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키를 쥐고 있는 제일모직이 2014년 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제일모직이 자산재평가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이 자산재평가를 통해 주가를 띄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일모직은 자산재평가를 포기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일모직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자산재평가는 유형자산의 장부가액을 늘리지만 동시에 감가상각비도 늘어나게 돼 재무제표상 기업의 순이익을 감소시킨다. 또 토지의 경우는 감가상각비가 늘지는 않지만 기업의 자산과 자본이 늘어나 자산수익률(ROA·return on assets)이나 자본수익률(ROE·return on equity)에 악영향을 미친다.
편집자주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4년 12월18일, 그동안 비상장으로 남아 있던 삼성그룹 계열사 제일모직이 상장했다. 제일모직은 패션, 급식 및 식자재 유통, 건설, 레저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 사업부 외에 바이오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 삼성전자의 모회사인 삼성생명의 지분 19%를 보유한 모회사이기도 하다. 제일모직이 삼성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앞으로 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제일모직이 실질적인 지주회사가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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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대가 반영됐을까? 주가는 상장되자마자 급등하기 시작했다. 공모가가 5만3000원이었는데 상장 첫날 종가는 두 배 이상 뛴 11만3000원이 됐다.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은 15조 원을 넘어섰고 단숨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기준 10위권을 기록했다.
2014년 중반부터 제일모직의 상장은 증권가 전체의 큰 관심사였다. 상장 직전 있었던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무려 500조 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이로 인해 같은 해 삼성SDS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며 세웠던 463조 원의 기록이 깨졌다.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제일모직의 발전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일모직 상장 이전, 회계와 관련된 이슈로 논란이 됐던 것은 제일모직의 적정 공모가격이 얼마냐는 것이었다. 상장을 앞둔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높은 공모가격이 책정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공모를 주간하는 증권사 입장에서 보면 내재가치보다 더 높은 공모가격이 책정된다면 이 주식을 매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공적으로 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기 위해서는 공모가가 너무 높아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양자가 균형을 이루는 적정한 수준에서 공모가가 결정되게 된다.
공모가 결정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언론들은 제일모직이 상장을 앞두고 자산재평가를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내놨다. 제일모직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는 경기도의 토지(에버랜드 및 레이크사이드골프장 부지 등을 포함함)가 약 435만 평(1450만㎡)인데 이 토지의 장부가는 9093억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토지의 대부분은 수십 년 전 평당 평균 약 20만 원 정도에 취득한 것으로서 회계장부에는 취득원가로 기록돼 있다. 이 토지들의 현재 시가가 평당 100만 원은 될 것이므로 20만 원을
100만 원으로 재평가하면 토지의 장부가치는 무려 3조6000억 원 정도 상승한 4조5000억 원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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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상태표에 표시된 제일모직의 전체 자산의 가치가 4조4000억 원쯤이므로 토지를 제외한 제일모직의 다른 자산들의 장부가치가 3조5000억 원이다. 따라서 위의 설명이 옳다고 가정하면 자산재평가를 통해 전체 자산의 장부가치는 무려 8조 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 시가총액도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일모직은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제일모직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자산재평가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자산재평가의 정의와 효과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형자산의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 회계장부에는 이런 유형자산의 시가를 반영하지 않는다. 일정한 가정에 의해 계산되는 감가상각비를 누적시킨 금액인 감가상각누계액을 계산하고 유형자산의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누계액을 차감한 금액을 회계장부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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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장부에 보고된 이 금액을 유형자산의 ‘장부가’ 또는 ‘장부가치’라고 간단히 표현한다. 그런데 유형자산의 장부가는 시가와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양자가 크게 다를 수도 있다. 장부가보다 시가가 상당히 높은 경우 자산재평가를 할 수 있다. 자산재평가를 하면 기존 장부가를 수정해 시가를 새로운 장부가로 삼게 된다. 즉, 자산 금액이 늘어나게 된다. ‘자산 = 부채 + 자본’이라는 기초적인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 등식에 따라 자산이 증가한 만큼 동일한 금액을 자본 계정에 ‘기타포괄손익누계액’ 항목으로 적는다. 따라서 자본도 동시에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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