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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Climate Change

재해 예방하는 21세기형 인프라 사업, 민간+공공협업 '양 날개'로 날아야

박용진 | 231호 (2017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후변화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돈은 많이 드는데 결과물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상황에 미리 대응해 위험을 줄이는 ‘적응’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생각하는 각도에 따라 적응 사업은 기업의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적응사업은 물 관리, 농작물 재배 관리 등 그 영향력의 범위와 수혜자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일종의 21세기형 인프라 사업인 것이다. 기업의 기술과 정부의 투자가 적절히 배합될 때 기후변화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확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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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녹색성장’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제시된 단어다. 또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내외적으로 Green Economy와 같은 단어도 회자됐다.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우리 인류에는 재앙적인 변화를 초래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은 엄청난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으로 완화(mitigation,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거나 나무 심기 등 온실가스 흡수원을 늘리는 것)와 적응(adaptation,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물 부족·폭염·폭우·폭설·혹한·산불·전염병 등의 피해를 사전에 줄이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완화에 해당하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향상, 불소가스(HFC, PFC, SF6) 등 온실가스 소각, 조림 관련 비즈니스는 최근 탈원전, 탈석탄, 미세먼지 이슈 등과 결합하면서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적응 산업과 관련해서는 크게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10여 년 전 국내외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을 성공시키며 소위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최근 폭염과 에어컨, 미세먼지와 공기청정기를 연결하며 기후변화 적응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인은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당장의 더위는 피할 수 있지만 전기 사용량이 늘어 화력발전소들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적응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적응 산업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도 동시에 감축해야 하는데 그 답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답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도시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도시 내에 녹지나 수변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개인이 할 수도 없고,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전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후변화 비즈니스, 기회는 ‘적응’에

사실 기후변화 완화 사업은 ‘에너지 절감 투자=온실가스 감축=비용 절감+탄소배출권’, 또는 ‘신재생에너지 투자=온실가스 감축=전력판매+탄소배출권’과 같은 개인 또는 민간 기업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적응 사업은 돈을 지불하는 주체와 편익을 받는 주체가 동일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홍수를 대비한 물 관리, 기온 상승에 대비한 농업 기술 투자 등 수혜자와 투자자가 일치하지 않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꿔보면 기후변화 적응 사업은 하늘·땅·강·산·바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자연재해 예방과 대응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인프라 사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적응 분야에서 기업의 사업 기회는 오히려 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고 투자 규모 또한 크기 때문에 기대수익이 더 클 수 있다.

2016년 한림대 환경생명공학부 김승도 교수 외 14인이 환경부에 제출한 “기후변화 적응산업 육성전략(Ⅱ)” 보고서에서 <표 1>과 같이 세부적인 9개 분야를 제시해 기후변화 적응 분야별 27개 유망산업을 도출했다. 유망산업은 주요 5개국(미국, EU, 일본, 중국, 한국)의 기술 수준, 시장 성장세와 국내 기업 시장점유율을 고려했고, 사업모델과 중장기 로드맵 등 육성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 유망산업들을 관찰해보면 식품·보건, 식량·생물자원, 건축·토목, 재해·재난관리, 보험·컨설팅 분야로 축약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기술 수준 역시 경쟁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적응 필요성과 사업 기회에 대한 인식도 넓게 공유되고 있다. 이미 폭염·폭우·가뭄과 같은 피해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다. 정부에서도 기후변화 적응 기술 및 사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적응 산업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국제개발은행 및 녹색기후기금과의 협력 진출까지 구상하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진출하면 선점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해수담수화 산업이 기후변화에 의해 물 부족 지역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글로벌 비즈니스이자 대표적인 기후변화 적응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 정보 포털에 의하면 전 세계 해수담수화 시장 규모가 2014년 4조 원에서 2018년 12조 원으로 3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찍이 해수담수화 사업에 투자했던 국내 기업인 두산중공업이 플랜트 설계와 시공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화학은 2005년에 설립된 해수담수화용 역삼투압 멤브레인 전문회사 NanoH2O를 2014년에 인수했고, 그 결과 해수담수화용 역삼투압 멤브레인 제조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 특히 사물인터넷(IoT)의 발달에 따라 물 부족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기술이 상용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고감도 누수감지 센서를 LTE 통신망에 연결해 상수도 수도관의 누수를 원격 모니터링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고 K-Water(한국수자원공사)와 함께 충남서부권에 원격 누수탐지 솔루션을 적용해 물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도 빅데이터와 IT 기반의 상시 누수 진단 시스템을 구축해 누수 징후를 선제적으로 탐지·복구해 누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물 절약뿐 아니라 수돗물 생산 비용, 누수 사고 처리 비용도 동시에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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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적응 시장은 여전히 막연해 보일까?

많은 민간 기업들은 기후변화 적응 시장 진출에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 민간 기업들이 기후변화 적응에 투자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숙제다. UNFCCC(유엔 기후변화 협약)는 적응 사업을 위해 2007년부터 Adaptation Fund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나라에 설립된 GCF(Global Climate Fund)도 적응사업 활성화를 위해 완화 대 적응 분야의 투자금 할당을 50대50으로 설정했지만 대부분 민간기업이 아닌 정부가 하는 공공사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적응 관련 사업의 경우 이미 해당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업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재해 예방 및 대응 분야는 건축·토목 업계가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업체가 신규 진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태다. 기존 시장 플레이어에게 기후변화 적응 사업은 기존 사업의 확장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적응인 폭우 예방과 대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수 저장시설이나 빗물펌프시설을 신규 설치하거나 더 큰 규모로 설치하는 것이다. 더 높은 제방을 쌓는 것도 기후변화 적응 활동이지만 그 본질은 토목사업이다.

결국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로 기존 시장 플레이어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사업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택이다. 기후변화 적응 농업 모델로 주목을 받는 ‘식물공장’은 LED 조명과 수경재배를 통해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재배해 외부 기상상황이나 병충해, 풍수해로부터 안전하게 농작물을 보호할 수 있다. 일본 대지진 이후 첨단기술업체인 후지쓰, 파나소닉, 도시바에서 차세대 신사업으로 식물공장 사업을 육성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 재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 광열비 등 고정비 과다와 판로 확보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시바는 2년 만에 해당 사업을 철수하고 현재 식물공장 업체 70% 이상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로 기후변화 적응 시장을 개척하더라도 수익을 실제로 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의 2016 기상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후변화 적응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기상 관련 전문기술·서비스업(기상 연구개발업, 기상경영 컨설팅업, 기후영향평가 서비스업, 기상예보서비스업 포함)의 업체 수는 겸업을 포함해 106개,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2억4000만 원으로 대부분의 기상 서비스업체가 영세한 규모인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기상예보업체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A사도 업력이 20년이나 됐으나 기상관측·예보 등 서비스업 이외에 관측 시스템 제조·유지보수·개발업도 겸업하고 있으며 2015년 매출 81억 원에 당기순손실 40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기상 서비스 분야도 기후변화 적응 산업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으나 사업적으로는 아직 육성이 필요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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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적응사업, 민간+공공 협업 모델 눈여겨봐야

기후변화 적응사업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정보통신기술이 응용된 친환경 사업을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추진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RFID 기반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카드나 비밀번호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 음식물 쓰레기 무게만큼 수수료를 부과해 쓰레기 감량에 큰 성과를 냈다.
2010년부터 환경부와 LG유플러스의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과 정책 효과를 성공적으로 실증했고, 이후 KT도 가세해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의하면 2016년 말까지 전국 146개 시·구 중 88%에 해당하는 129곳에서 RFID 기반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했으며 전국 공동주택 860만 세대 기준 약 35%에 해당하는 310만 세대에서 편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사업 모델은 향후 확대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향후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 산업의 육성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전통적인 재해방지에 해당하는 인프라 건설 및 하드웨어 산업을 첨단화하기 위해서 재해 및 재난 대비 기준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 지난 7월16일 시간당 90㎜가 넘는 폭우로 수해를 입은 청주시의 경우 시간당 80㎜ 넘는 폭우에도 침수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우수 저류시설이 미리 설치돼 있었으나 22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자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수 저류시설의 시간당 처리 용량을 더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기후변화와 비용최소화를 고려한 최적 설계와 시공기술이 더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민간 기상산업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에 의하면 미국은 이미 2011년에 기상산업을 9조 원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시켰고 기상학자를 포함한 3만 명 이상의 전문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상예보업이나 컨설팅업, 장비 제조·유지보수·개발업에 더해 기상감정업과 같이 특정 지점의 기상 현상을 추정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도 이미 민간업체를 위해 기상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해당 산업의 육성을 위해 민관 파트너십 사업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료 정보 생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매년 가뭄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 관리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신기술을 적용해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환경부는 작년에 물 산업 클러스터를 착공하는 등 물 산업 육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에 더해 해수담수화 및 누수탐지, 하수 재이용 사업을 더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정부 지원으로 인천 및 전남 도서지역에 태양광·태양열·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해수담수화 시설 실증이 추진되고 있고 충청남도 및 속초시에서도 해수담수화 플랜트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누수탐지 솔루션은 이동형 설치가 가능하므로 가뭄 문제가 심각한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설치하면 물 부족 문제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 및 도시 인프라를 기후변화 적응 관점을 반영해 설계하고 구축해야 한다. 최근 도시재생사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정주여건 및 Amenity 개선을 위해서라도 폭우나 폭서, 혹한 등 다양한 극단적인 기상현상에서 재해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체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기업이 먼저 나서서 하기에는 제약조건이 많다. 이런 사업들은 공공성을 띄거나 공공정보 또는 자원을 사용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 사업으로 시작하면 기술과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성공 사례를 만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진출해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올해 쿠웨이트, 볼리비아, 인도에 수출하고 있는 스마트시티도 과거 U-city(2007∼현재, 국토교통부),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2009∼2013, 산업통상자원부), 사물인터넷(IoT) 실증단지(2015∼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같이 다양한 실증 및 시범단지 조성에서 정부 투자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

스마트시티는 친환경적이고 편리하며,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종합 솔루션이다. 스마트시티의 수출은 단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과 설계, IT 기기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패키지로 판매할 수 있는 기회다. 민간 기업과 업계에서는 정부의 실증사업에 참여해 이미 개발한 신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다. 이때 신기술의 개선점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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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적응 비즈니스, 어떻게 확대될 수 있을까

그러면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한 신기술 또는 신사업은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가?

우선 정부 및 공공기관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지난 6월 우리나라는 40여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경험했다. 항상 가뭄이 올 때마다 언론에서는 인공강우, 해수담수화, 수도망 누수탐지 및 관리와 같은 신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막상 이런 사업을 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너무나 척박하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나라에는 사막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기후변화의 피해, 문제점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 관련 고민이 장기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최악의 가뭄 직후에 국지성 폭우로 물난리가 나면서 이미 가뭄에 대한 걱정과 대비책에 대한 논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수담수화의 예를 들어보자.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은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있어 방사능을 우려하는 NGO와의 갈등도 있다. 취수지역이 고리 원전으로부터 11㎞ 떨어진 지점이라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NGO가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수담수화 시설의 물 생산 원가(톤당 1187원)가 낙동강 물을 취수한 원가(톤당 941원)보다 높다는 반대 논거도 제시한다. 해수담수화의 목적은 사라진 채 경제성만 두고 논의하는 것이다. 애당초 가뭄으로 낙동강 물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해수담수화 시설은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해수담수화 시설이 가뭄에 대비하는 위기관리용이고, 높은 물 생산 원가는 위기 대응 비용이다. 위기 대응 비용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기후변화 적응 산업은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인식 개선이 있어야 기후변화 적응 사업의 확대가 가능하다.

기후변화 적응 기술이 ‘죽음의 계곡(Valleys of death)’을 건널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신기술을 수용해 대규모 실증(Demonstration)과 최초 적용(Deployment)에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영국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개발된 기후변화 기술이 상용화되는 과정을 관찰해보면 연구개발(R&D) → 실증(Demonstration) → 최초 적용(Deployment) → 확산(Diffusion) → 상용화(Commercial Maturity)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림 1) 그런데 단계별로 1단위당 기술비용은 경험과 역량이 증가하면서 점점 감소세를 보이며 1단위당 필요로 하는 투자액은 실증과 최초 적용 단계에서 가장 많이 소요된다. 기술비용보다 투자액이 더 많이 필요한 구간에서 펀딩 갭(Funding Gap)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이 단계에 들어간 많은 신기술들이 죽음의 계곡에서 자금이 고갈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 실증에 어느 정도 성공해 대규모 실증이나 최초 적용을 기다리고 있는 신기술들이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게 하려면 ‘수요 창출 정책’과 ‘자금 수혈’ 정책이 필요하다. 사실 당장 시장이 형성되는 신기술이라면 이 단계에 들어갈 때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하겠지만 기후 신기술은 상황이 다르다. 수요는 있지만 시장에서 기꺼이 돈을 내는 수요자가 적기 때문이다. 결국 이 단계에서 매출이 일부라도 발생하거나 지원금을 받아야 기후 신기술들은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후 신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정부의 공공 기술개발 펀딩이 1단계와 2단계 초반에 집중돼 있다. 대규모 실증과 최초적용 단계에서 공공 투자를 진행하지 않거나 테스트베드 사업을 하면서 정말 땅과 건물‘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정리하면, 기후변화 적응 산업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 발주하고 민간기업이 공급하는 재정사업의 형태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공공기관은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평가하고, 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대책과 예산을 세워놓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민간기업이 이미 개발해 실증을 완료한 기술을 최초 도입(deployment)하는 선각수용자(early adopter)의 역할을 해야 산업이 육성된다. 그래야 그 실적을 기반으로 해외 수출도 가능하다. 물론 신기술 최초 도입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이는 성과보증계약과 같은 방식으로 헤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후변화 적응 기술의 연구개발은 대규모 실증(demonstration)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기관은 적극적인 선각수용자가 되기보다는 다른 나라가 도입하고 나서야 신기술을 도입하는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실패 때문에 공공재원을 낭비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이해하지만 일반적인 건축·토목 사업과 신기술사업은 성격을 달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런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해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와 민관협력사업(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용진 ㈜ LG CSR팀 부장 yjpark21@lg.com

박용진 부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기술경제경영정책 협동과정과 세종대 기후변화특성화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LG전자 입사 후 에너지·환경·탄소배출권 사업 개발과 사업장 에너지관리 업무를 맡았고, 현재는 ㈜ LG에서 그린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맡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 가뭄, 물 부족 등이 당신의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고 장기적으로 이에 대비하는 비용이 앞으로 닥칠

리스크보다 더 크다고 보는지 판단해보자.



2. 작고 간단한 기술이라도 해당 지역의 환경 인프라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 기업에서 개발하고 있거나 이미 개발한 제품·기술 중 개발도상국이나 저소득층 시장에

꼭 필요한 기술이 있는지, 적정한 변형을 통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 박용진 박용진 | LG전자 입사 후 에너지·환경·탄소배출권 사업 개발과 사업장 에너지관리
    현재는 ㈜ LG에서 그린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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