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기후변화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돈은 많이 드는데 결과물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상황에 미리 대응해 위험을 줄이는 ‘적응’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생각하는 각도에 따라 적응 사업은 기업의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적응사업은 물 관리, 농작물 재배 관리 등 그 영향력의 범위와 수혜자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일종의 21세기형 인프라 사업인 것이다. 기업의 기술과 정부의 투자가 적절히 배합될 때 기후변화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확대될 수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제시된 단어다. 또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내외적으로 Green Economy와 같은 단어도 회자됐다.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우리 인류에는 재앙적인 변화를 초래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은 엄청난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으로 완화(mitigation,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거나 나무 심기 등 온실가스 흡수원을 늘리는 것)와 적응(adaptation,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물 부족·폭염·폭우·폭설·혹한·산불·전염병 등의 피해를 사전에 줄이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완화에 해당하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향상, 불소가스(HFC, PFC, SF6) 등 온실가스 소각, 조림 관련 비즈니스는 최근 탈원전, 탈석탄, 미세먼지 이슈 등과 결합하면서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적응 산업과 관련해서는 크게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10여 년 전 국내외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을 성공시키며 소위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최근 폭염과 에어컨, 미세먼지와 공기청정기를 연결하며 기후변화 적응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인은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당장의 더위는 피할 수 있지만 전기 사용량이 늘어 화력발전소들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적응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적응 산업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도 동시에 감축해야 하는데 그 답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답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도시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도시 내에 녹지나 수변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개인이 할 수도 없고,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전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후변화 비즈니스, 기회는 ‘적응’에사실 기후변화 완화 사업은 ‘에너지 절감 투자=온실가스 감축=비용 절감+탄소배출권’, 또는 ‘신재생에너지 투자=온실가스 감축=전력판매+탄소배출권’과 같은 개인 또는 민간 기업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적응 사업은 돈을 지불하는 주체와 편익을 받는 주체가 동일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홍수를 대비한 물 관리, 기온 상승에 대비한 농업 기술 투자 등 수혜자와 투자자가 일치하지 않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꿔보면 기후변화 적응 사업은 하늘·땅·강·산·바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자연재해 예방과 대응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인프라 사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적응 분야에서 기업의 사업 기회는 오히려 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고 투자 규모 또한 크기 때문에 기대수익이 더 클 수 있다.
2016년 한림대 환경생명공학부 김승도 교수 외 14인이 환경부에 제출한 “기후변화 적응산업 육성전략(Ⅱ)” 보고서에서 <표 1>과 같이 세부적인 9개 분야를 제시해 기후변화 적응 분야별 27개 유망산업을 도출했다. 유망산업은 주요 5개국(미국, EU, 일본, 중국, 한국)의 기술 수준, 시장 성장세와 국내 기업 시장점유율을 고려했고, 사업모델과 중장기 로드맵 등 육성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 유망산업들을 관찰해보면 식품·보건, 식량·생물자원, 건축·토목, 재해·재난관리, 보험·컨설팅 분야로 축약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기술 수준 역시 경쟁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적응 필요성과 사업 기회에 대한 인식도 넓게 공유되고 있다. 이미 폭염·폭우·가뭄과 같은 피해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다. 정부에서도 기후변화 적응 기술 및 사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적응 산업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국제개발은행 및 녹색기후기금과의 협력 진출까지 구상하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진출하면 선점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해수담수화 산업이 기후변화에 의해 물 부족 지역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글로벌 비즈니스이자 대표적인 기후변화 적응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 정보 포털에 의하면 전 세계 해수담수화 시장 규모가 2014년 4조 원에서 2018년 12조 원으로 3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찍이 해수담수화 사업에 투자했던 국내 기업인 두산중공업이 플랜트 설계와 시공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화학은 2005년에 설립된 해수담수화용 역삼투압 멤브레인 전문회사 NanoH2O를 2014년에 인수했고, 그 결과 해수담수화용 역삼투압 멤브레인 제조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 특히 사물인터넷(IoT)의 발달에 따라 물 부족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기술이 상용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고감도 누수감지 센서를 LTE 통신망에 연결해 상수도 수도관의 누수를 원격 모니터링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고 K-Water(한국수자원공사)와 함께 충남서부권에 원격 누수탐지 솔루션을 적용해 물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도 빅데이터와 IT 기반의 상시 누수 진단 시스템을 구축해 누수 징후를 선제적으로 탐지·복구해 누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물 절약뿐 아니라 수돗물 생산 비용, 누수 사고 처리 비용도 동시에 절감했다.
왜 적응 시장은 여전히 막연해 보일까?많은 민간 기업들은 기후변화 적응 시장 진출에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 민간 기업들이 기후변화 적응에 투자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숙제다. UNFCCC(유엔 기후변화 협약)는 적응 사업을 위해 2007년부터 Adaptation Fund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나라에 설립된 GCF(Global Climate Fund)도 적응사업 활성화를 위해 완화 대 적응 분야의 투자금 할당을 50대50으로 설정했지만 대부분 민간기업이 아닌 정부가 하는 공공사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적응 관련 사업의 경우 이미 해당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업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재해 예방 및 대응 분야는 건축·토목 업계가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업체가 신규 진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태다. 기존 시장 플레이어에게 기후변화 적응 사업은 기존 사업의 확장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적응인 폭우 예방과 대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수 저장시설이나 빗물펌프시설을 신규 설치하거나 더 큰 규모로 설치하는 것이다. 더 높은 제방을 쌓는 것도 기후변화 적응 활동이지만 그 본질은 토목사업이다.
결국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로 기존 시장 플레이어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사업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택이다. 기후변화 적응 농업 모델로 주목을 받는 ‘식물공장’은 LED 조명과 수경재배를 통해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재배해 외부 기상상황이나 병충해, 풍수해로부터 안전하게 농작물을 보호할 수 있다. 일본 대지진 이후 첨단기술업체인 후지쓰, 파나소닉, 도시바에서 차세대 신사업으로 식물공장 사업을 육성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 재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 광열비 등 고정비 과다와 판로 확보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시바는 2년 만에 해당 사업을 철수하고 현재 식물공장 업체 70% 이상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또한 새로운 기술로 기후변화 적응 시장을 개척하더라도 수익을 실제로 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의 2016 기상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후변화 적응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기상 관련 전문기술·서비스업(기상 연구개발업, 기상경영 컨설팅업, 기후영향평가 서비스업, 기상예보서비스업 포함)의 업체 수는 겸업을 포함해 106개,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2억4000만 원으로 대부분의 기상 서비스업체가 영세한 규모인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기상예보업체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A사도 업력이 20년이나 됐으나 기상관측·예보 등 서비스업 이외에 관측 시스템 제조·유지보수·개발업도 겸업하고 있으며 2015년 매출 81억 원에 당기순손실 40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기상 서비스 분야도 기후변화 적응 산업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으나 사업적으로는 아직 육성이 필요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