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인상률이 높지 않아서 실망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자네한테는 아직 기회가 많으니까 실력을 인정받을 일도 자주 있을 거야.”
“아닙니다. 실망은요. 회사가 정한 건데요.
전 그보다도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고 시장에서 자리 잡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연봉 이상의 큰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 작은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셨던 본부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 아니…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민망한데? 사실 손 사원 자네를 볼 때마다 신입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나도 자네만 한 연차 때에는 그런 패기, 열정이 있었지. 언젠가 이 회사를 내가 쥐락펴락하겠다는,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하하. 그때는 자신감도 넘쳤고 사람들이 나를, 내 실력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종종거렸던 것 같은데 자네는 겸손하기까지 하단 말이야.
올해에는 승진도 될 테고, 언젠가 이 회사에서 꼭 필요한 인재가 될 테니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에서 오래 일했으면 좋겠네.”
이렇게 손 사원과의 서로를 향한 칭찬을 끝으로 연봉협상이라 쓰고 성과평가 또는 다짐 또는 분위기 쇄신 또는 심기일전이라 읽는, 1년 중 제일 불편한 면담의 시간이 끝났다.
물론, 이번 면담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건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자 다른 부서에 있다가 차출돼 구성된 팀 치고는 호흡도 좋았고, 다행히 지난해 상반기에는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획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구성원 모두 별다른 불만 없이 올해 면담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정한 것도 아니고, 그저 회사의 방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인 데도 괜히 미안해하곤 했던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올해는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왠지 그렇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과장에게 줄 큰 선물도 하나 있는데…
이걸 어떻게 줘야 더 감동받게 할 수 있을까?
일단 전 과장을 불러야겠지?하는데 들리는 노크 소리.
“본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어?
그렇잖아도 지금 좀 보자고 할 참이었는데.”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자네야 말로 무슨 일인가?”
그러자 방에 들어올 때부터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던 전 과장은 내 책상 위에 웬 파일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 이게 뭔가?”
“네, 제 업무일지입니다.”
“!!! 근데 그걸 왜?”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제가 그동안 어떤 일을 어떻게 했고, 그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보여드리려고요.”
“??? 전 과장 자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 그래서 아까 전 과장도 기분 좋게 연봉계약서에 사인한 거 아니었나?“
“네, 그땐 그랬죠. 그런데 이 대리 인상률이 저보다 1% 높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 대리보다 덜 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아니, 1%가 그렇게 중요해? 게다가 자네보다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인상률이 그만큼 이래봐야 자네 연봉에는 턱없이 부족한 데도? 그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네, 저한테는 중요합니다. 인상률이 낮다는 건 제가 그만큼 기여를 덜 했다는 의미이니까요.”
“하∼ 이거 참. 어차피 연봉은 각 직급별 산정 시스템에 따른 것이고 자네 연봉이 전혀 불합리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자네가 까마득한 부하직원과 1% 싸움이나 하는 통 작은 사람인 줄 미리 알았으면 이런 건 준비도 안 했을 거야.” 하면서 내가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서류를 건네자 그 내용을 읽어본 전 과장 눈이 휘둥그레진다.
“부부동반 미 서부 일주가 포함된 라스베이거스 국제 리더십 콘퍼런스 참석? 이, 이게 뭡니까?”
“뭐긴, 회사에서 따로 준비한 인센티브지.
그동안 신혼여행 갔던 라스베이거스 다시 가 보고 싶다고 노래를 했지 않나. 우리 회사에서 딱 한 명만 참석하는데 자네를 추천했어. 회사에서 좀 더 신경써서 일정도 20일로 여유 있게 잡았고 출장 처리 될 테야, 비행기도 비즈니스로 끊는다고 했고, 무엇보다 이 콘퍼런스 참석이 인사평가에도 반영될 텐데.. 내가 이거 다시 반려하고 평가결과 및 연봉인상률 재고해달라 한번 이야기해볼게.”
“아, 아닙니다, 본부장님. 회사가 언제 틀린 결정하는 것 봤습니까? 정말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
“그나저나, 대체 이 대리 연봉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이 대리가 말해줬나?”
“아니요. SNS에 올렸던데요?”
“뭐라고? 이 대리 이 XX. 당장 내리라고 해!!!!”
스토리 =
김연희 작가 samesamesame@empal.com 인터뷰 정리 =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미팅노트 =
강효석 상무
truef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