븐 대표도 이 중 한 명이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서 왼쪽 공격수를 맡았던 그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 프로그래밍 동아리 ‘멋쟁이사자처럼’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검사가 멋있어 보여서 문과를 갔는데 성적은 오히려 수학 등 이공계 쪽이 더 잘 나왔다. 세상의 반쪽만 보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아리에 들어가려면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무엇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명확히 있어야 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축구’였다.” 강 대표의 말이다.

서울대에서는 매년 아마추어 축구 리그가 열렸는데 강 대표도 단과대에 있는 축구팀 소속으로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주최 측은 경기가 끝나면 점수를 엑셀 파일에 하나하나 입력해 순위표를 만들었고 이를 싸이월드클럽에 매번 수정해 올렸다. 선수 명단을 확인하는 작업도 전부 수기(手記)로 진행됐다. 각 팀이 경기 전날 선수 명단을 주최 측에 보내면 심판진이 이를 종이에 적어서 경기장에 들고 가 학생증과 대조했다. ‘내가 저 사람을 확인했나, 안 했나’ 여간 헷갈리는 작업이 아니었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고 여기에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록도 프로필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 축구’일지라도 골을 넣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다. 그걸 게임처럼 프로필로 만들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만들어보겠다고 했다.”(강 대표) 일종의 ‘아마추어 축구선수 아카이브(archive)’를 떠올린 것이다.


강 대표는 금세 프로그래밍에 푹 빠졌다. 동아리에서는 비전공자들에게 전공자 선생님을 붙여줬는데 교과서적인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부분들을 주로 배웠다. HTML, CSS 등 웹프로그램을 배워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보고 프로그래밍 언어도 학습했다. 이후 페이스북처럼 웹사이트를 열어 로그인 기능과 각종 게시판을 만들어보고, 기초적인 게임도 제작해봤다. 카페에서 5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몰입할 정도로 흥미를 느꼈다.

3개월 뒤 강 대표는 동아리 졸업 작품으로 가입 때 냈던 축구선수 아카이브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기로 했다. 그는 동아리원 4명과 아카이브 모바일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실제 고객도 모집해보기로 했다. 교내 축구 리그 협회부터 찾아갔다. 그는 대표자 회의에 참석해 18개 축구 동아리 주장들에게 아카이브의 필요성과 편의성에 대해 설명했다. 돈도 받지 않았다. 2014년 말부터 서울대 아마추어 축구 리그에 강 대표가 만든 아카이브 서비스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각 팀은 모바일 웹에 선수들 라인업 등 팀 정보를 등록했다. 심판들도 골, 경고 카드 등 경기 정보를 이곳에 바로바로 적어 넣었다. 편리하긴 했지만 그만큼 문제도 많았다. 강 대표는 “한 번은 경기를 뛰러 갔는데 자꾸 에러가 나니까 심판이 ‘누가 이렇게 후지게 만들었느냐’고 투덜거렸다. 많이 속상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 사회인 아마추어 리그 몇 곳에서도 “써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2월 회사를 차렸다. ‘아마추어도 프로처럼’이라는 의미를 담아 회사명은 ‘비프로일레븐’으로 지었다. 직원은 동아리에서 구했다. 시각디자인과에 다니는 형부터 설득했다. 그는 네이버 인턴에 합격해 이를 준비 중이었다.

“이 형은 예전부터 자기만의 작업 공간을 갖는 게 꿈이었다. 당시 사무실을 학교 내 3평짜리 방 2개가 붙어 있는 곳을 빌렸는데 방 하나를 혼자 쓰라고 했다. 사비로 30만 원 들여 모니터도 하나 사줬다. 정말 설득하는 데 힘들었다. 이후에는 동아리에 있는 다른 형을 모셔왔다. 동년배 중에 프로그래밍을 제일 잘한다고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축구 리그 관계자로 있던 원자재공학과 형도 ‘책상만 놔 달라’고 해 함께하게 됐다.” (강 대표)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쳤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것이며, 이를 통해 수익이 나오겠냐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프로구단인 FC서울이 주최하는 아마추어 축구대회 ‘서울컵 2015’가 열렸다. 강 대표도 홍보 목적으로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H스포츠란 곳이 대회와 관련해 슈팅 수, 패스 정확도 등 각종 경기 수치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알아보니 사람이 경기장에 직접 나가 ‘바를 정(正)’을 그어가며 측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자동으로 각종 경기 수치를 측정하고, 분석관들의 분석 내용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카이브에서 영상 분석 플랫폼으로 빠르게 전환

H스포츠는 스포츠 기록 분석을 전공한 이들이 차린 업체였다. 강 대표는 직접 H스포츠를 찾아갔다. 그는 업체 관계자들에게 ‘분석 툴을 만들어주겠다’고 설득했다. 또 분석 자료에 영상과 싱크를 북마크처럼 연결하고, 선수들의 데이터 측정을 위해 AI를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영업까지 내가 할 테니 분석만 맡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삼고초려 끝에 H스포츠는 비프로일레븐과 협업하기로 했다.

“우리가 플랫폼과 기술적인 부분, 영업 등을 맡고 H스포츠가 분석을 맡는 식으로 사업 구상을 짰다. 이후 H스포츠는 우리 사업만 전적으로 맡았고, 업계에서도 마치 같은 업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 (강 대표)

내부에서는 비프로일레븐 플랫폼을 만드는 데 한창이었다. 아카이브에서 데이터 공유 플랫폼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수들과 코치진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체크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 웹페이지부터 만들었다. 게임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많이 활용했다. 크게 경기별, 선수별 데이터로 나누고 그 안에 점유율, 공격 및 수비 패턴 등과 골, 슈팅, 패스, 태클 등으로 항목들을 최대한 세분화했다. 플레이를 보고 항목을 분류하는 분석 작업은 H스포츠가 맡았다.

사실 초기에는 대부분이 수작업이었다. 강 대표나 H스포츠 직원들이 직접 경기장에 나가 캠코더로 경기 영상을 찍어오면 사무실 직원들이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하나하나 설정했다. 예를 들어, 7번 선수 움직임을 하나하나 보고 패스, 슈팅, 태클 등 각종 정보를 기입해 여기에 편집된 영상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경쟁력이 있었다. 영상을 찍어주고, 선수마다 슈팅, 패스 등에 ‘영상 북마크’까지 달아준다고 하니 업계에서 혁신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상황이 그랬다. 일단 국내에서도 K리그 1, 2부를 제외하고는 영상을 촬영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보통 팀의 막내가 영상을 찍는 경우가 다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이 찍는데 감독이나 코치들이 경기장을 다 담을 수 있는 높은 곳에서 찍게 한다. 눈높이에서 촬영한 영상은 경기 흐름을 파악할 수 없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나무 위에 올라가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촬영하고 그런다. 사적인 말도 다 녹음되고 기본적으로 영상 퀄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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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서는 생각보다 영상의 영향력이 크다. 각 팀은 영상을 수십 차례 보면서 전술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문제점이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상대 팀 전술을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려면 상대 팀 영상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TV 중계방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보통 시청자들이 TV로 보는 영상은 공을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인 ‘오프더볼’ 움직임을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이 없을 때 공격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를 통해 수비수를 교란하고 공간을 확보하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이다.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 수비수 3명(스리백) 또는 4명(포백)이 최종 수비라인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지를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비, 미드필더, 공격수 간 공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등도 중계방송으론 체크하기 어렵다.

영상은 전술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수 개인에게도, 국가적으로도 필요하다. 보통 프로 선수들은 초등학교 또는 그 이전에 축구를 시작하는데 진학 때마다 자신의 장점과 실적을 입증해야 한다. 코치진의 평가를 전달할 수 있지만 그보다 좋은 것이 영상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수비수일수록 영상의 중요성이 더 크다. 공격수는 몇 골, 몇 어시스트를 했다는 기록이 남지만 수비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영상 자료를 모아 놓으면 이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스포츠계의 입시 비리 등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또 선수 관리나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도 이 같은 영상 자료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수 개인이나 축구협회,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강 대표는 “당연히 영상을 촬영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있을 줄 알았다. 딱히 그런 업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사업이 잘될 거란 확신이 섰다. 특히 영상 북마크 기능은 선수 진학이나 스카우팅, 국가대표 선발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6년 초 비프로일레븐은 축구협회가 공고한 K리그 주니어(U-18 유소년) 리그의 영상 촬영 사업 입찰에 참여했다. 글로벌 스포츠 데이터 업체 인스탯이 최대 경쟁자였다. 러시아 업체인 인스탯은 전 세계에서 스포츠 데이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이지만 각국에서 외주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AI를 활용한 서비스가 눈에 띄지 않았다. 비프로일레븐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외주를 주지 않고 전문 분석 인력을 갖춘 H스포츠와 영상 촬영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직접 맡겠다고 했다. 또 AI를 활용해 데이터를 공급하겠다는 부분도 어필했다.

결국 비프로일레븐은 인스탯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다. 처음치고는 대단한 성과였다. 이력도 없는 신생 업체가 글로벌 기업을 꺾은 것이다. 강 대표 스스로도 놀랐다. 무엇보다 이는 비프로일레븐이 향후 해외에 진출할 때 중요한 레퍼런스가 됐다.


실전 감각으로 사업 보완

K리그 주니어 경기는 주말마다 열렸다. K리그의 22개 구단(1, 2부 리그)은 ‘수원 삼성-매탄고’처럼 모두 각각의 유스팀을 가지고 있다. 강 대표는 이 팀들의 경기를 보러 매주 전국을 다녔다. 이곳에서 캠코더로 촬영된 영상이 사무실로 보내졌고, 직원들은 선수마다 플레이를 분류하고 코딩 작업을 했다. ‘패스’ 항목을 누르고 7번 선수를 선택하면 그가 해당 경기에서 했던 패스들이 시간대별로 쭉 나온다. 하나의 패스를 클릭하면 태깅(tagging)된 구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크로스, 태클, 슈팅 등 다른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때 만났던 선수들이 지난해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한 U-20 멤버들인데 경기마다 가서 일일이 인터뷰하고 그랬다. 쉬는 날에는 감독, 코치와 밥도 먹고 축구 이야기도 많이 했다. 대부분 감독과 코치진이 유명 선수 출신이거나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들의 피드백이 비프로일레븐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강 대표)

대부분 팀이 강 대표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동안 힘들게 구했던 영상과 데이터를 고품질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팀의 경기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했다. 실제로 있었던 사례다. 한 고객이 상대 팀에 있는 키 188㎝ 장신 공격수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 공격수는 본인의 팀에 속해 있던 최종 수비수보다 키가 커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 상대 팀 공격수의 ‘공중볼 경합’ 카테고리만 계속 돌려봤다. 감독은 선수들과 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헤딩을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이 선수가 뛸 때 최대한 불편하게 붙어서 같이 뛰어라. 그리고 공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니까 다른 수비수는 주변에 있다가 잘 캐치하라”라고 지시했다.

강 대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잘 활용했다. 시간 날 때마다 코치진에게 “영상을 주면 어떤 구간을 보느냐” “이 부분은 왜 보느냐” “선수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나” 등을 캐물었다. 반대로 “내일 우리 광주랑 시합하는데 거기 코치진이 어떤 선수가 나온다고 안 알려줬나”와 같은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서비스를 보완할 몇 가지 포인트를 찾아냈다. 첫째, 편집 기능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10, 20대는 생각보다 비프로일레븐의 기능을 잘 꿰고 있었다. 자신이 골 넣은 장면이나 수비수를 제친 모습을 300번 이상 돌려본 선수도 있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유소년 팀은 선수단 숙소 1층에 비프로일레븐 용도로 쓸 수 있게 PC 5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어린 선수들은 PC 앞에 모여 당일 경기를 복기했다.

“코칭 스태프가 저희 서비스를 활용해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울산 현대축구단의 유스 팀에 있던 코치는 한 선수한테 ‘너는 어떤 선수처럼 되고 싶냐’고 물었다. 해당 선수가 ‘스페인의 다비드 실바처럼 되고 싶다’고 했더니 ‘너랑 다비드 실바의 영상을 잘라 와서 어디가 비슷하고 어디가 다른지 설명해봐라’라고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영상을 자를 수 있는 툴이 있으면 유용하겠다 싶었다.” (강 대표)

둘째, AI 서비스의 도입이다. 경기마다 다뤄야 할 데이터가 생각보다 많았다. 패스, 슈팅 같은 단순 정보뿐만 아니라 속도별 스프린트(단거리 전력 질주) 횟수, 히트맵(선수가 경기 중 움직인 영역) 등 기술적으로 더 정확하게 측정해야 할 부분이 다수였다. 이를 몇 안 되는 직원이 다 체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부터 비프로일레븐은 ‘오브젝트 트래킹’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AI로 영상 속 움직이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이 직접 입력하지 않고 데이터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서비스를 정신없이 보완하고 있을 무렵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쳤다. 돈 문제였다. 강 대표는 투자를 받기 위해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냉정한 목소리가 더 컸다.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많았다. 한 VC 대표는 “K리그 22개 구단을 다 고객으로 끌어들인다고 쳐도 그걸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겠나. 그렇다고 수천억 원을 쓰는 해외 구단이 업력도 없는 벤처기업을 써주겠냐”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해외에 진출하려고 돈을 투자받으려던 것이었는데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도 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일단 K리그 주니어 입찰에서 글로벌 업체를 꺾은 경험이 있지 않았나. 뒤도 안 돌아보고 해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비프로일레븐은 창업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으로는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축구 시장은 1부 리그 팀들의 숫자가 많지 않고, 각 팀의 예산 규모도 독일이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과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다. 유소년 리그나 아마추어 시장도 해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편이다. ‘전 세계 스포츠인의 데이터를 모은다’는 비전을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강 대표는 수십, 수백 개의 리그가 있고, 수천억 원이 오가는 해외로 나갈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섰다. 그는 사무실에 돌아와 직원들에게 딱 한마디 던졌다. “짐 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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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실행력으로 ‘탈압박’


2016년 10월 중순 강 대표는 한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아시아 담당 팀장을 만났다. 손흥민이 소속된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04 레버쿠젠이 LG와 스폰서십을 맺을 때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강현욱 대표는 분데스리가의 FC 상 파울리를 비롯해 독일 팀 몇 곳을 소개받기로 했다. 곧바로 독일 여정을 떠났다. 따로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K리그 주니어 입찰을 따낼 때 인스탯을 꺾었던 경험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는 K리그 주니어 리그에 제공했던 영상과 각종 데이터 자료들을 보여줬다. 분데스리가 구단들은 “슈팅, 패스 같은 숫자들은 일반적인 이벤트”라며 “여러 선수가 함께 적용되는 압박, 역습 이런 팀 전술 데이터가 중요하다.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3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들을 고객으로 사로잡겠다고 다짐했다.

마냥 실망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독일의 구단들이 최상위인 1부 리그를 제외하고는 비디오 분석을 거의 안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객의 ‘숫자’가 한국과 차원이 달랐다. 독일에는 1부, 2부 리그에 각각 18개 팀이, 3부는 20개, 4부는 92개, 5부는 241개의 축구팀이 존재했다. 대부분의 팀에는 유스 팀들이 연결돼 있는데 19세, 17세, 16세…12세 등 나이별로 세분화돼 있었다. 독일이 노다지로 보였다.

“FIFA에 따르면 독일에서 축구하는 사람이 1600만 명, 클럽 수가 2만6000개다. 이 중 600개 팀을 첫 타깃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었다.”

비프로일레븐은 3개월 동안 지적받았던 부분을 보완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않았다. 여러 명이 함께 적용되는 패스맵,수비 라인별 퍼포먼스 통계(특정 포백, 스리백 수비가 경기를 뛰었을 때의 결과), 주요 공격 전개 패턴, 세트피스 등 전술 데이터를 분석하고 편집할 수 있는 툴을 보완했다. 다시 찾은 독일 함부르크. “3개월 안에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며 현지 관계자들이 놀랐다. 함부르크 지역 5부 리그에 소속된 ‘토이토니아’ 구단이 먼저 바로 계약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첫 해외 진출이었다.

“미리 시장 조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난관에 부딪쳤을 때마다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해왔다. 당연히 얼마를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연 150만 원을 주겠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사실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철이 없었다. 함부르크에 다시 갔을 때 토이토니아 이외에도 4∼5곳과 계약을 맺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확신이 생긴 강 대표는 회사 자체를 독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금은 스스로 마련했다. 은행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2억 원가량을 빌렸다. 이후 독일에 가자마자 3억 원을 더 빌렸다. 그는 “집이 잘살는 것도 아니었는데 ‘인생에서 앞으로 5억 원 못 벌까’라는 생각으로 다 쏟아부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주변 반대는 심했다. ‘고작 하부 리그 계약 몇 개 맺은 걸로 해외에 나가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는 냉정한 시선도 컸다.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 대표의 아버지가 축구를 즐겨하고, 좋아했다는 점이었다. 강 대표는 아버지에게 “학창 시절 발리슛으로 골을 넣었다고 수백 번 자랑하시지 않았느냐. 골 영상을 저한테 보여줄 수 있다면 사시겠느냐”라고 물었다. “살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오자 “그런 걸 만들고 있다. 선수들한텐 이런 서비스가 더 필요하다”며 안심시켰다.

2017년 7월 직원 10명 전체가 독일 함부르크로 터를 옮겼다. 처음에는 가족이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9명이 에어비앤비에서 전부 함께 지냈다. 그러다가 화장실 문제로 충돌이 생겨 방을 하나 더 구했다. 그렇게 5명, 4명으로 쪼개져 1년간 합숙 생활을 했다. 물가가 비싸 월급을 올려줘야 했고, 사무실 임대료도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숙소 비용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진행한 K리그 주니어 계약이 연장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비프로일레븐이 15세 팀까지 맡기로 하면서 계약금이 두 배로 늘었다. 독일에서는 첫 계약 팀인 토이토니아가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를 사용한 뒤 리그 14위에서 3위까지 뛰어올랐다. 입소문이 나면서 5부 리그 팀 몇 곳과 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다.

“이 팀이 해당 리그에서 좀처럼 패배하지 않던 절대 강자까지 꺾었다. 나중에 비결을 물어보니 상대 팀의 영상을 보고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했다. 상대 팀이 수비라인을 엄청 올려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속도가 빠른 선수를 양쪽 사이드에 배치하고 미드필더에 킥이 정확한 선수를 넣었다. 역습으로 2골을 넣어 이겼더라.”

자신감이 붙은 비프로일레븐의 직원들은 서비스의 완성도를 더 높여 상위 리그 구단을 포섭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러려면 다른 글로벌 스포츠 데이터 업체와 차별화가 필요했다. 비프로일레븐의 주특기인 ‘기술’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비프로일레븐의 강점은 ‘기술력’

처음 서비스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캠코더를 들고 독일 곳곳을 뛰어다녔다. 한국과 차이가 있었다면 ‘삼각대’ 정도였다. 강현욱 대표가 몇 달 동안 알리바바를 뒤져서 9m 길이의 삼각대를 발견했다. 무게도 6㎏으로 기존에 쓰던 것(20㎏)보다 훨씬 가벼웠다. 10개를 주문해 독일로 챙겨왔다. 현지 관계자들도 “어디서 구했느냐”며 부러워했다. 그럼에도 고민은 여전했다. 매 주말 밤, 추운 날씨에 영상을 찍으러 가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기술 때문에라도 영상 자동 촬영은 꼭 필요했다. 비프로일레븐에서는 ‘오브젝트 트래킹’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는 AI로 영상 속 움직이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따라다니면서 데이터를 뽑아내는 기술이다.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움직이면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가 없었다. 배경이 먼저 고정돼야 했다.

아예 네트워크 카메라를 운동장에 설치하기로 했다. 계산해 보니 사람을 한 시즌 30여 경기에 매번 보내 영상을 찍어오는 것보다 비용은 오히려 저렴했다. 비프로일레븐은 5부 리그의 한 구단 운동장에서 실험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운동장 전체를 담기 위해 카메라 여러 대를 운동장 곳곳에 설치할까 생각했지만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카메라들을 전부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카메라 설치에도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경기장 스탠드 천장의 중앙에 고정형 카메라인 ‘픽스캠’ 3대를 설치했다. 스탠드가 없는 곳에는 기둥을 윗부분에 달았다. 픽스캠 3대는 각각 경기장의 왼쪽과 중앙, 오른쪽을 맡아 촬영한다. 비프로일레븐은 ‘비디오 스티칭’이라는 기술을 개발해 3대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한 화면으로 실시간으로 합쳤다. 3개의 영상을 하나의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지게 만든 것이다.

픽스캠을 기반으로 한 비디오 스티칭은 비프로일레븐의 첫 번째 주요 기술이다. 비프로일레븐은 201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객의 홈 경기장과 훈련장에 카메라를 각각 3대씩 설치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웹페이지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면 촬영되도록 만들었다. 운동장에서는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원하는 곳을 ‘줌 인(zoom in)’ ‘줌 아웃(zoom out)’ 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을 갖고 있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도 이를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서비스가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첫 픽스캠 고객인 태국의 무앙통 유나이티드 FC부터 난관이었다. 개발이 한두 달 늦춰지자 비프로일레븐으로 전화가 왔다. 무앙통 구단주의 항의 전화였다. 그는 “돈이 문제면 더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다음 경기에서도 시스템이 안 되면 영원히 안 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비프로일레븐의 직원들은 3주를 꼬박 새 시스템을 완성했다. 테스트 경기 없이 본 게임에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에는 오류 때문에 고생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카메라나 네트워크 오류로 영상이 찍히지 않았거나 파일이 사라진 것이다. 강 대표는 “그럴 때마다 먼저 환불부터 해줬다. 이후 어떻게 해서든 영상을 구해다 줬다. 상대 팀에 찾아가서 영상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적도 많았다. 사실 그러면서 영업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비프로일레븐은 현재 카메라를 자체 제작 중이다.

“비디오 스티칭 기술을 쓸 때 카메라 3대의 싱크를 맞추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1초가 아니라 1프레임이라도 차이가 나면 안 된다. 자체 개발한 카메라로 싱크 문제를 해결하고 화질도 개선할 예정이다.”

생각지도 못한 걸림돌도 있었다. 바로 ‘비’였다. 픽스캠 렌즈에 빗방울이 묻어 영상이 제대로 안 찍혔다. 비프로일레븐은 카메라 렌즈에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보고, 물방울이 잘 흘러내리게 스티커도 붙여봤다. 여러 경험 끝에 2가지 대안을 마련했다. 먼저 새로 개발하는 픽스캠에 ‘지붕’을 달았다. 뚜껑을 달아서 렌즈에 물이 닿지 않게 했다. 동시에 AI도 활용하기로 했다. 악조건 자체를 학습시켜서 사람을 구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비가 와도 사람을 어렴풋이 구분하지 않느냐. 사람이 하면 기계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아예 기상 악조건을 학습시키기로 했다. 현재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비디오 스티칭이 안착하면서 비프로일레븐의 두 번째 주요 기술인 ‘오브젝트 트래킹’도 본격화됐다. 먼저 경기 영상이 오면 PC 모니터에 영상을 띄워놓고 코딩 작업에 돌입한다. 선수마다 하나씩 박스가 쳐지고 AI가 영상 시작부터 끝까지 각 선수를 따라다니며 움직임을 파악한다. 이를 통해 팀, 선수의 각종 데이터를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비프로일레븐은 향후 AI를 통해 여러 선수의 복합적인 움직임을 분류할 계획이다.

이는 다른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비프로일레븐의 핵심 기술이다. 한 위치에서 촬영한 2D 영상 정보를 3D로 바꿔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 경기는 선수들이 경합 과정에서 겹쳐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AI가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선수가 붙어 있지 않고 나란히 서 있어도 기계한테는 겹쳐 보일 수 있다. 두 선수가 같이 점프를 할 때는 키가 큰 한 명의 선수로 인식하기도 했다.

비프로일레븐은 반복된 수정 과정을 거쳐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슬라이딩하거나 넘어진 자세 등도 다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강현욱 대표는 “제일 어려운 게 코너킥 상황이다. 선수들이 다 뭉쳐 있으니까 이를 학습시키는 게 정말 어려웠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의료진이 들어왔을 때다. 이런 상황들을 계속 학습시켰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핵심 기술인 ‘비프로 에디터(편집 기능)’는 이전보다 정교하게 보완했다. 골, 카운터 어택, 프리킥 등 각종 이벤트에 단축 키를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카운터 어택 상황으로 예를 들어보자. 영상에서 해당 상황이 시작되고 끝날 무렵에 단축 키를 눌러 짧은 영상을 만든다. 중간에 영상을 정지시켜서 선수들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에 동그라미를 친다. 그리고 화살표 모양을 넣고 ‘Move here’라고 적는다. 자유자재로 그림과 문구를 넣을 수 있다.

“이 클립 하나를 다운받거나 곧바로 선수한테 공유할 수 있다. 모든 선수가 앱을 가지고 있는데 개별 선수뿐만 아니라 공격수 또는 수비수 그룹, 코치들한테만 보는 것도 가능하다.” (강 대표)

DBR mini box II
서비스 완성도 높인 9부 리그 감독 경험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강현욱 대표의 ‘선수 경험’도 한몫했다. 그는 독일에서 제일 낮은 9부 리그의 한 팀을 찾았다. 고객의 영상을 촬영하러 간 것. 아마추어 수준의 경기력을 보고 그는 축구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나도 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을 찾아가 팀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컴퓨터 기술자가 축구를 할 줄 아냐”는 답이 돌아왔다.

강 대표는 회사 직원 한 명과 함께 테스트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했다. 9부 리그였지만 우습게 볼 팀은 아니었다. 리그 승격을 앞두고 있었고 감독과 코치 모두 독일축구협회(DFB)의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공격수로 뛰던 강 대표는 골도 넣고 나름 기록이 괜찮았다. 문제는 감독이 팀원들과 불화로 쫓겨나면서 발생했다. 잘하는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감독이 없는 사이 순위는 계속 떨어졌다.

이때 구단주가 강 대표한테 감독 자리를 권했다.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업계에 아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후 팀은 계속 패배했고, 3개월이 지나 자연스레 강 대표가 선수 겸 감독이 됐다. “팀이 정말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국적이 모두 달라서 별명이 ‘난민팀’이었다. 영어로든, 독일어로든 소통이 잘 안 됐다. 이때 비프로일레븐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훈련마다 비프로 에디터로 영상을 준비했다. 한 번은 우리 팀 공격수가 상대 팀 수비가 공을 가졌을 때 뺏으러 달려 나가는 순간을 편집해갔다. 영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선수가 혼자 다가갔을 때 수비수가 옆 선수에게 패스를 하면 괜히 체력만 낭비하는 거다. 이런 순간이 이렇게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기 전에는 압박을 가하지 마라’는 규칙을 만들었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압박하는 연습을 거듭했다.

“직접 감독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활용하다 보니 어떤 부분이 현장에서 꼭 필요한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서비스로 여러 나라 선수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원스톱 솔루션으로 차별화

이 같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비프로일레븐은 축구 프로팀 구단들에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보통 축구계에서는 데이터 기반을 4가지로 분류한다.

1. 영상이 있어야 하고, 2. 영상을 기반으로 분석이 이뤄져야 하며, 3. 편집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4.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성원들이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4가지를 한 번에 공급하는 업체는 현재 전 세계에서 비프로일레븐이 유일한다. 보통 구단들은 인턴을 고용해 영상을 찍고 러시아 업체(인스탯)를 통해 분석을 받고 있었다. 편집 기능은 스포츠코드의 서비스를 이용했고, 허들이란 업체의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공유했다.



이를 비프로일레븐이라는 한 업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받는 만큼 시간이 적게 들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심지어 코딩 같은 건 영상을 인도로 보내서 기술자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시차까지 고려하면 분석 정보를 받는 데 2∼3일은 걸렸다. 우리는 하루 안에 분석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실시간 분석까지 제공하고 있다.” 강 대표의 말이다.

비프로일레븐은 비디오 스티칭과 오브젝트 트래킹 기술로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해 이를 ‘비디오 데이터 애널리시스’ ‘트레이닝 레코딩’ ‘매치 라이브 피드’ ‘트레이닝 라이브 피드’ ‘옵티컬 트래킹’같이 각각의 상품으로 나눴다.

기본 서비스는 비디오 데이터 애널리시스다. 슈팅 및 공격 루트, 실점, 크로스, 드리블 돌파, 세트피스, 탈압박, 인터셉트, 경합, 클리어, 차단, 세이브, 파울, 빌드업 등 48개 항목을 영상 클립과 함께 보여준다. 각 항목을 세분화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패스를 예로 들어보자. 한 경기에 했던 모든 패스를 기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장거리, 중거리, 단거리 패스로 나눌 수 있다. 공격진영, 중앙진영, 수비진영 패스와 전진 패스, 횡패스, 백패스 등으로도 분류가 가능하다. 경기장을 18개 구역으로 쪼개놓고 해당 지역에서 이뤄진 패스만을 볼 수도 있다. 다른 항목들도 이와 같은 작업이 가능하다.



선수별 히트맵, 패스맵도 구단에서 많이 쓰는 기능이다. 히트맵은 각 선수가 어디서 주로 활동했는지 영역을 보여준다. 시간대별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패스맵은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은 것을 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팀 수비 지역에서 전방 공격으로 공이 전진할 때 어느 방향으로, 어떤 선수를 어떻게 거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 팀의 키 플레이어를 미리 확인할 수도 있다.

강현욱 대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소시에다드의 한 경기를 예로 들었다. 패스맵을 보면 미드필더에서 게베라에서 외데가르드한테 나간 패스가 23개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외데가르드의 이 경기 패스 성공률은 82%였다. 키패스(Key Pass)는 2회였는데 모든 패스는 영상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비프로 에디터를 통해 원하는 부분만을 편집할 수 있다.

선수 개인 데이터, 성장 그래프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 데이터에서는 기본 경기 기록뿐만 아니라 동일 포지션에서 몇 번 뛰었는지, 어떤 동료와 뛰었을 때 내 성과가 좋았는지 등의 다양한 분석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골키퍼가 이번 시즌에서 9경기 동안 9실점 했다고 쳤을 때 어느 수비수들과 뛰었을 때 실점이 많았는지, 어떤 패턴으로 어느 지역에서 주로 실점했는지, 세트피스 실점은 많았는지, 골이 골대의 왼쪽 낮은 영역에 들어갔는지, 오른쪽 높은 부분으로 들어갔는지 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선수가 한 시즌 동안 경기별 성적이 어땠는지를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연습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트레이닝 레코딩이나 감독이 앉는 벤치에서 경기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매치 라이브 피드 서비스도 있다. “감독석에서 경기를 보는 것과 높은데서 경기장을 한 번에 보는 게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감독들이 ‘퇴장당한 다음 관중석에 가서 봤더니 경기가 잘 파악됐다’는 말을 종종 한다. 훈련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트레이닝 라이브 피드도 있다.”

피지컬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옵티컬 트래킹 서비스도 호응이 좋다. 보통 프로 축구팀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린 옷을 선수에게 입혀 피지컬 데이터를 측정하는데 불편해서 인기가 없는 편이다. 비프로일레븐은 카메라를 통해 피지컬 데이터를 계산한다. 출전 시간에서 총 뛴 거리, 평균·최고 속도, 최고 가속도, 거리당 스프린트한 횟수, 속도별 스프린트 횟수 등 선수가 움직인 거리를 쪼개 고강도로 뛴 비율을 상세하게 측정한다.

DBR mini box III
현지 ‘선수’ 선발해 네트워크 구축

기술력이 좋은 것과 고객을 끌어모으는 일은 별개일 수 있다. 스타트업인 비프로일레븐이 여러 나라에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선수 선발(직원 뽑기)’이다. 비프로일레븐은 철저하게 현지 직원을 채용했다. 현재 비프로일레븐의 직원 수는 70명이다. 한국, 영국, 이탈리아, 우루과이, 뉴질랜드, 크로아티아, 독일, 태국, 프랑스, 스페인, 카자흐스탄 등 직원들의 국적 수만 13개에 달한다.

세일즈를 현지인이 진행하면서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는 일이 드물었고, 빠른 시간 내에 기술의 강점을 어필하면서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다. 현지 직원들은 현장에서 ‘Made in Korea’를 강조했다. 강현욱 대표는 “삼성 덕분에 AI 등 기술과 관련된 부분은 한국이 뛰어나다는 것을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여기에 소프트뱅크에서 투자받았다고 하니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말했다.

현지 직원 채용은 대부분 현장을 뛰어다니며 만난 ‘마당발’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처음 독일에 진출했을 때 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당시 만난 한 독일인은 손흥민 등 독일에 진출해 있는 한국 선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발이 굉장히 넓었다. 아버지가 홍명보처럼 독일 축구의 레전드였던 것. 그의 아버지는 서독월드컵의 우승 멤버였고, 함부르크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경험한 인물이었다.



“이 직원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는데 로컬 팀들의 미팅을 많이 잡아줬다. 그리고 리그별 구단들의 예산까지 파악해 해외 진출 초반에 도움이 많이 됐다.” (강현욱 대표)

이탈리아에서는 경쟁사 대표가 비프로일레븐의 직원이 되겠다며 찾아왔다. 내막은 이렇다. 비프로일레븐이 이탈리아의 프로 축구 세리에A에 진출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현지에는 비프로일레븐과 비슷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이 업체의 대표는 협회와 업계에 “비프로일레븐의 이탈리아 진출을 막아야 한다”며 로비를 하고 있었다. 기술력에서 비프로일레븐이 훨씬 뛰어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비프로일레븐은 볼로냐를 고객으로 받으면서 세리에A에 진출했다. 그러자 이 스타트업 대표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겠다”며 함부르크 비프로일레븐 본사를 찾아왔다. 내용은 본인이 그동안 해왔던 사업 소개였다. 그는 “나는 이탈리아 축구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데 꼭 내가 대표일 필요는 없다.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가 더 이상적인 것 같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 스타트업이 쌓아온 이탈리아 축구계 자료뿐만 아니라 인맥, 프로팀 제노아 CFC 등 고객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현지인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비프로일레븐은 다양한 인물도 뽑을 수 있었다. 해외에는 한국과 다르게 운동선수 경력이 없더라도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럽의 축구 시장이 크고, 본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이유였다. AI 기술자부터 컨설팅사에서 일했던 사람까지 다양했다. 축구계에서는 일하고 싶은데 구단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축구와 관련된 새로운 일을 찾고 있던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각종 정보는 리포트로 제공된다. 고객이면 누구나 들어와서 팀과 선수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강 대표가 현장에서 착안했다. 그는 “나이 많은 코치들은 데이터를 꼭 종이로 인쇄해 선수들한테 나눠주더라. 주로 우리 팀의 빌드업(축구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압박을 벗어나 상대 진영으로 진행하는 공격 전개 움직임)이나 상대 팀 정보들을 공유한다. 그래서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리포트를 아예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H스포츠와의 합병을 통해 더 안정감 있게 서비스 품질을 관리할 수 있었다. 비프로일레븐은 지난해 H스포츠와 합병했다. 기존에도 ‘한 몸’처럼 일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사실 H스포츠는 비프로일레븐이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프리랜서를 포함한 100여 명의 분석관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AI의 오류를 잡아내는 일을 한다. 슈팅, 패스, 인터셉트 등 항목을 나누는 작업이다.

이는 AI 학습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데이터를 뽑아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데이터를 정의하고 나누는 작업이다. 수비수가 공을 걷어냈는데 우리 팀 선수가 받았다고 치자. 이걸 패스로 봐야 할까, 아니면 볼 클리어링으로 봐야 할까. 이런 작업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다. 누군가 학습시켜야 한다. 분석관들은 이처럼 축구 경기에서의 움직임을 정의하고 AI의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을 한다. 분석관의 능력이 결국 서비스 품질이 된다.

H스포츠는 3개월 과정의 분석관 교육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이 정의하는 슈팅이 뭔지, 패스가 뭔지 등을 공부한 뒤 시험을 친다. 95점이 넘으면 국가공인자격증을 받는다. 시험 통과는 까다로운 편이다. 합격률이 30%가 안 된다. 지난해 231명이 응시해 65명만이 분석관으로 등록됐다.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 품질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빅클럽인 FC 쾰른, 레버쿠젠은 데이터 업체를 고용하기 전에 실험을 했다. 비프로일레븐과 인스탯, 옵타 등 데이터 업체에 영상을 주고 패스, 슈팅, 크로스 등 데이터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뒤 자체적으로 코치들이 모여서 손으로 해당 이벤트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셌다. 이 수치에 가장 가까웠던 것이 비프로일레븐의 분석 결과였다.

고품질 서비스는 성과로 돌아왔다. 강현욱 대표가 독일, 잉글랜드, 스페인 등을 돌아본 결과 인력이나 자본이 풍부한 빅리그의 대형 팀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스포츠 데이터를 활용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빅 리그의 중소형 팀인데도 연봉, 부상, 개인 기록 정도가 담긴 아카이브 서비스만 받는 곳도 있었다. 이 때문에 비프로일레븐의 서비스는 금세 주목을 받았다. 가입 팀도 급속도로 증가했다.

“사실 우연이었지만 독일이 첫 진출 국가가 됐고 여기서 성과를 냈던 것이 비프로일레븐한테는 복이었던 것 같다. 다른 나라들이 독일의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비즈니스가 속도 있게 잘됐던 것 같다.”

비프로일레븐의 고객 수는 2016년 K리그 주니어팀 22곳에서 2017년 50개(한국, 독일), 2018년 152개(한국, 독일, 오스트리아), 지난해 534개(독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태국 등 13개국)로 급격하게 늘었다. 올해 예상 목표치는 15개 국가의 1800팀이다. “다양한 나라에 고객이 있다. 노르웨이 리그에도 고객이 있는데 팀이 북극에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축구하더라.”

이러한 성과로 비프로일레븐은 알토스벤처스와 KT인베스트먼트에서 55억 원을,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6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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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별 비즈니스 전략으로 승부수


비프로일레븐은 해외에 진출할 때 큰 틀에서 비즈니스 전략을 가지고 들어갔다. 도어투도어-리그 계약-국가 계약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한 국가의 축구 시장에 들어가면 먼저 구단마다 찾아가 서비스를 소개한다. 50%의 임계치를 넘기면 리그와 ‘딜’을 맺는다. 이 수치가 넘어가면 일종의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고객을 잘 서포트하려면 모든 팀을 고객으로 두는 것이 최선이다. 원정 경기로 다른 모든 팀과 상대하기 때문이다.

한 팀에 서비스를 하면 (원정 경기 영상이 있기 때문에) 고객이 아닌 상대 팀의 데이터들도 확보할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 상대 팀들을 찾아가 “이 팀이 너희를 이긴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데이터를 줬기 때문이야”라고 설득했다. 이렇게 팀을 늘려가서 임계치를 넘어서면 협회나 리그와 계약을 요청한다는 전략이다. 리그 차원에서 영상이나 각종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리그 수준이 올라가고, 결국은 구단을 비롯해 리그의 시장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프로축구 유스리그와 K리그 3부가 리그 딜을 맺은 상태다.

현재 비프로일레븐이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중소형 팀들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구단들은 인력과 자본력이 대기업 못지않게 뛰어나다. 비프로일레븐의 기술력이 압도적이지만 굳이 서비스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비프로일레븐은 다른 구단들을 빠르게 고객으로 확보하고 리그 딜을 맺어 빅리그팀들 역시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일단은 고객을 안 뺏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중소형 팀들을 모아 리그마다 계약을 만들어 가면 결국은 ‘국가 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다음 국가 딜이 모이면 ‘전 세계 딜’이 되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상품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리그 수준별로 가격을 차별화한 것도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프로일레븐은 비디오 데이터 애널리시스, 트레이닝 레코딩, 매치 라이브 피드, 트레이닝 라이브 피드, 옵티컬 트래킹 등의 서비스를 같이 각각의 상품으로 나눴다. 그런 다음에 상품 조합에 따라 서비스 비용을 다르게 받았다.

비프로일레븐은 주머니 사정이 다른 만큼 리그마다 가격을 연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으로 차별화했는데 하부 리그라고 해도 수익이 적잖았다.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독일을 예로 들면, 독일 프로축구는 1∼3부가 전국 단위다. 4부에 5개 리그가 있고, 각 4부 리그의 밑에 5부 리그가 2∼3개 있다. 각 5부 리그의 아래에는 6부 리그가 2∼3개씩 존재한다. 팀이 아니라 리그가 그렇게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시장인 셈이다.

“독일 4부 리그의 한 구단이 한국 K2 리그(K리그의 2부 리그)의 한 구단과 규모가 비슷하다. 4부 리그 경기에 관중이 1만 명씩 온다. 5부 리그 팀들도 연 예산이 억 단위다.”

한 팀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면 여러 계약이 성사되는 효과도 있었다. 1부 리그 팀을 고객으로 들였다가 해당 구단의 서비스 만족도가 높으면 이 구단이 보유한 2, 3부 리그 팀이나 유소년 팀까지 계약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향후 사업 계획 및 목표

전 세계 ‘축구 인구’는 얼마나 될까.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현재 2억6000만 명이 축구에 푹 빠져 있다. 팀 숫자만 32만 개에 달한다. 시장이 넓은 만큼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물론 스탯츠, 스포츠코드 등 스포츠 데이터 시장을 미리 선점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비프로일레븐 관계자는 “픽스캠, 스카우팅 관련 자료, 24시간 내 경기 분석, 훈련 자동 촬영, 라이브 코딩, 원격 접속 서비스, 영상 솔루션, 경기 리포트, 모바일 앱, 데스크톱 호환성, 비디오 줌인·줌아웃 기능, 비디오 공유 기능, 영상 관리 기능, 팀원 전체 계정 제공 등의 서비스를 전부 제공하는 업체는 비프로일레븐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과 유저 친화적 인터페이스도 비프로일레븐의 강점이다.

먼저,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나가며 딜을 팀-리그-국가로 확장해나가는 것이 단기 목표다. 중장기 목표는 첫 번째로 AI를 활용해 ‘스카우트 시장’을 제대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현재는 바르셀로나든, 리버풀이든 수천억 원을 굴리는 업체들도 스카우터를 고용한다. 이들은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숨은 보석’을 발굴해내거나 비싼 선수들을 팀으로 끌어온다. 비프로일레븐이 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검색 엔진을 떠올려 보자. 18∼24세, 브라질, 미드필더(MF) 등 검색어를 넣으면 조건에 맞는 선수 목록이 뜨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성적부터 부상 기록 등 각종 정보를 보여준다. 또 데이터마다 영상까지 클립처럼 달려 있다. 굳이 스카우터를 현지에 보내지 않고도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수가 과거의 부상을 감추더라도 팀은 데이터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AI까지 접목하면 얼마나 가치 있는 데이터가 나올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요새 웬만한 유명 선수는 몸값이 1000억 원이 넘는다. 스카우트 한 번이 1000억 원짜리 의사결정인 셈이다. 이 선수의 유소년 시절부터의 기록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1억 원이 아까울까. 스카우트 시장은 잠재력이 굉장히 큰 곳인데 향후 데이터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롱테일 인터랙티브 브로드 캐스팅 미디어(공을 중심으로 따라다니는 기존 방식이 아닌 시청자가 보고 싶은 장면을 선택해 볼 수 있는 중계)’다. 이는 사용자가 ‘뷰’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이다. 비프로일레븐은 픽스캠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미국에서 일부 이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이는 미국 시장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미국에서는 구단보다 경기장과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프로 구단 못지않게 생활체육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축구협회에 등록된 9∼19세 축구선수(아마추어 포함)는 17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에서는 축구가 아이들의 참여형 스포츠 1위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비프로일레븐은 B2C 개념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사커맘’들을 공략했다. 경기나 훈련 영상을 틀어주면 사커맘들이 이를 보고 끝날 무렵 데리러 온다. 또 롱테일 인터랙티브 중계를 통해 ‘공’이 아닌 ‘자신의 아이만’ 계속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월 1만 원가량을 내면 집에 있는 할머니도 아이가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 서비스를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도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선수 스페셜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기존에도 일부 이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한 고등학교 축구부 학생이 자신의 16경기 스페셜 영상을 80만 원 주고 사 갔다. 미국에 진출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이를 사업화해볼 계획이다.” (강현욱 대표)

마지막 목표는 농구, 야구 등 타 종목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비프로일레븐은 “사실 농구가 축구보다 더 기술을 접목하기 쉽다”고 말한다. 경기장 규모가 작고, 그 안에서 뛰는 선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을 분류하기가 쉽다. 미국에서는 경기장과 계약을 맺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계약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경기장을 축구팀과 대학 미식축구팀이 같이 쓰는데 미식축구팀이 영상과 데이터 분석을 요청한 것이다. “공을 잡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싶다”며 비프로일레븐을 찾아왔다. 이 팀은 결국 비프로일레븐에 축구팀 외 첫 고객이 됐다.

여러 가지 사업 계획이 있지만 ‘전 세계 모든 스포츠 선수의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하겠다’는 비프로일레븐의 비전은 변하지 않았다. 강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포츠 산업의 구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직원들은 큰 꿈, 먼 꿈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 jhkim6@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Wharton School)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통계학 부전공). 사회와 기업의 다양한 문제를 계량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연구를 주로 했다. 저서로는 『Keeping Up With the Quants: Your Guide to Understanding+Using Analytics(Harvard Business Review Press)』와 『빅데이터가 만드는 제4차 산업혁명』이 있으며 DBR에 ‘Power of Analysi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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